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온 동네가 어둑어둑해질 때 쯤에야 남자는 집으로 들어섰다. 술에 잔뜩 취해서 어술한 걸음걸이만큼 혀도 어술했다.
“차앙민아, 삼초온 왔다.”
도어락을 열면서 나름 큰 소리로 외쳤지만 사방은 조용할 뿐이었다. 12시 47분. 많이 화났나? 남자는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으며 신발을 벗었다. 고단한 하루탓에 발냄새가 나는 것 같다.
“임마, 삼촌 왔대두.”
빛이 조금 새어나오는 문을 열자 헤드셋을 끼고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소년이 보였다. 빚어놓은 것 같은 남자. 학이 물어준 게 아닌 신이 모셔온 것 같은 소년. 남자는 몰아치는 미소에 광대가 아려옴을 느꼈다.
“임마. 창민아. 삼초온…… 왔대도. 응?”
“……”
“에휴, 사……내새끼. 응? 키워봐야, 다 소용없어. 반겨주지두 않네. 응?”
소년은 여전히 눈을 뜨지 않았다. 하지만 남자의 흐릿한 동공 사이로 소년의 찌푸린 미간이 보였다. 남자는 못내 섭섭한 듯 자기 뺨을 어색하게 문지르며 말을 이었다.
“창민아아. 삼촌이 미안하다……”
“됐어요.”
한숨을 쉰 소년이 그제서야 눈을 뜬다.
“……생일선물은…… 내가 입금했으니까…… 응? 친구, 친구들이랑 맛난거 사먹어. 알았지?”
“필요 없어요.”
또박또박 들려오는 소년의 목소리가 남자의 심장을 후벼판다. 남자는 체 얼굴도 들지 못했다. 취기때문에 새빨갛게 붉어진 얼굴로 눈치만 살폈다.
“미안해………”
“계속……기다렸단 말이에요.”
“우리 조카, 응? 내가. 내가 미안해요. 응?”
“……”
단단히 화가난 듯 풀려지지않은 소년의 얼굴이 남자는 못내 안타깝기만 했다.
“이번주 일요일날……시간, 비워놨어. 그때 내가 다 갚을게.”
그제서야 소년의 얼굴이 조금 풀린다.
“정말요?”
“응, 우리 애기. 우리 애기한테 왜 거짓말 해……”
“오늘도 12시전까지는 들어오기로 했잖아요. 그리고…… 나, 이제 애기 아니에요.”
이제 애…기…… 아………
그 순간을 끝으로 남자는 기절하듯 잠을 청했다.
소년은 죽은 것 처럼 숨을 색색거리는 남자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정갈하고 반듯한 이마에 조심스레 제 입술을 갖다대어보기도 했다. 근사하게 예쁘다. 새벽, 소년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생일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2
남자에게는 누이가 한 명 있었다. 7살 터울의 그녀는 용모가 매우 출중했다. 그 탓에서인지 젊었을 적 부터 남자들은 그의 누이에게 시도 때도 없이 끈덕거리곤 했다. 그 영향을 받은건지, 그녀는 사내에 빠져 18이라는 이른 나이에 집을 나가기도 했다. 혈연이라는 건 운명보다 더 무섭다고들 했지만 그렇게 훌쩍 떠나버리니 더이상의 연결고리는 없었다. 남자는 누이를 잃은 그의 부모가 통탄하는 모습을 보며, 누이를 제법 원망하기도 했다. 사람도 몇 없는 시골에서 소문은 퍼질 대로 퍼지고 남들이 제 누이를 손가락질 할때 그는 필사적으로 뛰어들어가 말렸지만 제 속으로는 그들보다 더 그녀를 욕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 때에 불과했다. 남자가 20살이 되던 해. 그러니까 거의 10년 가까이 지났을 떄. 누이가 드디어 처가에 들렀다. 집안은 말 그대로 난장판이 되었지만 그녀가 데려온 나팔꽃보다도 더 조그마한 남자아이 때문에…… 그런대로 평안을 되찾았다.
남자아이. 소년은 소년보다 더 앳되었다. 꼬마였다. 그 꼬마의 이름은 창민이었다. 심씨라고 했다. 심창민…… 남자는 방긋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창민아. 누나는 별로 안반갑지만…… 넌 좀 많이 반갑다.
꼬마는 백설기같이 하얗지도, 올망졸망 예쁜 눈을 하고 귀염을 떨어대지도 않았다. 하지만 존재 자체로도 사랑스러웠다. 남자는 그 꼬마가 너무 예뻐 견딜 수가 없었다. 시도 때도 없이 그 작은 주먹을 제 손에 쥐고는 했다. 부둥부둥 안기도 했다. 낮 가리는 꼬마도 남자의 넉살에 끝내 넘어간 듯 했다. 제 엄마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흔들며 물었다. 엄마. 삼촌은? 그녀가 대답도 하기 전에, 어느새 남자가 나타나서 꼬마를 안고 나갔다.
‘삼촌. 나 삼촌이랑 살래.’
‘나도, 나도 창민이랑 살래.’
‘진짜?’
‘응. 진짜.’
티 없는 그 두개의 눈동자가 세상 그 무엇보다도 깨끗해보였다. 하지만 괴기스러울 만큼 깨끗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섬뜩함을 느끼게 하기도 했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아픔이 담겨있기 때문이었다.
남자의 누이는 그렇게 어린 나이에 사슴의 눈을 하고 선한 인상을 한 남자의 꾐에 꼬여 살림을 차렸지만 그 결과는 좋지 못했다. 배는 맞아 아이를 가지게 되었어도, 남자는 상습적으로 도박이며 폭력이며 하며 세상 안좋은 것들은 모두 다 하는 듯 했다. 그녀는 울었고, 자존심으로 10년에 가까운 세월을 버텼다. 하지만 그것 뿐 이었다. 버티는 것은 영원할 수 없다. 여자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이를 데리고 제 본가로 떠났다. 그녀는 사실 그 곳에서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고 있었다. 지나온 세월 탓에 많이 상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아이는 제 인생에 중요한 존재가 아니었다. 아이는 이상하게 조금도 저를 닮지 않았다. 몹쓸 제 아비만 닮은 듯 했다. 그녀에게 자신의 아이는 애증의 결과였다. 그래서 그 애증을 놓아버리는 것은 아주 쉬웠다.
그의 집은 다시 또 한번 발칵 뒤집혔다. 이미 나이가 지긋하게 든 그의 부는 분을 못이겨 그 자리 그대로 쓰러졌다. 그의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욕을 하고는 했다. 이 몹쓸 년. 천하의 몹쓸 년. 에구구구. 이 몹쓸 년!
그는 그 스스로가 담담한 것을 느꼈다. 예상했기 때문이었을까. 예전부터 제 누이는 바람같은 여자였다. 10년 버틴게 용하다고 혼자 자조적으로 웃기도 했다.
다만 아이는…… 사내는 당장 아이를 살폈다. 아이는 잔뜩 헤쳐진 제 어미의 짐들 사이로 가만히 누워있었다. 불도 켜지지않은 전등을 보고 있었다.
남자는 떨리는 손으로 아이를 잡고 제 품에 안았다.
‘쉬……이제 괜찮아.’
‘……’
‘삼촌이랑 같이 사니까……’
‘……’
‘삼촌이 창민이랑 같이 살거야… 창민이 목욕 시키고, 공부도 가르쳐주고……’
‘삼촌.’
‘대학도 보내고, 응? 예쁜 색시한테 장가도 보내고……’
‘이제…… 엄마는 안와?’
아이는 그래도 엄마가 전부였다.
그래도 시간이 흘렀다. 아이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안정되는 듯 했다. 예전의 모습을 찾아간다고들 어른들은 생각했다. 하지만 그 예전의 모습 자체가 아이의 본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많이 상처받고 위축되어서 만들어낸 이면의 모습. 그것을 아는 사람은 남자 한명 뿐 이었다.
남자는 아이를 데리고 무작정 서울에 갔다. 부모의 반대에도 스무해 넘게 살면서 처음으로 제 부모의 뜻에 강경한 반대를 비췄다. 부모는, 못난 네 누이의 짐을 네가 대신 질 필요는 없다고 했다. 남자는 그 말에 길길이 날뛰며 얘기했다. 짐이 아니라, 보물이라고. 내가 원해서, 내가 좋아해서 하고 싶은 것이라고. 남자의 부모는 고개를 저었지만 결국 허락했다. 힘들면, 아이를 다시 데리고 오라는 말도 잊어버리지 않았다.
남자의 마음같아서는, 평생 이 마을을 떠나지않고 제 부모를 모시고 이 작고 가엾은 아이도 제가 보살피고 싶었다. 하지만 남자가 서울에 있는 명문대의 입학을 허가 받았고 아이가 저를 버림받았던 어머니를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이 곳에서 계속해서 살아갈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렇기에 패기 아닌 패기를 부렸다.
그렇게 남자는 소년과 함께 서울로 상경했다. 집과 생활금은 본가에서 넉넉하게 보내주었지만 남자는 헛되이쓰지않고 모두 다 저축했다. 누가 뭐래도, 너는 내가 키우고 교육시키고 대학보내고. 원한다면 유학도 보내줄거고…… 장가도 보내서, 집도 하나 해줄거야. 여자의 치마폭보다 더 대단한 애착이었다.
바쁜 일상이 시작되었다. 12살의 차이. 초등학교에 막 입학한 아이를 깨우고, 씻겨서 밥을 먹이고 학교에 데려다주고…… 허겁지겁 다시 집으로 뛰어와서 이제는 제가 씻고, 남은 밥을 대충 먹고 옷을 입고…… 수업 중간에 빈 시간을 만들어 아이를 데려오고. 그것도 여의치못하면 교수의 양해를 받아 아이를 데리고 오기도 했다. 고단했지만 남자는 행복했다. 제게 꼭 잡힌 체 흔들리는 손이 제법 커져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때마다 가슴 속 안에서 무언가가 마구 치밀어오르는 듯 했다.
‘삼촌, 삼촌이 제일 좋아.’
‘나도. 나도 창민이가 제일 좋아.’
‘엄마, 이제 안보고 싶어.’
‘……삼촌도 그래. 엄마 이제 안보고 싶어.’
‘할머니한테 이를거야.’
‘어? 안돼, 임마.’
밤이 되면 아이가 쑥쓰러운 듯, 자기 전에 뽀뽀를 해준다. 그럼 남자는 아이의 볼을 콱콱 물어댔다. 면도를 하지 않은 채로 아이의 등에 얼굴을 부벼 아이가 발버둥을 치면 간지럽히기까지 했다. 아이는 꺄르르륵 웃었고 남자도 웃었다.
‘창민아.’
‘응.’
‘창민이 나중에…… 막, 막. 잘생겨져서 응? 삼촌 버리면 돼, 안돼?’
‘안돼.’
‘그럼 어떻게 해야돼?’
‘하루에 두번씩 뽀뽀해줘야돼.’
‘어구구구. 내 새끼. 똑똑한것 좀 봐.’
엉덩이를 토닥이며 제 품에서 아이를 재울 때는, 마치 이 세상에 황금을 가득 안고 잠을 자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것보다도 더 했다. 작고, 따스하고, 부드러운 것이 제 안에서 새근새근거리는 숨소리를 낼때면…… 심장 그것 보다 더 깊은 곳의 마음이 간질거려 아프기까지 했다.
남자는 희생이라고 생각하지않았다. 기쁨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