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따라 박찬열은 좀 이상했다
"야 박찬열, 밥 안먹어?"
"응 밥맛이 없어서"
한끼라도 굶으면 눈에 눈물까지 고이는 애가 밥도 거르고
틈만 나면 찾아왔던 어제까지완 달리 복도에 일부러 나가봐도 코빼기도 안보이는게 아닌가
화난건 아닌것 같고
뭐랄까,
혼이 빠져나간 느낌?
그 길로 박찬열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얼마 전에 만나서 친해졌는데 고등학교 때 부터 친구랬으니까 뭐든 아는게 있겠지
-뚜르르르르 뚜르르르르
참 원초적인 컬러링을 가지고 있구나
"여보세요"
"으음....징어누나?"
베개에 얼굴을 파 묻고 있는듯한 목소리
자다 일어난건가?
어쨌든 얜 박찬열 후배다 몇 살이더라 스물 셋?
"어 세후나"
"무슨 일이에요? 먼저 전화를 다하고?"
"일단 나 좀 잠깐 만나자"
-
"넌 나 만나는데 그 꼴로 오고 싶냐?"
자다 방금 일어난게 확실해진 반팔티 한장에 트레이닝복 바지
까치집 지은 머리에 세줄슬리퍼까지 질질 끌고 오셨더랬다
"저도 사람 만날 땐 나름 신경쓰고 다녀요"
그럼 뭐 난 사람도 아님?
"아 됐고. 점심시간 얼마 안남았으니까 본론부터"
"네"
"요즘 박찬열한테 안좋은 일 있어?"
"안좋은 일? 딱히 없... 아"
정말 모른다는 표정을 지으며 생각하던 오세훈이 뭔가 기억났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린다
"있어요 안좋은 일"
"뭔데? 오늘 하루종일 애 상태가 말이 아니더라고"
"고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있었던 일이라 저도 자세힌 몰라요"
그 말을 끝으로 세훈이는 나에게 박찬열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저도 이건 다른 선배한테 들은건데
'대회까지 얼마나 남았지?'
'일주일도 안남았어'
'이번에도 꼭 우승하는거다?'
사실 찬열이형은 춤을 정말 잘췄대요
나가는 대회마다 입상했고 저희 지역에선 박찬열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죠
그리고 형의 친구였던 김종대
그 사람도
'우리 엄마가 너 놀러오래'
'하여간 날 너무 좋아하신다니까?
언제갈까 오늘?'
두 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끼리도 친한 소꿉친구였대요
둘 다 춤을 정말 좋아했고 잘춰서
모든 사람들이 그 두사람을 응원했고 그들의 앞을 가로막는건 없을거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박찬열!!!'
'마침 잘왔다 너 종대 못봤어?'
'지금 김종대 교통사고 났어!!!!'
우승하면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는 대회를 하루 앞두고 종대형은 교통사고가 났어요
결국 대회는 못나가게 되었고 며칠을 혼수상태로 중환자실에 있다가 찬열이 형 곁을 떠났대요"
"아..."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아까 종대형의 교통사고를 알려준 사람 기억해요?
근데 그 교통사고, 그 사람이 낸거래요
그 사람. 춤을 잘췄어요
하지만 항상 2등이었어요
좋은 기회 앞에서 결국 평소 친하게 지내던 친구를 나락으로 밀어버렸죠
그 후 대회에서 우승했지만 죄책감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유서를 쓰고 자살한걸로 알고 있어요
아마 오늘은 종대형의 기일일거에요"
"....."
"벌써 두시네요? 저는 이만 일어날게요 누나도 회사 들어가보셔야죠"
"그래 고마워.."
세훈이가 나간 후로도 카페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덕분에 회사에서 눈초리를 좀 받긴했지만 내 머릿속에는 찬열이 밖에 들어오지 앉더라
항상 웃고 다니던 찬열이에게 그런 사연이 있을줄은 꿈에도 몰랐다
결국 퇴근 때 까지 일을 어떻게 했는지도 기억이 안난다
어?
"박찬열!"
"징어?"
"어디가?"
"친구.. 만나러"
그 때 찬열이의 표정을 보고 나는 알아챌 수 있었다
지금 만나러가는 친구가
김종대. 그 사람을 이라는걸
"나도 따라가도 돼?"
"그래"
-
차를 타고 얼마나 달렸을까
아주 큰 호수가 내 눈 앞에 펼쳐졌다
"여긴"
"여기 있어, 내 친구"
"...김종대?"
"아는 구나"
"미안해"
"아니야 세훈이가 말해줬어?"
"응"
"그렇구나"
"..."
"징어야 나 잠깐 얘기 좀 하고 올게 여기서 기다려"
"응"
김종대, 잘 지냈냐?
나 없으니까 편하고 좋지?
아- 쟤? 오징어라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야
징어 꼭 지켜줘
아프지 않게 다치지 않게 슬프지 않게
혹시 질투하냐
이 오빠가 아무리 좋아도 징어 괴롭히면 안된다?
너 가고 나서 춤 밖에 모르던 내가 이 악물고 공부해서 이렇게 취직도 했어
물론 그 후로 아직 춤은 못추고 있지만
회사 들어와서 징어도 만나고
니 빈자리 채우라고 보내준거지?
나 오징어 옆에서 끈질기게 붙어있다가 명 다하면 너한테 갈게
그 때까지 아프지말고 너도 거기서 못 만난 짝이나 찾고 있어 보고싶다 김종대
찬열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차로 돌아왔다
"얘기는 다 했어?"
"응 아, 징어야 나 커피좀 사올게"
"그래"
그렇게 찬열이가 멀어지고 나서
차에서 내리니
넓디 넓은 호수가 나에게 인사를 하는것 같았다
"안녕 나는 오징어라고 해
우리 동갑이니까 말 놓는다? 알았지?
...거긴 많이 외롭지?
그래도 찬열이 데리고 가면 안된다?
나한테 많이 소중한 친구야
찬열이 꼭 지켜줘
아프지 않게 다치지 않게 슬프지 않게
후 일년에 한번은 내가 양보한다
대신 364일은 나한테 줘 내가 잘 데리고 있을게
너도 아프지 말고 슬프지 말고 거기서 찬열이 행복하게 지내는거 지켜봐줘
네가 살아있었다면 우린 잘 맞았을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한번 볼 날이 올거야 그날을 기약하며
다음에 또 찾아올게 그동안 잘 지내"
"징어야"
말이 끝남과 동시에 돌아온 찬열이가 나에게 레몬에이드를 건넨다
"나와있었네?"
"그냥. 우리 이만 갈까?"
"그래"
이만 호수를 떠나기 위해 등을 돌린 순간
귓가에 바람이 스쳐갔다, 그리고 너도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