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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오늘도 야근이다. 이틀은 그러려니 하는 생각으로 버텼다만, 사흘은 좀 너무하지 않냐. 몸살감기로 쓰러진 게 불과 일주일 전인데. 우리 회사는 정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니까.
”일도 일인데, 좀 쉬면서 해요. 또 아프면 어쩌려고.”
또 그 사람 생각이다. 아주 틈만 나면 비집고 들어온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만나지도 않았지. 근데 왜 자꾸 생각나, 사람 일도 못하게. 한 번 떠오르면 가시질 않는다. 그래도 가끔은 꾹꾹 눌러담으며 정리한 서류를 올리긴 했는데, 빠꾸 먹은 게 대다수라 이번엔 아예 퇴근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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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가기 전 커피숍에 들렀다. 오랜만에 느끼는 여유라 그런 건지 비가 와서 그런 건진 모르겠으나, 아무튼 감성에 취해서 먹어 본 적 없는 커피를 시켰다. 맛없으면 버리고, 맛있으면 장땡이지, 뭐.
자리 잡고 앉아 있는데 진동벨이 울렸다. 커피 나왔다 보다.
커피를 받고 뒤를 돌자마자 받은 커피를 떨어뜨렸다.
”... 오랜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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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앉아 있는 건 나인가, 내 몸뚱어리인가. 내가 미쳤지, 뭐 하러 커피 한잔 하자고 붙잡았을까.
“... 어떻게 지냈어요?”
“저는 뭐, 계속 곡 작업하고 지내죠.”
“그렇구나....”
침묵.
“어디 아픈 덴 없어요? 그땐 종종 아팠었는데....”
강하루, 드디어 미쳤구나. 왜 사귈 때 얘기를 지금 꺼내....
“다행히 괜찮아요. 하루 씨는 아픈 데 없어요?”
“저도 뭐... 똑같죠.”
“여전하네요.”
“네?”
“거짓말하는 거, 여전하다고요.”
뭐지, 무슨 뜻일까. 병원에 있는 날 보기라도 한 건가? 그런 거면 이 사람은 병원에 왜 있었을까. 정말, 어디 아프기라도 했던 걸까. 궁금한 게 많지만 물어볼 수 없었다. 우리는 끝났으니까. 내가 끝냈으니까.
“하루 씨 회사 비상 연락망 저로 돼 있는 거,”
“아....”
“몰랐어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안 아프다고 거짓말했으나 들통났고, 멍청하게도 나 아파요 광고까지 한 셈이니까. 이 사람을 정말 어떡하지. 무안하고 미안해서, 귀찮게 해서 어떡하지.
“과로로 실려갈 때마다 저한테 연락이 오더라고요.”
“...”
“이제 제가 옆에서 챙겨 줄 수도 없는데.”
“...”
“그렇게 아프지 마세요.”
떨렸다. 온몸이 떨리고, 심장까지 이어졌다. 멈출 수 없고 이유조차 알 수 없어서 미칠 것만 같았고, 내 앞에 있는 이 사람의 감정을 도저히 헤아릴 수가 없었다. 무슨 의도일까. 확인하기 귀찮으니 연락망을 지우라는 뜻일까, 말 그대로 아프지 말라는 뜻일까. 근데 왜 이렇게 다정하게 구는 거야, 옛날 생각나게....
“울지 마세요.”
“미안해요. 갑자기 붙잡지를 않나, 울지를 않나.... 나 진짜 제멋대로네요.”
“이렇게라도 얼굴 봤으니 됐어요.”
“보고 싶었어요.”
잘 지내는지, 약은 끊었는지, 술 마시고 밖에서 자지 않는지, 내 생각 하는지.
“묻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었어요.”
“그냥 오늘은, 보고 싶었다고 할게요.”
“나머지 할 말은 다음에, 다음에 또 보게 되면, 그때 할게요.”
이 사람, 무슨 생각일까. 그전에 나는? 일찌감치 포기했었다. 물론 아예 포기했다면 거짓이겠지만, 반절은 기대를 저버렸었다. 내가 먼저 헤어지자고 했고, 이 사람도 별말 없이 수긍했으니까. 근데 보고 싶었단다. 날 걱정했다고? 난 지금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지? 한참을 생각하다 그냥,
“나도 보고 싶었어요.”
“우리, 내일도 볼래요?
지금 내 감정에 솔직해지기로 했다. 더는 나를 속이지 않기로, 이 사람을 속이지 않기로.
“좋아요.”
우리, 내일도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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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인사하네요 종종 만나요! 중간 영현이 대사 원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