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과 가치관이 다를 때, 혹은 그 사람이 정말로 잘 못 했을 때, 또는 안 그럴 것 같은 사람이 그럴 때. 사람들은 뒤에서 수근덕거린다. 앞에서 용기를 못 내는 게 아니라, 정말 가까이도 가고 싶지 않을 때 사람들은 주로 소문을 퍼지게 하고 간접적으로 사람을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처음은 소문이 그렇게 빠르지는 않았으나, 점점 더해가는 모습들에 사람들은 실망을 느끼고 입이 한 개에서, 두 개로. 그리고 수많은 입들로. 그 소문은 나뿐만이 아닌 나와 연관된 모든 사람들에게로도 퍼질 테지. 예를 들어, 그 여자친구에 그 남자친구라던가….
내가 너 벌 줄 거거든
유 혹
w. silvia
깊게는 생각 안 해 봤다. 그저 하찮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내 구질구질한 사랑으로 너를 조금이라도 상처 나게 하려면. 딱히 이 방법밖에는 생각이 안 났다. 사람들이 날 떠나가던 혹은 내게 제일 호의적인 사람이 나를 엄청 멀리할 거라던가. 뭐 그런 걱정도 안 됐고. 그만큼 내게 제일 중요한 사람은, 내가 제일 중요하게 여긴 사실은 내 남자가 날 잔인하게 떠나버린 그 일이 제일 내 뇌리 속에 박혀 아무것도 못 하게 만들었다.
너를 만나고 난 후, 네 얼굴이 계속 생각나 모든 일에 집중이 안된다. 딱히 무슨 일을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집에 들어와 방에 불을 켜지도 않고 핸드백을 아무 데나 내치고서 소파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너와의 기억이 한 편에 모노드라마와 같았고 오늘의 너와 나의 대화에 혼자 입꼬리를 굳히고 미소를 머금어 보고 뒤늦은 조금 더 통쾌하지 못 했던 느낌에 후회가 몰려와 가슴이 답답해져 주먹으로 가슴께를 쳤다. 고요한 밤중에는 쿵쿵거리는 텁텁한 소리밖에 나지 않았다.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핸드폰을 제대로 확인한 것이 좀 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내게 전화나 문자 하나 넣어주지 않았다. 초반에 나를 그렇게 말리던 친구도 이제는 내 곁에 없다. 불러도 소용이 없었고 이미 내 소문은 안 좋게 나 있겠지. 어디서든, 어떻게든. 핸드폰을 땅바닥으로 내던졌다. 풀린 눈으로 땅바닥으로 던져진 핸드폰은 배터리와 분리가 되어 구석으로 쓸리며 날아갔다.
이 꼴 나기까지 너도 머지않았다.
* * *
“아!”
오늘도 새된 신음을 내뱉었다. 낯설어 차가웠던 공기는 두 명의 입으로 뜨겁게 달구었고 침대는 몇 분 가량 계속 흔들리다 멈추고 다시 흔들림을 반복했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다 지쳤는지 바로 쓰러져버리는 남자에 혀를 내두르고 아까까지 흔들렸던 골반과 허리를 부여잡으며 일어섰다. 얼룩진 몸을 씻고 다시 치마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모텔에 들어서기 전부터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핸드폰을 들었다. 저번에 쓸려서 깨져버린 액정에 정갈하게 쓰인 이홍빈이라는 글자는 금이 가 있었다. 금세 없어지는 글자 위에 드리워지는 다른 글자,
「부재중 전화 36」
실소가 터져 나왔다. 연애할 때도 안 하던 집착을 지금에서야 하는구나. 이렇게 네가 당할 때가 되니까 하는구나. 미련하다, 정말로. 액정에 뜬 수화기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금방 받아 처음부터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소리를 높이는 홍빈에 귀에서 잠시 핸드폰을 떼었다.
“네가 씨발, 갑자기 미친 짓을 할 때부터 내가 알아봤어야 했어.”
조금 시간이 지나가자 그제야 제 기가 빠져서는 말을 멈추고 화가 나서 들뜬 한숨만 내쉰다. 홍빈아, 진정해야지. 그제서야 귀에서 멀리 두었던 핸드폰을 가까이 붙여 아가를 달래 듯, 네게 말을 걸었다. 그런 내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듯 다시 한 번 소리가 커지다 다시 숨을 고르고 차분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소문, 씨발.. 어떻게 난 줄은 알아?”
“홍빈아.”
“아니 어떻게 난 줄 아냐고!”
내 목소리만 들으면 차분함을 잃어버리는 듯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호통을 치는 홍빈이에 웃음을 내뱉었다. 하, 나도 잘 몰라. 네 소문을 내가 알아야 해? 홍빈의 말에 대답을 쏘아붙이자 홍빈도 어이가 없던지 계속해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끼리끼리 논댄다, 이 미친년아. 몸을 어떻게 굴리고 다니기에 내가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해? 내 이미지 어쩔 건데 어? 너 때문에 씨발 뒤에서 수근덕 거리는 거 지겨워 미친년아. 우리 끝났잖아, 왜 내가 이런 소리 들어야 해? 어서 말해 너 같은 년이랑 나랑은 상관없다고! 쏘아붙이느라 벅찬 숨을 정리하는 홍빈에 그제서야 입을 떼었다.
“홍빈아,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아.”
“..”
“너야말로 끝난 사이에 관섭 자제해.”
내가 어떻게 몸을 굴리든, 어떻게 소문을 내든. 네가 신경 쓸 일은 아니잖아? 그리고 소문은 뭐, 끼리끼리 논다고? 홍빈아, 넌 원래 이 물이었어. 내가 그 물에 들어가 준 거잖아. 걸레 물이 넘실대던 그곳에 내가 들어가서 적셔준 거야. 이미 적신 너한테 다가가려고. 내 말이 끝나니 잠잠했던 수화기 너머로 미친듯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네가 벌준다는 헛소리 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아-.”
“…….”
“뒷통수 존나 아픈데, 내가 당하고만 있을 것 같아?”
그 후로도 계속 미쳤다는 말을 반복해하며 내게 욕지거리를 하는 네 목소리를 멈추기 위해 전화를 끊었고 배터리를 분리시키고 여전히 뻗어있는 홍빈의 친구를 흝어 본 다음 웃으며 모텔을 나섰다.
내가 너 당하라고만 했을 것 같니, 홍빈아.
나름 퀄리티 높인다고 가지고 왔어요! 그렇게 막 높은 건 아닌 것 같은데 3화보다는 뭔가 더 정감이 가네요 많이 사랑해줘서 너무 고마워요 알죠?
그리고 좋은 말로 계속 저 힐링주시는 분들 사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