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HS기업이 1차 부도를 맞았다는 소식이 뉴스에 나왔습니다 형님"
"어 그래? 더 뻐팅기면 아예 말아먹으려고했는데 눈치는 있네. 야잇, 흘리지 말고 먹어라 좀"
"언제 연락 넣을까요 형님"
"야 줘봐 내가 먹여줄게 내가, 어 뭐라고?"
"연락이요."
"아 해 빨리. 연락? 너네가 해. 바쁘니까 그만하고 가 봐"
"예. 식사 맛있게 하십쇼 형님."
맛있게는 개뿔 애새끼 시중드는거 안보이냐. 고갤 숙여 인사하고 나가는 문어머리의 뒷모습에 속으로 궁얼거린 루한은 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하곤 깨작깨작 식사를하는 쪼끄만 조카를 보챘다.
"야 빨리 먹어 유치원 늦어"
"안늦어여 시간 널널하구만 왜 그래"
"안늦기는 개뿔이 밥 그렇게 먹을거면 먹지마. 빨리 가방 들어"
"아 좀, 저번에 앞니뽑아서 먹기 힘들다고! 엄마한테 이를거야 삼촌"
"아 미안하다."
알았으니까 얼른 먹어라 어?. 방금전까지만해도 형님소리들었던 루한은 눈 앞의 조카를 어떻게 다루질 못해 안달이었다. 아니, 얼른 유치원에 못가 안달난게 맞는표현이지. 조카를 유치원에 바래다주는 것 보단 잿밥에 관심있는 루한은 아무래도 안되겠는지 식사를 다 마친듯한 조카를 번쩍 안아들어 화장실로 직행했다. 아! 계란말이!! 이따가 더 맛있는거 사줄테니까 빨리 양치질하자 응!? 얼마나 급했으면 어깨에 조카 유치원 가방을 맨 상태로 애를 붙들고서 빠르게, 그렇지만 유연한 양치질을 시키는 루한은 조금 있으면 선생님 얼굴을 보게될 상황이 가까워지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종인이 왔구나~!"
네 여신님 저도 왔습니다. 3주전 처음으로 보자마자 본인 맘대로 민석을 여신이라 칭한 루한은 가벼운 눈인사를 주고받더니 말 좀 걸으려던 순간에 밑에 위치한 종인의 시선을 맞춰 훅 내려간 민석의 모습에 한탄했다. 아..김종인 안고있을걸..
"주말 잘 지냈어?"
"네. 근데 오늘 삼촌이 밥 뺏어서 기분 별로에여"
"밥을? 왜? 왜요?"
"네?아, 아니 그게..오늘 아침식단이 종인이에게 버거운것같아서 다른 가벼운것 좀 먹였어요"
"버거운..아~ 종인이 앞니없지 참!"
아무래도 삼촌이 종인이를 많이 신경써주신것같은데 너무 미워하지마아. 시선을 낮춘 민석은 특유의 동글한 웃음을 종인에게 지어보이며 슥슥 머릴 쓰다듬었다. 하얗고 작은 손등이 아래춤에서 휘적대자 일순간 깜짝놀랐던 루한이었지만 최대한 티를 내지 않았다. 아 음란마귀같으니..
"매번 번거로우시겠어요. 아무래도 종인이 부모님이 얼른 해외에서 오시길 바래야할까요?"
"아뇨 전혀요. 사랑하는 조카녀석을 매일 등교시키는게 아주 상쾌하고 좋은데요 뭐."
하하하. 최대한 잘생긴 웃음을 지어보이자 똑같이 따라웃던 민석은 보지도않고 손을 종인의 어깨에 대고 본인쪽으로 물렸다. 종인이 오늘도 잘 데리고있겠습니다. 이제 헤어지잔 의도가 담긴말에 루한은 벌써?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주말동안 내가 이 시간을 얼마나 오매불망 기다렸는데 어떻게 분 단위를 넘어가질 않니, 너무 가혹한거 아냐? 응? 여신님 대답좀.
"솔직히 저도 매일아침마다 잘생긴 분 얼굴보고 호강하니까 되게 상쾌해서 좋아요. 괜찮다면 자주 뵙고싶네요."
으하항. 소박한 웃음소릴 내며 그렇게 종인을 데리고 민석은 유치원으로 들어갔다. 그 자리에 망부석처럼 굳어있던 루한은 뒤에서 툭툭 치고 지나가는 아이들덕에 나중에서야 정신차렸다. 시발 오늘은 존나 해피데이!! 싱글벙글 안면붕괴될정도의 격한 미소를 지으며 뒷좌석에 탑승한 루한의 모습을 백미러로 지켜보던 문어형씨는 속으로 심각한 고민을 했다. 아무래도 요즘 형님께서...어떤 아가씨에게 꿰인것같아..
"진짜라니까? 사슴머리 우리 삼촌집에 붙어있어!"
"야! 사슴이 어떻게 머리만 붙어있냐! 징그러운 소리 하디마!"
헐.. 점심 간식시간이 되고 아이들에게 나눠줄 간식을 쟁반에 싣고오던 민석은 오늘도 어김없이 시작된 싸움에 말문이 막혔다. 종인이 너.. 또 시작이니..
"..자~ 토끼반 친구들~ 간식이 왔어요~"
"선생니이임~!!!"
우르르르. 간식을 노리는 목소리가이 아니라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본능적으로 느낀 민석은 응? 애써 웃음지으며 한편으로는 세차게 머릿속을 굴렸다. 사슴박제를 뭐라 설명하지..모형이라고할까? 장난감?
"사슴목이 어떻게 벽에 붙어있어여?"
"아....그건 말이죠 친구들.."
대답을 바라는 똘망똘망한 눈길들에 둘러쌓인 민석은 난감한 듯 머릴 긁적이다 종인과 눈이 마주쳤다. 마치 성인이 학생을 바라보며 너넨 대체 언제크니.. 한심도 부러움도 아닌 그저 그런 세월의 눈길이 느껴지기에 소름이 돋았다. 다른건 모르겠고 아무래도 종인이 부모님 얼른 오셔야할것같아..
"야 됐어 됐어 내가 잘못했어 내가 잘못봤어. 간식이나 먹자"
"봐바! 종이니가 잘못봐써 그런거지?그치?"
종인의 백기에 아이들이 그제야 승리감에 도취된 듯 환한 미소를 지으며 끝까지 종인에게 확답을 추궁해냈다. 이럴때 보면 참 인간이란 무서운 동물이야. 따로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틀리다 맞다 가르려고 무리까지 형성하니까.. 귀여운 얼굴과 맞지않게 철학적인 인생의 진리를 생각하던 민석은 아이들에게 간식을 다 나눠주고서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정리했다. 이런 일로 다툼이 벌어진건 불과 3주 전부터였다. 아마 그때부터 종인은 부모님이 데려다주시지않고 어느 잘생긴 훤칠한 남자가 와서 유치원까지 데려다줬다. 삼촌이라고 하는데 그 집에 살고있는것인지 종인의 입에선 나 오늘 삼촌에서.. 시작하는 목격담이 끊이질 않았다. 아이들에겐 거짓말같겠지만 종인의 입에서 흘러나온 단어에 민석은 하루가 멀다하고 흠칫흠칫 놀라워했다. 그 중에서도 제일 놀랐던건 심심해서 서랍을 뒤지다가 장난감총을 발견했다는 얘기였고 가지고 노려고했지만 너무 무거워서 그냥 두고나왔다는 얘기였다. 장난감 총이 왜 서랍에있어..? 왜 총이 무거워..? 해답은 하나였다. 어느 뒷골목에 깊숙히 자리잡은 형씨가 아니고서야 뭐겠는가. 그에게 밉보이지않게 오늘아침에 잘생긴 용안을 봐서 기분 좋다고 립서비스까지 해준 모습만 봐도 답 나왔다. 근데 확실히 얼굴만큼은 연예인 저리가라 할 정도로 잘생겨서 호강하는게 마냥 거짓말은 아니었다.
"민쌤 오늘 애들 야간수업 진행해요?"
"네. 이번주부터 제가 맡아요"
"아~어쩐지 오늘 최쌤 얼굴 완전 폈더라니."
"야간수업때문에 못하신 데이트 하시려나봐요"
"어우 부러워, 난 몇 년동안 이 모양 이 꼴인지.. 아 맞아 오늘 아침에 종인이 삼촌분? 오셨던데 보셨죠!"
"네. 봤죠.."
"와 진짜 볼때마다 놀라는게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잘생길 수가 있을까요? 나 처음볼때 너무 놀라서 울뻔했어"
그건 저도 그래요. 그 곱상한 얼굴과 다른 어둑한 뒷면의 갭차이에 그 사람이랑 얼굴 마주할때마다 울고싶어요. 이 앞에 계신 쌤은 토끼반 담당이 아니기에 당연히 무서운 목격담을 말하는 종인을 몰라서 하는 소리였다. 나도 종인이 담당이 아니었더라면 저렇게 멋모르고 그쵸 같은 남자가봐도 부러워요 꺄꺄 거리며 얼마든지 장단맞출 수 있었는데. 그럴리가 없으니 아쉬운 맘을 뒤로하고 간단하게 인사하고 각자 반으로 들어가 수업준비를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종인은 야간수업을 등록한 아이였다. 그 삼촌이 종인을 데려오기 바로 전 주에 야간수업을 진행했던 민석은 다시 돌아온 야간수업타임에 조금 긴장되었다. 데려왔으니 이제 데리러올거아냐..어 뭐야 말 이상해.. 평소같지않게 순식간에 야간수업이 끝나고, 하나 둘 아이들의 부모님이라던가 셔틀버스가 찾아와 우르르 아이들을 데려갔지만 끝까지 자리에 남아있는 아이는 딱 두명이었다. 그 중에서 종인이 속해있다는 사실에 민석은 차마 아이앞에 눈물을 흘릴 수 없어 삐죽삐죽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종인아. 삼촌 원래 이렇게 많이 늦으셔?"
"네. 밤에는 삼촌 말고 다른 못생긴 아저씨가 와서 데려가요."
"못...아 그렇구나 하하.. 그럼 언제 데리러오시는데?"
"몰라요. 그냥 자다보면 어느샌가 집에 있어요"
조그만 손으로 로봇을 조종하던 종인은 옆에 앉아 토끼인형을 들고 꼼지락거리는 경수를 툭툭 건드렸다. 그에 화답하듯 말 없이 인형을 들고 로봇의 머리통을 가격해 떨어트린 경수의 모습에 헙 입을 다물었지만 상관없다는 듯 머리통을 주워들어 다시 조립하고 다시 건드렸다. 둘이 참 친하구나..하하하.. 가져온 간식들을 가까이 밀어주곤 자리에서 일어나 교무실로 들어온 민석이었다. 아무리 일이 늦어도 그렇지 늦게오시면 아이 정서에도 안좋은데.. 어째 딱 3주전부터 야간수업을 진행했던 선생님들의 얼굴이 유독 푸석푸석했던게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경수는 예전부터 늦게 부모님이 데리러오셨기에 7시에 간다 쳐도 종인은 대체 언제 데리러오실지 감이안왔다. 기어코 7시가 되고 경수의 부모님이 오시자 함께 밖으로 나섰다. 종인은 로봇을 든 그대로 밖까지 총총 마중나왔다.
"매번 고맙습니다 선생님. 가볼게요."
"아닙니다 조심히가세요 어머님. 경수도 안녕~"
"...안녕히계세요"
꾸벅 공손하게 인사한 경수가 종인과 진하게 눈을 맞추더니 어머니의 손길에 따라 유치원을 나섰다. 그 뒷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는 종인덕에 덩달아 안으로 들어가지못한 민석은 조심조심 종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종인이 혼자남아서 심심하겠다. 얼른 데리러오라고 선생님이 전화걸까?"
"...아뇨 됐어요. 다른 선생님들도 전화했는데 그때마다 늘 똑같은 시간에 와요."
"언제 오시는데?"
"음...11시?"
흐어억.. 여기가 아동보호소도 아니고.. 이건 종인을 위해서라도 원장선생님께 당장 문의해야겠다 싶어서 종인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온 민석은 쇼파에 앉혀 TV를 틀어주곤 폰을 들어 구석으로 향했다. 원장선생님 전데요. 종인이 11시... 들려오는 대답은 가관이었다. 팁, 보너스도 아니고 그냥 통채로 유치원비 5배를 보낸 조건으로 11시까지 암묵적으로 받고있다는 얘기였다. 고생시켜 미안하다며 전부터 야간수업맡은 선생님들에게도 보너스가 갔었으니 조금만 참아달라는 전언에 민석은 패배한 기분이 들어 허탈하게 의자에 풀썩 앉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돈으로 해결하는것에 넘어간 원장선생님에대한 원망은 없다. 하지만 일이 얼마나 바쁘면 아이를 저렇게 방치할 수가 있는지. 그래놓고 돈으로 덮으려는 그쪽에게 원망이 들뿐이다. 참으라고 당부한 원장선생님껜 죄송하지만 민석은 갑자기 어디선가 튀어나온 정의감인지 사명감인지 모를 감정에 불쑥 종인앞으로 다가갔다.
"종인아 삼촌 전화번호 알고있니?"
우당탕. 유치원 앞문이 시끄럽게 열리는 소리에 종인과 카드놀이를 하고있던 민석은 시선을 현관쪽으로 돌렸다. 불과 전화한지 30분도 체 안된 시간에 도착한 루한모습에 민석은 어이없음과 동시에 허탈함에 입이 떡 벌어졌다.
"안녕하세요. 종인이 담당선생님 김민석입니다. 오늘 아침에 뵀었죠."
"....아, 네!"
종인에게 번호를 얻고 바로 전화를 걸었을때 그 시각 루한은 본인의 구역에 들어온 못난 이방인들을 손봐주고있던터라 흐름을 깬 낯선 번호가 반갑지않았다. 어떤 놈인지 찾아내서 같이 혼내줘볼까 생각했을때 귓가에 들려오는 선하고 달콤한 미성의 목소리에 절로 눈이 커졌다. 아무리 일이 바쁘셔도 종인이를 오래 방치하면 아이 정서에 좋지 않아요. 괜찮으시면 어서 데리러와주시는게.. 종인을 데려가란 민석의 말은 루한의 콩깍지 필터링을 거쳐 얼른 나를 데려가라는 망측한 속삭임으로 순식간에 탈바꿈되었다. 목소리를 듣자마자 당장 뒤돌아 달려간 루한의 등 뒤로 형님! 부르는 소리들이 여럿이었지만 루한은 가뿐히 무시하고 차키를 꽂았다.
"종인아 삼촌 오셨다~"
"삼촌이?....헐.."
주차하고 바로 뛰어왔는지 헝크러진 머릿결을 정리하던 루한은 이제서야 본인이 얼마나 우스운꼴로 달려왔는지 파악됐다. 아 쪽팔려.. 진짜 삼촌이 나타날 줄은 몰랐는지 종인은 헐 소리 하더니 알아서 자리에서 일어나 잠깐 화장실좀 들리고 가겠다고 했다. 텅 빈 자리에 둘만 남게되자 어쩐지 서로가 민망함을 느껴 얼굴을 붉혀댔다. 진짜 빨리 올 줄은.. 막상 왔는데 얼굴을 못보겠어...
"...혹시 일 하시는데 제가 방해한건 아닌지.."
"아뇨..! 마침 종인이를 데려오려고 했는데..하하..."
거짓말. 3주 내내 못생.. 다른 분이 데려왔다는데. 이제보니 하는 소리들이 다 거짓말로 들려 본인도 모르게 삐죽 입이 튀어나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루한은 뭔가 실수한게 있는지 눈치를 살폈다. 사실은..잠깐 나온거에요 잠깐. 듣고있던 민석은 정말 다른 일이 있는데 본인때문에 강제로 오게된 루한모습에 뒤늦게서야 민폐를 끼친게 파악되어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까의 새침함과는 다른 평소의 말랑한 모습에 그제서야 루한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뭐가 됐든 이 앞의 선생님이 존나 귀여워서 보쌈해가고 싶어 미칠것만 같다. 생각해보니 예의없는 행동이었다며 미안해하는 모습에 아니라고 해명하자 그 사이에 볼일 마치고 가방들고 온 종인의 모습에 둘은 말을 멈췄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미친듯이 달려온 길이지만 가는 발걸음은 느릿느릿해서 심지어 종인이 얼른 가자고 옷자락을 끌 정도로 루한은 유치원에서 발길을 쉽게 떼지 못했다. 아.. 안절부절 못하는거 귀여웠는데.. 특히나 밤에 본 민석의 모습은 어쩐지 더 섹시해보이기까지했다. 내가 너무 굶주렸구나, 너무 고팠어.. 뒷좌석에 쿨쿨 잠을자고있던 종인을 살핀 루한은 신호대기중인 차를 정차하는 와중에 폰을 들어 낯선 번호를 유심히 바라봤다. 드르렁 코까지 고는 애어르신 종인의 코골이를 들으며 번호를 저장한 루한은 홀가분한 기분으로 느릿하게 주행을 이어갔다. 통성명을 주고받지않았어도 난 여신님 이름을 알지만 그래도 이름저장은 색다르게 했다. 제법 연인들처럼.
이제는 제법 친해지기까지 했다. 아무래도 한번 민석과 말을 섞은것에 맛들였는지 쉽사리 놓지못해 끊임없이 들이대던 루한 덕이었다. 민석은 그런 루한의 뒷배경이 신경쓰이긴 했지만 사람 자체는 나빠보이지않아 유하고 선한 성격 따라서 그렇게 빠르게 루한에게 동화되어갔다. 총이니 사슴박제니 뭐니 그런거는 뭐... 알고보면 직업이 그거일 수도 있잖아 도굴꾼? 사냥꾼? 그러기엔 너무 무리수가 아닌가 싶었다. 심지어 얼굴과 매치도 안되는 직업이라 혼자서 허허 웃으며넘어갔다. 아침, 저녁에 찾아오던 루한은 이제 점심까지 찾아오더니 민석을 밖으로 빼내 식당으로 데려가기도 했다. 적극적인 루한의 태도가 솔직히 조금 부담됐지만 사주는 음식 족족 입맛에 맞아 경계심은 빠르게 허물어갔다.
"민석씨 배 많이 고팠나봐요? 얼굴도 한번도 안마주치고 먹기만하네.."
"아, 미안해요..!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내가 얼마나 돼지같아보였을까, 뒤늦은 후회감에 민석이 부끄러워 조심스럽게 수저를 내려놓았다. 그 모습에 푸하하 웃던 루한은 알았으니까 얼른 배 채우자며 손수 수저를 손에 쥐어줬다. 힘들지만 편한 노동에 속한 직종에 위치한 터라 민석의 작은 손은 곱기만 한데, 잠깐 스쳐지나갔던 루한의 손은 휠씬 더 컸고 거칠었다. 심지어 흉터까지 보이는 것에 민석은 다시 한번 루한의 정체를 되짚어봤다. 이렇게 밥도 잘 사주고 상냥하고 잘 웃는 이 사람은. 대체 어떤 직업을 가지고있을까. 심지어 야간수업때 처음 불렀을때부터 루한은 그 뒤로 꾸준히 저녁까지 마중나왔다. 바쁘다며 그동안 다른 사람을 시켰던 그였는데.
"배불러요? 이제 정신이 좀 드는가보네. 나를 다 바라봐주고"
"..루한씨"
"네? 왜요."
"루한씨 돈 잘벌어요?"
직격타였다. 선보는 자리도 아니고 그저 학부모와 선생님의 식사자리에서. 둘끼리 선이라도 보는냥 질문은 그렇게 민석의 입에서 순식간에 튀어나왔다. 본인이 뱉은 말을 수습할 생각이 없는건지 처음보는 민석의 진지한 얼굴에 루한은 민석이 모르는 두가지의 반응이 동시에 나왔다. 내가 돈을 요즘 얼마나 벌지 여신님이 내 통장에 빨대꽂을정도는 되려나, 민석이가 나랑 선보려는거야? 그런거야? 나 좋다는건가?! 할렐루야!? 본인의 직업을 의심해서 나온 질문인줄 꿈에도 모르는지 모른 체 하는건지 눈치없는 웃음을 짓는 루한이었다.
"왜요? 많이 벌면 나 꼬시려고 그래요?"
"...아니이, 자꾸 이렇게 신세지게 해서 미안하니까.."
"미안하면 다음엔 민석씨가 사줘요. 그리고 나 돈 많아요. 혹시라도 꼬실생각이 있다면 적극 권장합니다."
기껏 맘먹고 추궁하기도 전에 해사한 루한의 웃음에서 민석은 바보같게도 넘어가버리고말았다. 원체 순수한 영혼일수록 아름답게 반짝이는 것에 깜빡 홀려 넘어가버리기 쉽상이니. 민석은 온통 시커먼 배경위로 밝게 빛나는 사슴의 눈망울인줄도 모르고 덥석 발길을 들이고야 말았다. 빛을 향해 다가가는 길이 사슴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곳인줄 꿈에도 모르고. 그게뭐냐며 웃어넘기며 마저 식사하는 민석의 얼굴을 나른한 미소로 지켜보던 루한은 테이블 밑으로 민석이 안보이도록 폰으로 문자를 작성해나가고 있었다. 점심에 유치원선생님을 만나 힐링타임을 갖는다 쳐도, 공과 사는 가려야하니 폰으로라도 형님으로 남아야하는 루한이었다.
안녕하세요~ |
우후~ 처음이라 떨리네용 이렇게올리는게 맞겠ㅈㅕ...? 최대한 달달을 목적으로 쓰려고 노력하고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