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년 宮(궁)
하나
술 먹고 꼬장 피우면 떡하나 더 먹는다
대한제국 117년 9월.
" 와… 사람봐 대박 많아. "
오랜만에 친구들과 클럽이나 갈까! 하고 나온 발걸음이었다, 그런데 국경일이라고 쉰다나 뭐라나. 평소 집에 박혀 있기를 좋아해서 날짜 관념이나 나라 행사를 모르고 살았더니 이렇게 된 거다.
나는 지금 21세기, 황제가 다스리고 있는 대한 제국의 서울에 있다.
에라이 시빠싯발! 나온다고 했던 친구 년들은 덥다, 피곤하다, 선약 있던걸 까먹었다는 둥 되지도 않는 말을 한 체 나오지도 않는다.
하늘은 벌써 해가 지고 어둑어둑하다. 이 몸 혼자 어딜 가나 하고 있었는데 고민고민 끝내 생각 나는 곳은 겨우 포장마차다. 빨간 비닐이 덮어져있는 포장마차 안이 아직까지는 후덥지근해서 그런지 오늘 손님이 얼마 없다.
그롬 나야좋지~ 순대볶음도 시키고~ 오뎅도 시키고~ 소주도 시키고!! 여기가 천국인가여..
다 비켷ㅎㅎ친구들도 없는데 나혼자 이거 다먹고 주글꺼얗ㅎㅎ!
.
.
.
.
.
" 이모오~ 나 쏘주 한병만 더 주면 안되여? 응? "
" 아가씨 많이 마셨잖어, 젊은 사람이 그렇게 먹으면 속상해! 아가씨 빨리 집에가! "
" 으으응, 이모오 나 한병만 더여 응? 진쨔 안줄꺼에여? 그롬 내가 막 꺼내먹을꺼야아! "
" 어휴, 젊은 사람이 벌써 부터.. "
젊은 사람이 뭐어! 젊으니까 마시고 주거야 지~ 아마 다른 사람들이 보면 엔간히 미친년이라는 생각이 들 거다, 해질 때쯤에 들어와서 별 뜬 밤까지 젊은 여자가 집에도 안 들어가고 포장마차 안 테이블 한자리 혼자 차지하곤 술 주정을 하고 있으니 아주 볼만하겠다.
그래도 상관없었어! 내가 기분 좋은데 하이텐션이다 아핳하하하!
찡찡거렸다가 이젠 막 만사가 다 웃기기 시작한다, 저기서 보글보글 거리는 어묵들도 웃기고 소주 병이 초록색인 것도 웃기고 아주 빵빵 터진다. 끽끽거리면서 웃다가 고개를 돌렸는데 건너편 테이블에서 날 보고 웃고 있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 모야야, 지가 몬데 나보고 우서어 ' 하고 흐릿한 시야 때문에 미간을 찌푸리고 그 남자를 봤다.
이젠 아주 입을 가리고 웃는다.
" 저기여, 왜 계속 우서여? 내가 우껴여? "
" 끄핳하.. 아가씨는 술만 마시면 그렇게 되요? "
" 내가 어떠케 아라아!! 왜 나보고 막 우서어! 웃껴? "
" 웃긴건 아니고 어… 귀여워서 그러는 거라 칩시다. 그건 괜찮아요? "
귀여워? 내가? 아저씨가 뭘 좀 아네! 이모가 볼 때도 나 귀여워요? 하고 꼬인 혀로 내뱉는다, 정말 말 그대로 내뱉고 있다.
어느새 건너편에 앉아있던 남자는 내 의사도 묻지 않고 합석해선 내 맞은편에 앉아서 날 관찰하듯이 보고 있다. 그럼 나도 맛 관찰해야지! 하곤 머리부터 천천히 훑는다.
머리카락이 갈색이네.. 아 한국 사람들 대부분이 갈색인가? 난 흑발인데? …우와 눈썹 짱 일자네 지가 짱구야 뭐야, 이 사람 분명히 남잔데 속눈썹이 지금 내가 붙인 속눈썹보다 긴 거 같다, 아니다 혹시 몰라 이 남자도 붙였을지! 마지막으로 시선이 향한 곳은 남자의 입꼬리였다.
" 아져씨, 입꼬리 수술해써? 어떻게 위로 올라가써여? "
" 이거요? 아버지 쪽 분들이 이러세요. 유전인가봐요, 왜요 신기해요? "
" 우와 나는 막 수술한 줄 알아써… 그럼 맨날 웃고 있겠네여, 그쳐? "
" 웃기야… 외간상으론 항상 웃죠. 그러는게 가장 옳은거니까요. "
순간 남자의 표정이 쓸쓸해 보인 거 같았는데 금방 그 기색을 없애고 아까처럼 환하게 웃는 남자에 술에 취해서 눈도 맛 갔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야 내 눈에 깜깜해진 주위가 보이는지 집에 가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 슬슬 졸리기까지 한다. 남자가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고개를 박고 꾸벅꾸벅 졸고 있었는데 술잔을 내려놓는 소리가 나더니 남자가 일어나 내 손목을 잡는다, 아니 이 아저씨가 날 가지고 뭘 할라고?
" 아가씨 집 어디에요? "
" 으으응, 내 집은 알아서 모할라구우.. "
" 나 그냥 가면 아가씨 길거리에서 잘거 같아서 그래요, 위험하잖아. "
" 아저씨가 더 위험하데여? 우리 옴마가 그랬눙데… 엄마가아……… "
.
.
.
.
.
순식간에 눈이 감겼고 그 찰나 꿈을 꿨다, 태양이 떴고 하늘에서 한참을 빛났다 구름에 가려졌다. 태양은 끝끝내 구름을 이기지 못하고 져버리고 말았다. 꿈꾸는 도중에도 알 수 있었다. 이게 그다지 좋은 꿈이 아니라는걸. 하지만 안 좋은 꿈인데 뭐. 하는 생각으로 계속 잠을 잤다. 근데 점점 시끄러워지는 거 같기도 하고.
나의 태양은 구름인 것인가, 혹 내면에 다른것이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