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범 머리 잘랐네…. 입은 왜 저래? 니가 때렸냐?”
“푸핫!! …아씨, 내가 어떻게 아냐!!”
드러운 놈! 사촌이란 게 그런 것도 모르냐! 종현은 내 등짝을 때리면서 내게 타박을 했다. 아오, 내가 저렇게 만들고 싶어서 만들었겠냐고, 저 소중하고 예쁜 애 얼굴을!! 반박하고 싶은 걸 꾹 참았다. 솔직히 쟤 입이 저렇게 된 건 순전히 쟤 탓이다. 누가 저렇게 머리 자르고 오라고 했나. 제가 멋대로 저런 식으로 잘라 와서 내 입술의 욕심을 부르랬나. 누가 예쁘게 자르랬냐구.그런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너는 그저 고고하게 매점 앞을 지나갈 뿐이다. 입 옆에는 이질적인 상처를 매달고선. 하얀 와이셔츠를 끝까지 채운 속에는 분명 내가 남긴 붉은 것들이 자리하고 있을 것. 괜히 내 것이라는 생각이 새삼스레 들어서 실실 웃었다.
“드디어 최민호가 실성을 했군. 쯧쯧…. 보약을 해 먹여야 하나.”
“…저기 은주 선배 온다.”
어디, 어디!! 헛소리를 해대는 종현을 요새 공들이고 있는 선배 쪽으로 보내 버리고선 자리에서 일어섰다. 매점 빵은 역시 맛이 없다. 뭐가 맛있다고 그렇게 죽어라고들 사먹어 대는 건지. 예비종이 치고 점심시간이 끝나가는 데도 북적이는 매점을 비집고 나와 비상계단 쪽으로 걸었다. 매점과는 다르게 복도는 슬슬 한산해 지려는 분위기에 기분이 좋다. 사람 많은 건 딱 질색이다.핸드폰을 꺼내 익숙한 번호를 누르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모범생답게 그 흔한 컬러링 하나 없이 뚜르르 뚜르르 신호음만 울렸다. 왠지 그 울림조차 기분이 좋아서 핸드폰을 귀에 바짝 가져다 댔다.
-응, 민호야.
그 울림 사이를 가르고 네가 튀어나와 나를 반긴다. 아까의 울림과는 다르게 좀 더 부드러운 울림.
“잠깐 나와.”
-수업 시작 할 텐데….
“잠깐만 나와라, 응?”
-…알았어. 어디야?
딱 오늘 하루만 모범생하지 말고 최민호랑 불량 학생하자, 응?
편안함
w. Harvey
콜록콜록. 내 담배 냄새가 아직도 익숙치 않은 건지 너는 콜록 이며 눈물 콧물 다 짜내고 앉아있다. 힘들고 싫으면 저 멀리 구석에 가서 앉아있으래도 부득불 내 곁에 앉아 있겠다고 성화다. 그렇지만 별로 독한 담배는 아닌데-사실 내게만 독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저렇게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얼굴은 정말 박제를 해서라도 가지고 싶을 만큼 내게 정복욕과 소유욕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울리고 싶다. 물끄러미 바라보자 눈물을 닦던 너는 왜 그러냐며 내 눈을 맞췄다. 그 눈에서 눈물이 계속 보고 싶어 일부러 담배 연기를 눈 쪽으로 내뿜었다.
“왜 그래….”
눈가가 붉어져서 말간 눈물을 뽑아내는 얼굴이 못 견디게 사랑스럽다. 자꾸만 후드득 떨어지는 눈물이 곤욕스러운지 수시로 소맷자락으로 눈가를 훔친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의 담배 연기는 오직 네가 종착역인 듯 네 쪽으로만 내뿜어질 뿐이다. 뿌연 담배연기 사이로 보이는 네가 미치도록 사랑스럽다. 씨발. 넌 우는 게 예뻐, 기범아.
“예쁘다.“
“응?“
“너 우는 거.“
“우는 게 뭐가 예뻐…. 그리고 이건 우는 거 아냐.“
눈물이 나오면 우는 거지, 그럼 뭔가. 똑 부러지게 말한 너는 이제 진짜 그만하라며 담배연기를 손으로 휘휘 저었다. 계속 눈물을 뽑아냈다가는 정말 기절 할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반 정도씩이나 남은 담배를 난간에 비벼 껐다. 모범생이라 그런 건지는 몰라도 고2 씩이나 되서 담배 하나 안 배우고 살았나. 으이구, 답답해라.
“담배 알려줄까?“
“응?“
“맛있어. 할래?“
음…. 잠시 고민하는 소리를 내는 너를 빤히 바라봤다. 그리고 상상했다. 저 손에 담배가 들려 있는다면, 저 입에서 담배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면, 저 혀와 키스 할 때마다 담배 냄새가 알싸히 난다면. 으악, 희망고문이다. 고민하고 있는 너는 여의치 않고 바로 담배와 라이터를 다시 꺼내들었다. 치익. 담배에 불을 붙이고 얼른 너의 잇새에 끼워 넣었다. 여전히 맹한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는 눈빛과 담배는 이질적이다. 얼른 뒤로 물러서 자태를 감상했다. 생각 그대로다. 당황한 네가 얼른 담배를 꺼내 엄지와 집게로 집고선 어쩔 줄 몰라 한다. 이것도 역시 생각 그대로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 잠시 기다리자.
“뭐, 뭐야, 이거?“
“물고서 깊게 빨아들여봐.“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내 말을 듣는다. 익숙하지 않은 듯 더듬더듬 빨아들이다가 못 이기겠다는 듯이 콜록콜록 재차 기침을 한다. 자꾸만 담배를 떨어뜨리려고 하는 게 눈에 보여서 얼른 입에 다시 물려주었다. 호흡을 들이쉬었다가 내쉬었다가 반복하는 게 꼭 아기의 호흡 같다. 한 다섯 번 정도 반복되고 내가 담배를 빼앗아 다 피웠다. 아까처럼 난간에 비벼 끄고선 기범을 무릎에 앉혔다. 눈물범벅인 얼굴은 아직도 제가 담배를 피웠다는 걸 인식하지 못하는 듯 맹한 표정이었다. 아이고, 예뻐라.
“키스할까?“
“어?“
어차피 대답하지 않아도 할 예정이었다. 맹한 입술에 내 입술을 갖다 대었다. 순식간에 열린 성역은 상상보다도 더 한 황홀난측이었다. 알싸한 담배향이 서로의 혀를 얽었다.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쾌감에 감은 눈앞이 아찔해진다. 무언가를 웅얼거리면서 자꾸 내 어깨를 미는 손길에 그냥 두 손을 마주잡았다. 따뜻한 손의 촉감이 좋다. 자꾸만 아기처럼 손을 꼼지락 대기에 그냥 바닥에 눌렀다. 아픈 듯 읏, 신음 했지만 그냥 막무가내로 밀어붙였다. 가만히 있어야지, 아가.
“먼저 내려가. 이따가 끝나고 데리러 갈게.“
“알았어. 기다릴게.“
발개진 눈을 하고 대답한 너는 종종걸음으로 옥상 문을 열고 내려간다. 낭창한 뒷모습이 하늘거린다. 벌러덩 뒤로 누웠다. 날씨도 오지게 좋다. 이럴 때 놀러 가야 하는 건데. 이따가 놀러가자고 해야겠다.
“뭐?“
“태민이랑 도서관 가기로 했었는데… 잊고 있었어. 미안해, 민호야.“
놀러가기는 개뿔.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또 도서관을 가신단다. 오늘 하루만 불량학생하자고 했더니 말은 죽어라고 안 듣는다. 아후. 이걸 한 대 팰 수도 없고. 맞으면 제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면서 질질 짜며 미안하다고 빌어댈 게 틀림이 없으니. 우는 건 예뻐서 좋은데 비는 건 싫다. 이씨.
“알았다. 끝나고 우리 집으로 와. 너희 집 말고.“
“응. 최대한 빨리 갈게. 정말 미안….“
말꼬리를 흐리는 너를 뒤로 하고 서둘러 뒤돌아섰다. 더 보고 있다가는 확 보쌈이라도 해서 데려 갈 것만 같다. 뒤에서는 이태민의 의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왜 니가 쟤 집으로 가?
혼자 걷는 하굣길은 왠지 익숙하지 않아서 자꾸만 뒤를 돌아봤다. 지금이라도 기범이 민호야 같이가~ 하면서 달려올 것도 같다. 늘 기범의 어깨 끝에 얹어 놓았던 오른손이 간질거렸다. 자꾸만 습관처럼 올라갈 것 같아 애써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이제 제법 쌀쌀해진 바람에 머리카락이 자꾸만 나부껴댔다. 잘게 흔들리는 머리카락이 자꾸만 눈과 입 속에 들어올 것 같아 신경질이 났다. 조만간 기범이처럼 머리를 잘라야 하나. 반복해서 머리카락을 떼어내도 끈질기게 붙어와 우악스럽게 머리카락을 떼어낸 뒤 고개를 쳐들었다. 문득 하늘이 파랗다는 생각을 했다. 구름도 없냐, 재수 없게. 제길, 나랑 김기범이랑 놀러가지도 못했는데 날씨는 왜 좋고 지랄이야. 그냥, 다시 또 붙어오는 머리카락 때문에 신경질이 났다.
생각대로 집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든 것 없는 가방을 소파에 던져 놓고 부엌으로 향했다. 냉장고 문을 열어 하겐다즈 한 통을 꺼냈다. 얼마 전에 기범이 사 놓고 간 거다. 잡은 손이 싸늘히 얼어갈 것만 같다. 으아, 차가워라. 소파에 앉아 숟가락을 찔러 넣었다. 아직 채 녹지 않아서 숟가락도 들어가기 힘들었다. 힘을 조금 줘서 깊게 찔러 넣은 뒤 한 숟갈 크게 떴다. 초코가 덩어리 째 딸려 왔다. 생각만 해도 달다.
“흐…….“
차가울 거라고 생각하고 입에 넣은 건데 진짜로 차갑다. 이까지 꽝꽝 얼려버릴 것만 같아서 얼른 혀로 녹였다. 내 체온에 살짝 녹은 아이스크림은 너무 달았다. 정말 쓰다고 할 정도로 달았다. 대여섯 살 먹은 애새끼들이나 좋아할 징그러운 맛. 우웨엑. 제길, 이건 대체 무슨 맛인 건지. 김기범은 이걸 무슨 맛으로 입에 넣고 굴려 먹었던 건지……. 좌우당간 여러모로 이해 안 가는 아이다. 소파 위에 자리 잡았던 리모컨으로 텔레비전을 켰다. 아직 저녁시간대가 아니라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볼 듯 한 프로그램만이 채널마다 자리하고 있었다. 오늘따라 재미없고 지루한 일들만 잔뜩 이다. 짜증나.
“…ㅁ…호야… 민호야….“
누군가 자꾸 나를 흔들며 깨워대는 통에 인상을 잔뜩 쓰곤 눈을 떴다. 텔레비전은 계속 돌아가고 있는 상태였다. 어느 틈에 까무룩 잠이 들어버린 모양이었다. 아직 멍한 머리에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파악이 잘 안 된다. 초저녁부터 잠들다니. 띵한 머리에 바로 앉아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소파에서 불편하게 잠들었더니 싸하게 머리를 점령하는 아픔들이 나를 괴롭힌다.
“머리아파?“
아, 김기범이다. 점점 익숙해져가는 시선의 끝에는 네가 있다. 방금 들어온 건지 어깨에는 아직 자그마한 가방이 메어져 있다. 걱정스러운 얼굴로 이리저리 내 눈치를 보는데, 그건 또 왜 이리 귀여운 건지.
“많이 아픈가 보다….“
“죽을 것 같아……“
“정말? 약 먹을까?“
“흐윽… 아파…….“
“어떻게 하지…. 약 먹자, 민호야. 응?“
“약 싫어……. 죽을 것 같아…….“
그럼 어떡해…. 일부러 죽는 소리를 내며 소파에 도로 드러눕자 무겁지도 않은 건지 가방을 멘 채 벌떡 일어나 동동 거린다. 어떻게 할 지 몰라 왔다 갔다 반복하던 기범이는 약을 찾으려는지 서랍을 뒤지기 시작했다. 동그란 정수리가 내 눈에 박힌다. 아니, 저건 정수리 따위까지 예뻐서 어쩌려고…. 저런 데 좀 안 예뻐도 괜찮은 건데. 급하게 서랍을 여닫는 기범이의 손길이 분주하다. 이렇게 온전히 내 생각으로 가득 찬 너의 머리가 좋다. 내 생각만으로 가득 차다 못해 머리카락 끝까지 내 생각으로 흘러 넘쳤으면 좋겠다. 네 생활의 중심이 온통 나로 가득했으면 좋겠다. 절대 다른 생각 따위는 함부로 하지 못하도록.
“그냥 이리와….“
“약은? 괜찮아, 진짜로?“
“응. 그러니까 이리와.“
자세를 고쳐 앉았다. 여전히 가방을 메고 있는 작은 어깨가 내 곁에 다가와 앉는다.
“가방 내려놓고 이리 앉아.“
가방을 손수 내려주면서 내 무릎 위를 가리켰다. 머뭇머뭇 거리다가 슬쩍 엉덩이를 걸친다. 망설이기는. 허리를 잡아 내 쪽으로 끌어 완전히 기대게 했다. 마른 허리가 조금 거슬리기는 했지만 예쁘니까. 다시 허리를 잡아 나와 마주보게 만들었다.
“예쁘네….“
“나도 남자야! 멋있다고 해줘!“
“예쁘던 멋있던 넌 내꺼니까….“
“그게 무슨 엉터리 논리야!“
아픈 거도 다 뻥이지? 발개진 얼굴로 밉지 않게 눈을 흘기는 데 그건 또 그거대로 예쁘다.
“키스 할까?“
“아까도 학교에서 했잖아.“
“아까는 아까고. 또 하고 싶어.“
“…그런 건 물어보지 말고오….“
씨발, 너는 진짜 요부다. 학교에서는 아무것도 몰라요, 이러고 범생이인 척 다 하더니 내 앞에서는 전형적인 요부다. 야살스러운 말로 아닌 척 모르는 척 있는 도발 없는 도발 다 부린다. 저런 말들은 다 어디서 배워와서. 쓸데없이 맹한 눈으로 쑥스러운 듯이 말하는 입술이 얄미워져서 손바닥으로 아프지 않게 찰싹 때리고는 바로 밀어붙였다. 늘 하는 건데도 숨이 차서 힘든지 자꾸만 손이 안아달라고 내 등을 안아온다. 기범의 요구대로 꽉 안아주었다. 이럴 때는 꼭 아기 같은 김기범. 자꾸만 숨이 사나워지고 손길이 거칠어진다. 안 한지도 일주일 쯤 된 것 같다. 연약한 너는 도발 할 줄만 알지, 제 몸을 좀 더 요령 있고 내구성 있게 다룰 줄은 몰라서 한 번 하고 나면 사경을 헤맨다. 그래도 마침 좋게도 내일은 토요일이고 오전 수업 밖에 없다. 기범이만 허락한다면 이대로 일을 치르고 싶다.
“할까?“
“하…. 그런 거 물어 보지 말랬잖어어….“
씨발. 욕이 입에서 끊이지 않는다. 너는 어쩜 말 하나하나가 색기가 흐르니. 죽여 버리고 싶을 만큼.
너 이런 거 다른 새끼들한테 하지 마.
뭐어, 으씨. 너도 이번엔 다 벗고 해!
다리 좀 들어봐. …그러니까 다른 새끼들 앞에서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할 기회도 없을 텐데, 니가 하라고 해도 안 해…. 팔 들어. 티셔츠 벗어야지이.
죽을 때까지 내 앞에서만 해야 돼. 안 그러면 너도 죽고 나도 죽어. …또 브리프 내꺼 입었네. 헐렁한 거 맞지도 않으면서.
무서워어, 민호…. 앗, 와이셔츠 위로 올리지 말고 단추 풀어…
그래. 니 민호 무서우니까 말 들어. …바지 좀 발로 벗겨 봐. 니꺼 벗기기도 벅차다.
알았어어.
어이구, 착해라. 형아가 상 줄게. 상이 좀 급한데 여기서 바로 줄까, 우리 기범이?
“아니이……. 침대로 가자….“
많이 지친 건지 피곤한 기색으로 색색대는 기범이를 두고 맨 몸으로 담배를 찾았다.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아닌 거라는 걸 알지만 기범과 하고 난 후에는 꼭 담배를 피워야지만 성미에 꼭 맞았다. 기범이도 내가 마른 등으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멋있다고 좋아한다.
“민호야, 바람 만져 본 적 있어?“
“왠 생뚱맞은 소리.“
“그냥. 난 만져봤다?“
“어떻게.“
“차 타고 가다가. 차가 쌩쌩 달릴 때 손을 창밖으로 뻗어서 잡아 쥐듯이 손가락을 오므리면 뭔가 몽글몽글해. 그래서 더 세게 잡으려고 하면 아무것도 없다? 더 세게 손가락을 오므리면 손톱이 내 손바닥을 찍어. 그러면 다시 손가락을 살짝 위로 들어 올리는 거야. 그럼 다시 몽글몽글해. 이상하지?“
“뭐가.“
“세게 잡으려고 하면 없어져 버려. 무섭게.“
“무서울 게 뭐가 있어.“
“바람이 꼭 민호 너 같아서 무서워. 내가 지금보다 조금 더 욕심내면 니가 없어질 것 같아. 그래서 니가 해 달라는 대로 다 해주고 싶어. 사라지지 않게. 좀 더 소중하게.“
기범이는 그렇게 말하고 푸흐흐 웃었다. 제가 생각해도 약간은 바보 같은 이야기 였나보다.
“바보 같아. 원래 바람은 잡히지도 않는 존재인데. 욕심 내 봤자 잡을 수도 없는 거고.“
“…바람 한 번 제대로 잡아보게 해 줘?“
날 잡으면 되잖아. 기범이를 꼭 끌어안았다. 이 자그마한 아이가 이런 불안감까지 끌어안고 있을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 늘 맹하고 순한 웃음으로 민호야- 부르기만 할 줄 알았는데. 왠지 나 때문에, 나와 기범이의 주위 환경 때문에 불안해하는 것 같아서 미안하다.
“우리, 이래도 돼?“
너와 내가 사촌이라는 이유로 이러는 거니?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 될 건 뭔가. 너와 내가 마음으로 통하고 있는데. 저 여린 아이는 제가 끌어안고 있지 않아도 될 헛된 걱정에 마음고생을 한다.
“기범아.”
“응, 민호.”
“신경 쓰지 마. 너하고 나만 있으면 되지. 사촌이면 어때. 너하고 내가 좋아하고 있는데.”
“…….”
“고민하지도 말고. 내가 다 고민할 테니까, 넌 걱정 하던 거 멈추고 내 생각만 해.”
“…….”
“난 오히려 너하고 내가 사촌인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 그렇지 않으면 너와 내가 어떻게 만났을 줄 모르잖아.”
“…….”
“만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절이라도 하고 싶어. 너는?”
그제서야 기범이는 굳은 얼굴을 풀고 살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내 어깨에 얼굴을 대었다. 동글동글한 턱이 어깨에 와 닿는 게 느껴져서 기분이 좋았다. 너는 걱정 할 것 하나도 없다. 그저 내 안에서 행복하기만 하면 된다. 나, 최민호의 사랑을 받으면서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라주기만 하면 된다. 궂은 일, 힘든 일 하지 말고 오직 편안하고 행복하게. 그리고-
“사랑해, 민호야.”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 최민호에게 사랑을 주기만 하면 된다. 어때, 기범아. 제일 편안하게 사는 인생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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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편하게좀ㅅ ㅏㄹ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