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가족
시험이 끝나고 딱 애매한 기간이었다. 수업하기도 애매하고 계속 놀기도 애매한 기간. 영화 볼 사람은 보고 잘 사람은 자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바로 책상에 머리를 박는 성규였다.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주다가 볼에 담요를 받쳐주자 손가락을 가져다 물었다. 가위 눌릴 텐데. 걱정되는 마음에 성규의 등에 손을 가만히 놔두었다. 역시나 잠이 들기 전에 등을 굳히는 성규에 등을 가만히 쓰다듬어주었다. 그제야 편하게 몸을 풀고 잠이 드는 성규에 마음이 놓였다. 그렇게 아무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고 하교 시간이 되었다. 혹시나 놀랄까 봐 성규를 조심히 품에 안고 토닥여 깨웠다.
“집에 가야지.”
“……….”
“성규야. 일어나야지.”
눈을 부스스 뜬 성규가 놀란 눈을 하며 내 품에 파고들었다. 좋은 것도 있지만 걱정이 되어 성규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약간 떠는 것도 같아 고개를 숙여 눈을 맞추자 눈물을 그렁그렁 단 성규가 내 옷자락을 꽉 쥐었다. 자기가 약할 때만 아니면 항상 강한 모습을 보여주던 성규가 울자 다시 품에 안고 토닥여주었다. 괜찮아, 괜찮아. 한참을 그렇게 있던 성규가 잠에서 거의 깼는지 내 품에서 나왔다.
“왜? 또 뭐 보였어?”
“……….”
“알았어, 가자.”
“아빠…….”
아빠? 약한 눈을 하고 있던 성규가 손등으로 남은 눈물을 훔치고는 가방을 메었다. 벌떡 일어난 성규가 얼른 가자며 먼저 걸음을 옮겼다. 집으로 가는 길에 자꾸만 걸음을 멈추는 성규에 어디 아픈가 열도 재봤지만 열은 없었다. 결국 성규의 어깨를 감싸고 천천히 걸었다. 집에 혼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지만 내가 안 보는 중간에 쓰러질 것만 같아 침대에 눕는 것까지 보고 간다며 억지를 부렸다. 도어락을 푸는 손을 바라보다가 문이 열렸다. 아주머니의 분홍색 운동화 옆엔 까만 구두가 있었다.
“……….”
“손님 오셨나 보다.”
성규의 어깨를 감싼 손에 힘을 줘 안으로 들어가려했다. 성규가 발에 힘을 꾹 주고 들어가지 않으려 버텼다. 난 또 어디가 아픈가 걱정 되어 성규를 바라봤다. 입술을 꾹 깨문 성규가 문을 쾅, 소리가 나도록 닫았다. 곧이어 안에서 한 남자가 도어락을 풀고 나왔다. 재빨리 내 뒤에 숨은 성규가 몸을 떨었다. 얼떨결에 남자의 정면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날 뚫어져라 보던 남자는 손을 뻗어 성규의 어깨를 쥐었다. 성규가 눈에 띌 정도로 크게 움찔했다. 말없이 남자를 올려다보는데 뒤에서 아주머니가 나왔다.
“놔! 손대지 마!”
“김성규.”
“놓으라고!”
벌벌 떨던 성규가 내 허리를 감싸 꼭 안았다. 허리에 감긴 손마저 떨렸다. 손을 들어 남자의 손을 성규에게서 떼어냈다. 아주머니의 꾹 깨문 입술도 떨렸다. 남자의 손을 떼어내자 더 꼭 붙어오는 성규에 손을 토닥여주었다. 괜찮아. 등에 얼굴을 묻은 성규가 밭은 숨을 색색 내쉬었다. 한숨을 내쉰 남자가 대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성규가 더 떨지 않게 최대한 남자에게서 성규를 숨겼다. 한참이나 날 바라보던 남자는 차를 타고 떠나버렸다. 차 소리가 나지 않을 정도로 멀리 가자 성규의 힘이 풀렸다.
“……성규야!”
“괜찮아요. 제가 눕힐게요.”
성규가 큰 소리를 내며 쓰러지자 아주머니가 달려 나오셨다. 얼른 성규를 안아 올려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 안은 뭔가 어수선했다. 그렇다고 많이 어질러진 것도 아닌데, 깔끔하게 정돈된 것도 아니었다. 일단 성규의 방에 들어가 성규를 조심히 눕혔다. 신발을 벗겨내고 식은땀이 나 축축한 이마를 만져주었다. 교복 상의를 대충 벗겨주고 이불을 올려 덮어주었다. 방으로 나오자 소파에 앉은 아주머니가 날 다급한 눈으로 바라보셨다.
“성규, 좀. 데려가 줘.”
“……네?”
“성규…, 너희 집에서 좀 재워주렴.”
5. 노래
그렇게 성규는 우리 집에서 며칠 자게 되었다. 성규가 자는 동안 집에 가서 엄마 아빠께 설명 드렸다. 엄마 아빠는 안 될 이유가 뭐가 있냐며 얼른 성규를 데려오라고 하셨다. 다시 성규의 집에 갔을 땐, 성규는 멍하니 앉아 있었다. 아무 일 없었던 듯 요리를 하시는 아주머니께 인사를 드리자, 밥이라도 먹고 가라며 김치찌개를 식탁에 내려놓으셨다. 성규를 데리고 가서 의자에 앉자 성규가 고개를 푹 숙였다. 눈치를 보며 밥을 먹기 시작했다. 한참동안 성규만 바라보던 아주머니는 눈물을 훔치시며 방으로 들어가셨다.
“밥 안 먹어?”
“……….”
“얼른 먹고 가자. 집에선 안 줄 거야.”
협박 아닌 협박에도 아무 말 없는 성규가 걱정되어 직접 숟가락으로 밥을 떠먹여 주었다. 다행히도 입 안에 넣어준 밥은 천천히 씹기 시작하는 성규에 김치찌개와 다른 반찬들도 먹여주었다. 어렵게 밥을 다 먹이고 성규의 짐을 싸서 우리 집으로 출발했다. 나가는 순간 까지도 성규의 손을 놓지 않던 아주머니는 나에게 억지로 돈을 쥐어주시고는 집으로 들어가셨다. 아주머니를 보고만 있던 성규가 나에게 더 기대었다. 성규의 어깨를 감싸주고 걸음을 옮겼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엄마와 아빠는 성규에게 잘 왔다며 관심을 보여주셨다. 좀 창피한 것 같기도….
“성규야, 왔구나. 오랜만이다.”
“……네.”
“……아, 방으로 들어가 있어. 아줌마가 간식 줄게.”
고개를 꾸벅이고는 방으로 들어가는 성규를 바라보던 엄마가 한숨을 쉬고는 부엌으로 들어갔다. 엄마의 옆에서 같이 웃고 있던 아빠도 똑같이 한숨을 쉬고 엄마를 따라 부엌으로 들어갔다. 성규의 짐을 방으로 들어가서 내려놓았다. 침대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은 성규가 무릎에 고개를 파묻었다. 내가 아무 말 않자 고개를 살짝 드는 성규에 씩 웃어주었다. 제 옆자리를 툭툭 치는 성규에 얼른 그 자리에 가서 앉았다. 딱히 그 남자에 대해 물어보고 싶진 않았다. 궁금하긴 했지만 왠지 물어보면 성규가 또 무서워하고 괴로워할 것 같았다. 아무 말도 없이 앉아만 있자 엄마가 간식을 들고 들어왔다. 책상에 올려놓으며 성규에게 필요한 게 있으면 꼭 말하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고개를 끄덕이고는 작게 감사하다고 말하는 성규가 예뻐 보여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씻을래.”
“벌써?”
“씻고 싶어.”
고개를 끄덕여주자 짐 가방에서 속옷과 옷을 꺼낸 성규가 욕실로 들어간다. 따라 들어가 칫솔을 건네주었다. 처음도 아닌데 욕실에 단 둘만 있으니 이상한 마음이 들어 얼른 방으로 들어왔다. 갈아입을 옷을 챙겨 욕실 앞에서 성규를 기다렸다. 머리를 감았는지 머리 위에 수건을 올리고 나오던 성규가 나를 보고 깜짝 놀랐다. 가만히 성규를 올려다보다가 웃자 내 얼굴을 수건으로 덮어버린 성규가 방으로 들어갔다. 얼른 욕실로 들어가 씻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자 그새 잠이 든 성규가 손가락을 입에 물고 잠들어 있었다.
“자?”
“……….”
더 놀고 싶었는데. 입을 삐죽이다가 성규의 옆에 누웠다. 아직 촉촉한 머리카락을 천천히 쓰다듬어주었다. 입술을 오물거리던 성규가 내 쪽으로 조금 더 다가왔다. 잠결이라고 하면 되겠지. 눈 딱 감고 성규를 품에 안았다. 캄캄한 방에서 우리 둘만, 그것도 같은 침대에서 딱 붙어 있다. 침이 자꾸만 꼴깍꼴깍 넘어갔다. 눈을 꼭 감고 잠에 들으려 노력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계속 뛰는 심장 때문에 잠에 이루지 못 하고 있을 때였다. 품 안에서 뒤척이던 성규가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귀신이라도 들린 줄 알았다. 슬며시 눈을 떠보니 눈을 질끈 감은 성규가 흥얼거리고 있었다. 일단 귀신에 들린 것 같진 않아 보여 성규의 손을 잡아 주었다.
“……….”
“……뭐해?”
불규칙한 숨을 내뱉던 성규가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허리를 꼭 껴안았다. 쿵쿵 뛰는 심장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애써 성규를 밀어내려 했는데 성규가 더 품에 파고들었다. 난 몰라…. 조금 더 흥얼거리는가 싶던 성규가 웅얼거리며 말을 하기 시작했다. 가슴에 파묻혀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성규의 볼을 잡고 위로 올렸다. 가까이서 본 성규의 얼굴은 더 예뻤다. 이성의 끈을 잡고 성규와 눈을 맞추자 성규가 울상을 지었다. 괜찮다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다시 처음부터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아빠야, 아빠…. 내 아버지야, 그 사람.”
“……….”
“나 어렸을 때 맞고 자랐어. 내가 말했지? 애정이 부족하다고….”
아, 맞다. 항상 생각해왔다. 아주머니를 보면 성규와 영규 형을 엄청 사랑하시는 분이었다. 나는 네가 무슨 애정을 못 받았냐고 그렇게 말했었다. 그래도 손가락을 물고 자는 게 귀여워 그냥 넘기곤 했었다. 그 다음 말은 말하기 쉽지 않은 듯 입술만 달싹이는 성규에 다시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눈을 맞춘 성규가 조금씩 또 웅얼대며 말을 했다.
“아빠한테 엄청 맞았었거든…, 엄마도.”
“……….”
“아빠 나가면 엄마가 우리 끌어안고 맨날 그 노래 불러줬었어.”
가만히 성규를 보고 있자 살짝 웃고는 다시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성규의 목소리가 좋은 것과 노래를 잘한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흥얼거리는 것조차 예쁘고 좋았다. 천천히 눈을 감고 흥얼거리는 걸 듣다가 잠에 든 것 같았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뜨니 성규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아, 어제 성규 노래 들으면서 잠들었지. 눈곱이 낀 모습까지도 귀여워 살살 떼 주었다. 눈가가 따가운지 칭얼대며 내 품에 안겨오는 성규를 토닥였다. 행복해 죽을 것만 같은 아침이다.
6. 고백
얼른 일어나 밥 먹으라는 엄마의 소리에 성규가 깼다. 가까운 거리에 놀란 성규가 고개를 푹 숙이고 몸을 돌렸다. 큭큭 웃으며 일어나 성규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 손을 잡고 일어난 성규는 눈을 비비다가 비틀대며 욕실로 갔다. 문을 닫는 성규에 다시 문을 열고 들어갔다.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보는 성규의 볼을 살짝 꼬집어주고는 칫솔에 치약을 짜 입에 물었다. 저도 같이 칫솔을 물고는 가만히 날 바라보는 성규에 크게 웃었다. 어쩜 저렇게 귀여울까. 꼭 햄스터 같았다. 성규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주며 이를 닦는데, 성규의 볼이 점점 발갛게 물들었다. 어디 아픈가….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이마로 옮겼다.
“안 아프거든.”
“근데 너 얼굴 빨갛잖아.”
“……빨리 씻어.”
내 손을 치워버리고는 양치를 하는 성규에 또 웃어버리고 말았다. 자꾸만 커져가는 마음에 자제가 힘들었다. 확 고백이라도 해버릴까…. 그 다음 상황이 대충 생각나 고개를 저었다. 우린 친구였다. 적어도 성규에게는. 나에 대한 성규의 믿음을 깨지게 하기 싫었다. 뜬금없이 한숨을 쉬자 거울로 나를 힐끔 보고는 수건으로 물기를 닦는 성규다. 애써 웃어주며 머리를 쓰다듬자 가만히 받고 있던 성규가 씻기나 하라며 배를 툭 친다. 먼저 나가는 성규를 보고만 있다가 다시 씻는 걸 시작했다.
“잘 잤니? 밥 먹어.”
“…네, 감사합니다.”
역시 내가 엄마 아빠 아들은 맞는 것 같다. 성규가 한 없이 예뻐 보인다는 눈빛을 보내며 식탁에 앉아있으니 성규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성규의 옆에 앉아 괜히 헛기침을 큼큼, 하자 엄마와 아빠가 그제야 성규에게서 눈을 뗀다. 성규는 내 건데…. 우리 세 식구가 앉아 온갖 맛있는 반찬을 성규에게 밀어주자 점점 귀가 새빨개지는 성규였다. 그게 또 귀여워 보여 볼을 꼬집으며 웃자 엄마와 아빠도 똑같은 표정이었다. 뭔가 질투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엄마 아빠도 좋아해주는 거니까 기분이 좋기도 했다. 어제는 겨우 떠먹여줘야 먹더니 오늘은 왜 그렇게 또 예쁘게 잘 먹는지.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며 먹는 성규가 그렇게 예뻐 보일 수 없었다.
“아, 배불러….”
“많이 먹긴 먹었지, 네가. 괜찮아?”
“응. 그래도 맛있었잖아.”
헤, 웃은 성규가 교복을 입었다. 같은 교복을 입고 같은 집을 나섰다. 괜히 설레는 마음에 성규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더운데 왜 이러냐는 말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내 쪽으로 성규를 당겼다. 어깨를 조금 털어내면서도 가만히 걷는 성규가 예뻐 충동적으로 뽀뽀를 할 뻔 했다. 정신을 다잡고 학교로 향했다. 어제와 똑같이 의미 없는 하루를 보내고는 학교에서 나왔다. 더워서 짜증나 죽겠다는 성규에 빙수를 사준다며 달래자 얼굴에 서서히 미소가 번진다. 카페에 들어가 성규가 좋아하는 빙수를 시키고 자리에 앉았다.
“딸기빙수 시켰지?”
“당연하지. 그거 아니면 안 먹을 거면서.”
“역시 센스…….”
앞으로 갑자기 고꾸라지는 성규에 놀라 얼굴을 받쳐주었다. 내가 왜 앞에 앉았지. 몸을 일으켜 성규를 소파에 기대게 해주고 옆자리에 가서 앉았다. 입술을 오물거리는 성규에 손가락을 물려주려다 여기서 잠들면 안 되기 때문에 등을 토닥이며 깨웠다. 졸려서 잔 게 아니기 때문에 스르르 눈을 뜬 성규가 한숨을 내쉬며 내게 기댔다. 자꾸만 귀찮게 해 미안하다며 웅얼거리는 성규가 또 예뻐 가만히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빙수가 다 됐다는 진동이 울리고, 얼른 가서 빙수를 받아 왔다. 깜빡 잠이 들 땐 언제고 눈앞에 빙수가 놓이자 바로 숟가락을 든 성규가 빙수를 먹기 시작했다. 언제 또 성규가 잠에 들지 몰라 성규를 안다시피 하고 빙수를 먹었다.
“시원하고 좋네.”
“그러게. 이제 집에 가자.”
“아, 여기가 좋은데. 시원하고….”
“집에 가서 에어컨 틀어줄게.”
빙수를 먹다보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성규의 어깨를 감싸고 집으로 향했다. 노을이 져 하늘이 예쁜 색이 되었다. 성규도 느릿느릿 걸으며 멍하니 하늘을 보고 있었다. 하늘빛에 비쳐 붉은 얼굴이 된 성규가 예뻤다. 집 앞에 다다랐을 때 쯤, 성규가 너무 귀여워 나도 모르게 입을 맞췄다. 쪽, 하고 닿았다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성규도 나도 깜짝 놀라 서로를 바라봤다. 눈만 깜빡이던 성규가 손을 올려 입술을 매만졌다. 성규한테 뭐라고 말하지…. 한참이나 말할 궁리를 찾다가 겨우 입을 떼었다.
“……좋아해.”
“뭐?”
“너, 좋아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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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달아주길 바라요.
의미 없는 내용이라도 나한테는 힘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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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에서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