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작
시작. 그래, 시작은 그 때였다. 중학교 3학년, 수업 시간이고 쉬는 시간이고 불문하며 잠만 자대는 성규가 이상하다고 생각할 때 쯤, 성규는 체육 시간에 잠이 들어버렸다. 옆에 있던 내가 받아주긴 했지만, 내가 없었다면 정말 큰일이 날 상황이었다. 갑자기 쓰러진 성규에 깜짝 놀란 체육 선생님은 당장 나보고 성규를 업고 보건실로 가라고 했다. 나도 적잖이 놀랐던 터라 당장 성규를 등에 업고 보건실로 달리고 있었다. 보건실에 들어가기 전, 귀에서 웅얼거리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성규가 죽기 전에 유언을 남기기라도 하는 줄 알고 식겁을 했었지.
“으응…….”
“뭐라고? 성규야, 다시 말해 봐.”
“엄마아…….”
보건실 문을 잡고 있던 나는 눈만 깜빡일 수밖에 없었다. 그건 너무 명백한 잠꼬대였다. 톤부터 억양까지. 한숨을 내쉬고 보건실 침대에 성규를 눕혔을 때는, 성규는 몸까지 뒤척여가면서 입술을 오물거렸다. 자기 말로는 애정을 못 받고 자라 그렇다고 하던데 손가락을 입에 물고 자는 게 버릇인 성규를 알기에 얼른 손가락을 입에 물려주었다. 그제야 편안한 표정을 지으며 손가락을 입에 꼭 물고 잠들었다. 허탈한 웃음을 짓고 있는데, 보건 선생님이 심각하게 증상을 물어왔다. 자기가 무슨 중력을 발견한 뉴턴이라도 되는 듯 안경을 추켜올리며 고개를 끄덕이던 보건 선생님은 성규가 기면증이라고 했다.
“…기면증이요?”
“대부분 청소년기에 발생하고 갑자기 잠이 든대.”
“……….”
“앞으로 잠들 때 마비나 발작이 오는지 잘 봐줘.”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인 나는 그 후로 계속 성규에게 붙어 다니기 시작했다. 매점에서 초코 빵을 사먹다가도, 가만히 의자에 앉아 창문 밖을 바라보다가도, 집에서 가만히 게임을 하다가도 성규는 잤다. 가끔 정말 졸려서 자기 전에는 마비나 발작도 일으켰다. 처음엔 깜짝깜짝 놀라던 나도 천천히 익숙해졌다. 아, 시작. 시작 얘기를 하고 있었지. 진짜 시작은 이 때다. 고등학교에 올라와서도 난 어김없이 성규의 집으로 하교를 했다. 침대에 누워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던 성규가 또 잠이 들었다. 깨어나서 분명히 또 코가 아프다고 짜증을 낼 성규를 알기에 콧대를 살살 문질러주었다. 그 날은 내가 고백을 받은 날이었다.
“오빠, 여자 친구 없으시면 저랑…….”
“……어, 미안.”
“네?”
“나 좋아하는 사람 있어.”
평판이 좋게 나 있던 여자 아이는 아닌지라 거절을 하고선 다시 반에 들어왔다. 나도 내가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 나도 모르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니.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을까, 생각하며 웃을 때 쯤 성규가 또 책상에 쿵, 머리를 박았다. 소리가 좀 큰 걸로 봐서는 이마에 혹이 생길 것 같아 얼른 옆자리로 가서 이마에 담요를 대주었다. 익숙하게 손가락까지 물려주고서 교과서를 폈다.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
“엄마아…….”
조그맣게 잠꼬대를 하는 성규에 놀라 눈을 깜빡였다. 낮에의 기억에 빠져 성규의 코를 주무르던 것을 멈추고 있었다. 시큰할 코를 살살 주물러주다가 입술에 손가락을 물려주고선 다시 휴대폰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또다시 머릿속에 맴돌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 고개를 휙 돌리자 손가락을 입에 물고 곤히 자는 성규가 보였다. 뭔가에 홀리듯 성규의 손가락을 슬며시 빼냈다. 물고 있던 게 없어지자 칭얼대듯 표정을 바꾸는 성규에 얼른 내 손가락을 물렸다. 자꾸만 제 손을 입가에 갖다 대는 걸 보면, 아무래도 자기 손가락이 아니면 안 되는 듯싶었다. 아까와 같이 무언가에 홀리듯 성규에게 입을 맞췄다. 제 손가락을 물으려고 입술을 오물거리는 게 귀여웠다. 자기 입 안에 들어오지 않는 게 짜증나는지 한껏 인상을 찌푸린 성규가 입술을 벌렸다 오므렸다, 내 아랫입술을 완전히 제 입 속에 넣었다.
“……으읍!”
“우응…….”
가만히 나도 성규의 윗입술을 머금고 있다가 급하게 정신이 돌아와 입술을 떼었다. 제가 물었던 게 입술이든 손가락이든 빠져나갔다는 게 싫은 듯 칭얼거리며 몸을 뒤척이는 성규에 얼른 다시 제 손가락을 물려주었다. 성규의 입 속에 들어갔다 나왔던 입술이 촉촉해져 있었다. 입술 끝에 혀가 닿았던 느낌이 선명하다. 한참을 입술만 매만지다가 성규가 일어났을 때, 난 어색한 연기를 하며 집에 가겠다고 성규의 집을 뛰쳐나왔다. 집까지 숨이 찰 정도로 달려서는 바로 방에 들어갔다. 밥은 먹었냐는 엄마의 물음에도 침대에 누워 숨을 골랐다. 그 때부터였다. 내가 성규를 좋아한 게.
2. 일상
그 다음날부터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성규는 아침에 만나자마자 왜 그렇게 하고 갔냐고 툴툴대기 바빴다. 뽀뽀에 대한 얘기를 꺼내지 않는 것 보면 어제 일을 모르는 것 같았다. 아니, 알 수가 없지. 잠에 들었었는데. 괜히 걱정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아 살짝 미소를 지었다. 성규는 반으로 들어가 의자에 앉을 때까지 툴툴거렸다. 자꾸만 내밀어지는 입술이 귀여워 웃었다. 그러자 성규는 지금 자기가 진지하게 얘기하는데 웃고나 있냐며 귀를 쭉 잡아당겼다. 그러고 보니 그랬다. 예전에는 성규가 귀를 잡아당기면 바로 똑같이 복수를 해주거나 잡아당기는 손을 꼬집어서라도 떼게 했다. 정확하게 얼마 전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얼마 전부터 나는 성규의 손길을 다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프다고 말만 할 뿐, 손을 떼어놓지 않았다. 별로 아프지 않아서 떼어놓지 않았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성규는 엄청 손이 맵거든.
“아아, 아파. 알았어, 그만 해. 응?”
“한 번만 더 집중 안 하면, 죽는다.”
목에 엄지로 선을 긋는 깜찍한 행동을 하는 성규에 그저 웃어 보였더니 왜 그렇게 실없이 웃기만 하냐고 또 툴툴대기 시작했다. 쭉 내민 입에 잔뜩 처진 눈썹과 달리 올라가 있는 눈매. 그게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성규를 좋아한다고 알기 시작하자마자 모든 게 달라보였다. 알았다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성규는 처진 눈썹만 바로한 채 입술을 집어넣지 않았다. 대신 나를 흘겨보았다. 어쩜 그리 흘겨보는 것까지 귀여운지. 그저 으헝헝, 웃자 성규는 드디어 네가 미쳤다, 며 열을 재주었다. 그렇게 일상인 듯 일상 아닌 일상 같은 일상으로 돌아간 우리 둘은 잘 지냈다. 물론 서로 다른 의미에서 잘.
“성규야, 탱크보이 사줄까?”
“어, 완전. 완전 사줘!”
하지만 그 후로 조금 이상한 점이 있다면 성규도 바뀌었다는 점이었다. 평소 까칠하기만 했던 성규는 저렇게 애교도 부릴 줄 알았다. 저게 애교는 아닌가…. 어쨌든 내 눈에 애교로 보였으면 됐다. 그와 동시에 내 스킨십도 점점 커져갔다. 볼을 살짝 꼬집고 매점으로 가 탱크보이를 사오자 성규는 좋다고 꼭지를 따 나에게 주었다. 꼭지를 먹으면 암에 걸린다는 얘기를 어디서 듣고 와서는 그 후로 계속 꼭지는 나에게 주는 성규였다. 자기보다 내가 운동을 더 많이 하니까 암에 걸릴 확률이 적다나, 뭐라나. 어쨌든 귀엽게도 그런 행동을 보여주는 성규 덕분에 난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그리고 조금 더 가까운 스킨십을 할 때는 이유 불문 내치기만 하던 성규가 어느 순간부터 조금 받아주기도 했다. 문제는 자기가 받아주고도 귀나 목이 새빨개진다는 단점 아닌 단점이 있지만.
“성규야, 끝나고 피시방 갈까?”
“집에도 컴퓨터 있잖아.”
“아……. 그러면, 노래방?”
“목 아파. 어제도 갔잖아.”
“아, 그러면…….”
“그냥 집에 가자. 라면이나 먹어.”
그저 성규의 말이면 다 좋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방과 후에도 성규의 가방을 들어주곤 했다. 처음엔 제가 계집애도 아니고 이런 호의는 백 번 거절이라던 성규도 계속 가방을 들어주자 편하긴 했는지 아무 말 없어졌다. 더워 죽겠다며 교복 셔츠를 벗어 어깨에 걸친 성규가 흰 티를 펄럭이며 걸어갔다. 사실 말하자면 앞뒤로 가방을 메고 있어 바람이 안 통해 나도 더웠지만 성규가 덥다고 하니 걱정이 됐다. 그리고 성규는 언제 잠이 들지 몰라 계속 옆에 붙어 있어야 했다. 그 이유 때문에 항간에는 내가 성규에게 약점을 잡혀 노예 노릇을 하고 있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우리 둘은 크게 신경 쓰지도 않았지만.
3. 시험
이제는 과거 말고 지금의 얘기를 해보고자 한다. 참 이해가 되지 않는 게 우리 학교는 꼭 다른 학교들 시험이 끝나야 시험을 시작하는 이상한 풍습이 있다. 교장 선생님이 바뀔 때마다 기대해 왔다고 하지만 바뀌지는 않는다고 했다. 자꾸 놀자는 친구들의 연락도 다 씹고 성규와 독서실에 도착했다. 더운 걸 싫어하는 성규는 오늘도 에어컨 바로 앞자리가 마음에 드는지 앉자마자 얼굴에 미소를 띠운다. 그게 또 귀여워 보여 볼을 살짝 꼬집고 가방에 있는 교과서를 꺼내들었다. 말없이 공부만 한 게 자그마치 2시간. 목과 허리가 뻐근해져 시계를 보니 벌써 2시간이 지나 있었다. 성규는 신기하게도 공부에 집중만 하면 잠들지 않았다. 그게 신기해 한 10분 쯤 바라보고 있었을까, 성규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입을 살짝 벌리고 조는 게 귀여워 사진으로 남길까 하다가 나중에 성규가 보면 혼낼 것 같아 생각을 거두었다. 성규의 어깨를 살짝 흔들어 깨우고 방을 나와 휴게실로 갔다. 집중을 끝내자 잠이 몰려오는지 눈을 깜빡이는 성규를 일단 의자에 앉혔다.
“뭐 마실래?”
“……게토레이.”
고개를 끄덕여주고 동전을 넣어 게토레이를 뽑았다. 작은 눈을 열심히 뜨고 있는 게 웃겨 살짝 웃자 또 세모눈을 하고는 바라본다. 또 귀를 잡아당기기 전에 얼른 게토레이를 따서 성규의 앞에 두었다. 캔을 들어 한두 모금 마시는가 싶더니 캔을 내려놓는다. 다 마셨냐며 안 마시면 내가 마신다고 캔을 가져오려던 손이 멈추었다. 성규가 그대로 쓰러져 내 품에 안겼다. 쓰러진 적은 많았지만 이렇게 내 품에 폭 안겨온 건 거의 처음이었다. 한참을 그대로 있다가 휴게실에 다른 사람이 들어오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품에 안겨 색색대고 자는 성규에게 일단 손가락을 물려주고 등에 업었다. 등에 업힌 성규를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 일단 성규의 집으로 갔다. 집과 가까운 곳에 있는 독서실이라서 안심하며 도어락을 풀고 집에 들어갔다.
“……어, 안녕하세요!”
“우현이네. 오랜만이다.”
“네! 오랜만에 뵀는데 더 예뻐지셨네요.”
“쪼끄만 게 말은. 성규는, 자니?”
“아, 네. 갑자기 잠들어서 일단 눕혀놓으려고요.”
“그래, 들어와.”
성규의 방문을 열어주시는 아주머니께 꾸벅 인사를 하고서 침대에 조심스레 성규를 눕혔다. 손가락을 그냥 입에 물고만 있는 게 아니라 빨기도 하는 듯 입술을 오물거리며 손을 꼭 물고 있다. 그게 또 귀여워 보여 앞머리를 조심히 넘겨주곤 방을 나왔다. 뭐라도 마시고 가라는 아주머니의 말을 사양하고 다시 독서실로 가서 성규의 짐과 내 집을 챙겨 나왔다. 가방을 두 갠데 옆에 성규가 없자 괜히 허전해 성규의 집으로 뛰어갔다. 현관에서 가방을 받아주시겠다는 아주머니의 말씀에도 굳이 안으로 들어가 놓고 오겠다며 다시 한 번 성규의 방으로 들어갔다.
“성규야.”
“……….”
“아직 자?”
아무 대답 없는 성규에 살짝 웃고 의자에 가방을 놓았다. 이불을 반쯤 덮고 손가락을 문 성규는 아기 같았다. 뽀얀 피부에 트러블도 하나 없으니 더욱 더 느낌을 더했다. 침대에 앉아 꼭 물고 있는 손가락을 살살 쓰다듬기도 하고 머리를 쓰다듬어주기도 하다가 더 있다가는 집에 가는 시간이 늦을 것 같아 방을 빠져나왔다. 물 한 잔을 들고 계시던 아주머니가 성규도 업고 오고, 가방도 들고 뛰어오느라 힘들었겠다며 그걸 건네셨다. 이젠 아무 것도 아니라며 너스레를 떨고는 물을 마셨다. 잘 마셨다고 감사 인사까지 전하고 신발을 신는데 아주머니가 현관 앞까지 나오셨다. 아주머니는 내 손을 꼭 잡고 말하셨다. 성규를 잘 챙겨줘서 고맙다고, 너 같은 친구가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아…, 그럼요. 다행이죠.”
“정말 고맙다. 나중에 오면 너 좋아하는 꽃게탕 해줄게.”
“에이, 그건 성규가 못 먹잖아요. 전 그냥 김치찌개도 감사해요.”
“말은……. 가 봐, 많이 늦었네. 어머니 걱정하시겠다.”
꾸벅, 허리를 숙이고는 헤헤 웃으며 문을 닫았다. 왠지 아주머니께 인정을 받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생각해보니 성규와 이만큼 가까운 사람도 나밖에 없는 것 같고…. 올라가는 광대를 주체 못 하고 길거리에 잠깐 서서 웃었다. 내 옆을 지나가며 이상하게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내가 성규와 누구보다 가깝고, 아주머니께 인정도 받았는데 그게 무슨 대수야.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집으로 가는 길은 어느 날보다도 좋았다.
한 편에 3 에피소드씩, 6편 정도 될 것 같아요.
연재 날짜 정해놓지 않고 글 완성될 때마다 올릴 거예요.
그동안 썼던 글, 톡은 다 지울게요. 미안해요.
오랜만이에요. 또 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