여느 반과 다름없는 교실에서 착 가라앉은 듯 무거운 기류가 흘렀다.반쯤 풀어헤쳐져 하얀 속살이 훤히 보이는 더러워진와이셔츠와 온몸 곳곳에 난 크고 작은 상처들을 입은 채 가쁘게 숨을 내뱉고 있는 소년 주위에는 몇몇의 남학생들이 서있었다. ".. 생긴 건 예쁘장해가지고는 말이야.." "하아.. 하아.." 남학생의 무리 중 한 명이 턱을 우왁스럽게 잡아 좌우로 돌리자 소년은 힘이 들어가지 않는 팔을 억지로 올려 손을 거칠게 내쳤다. 그리고 소년에게 돌아오는 것은 무자비한 폭력이었다. 열댓 명의 남학생들이 마른 몸을 향해 발길질을 해대자 소년의 붉은 입술 사이로는 신음이 터져 나왔다. 누가 봐도 심하다 할 정도의 폭력은 그 어느 행동보다 눈에 띄었으며 발길질을 해대는 소리와 신음은 다른 학생들이 떠드는 소리보다 컸지만 그 교실은 여느 교실과 다를 게 없었다. 뒤에서 들려오는 보이는 폭력 현장은 마치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것처럼 학생들은 웃으며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고 장난을 치는 그 모습은 정말로 여느 교실의 학생들과 다를 게 없었다. "악! 으윽!.. 윽!.. 흑!" "그만해." 한참이나 이어지던 폭력은 소년의 신음 사이로 들려오는 단호한 목소리에 멈추었다. 무리들 사이로 다가오자 남학생들은 물이 갈라지듯 옆으로 물러났고, 학생들이 떠드는 소리도 정적으로 변해버렸다. 커다란 알 없는 안경에 단정한 복장. 모범생인 듯한 남학생은 도와주려는 것인지 소년에게 다가갔다.무릎을 굽히고는 소년의 탑을 잡아올려 시선을 마주했다. 금방이라도 도와줄 것 같이 생긋 웃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그러니까.. 그러지 말았어야지.. 명수야." [현명]무제. 쏴아아아- 파랗던 하늘이 회색빛으로 물들어버렸다. 아침까지만해도 두둥실 떠다니던 하얀 구름은 온데간데 없고 세찬 비를 뿌려대는 먹구름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있었다.걸을 때마다 적셔지는 바짓가랑이가 짜증이 나는지 미간을 구기던 남자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명수야!!" 좀전까지 짜증내던 옷이 젖는 것 따위는 신경도 안쓰는지 손을 흔들며 명수라 불리운이에게 달려갔다. "어..동우야,안녕." "으하하핳!!어디가??" "아..아빠 술드셔서..그냥 나왔어.." 이유가 무엇인지 안다는 듯 고개만 끄덕일뿐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동우와 명수는 그저 걸었다.목적지 따위는 없었기에. 고개를 푹 숙인채 땅만 바라보며 걷던 명수에겐 앞에서 사람이 달려오는지 눈치채지못했다. "..어..어,명수야!ㅇ..앞ㅇ.. " 파악- 피하라는 동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명수와 남자는 부딪혔고, 그 반동 때문이지 뒤로 넘어간 명수에 반에 남자는 멀쩡히 서있었다. 우산이 나뒹굴어져 옷이 젖어가고있다는 것을 빼고는. "명수야!괜찮아?" "어..?으응..괜찮아.." "그쪽은요." 남자는 명수에게 말할 때와 저에게 말할 때의 말투가 확실히 다른 것에 피식 웃음지었고, 나뒹굴어진 우산을 집어들어 다시쓰고는 둘을 바라봤다. "뭐..괜찮지..그쪽보다는." 남자의 시선이 명수에게 오랫동안 머물렀다.부담스러운지 시선을 회피하며 고개를 푹 숙이는 명수의 시야로 남자다운 손이 다가왔다. "잡아, 안일어날거야?" "..아..감사합니다.." 남자의 손에 슬며시 얹어진 손은 하얗고 가느다랬다.여느 여자의 손과 다를게 없달까. 명수가 일어났음에도 남자는 손을 조물조물거리며 놓지않았다. "언제까지 잡고 있을 겁니까?" "아,미안." 마지막 한마디와 함께 남자는 씨익 웃으며 손을 놓았고, 명수를 슬쩍 훑었다. 그 시선은 동우가 남자를 노려보며 어딘가로 끌고감으로인해 끊겨버렸다.시내여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길을 메우고있기에 동우와 명수는 남자의 시야에서 쉽사리 사라지지 못했고, 뒤에서 느껴져오는 따가운 시선에 동우는 슬쩍 뒤를 돌았다.정말로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모양으로 뻐끔거렸다. 마.음.에.들.었.는.데.아.쉽.네?.뭐.어.차.피.. 동우의 미간이 한글자 한글자 보여질 때마다 구겨졌다. 마지막 글자들은 지나가는 사람들로인해 가려져 보이지않았다.하지만 그 것만은 볼 수 있었다. 명수에게 끈적하게 달라붙은 시선과 의미심장한 미소를.동우가 뒤를 바라보는 모습에 똑같이 뒤를 돌아보는 명수에게 씨익 웃으며 손을 흔들고는 저가 갈길을 가버렸다. "왜그래?" "..." "장동우야?" "어..어??아니야,가자." "으응??어..응." 자신의 손목을 감싼 단단하고 남자다운 손을 한번 스윽 쳐다보고는 다시 시선은 앞으로 향했다.조금씩 조금씩 먹구름이 걷히고햇빛이 고개를 내밀었다.비가 조금 멎은 하늘우 푸른 색과 회색 빛이 섞여 오묘한 빛깔을 만들어내고있었다. "명수야, 학교는 언제오려고?" "으응??아..일주일이나 쉬었으니까 내일은 가야지.." "그래?그럼 내일 데리러 올게.춥다, 얼른 들어가." 달동네 꼭대기에 위치한 금방이라도 쓰러질듯 허름한 집 한채.그 집의 부실한 문에 기대어 있는 명수의 등을 억지로 떠밀어 집으로 들어섰다.널부러져있는 술병들과 엎어진 술이 한가득 방바닥을 차지하고있었다. 그 사이에는 수염이 지저분하게 난 덩치큰 남성이 코를 골며 자고있었다. "얼른 들어가 아저씨 깨기전에." "응..잘가.." 좁디 좁은 집에 딸려있는 방하나.책상하나가 겨우들어갈 정도로 작은 그 방에 들어서자마자 명수는 그대로 바닥에 엎어졌다.철컥하고 문이 열리며 소음을 만들어냈다.동우가 나름대로 조심스레 나가려하였겠지만 어쩌겠는가. 낡아빠진 집의 문이라 멀쩡하진 않기에어떻게 열든 큰 소음을 만들어냈다. "..교복..어디있더라.." 그 중얼거림을 끝으로 명수의 눈이 스르륵 감겼다.커튼이 없는 창문을 통해 햇빛이 들어와 명수의 곁을 맴돌았다. 차디 찬 방바닥에서 곤히 잠든 명수를 누군가 다독이듯 두드리며 조심스레 깨웠다. "명수야~학교가야지" 다정하고 남자다운 목소리에 놀란듯 명수가 몸을 흠칫 떨며 부스스 일어났다. 반쯤 풀린 눈으로 저를 빤히 쳐다보는 명수의 시선을 피하며 빨리 교복을 입으라고 중얼거리며 되풀이한다. "어떻게들어왔어?" "문열려있던데?그리고 아저씨 또 나갔나봐" "아..그래.."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구석에 방치 되어있던 구겨진 와이셔츠를 주워들었다. 입고 있던 낡은 티를 아무렇지 않게 벗어던지고는 와이셔츠를 입는 모습에 동우가 더 놀랐다. "왜?" "너..너.. 그렇게 훌렁 훌렁 벗는 거 아니다?!" "내가 여자냐..그리고 같은 남자끼리뭐.." 잠깐이지만 보였던 하얀 속살.뼈가 보일정도로 마른 몸까지는 아니지만 잘록한 허리 곡선.그 모습에 동우는 저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었다. "어,어!!나..나가있을게!" 바지까지 벗어내리려는 모습에 뒤도 안돌아보고 집을 뛰쳐나왔다.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후즐근 츄리닝을 벗어내고는 교복 바지를 대충 껴입었다.교과서나 필기도구는 다 학교에 쳐박아두고 왔기에 따로 챙길 것은 없었다. 어차피 책가방도 없었기에 얇은 점퍼를 입고는 기다리는 동우에게 다가갔다. "가자.." "안추워??" "이런거 가지고..뭘.." 감기걸린다며 동우는 자신의 목도리를 풀어 명수의 목에 감았다. 딱히 거절하지 않는 것을 보아하니 춥긴 추웠나보다.달동네를 벗어나니 바로보이는 저들의 학교.외관상으로는 낡아빠져보이지만 내부는 작년 여름에 리모델링을 했기에 여느 학교에 뒤쳐질 만큼은 아니었다. "안녕하세요." "어,그래." 학교 정문 앞에 떡 하니 서서 학생들을 스캔하는 학생부 선생님에게 인사를 건내고는 그 곳을 후다닥 빠져나왔다. 교복을 제대로 갖춰입지 않은 명수가 벌점을 받을까봐서. 지은지 오래된 학교는 반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에 맞게 학생들도 다른 학교의 학생들과 다르게 눈에띄게 적었다.2학년 8반.2학년의 마지막 반이자 동우와 명수의 반이었다.교실에는 이미 학생들이 자리에 앉아있었고, 교탁에는 선생님이 저들을 빤히 쳐다보고있었다. "퍼뜩 앉아라!" "아,네!죄송합니다!" 동우는 멍하니 서있는 명수를 끌고 자신의 옆자리에 앉혔다. "우현아,친구들한테 인사해야지?" "네,선생님" 씨익 웃으며 선생님에게서 눈을 떼고 시선을 돌렸다.시선을 따라가면 그 끝에는 명수가 있었다. "안녕, 남우현이야.잘부탁해" 분명 모두에게 말하는 것일텐데 이순간만큼은 오로지 명수에게만 말하는 것만 같았다.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명수에게 씨익 웃어주니 재빨리 고개를 내리는게 귀여워 키득거렸다. "어디보자.. 우현이 너는..자리가.." 선생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우현의 발걸음이 먼저 움직였다. 성큼 성큼. 당당한 발걸음이 멈춰선 곳은 동우와 명수가 앉아있는 자리였다. "나 여기에서 얘랑 앉고 싶으니까 꺼져줄래?" 생긋 웃으며 살벌하게 말하는 우현에게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맨뒤에 앉아있게 잘보이지 않아 긴가 민가 했는데 가까이서 보니 맞았다. 어제 만난 그 남자가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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