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경수 사장님
03
부제 : 변태 새끼
처음 만난 사이가 아니라면 받아줄겁니까? 어제 도경수의 그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고 계속 맴돌고있다. 그럼 우리가 언제 또 만난적이 있던가.
당황한 표정으로 올려다보는 내게 또 다시 미소를 머금고는 "됐습니다, 들어가세요." 내 어깨를 잡고 카페 쪽으로 밀던 도경수의 표정을 자꾸만 떠올렸다.
쇼핑백도 본인이 가져간걸 보면 내게 옷을 주기위해 한 거짓말도 아닌 것 같아 보였는데, 복잡해 죽겠다. 구면이라면 언제 어디서 뭐때문에 만났다는거지.
"저기요."
"....."
"이봐요, 안들려요?"
"아,아. 네. 주문하시겠습니까?"
"하, 참."
그 놈의 도경수. 그 사람 생각만 마냥 하다가 그만 손님의 부름을 듣지못했다. 저기요. 도경수가 생각나게 하는 손님의 대사엔 도경수보다 더한 짜증이 섞여있었다.
다른 카페 알바 경력 5년, 직감적으로 보통 성깔이 아닌 손님일 것을 감안하여 평소보다 더 살갑고 더 상냔한 목소리로 손님의 눈을 마주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 상냥함은 개나 줘버리라는 듯이 들고있던 아메리카노를 내 앞에 쿵- 소리나게 내려놓은 손님은 하 참,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컵을 보니 우리 카페 커피인데, 표정을 보아하니 맛이 없다거나 주문한 음료와 다르다거나 둘 중 하나겠거니, 욕 먹을 각오로 쿠크를 단단히 붙잡았다. 이 또한 다 지나가리라.
"이봐요, 아가씨. 커피 값을 이렇게나 많이 받아 쳐먹으면 그 정도 값은 해야될거 아냐, 응?"
"......"
"내가 빨대 상태까지는 넘어가려고 했는데, 이것 좀 봐. 보여?"
".....죄송합니다."
"불쾌해서 이거 먹기나 하겠어? 어? 이것 좀 보세요, 여기 커피에서 머리카락이 나왔다니까요?"
얼굴을 험상궂게 구기고 나한테 삿대질까지 하면서 따박따박 소리 치는 손님의 불만은 커피에서 머리카락이 나왔다는 것이었다.
내 눈 앞에 커피를 들어, 빨대로 커피를 휘저으며 머리카락을 손수 보여주시던 손님은 심지어 카페에 있던 손님들에게 카페가 떠나가라 소리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카페 안에 있던 손님들이 이 쪽을 쳐다보고 웅성웅성 거리며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아, 어떡해. 심장이 쿵쿵쿵쿵 터져라 뛰며 식은땀이 났다.
지금 카페엔 언니도 없고, 점장님도 없고. 내 머리카락인건 확실한건지 억울함도 들면서 이 일을 어쩌나 발을 동동 굴렀다. 그저 마냥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 그게 지금 죄송한 사람 태도야?"
"......"
"너한텐 지금 내가 머리카락 하나 나왔다고 유난 떠는 아줌마로 보이지?"
"아니요, 안그래요. 정말 죄송합니다. 새로 가져다 드릴게요."
"됐어, 그 더러운 걸 또 마시란 말이야? 이건 너나 쳐먹...."
"실례하겠습니다만,"
"......"
"무슨 일이죠."
허리를 연신 굽히며 죄송하다는 내 말에도 손님은 화 풀 생각이 없어보였다. 머리카락 나온건 내 잘못이지만, 정말 유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새로 가져다 드릴게요. 침착하면서도 발발 떨리는 내 목소리에 손님은 언성을 더 높이며 커피 든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아, 드라마도 아니고 내가 커피까지 뒤집어 써야 돼?
설마설마 하는 마음이 들면서도 이 여자 성격이라면 진짜 부어버릴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에 얼른 눈을 질끈 감았다. 쏟을거면 얼굴은 피해주세요.
감은 눈을 한참동안이나 뜨지 않았지만 내 몸에 그 어떤 액체가 뿌려지는 느낌도, 여자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왠진 몰라도 카페가 싸하게 조용해진 듯 했다.
혹시 내가 엄청난 충격으로 느끼지 못하고 있나? 이미 내 몸은 커피를 뒤집어 썼는데 내가 모르는건가? 그래서 카페가 조용한건가?
오만가지 생각을하며 감았던 눈을 슬그머니 뜨면 실례하겠습니다만, 무슨 일이죠. 언제 왔는지 내 옆에 서서 손님의 손목을 잡고있는 도경수가 눈에 들어왔다.
"환불해드리겠습니다."
"환불이 문제야?! 사과부터 똑바로 하란..."
"앞으로 이와 같은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아,아니. 뭐. 그래요, 그럼."
죄송한 구석이 전혀 없어보이는 말투로 환불해드리겠습니다 하는 도경수때문에 더 빡친 듯한 손님은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금방이라도 주먹을 휘두를 것 같았다.
저런 도움 안되는 새끼, 죄송하다는 말 부터 했어야 정상아냐? 사과 할 마음이 없으면 끼어들지나 말지, 왜 끼어들어서는 일을 더 크게 만들어?
사장이라는 이유로 이럴 필요까진 없으니 무릎 꿇을거 아니면 가만히나 있으라고 도경수의 팔을 손님 몰래 마구쳤다. 좀!
그러거나 말거나, 나에겐 웬수같아서 꼴도 보기 싫은 그 지갑을 꺼내든 도경수는 손님의 말도 중간에 끊고 닥치라는 듯이 10만원짜리 수표 두장을 건넸다.
무슨 진짜 배추 한포기에서 배춧잎 두 장 뜯어낸 것마냥 수표를 척하니 내민 도경수의 행동은, 이거나 먹고 떨어지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 수표를 보자마자 눈이 땡그래진 손님은 아니, 아줌마는 누가 뺏어갈세라 얼른 수표를 받아더니 휑하니 가버렸다. 이럴줄 알았어.
"미쳤어요?"
"뭘 말입니까."
"무턱대고 그렇게 돈을 주면 어떡해요!"
아줌마가 얼른 나가버리니 홀가분하다는 듯이 입고있던 수트의 자켓을 벗어서 카운터에 올려놓는 도경수에게 버럭 화를 냈다, 미쳤냐고.
한장이면 몰라도 두장? 아니? 한장이었어도 미친짓 아닌가? 요새 내가 이런 말도안되는 갑부랑 자주 마주치게 되면서 돈의 개념에 대해 회의감이 드는 듯 했다.
미쳤냐는 내 말이 귀에 들어갈리가 없는 도경수는 역시 뭘 말입니까. 태연하고 멀쩡하게 내가 마시던 커피를 쪽쪽 빨아 마셨다. 이런 망할 놈.
"그럼 그 쪽은?"
"....네?"
"커피를 부으면 붓는대로, 망신을 주면 주는대로."
"......"
"얼른 피해도 모자랄 판에 바보같이 눈이나 감고있고."
".....그건,"
"이럴 땐 그냥 고맙다고 하는겁니다. 나 20만원이나 썼어요."
무턱대고 돈을 주면 어떡해요! 방방 뛰는 내게 아무런 대답도 없이 내 커피 먹기에만 열중하던 도경수가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
그럼 그 쪽은? 서있는 나를 앉아서 올려다보는 도경수의 말이 참으로 난데없고 뜬금 없었다. 뉘예? 제가 뭘요? ㅇㅅㅇ?
커피를 부으면 붓는대로, 망신을 주면 주는대로. 얼른 피해도 모자랄 판에 바보같이 눈이나 감고있고. 도경수의 순간적인 고나리질에 멍했다.
이렇게 들어보니 진짜 내가 바보같긴 헀다. 손님이 왕이라고, 내 행동이 당연한건 맞았지만 어찌됐건 내 성격에 나도 많이 참았었음을 뒤늦게 알았다.
별다른 변명도 못하고, 그건, 에서 말을 멈췄다. 할 말이 있어야 그건으로 시작해서 무슨 말이라도 할 텐데 진짜 바보같았는 걸, 뭐.
내가 그의 말에 대꾸도 못하고 머뭇거리면서 입을 다물자, 도경수는 또 그 특유의 미소를 지었다. 저 놈의 미소는 첫 날부터 진짜....
이럴 땐 그냥 고맙다고 하는 겁니다. 여전히 도경수 얼굴에 잔뜩 서린 웃음끼와 미소에 괜히 자존심이 상하는 것 같아 고맙다는 말은 차마 나오지 못했다.
고맙긴 한데, 진짜 악연으로 시작하긴 했어도 고마운건 고마운 일인데.
나 20만원이나 썼어요. 인사를 할거면 얼른 해달라는 듯이, 뭘 빨리 해달라고 칭얼거리는 어린 아이마냥 도경수는 또 말을 덧붙였다.
"고마워요."
"압니다."
"......"
내 눈을 뚫어져라 올려다보며 그 큰 눈으로 나를 쳐다보니 어찌할 바가 있겠는가. 고마운건 고마운 일이니 고마워요. 나름 진심을 다해 말했다.
애초에 도경수같은 인간에게 내가 뭘요 이런 대답은 기대도 안했지만, 압니다. 압니다? 압니다?! 저런 씨. 고맙다는 말을 해도 꼭 대답이 저렇게 밖에 안되지?
얼굴이 또 찌푸려졌다. 내 너에게 고맙다는 인사는 다시는 하지않으리.
"근데 ΟΟΟ씨."
"예."
"오늘 ΟΟΟ씨처럼 무턱대고 눈부터 감는 행동,"
"....."
"그거, 되게 위험한 행동인거 압니까."
"....네?"
"막 상상하게 해요."
"네?!"
내 찌푸린 표정에 또 잔뜩 입꼬리를 말아올린 도경수는 이만 가봐야겠다며 자켓을 챙겨 일어나서는 또 한번 내 이름을 불렀다. 예. 라고 썼지만 사실 뉘예-_- 에 더 가깝겠다.
오늘 ΟΟΟ씨 처럼 무턱대고 눈부터 감는 행동, 그거 되게 위험한 행동인거 압니까. 도경수가 자켓을 입으며 아무렇지 않게 말을 뱉었다.
무슨 말인지 감도 못잡은 내가 네? 하며 되물으면 답지않은 의심미한 표정으로 막 상상하게 해요. 쳐맞을 소리를 하는게 아닌가.
"자고로 다가가기도 전에 눈부터 감는 그런 행동은,"
"....."
"나같은 남자가 다가갈 때나 하는 겁니다."
상상? 그 발언이 더 위험해 이 호로자식아! 도경수의 수위짙은(나한테만) 발언에 경악하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진짜 한대 맞으려고.
자고로 다가가기도 전에 눈부터 감는 그런 행동은 나같은 남자가 다가갈 때나 하는 겁니다. 도경수가 또다시 덧붙인 말에 멍해졌다.
달려가서 등짝을 한대 후려 갈기기도 전에,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갑니다, 커피 잘 마셨어요." 휑하니 나가버린 도경수의 향기만이 남아있었을 뿐이었다.
어째 곱 씹을 수록 더 변태같은 도경수의 발언과 함께 말이다.
여러분
제 도사장님 글이 어제 잠깐 초록글에 다녀왔어요.... 어므나 세상에...
이러면 내가 글을 또 미친듯이 써내려가잖아 !
이럴수록 나 도사장님보다 독자들이 더 좋잖아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너무 감사한거 알죠 ?
성원에 힘 입어 더 열심히 연재하는 잉꼬가 되겠습니다 ~ ♡
( 경수랑 여주가 언제 어디서 처음 만났는지는 본 편이 따로 있습니다. )
+
암호닉은 곧 받을게요, 곧.
정말 곧. 진짜 곧, 짱 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