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은 왠일로 비가 안오네요? 저 진짜 사진작가 맞아요! 오늘은 사진 찍을려고 카메라도 가져왔어요. "
" 이동네 찍을 게 뭐가 있다고. "
" 에이, 택운씨 가게 찍으면 되죠! "
" 우리 가게? "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피곤하다는 듯이 손으로 이마를 한 번 짚더니 가지가지한다며 가게를 치우는 그다.
" 이렇게 귀찮게 하라는 의미로 가게 오라고 한거. 아니었는데. "
" 뭐가 귀찮아요 귀찮긴, 이웃끼리 정도 없이. "
" 날씨 밝을 때 많이 찍어 둬. "
" 오케이. 고마워요. 사진은 조금 이따가 택운씨네 집에서 같이 봐요! "
아기자기한 소품들부터 가게의 의자, 벽지 하나하나 정성들여 찍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로,
그가 틀어주는 카페의 잔잔한 음악과 함께 나는 내 작업에 몰두해 있었다.
" 어, 비온다. "
그는 비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비가 내리자 음악의 볼륨을 낮추고는 우산을 챙겨들고 밖으로 나갔다.
꽤나 몽환적이고, 아름다운 배경이었다.
소나기가 쏟아지는 회색빛의 아스팔트. 브라운톤의 앞치마를 입고 하늘색 우산을 펼쳐 가게 앞 테라스를 치는 남자.
나는 비를 맞는 것에 연연하지 않은 채 그 풍경을 렌즈에 담았다.
비가 오자, 카페는 180도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칙칙한 거리와는 확연히 대조되는 밝고 신비스러운 색감과 질감. 그리고 내가 둔 가방 옆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민트초코라떼와 베이글.
왜 그가 이런 날씨를 좋아하는 것인지, 점점 이해와 공감이 되어갔다.
" 민트 초코 라떼는 서비스. 베이글 이천 오백원에 크림치즈 추가해서 오백원. 삼천원만 줘. "
" 에이. 세시간동안 죽치고 앉아있었는데 미안해서 안돼요. 여기 만원. 모델료까지. "
" 언제 올꺼야? "
" 네? "
" 사진 찍은거, 같이 보자며. "
" 아, 7시쯤 갈게요! "
그의 집에 들렀던 것도 어느덧 일주일 전인가. 그러나 우리는 일주일 전보다 분명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 여기 컴퓨터 잘 되는거 맞죠? "
" 아마. "
" 뭐야, 컴퓨터도 안해요? "
" 이게 있으니까. "
휴대폰을 들고 두어번 흔들어보인 그는 조금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쩌면 그가 남들과는 다른 것을 좋아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신속함을 강조하는 현대 사회에서 편히 숨 쉴 곳은 오로지 그의 공간뿐일테니까.
카메라에 usb잭을 연결하니 금새 내가 찍은 사진들이 모니터에 담겼다.
보정 하나 안 한 사진들인데도 보정을 한 것 마냥 보얗고 눈부신 것이, 그의 애정을 담고 있는 공간에 대한 보상같았다.
" 이거 뭐야. "
" 어, 이거요? 내 모델. 완전 멋있죠. "
" 이상해. 지워. "
" 아 왜요! 지우기만 해. 아 지우지마요 진짜. 내가 이거 찍을라고 비도 맞았는데. "
" 비 맞았어? 씻어야 되는데. 감기 걸리면 어떡해. "
" 에이. 나 보기보다 튼튼해요. 와.. 확실히 비오고 찍은 사진들이 예쁘다. 택운씨 가게는 진짜 예쁜 것 같아요. "
" 고마워. 여기 아이스티. "
" 에이, 커피가 좋은데. "
" 애기는 카페인 자주 마시면 안돼. 머리 아파. "
" 애기는 무슨. 택운씨보다 두살 어린데. "
" 두살이면 애기야. "
" 뭐래. "
" 반말. "
" 미안해요. 맛있네. 이사진이 제일 예쁜 것 같죠? "
" 응. "
" 칙칙한데 밝은 느낌, 뭐라고 해야하지. "
" 우울한 책에 연애하는 장면이 나왔을 때. "
" 오. 책 좀 많이 읽었나보네요? "
" 심심할 때. "
" 택운씨는 원래 뭐하던 사람이에요? "
" 여행자. "
" … 뭐야 난해하게. "
" 차근차근 파악해봐. 그리고, 어깨 좀 치워줄래. 무거워. "
" 아, 미안. "
나도 모르게 그의 어깨에 어깨가 닿았었나보다. 무안한 마음에 머리를 쓸어 넘기고는 대충 usb를 빼 그의 집을 나왔다.
여행자
그가 말한 여행자는, 무엇이었을까.
진짜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인걸까 아니면
시간여행자인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