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아침조회는 여기까지고 공부 좀 해라. 우리 반이 2학년 반 전체에서 전 과목 다 꼴등이다. 꼴등이 뭐냐, 꼴등이. 적어도 담임이 가르치는 수학이라도 잘 보던가. 으휴, 새끼들. 조회 끝났으니까 수업 준비하고 경수는 나 따라와라. 아, 박찬열! 너는 자리 옮겨야 되니까 경수 올 때까지 책상 비워놔.
담임이 나가자 애들은 조용히 좀 하라는 담임의 말은 들은 적도 없다는 듯이 떠들기 시작했다. 내 옆에선 김종대랑, 김종대같이 말많고 시끄럽기로 유명한 박찬열은 자리 옮기기 귀찮다고 투덜투덜 거리면서 자기 책상 속에 있는 물건을 하나 둘 씩 꺼내기 시작했다. 박찬열이 이 자식은 아마도 자리를 바꾼다는 것은 괜찮지만 바꾸는 자리가 맨 앞, 교탁 앞이라 마음에 안 들어 투덜투덜 거리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행동하는 게 좀 초딩같이 유치하지만 누구보다 여리다는 것은 불알친구인 내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근데 그나저나 얘 책상 속은 쓰레기통인지 아님 분리수거장인지 무튼 책상 속 서랍이 아닌 듯했다. 꺼내도 꺼내고 계속 나오는 안내문에 수학 프린트, 영어 프린트 어쩐지 맨날 프린트 안 가져와서 혼난다 했다.
어?! 이 샤프 내가 찾았던 건데 책상 속에 있었네. 아싸 샤프 살 돈 굳었다!!
앜! 야 얘 3월 달에 나눠 준 프린트도 있어! 박찬열, 너님 책상은 추억의 보물 상자세요? 무슨 프린트 모아서 나중에 학교에서 한 일 추억 하실 거예요? 좀 버려 새꺄.
어, 씨발, 존나 소중한 내 메모리 상자다, 씨발. 존나 안고 살거야, 이거. 나중에 내 자식한테도 보여 줄 거야. 씨발.
이 말을 하면서 박찬열은 자기 책상 속에서 나온 프린트들은 껴안았다. 그 모습에 김종대는 또 낄낄 거리면서 웃었다. 나는 그 둘은 턱 괸 채로 쳐다보다 시선을 박찬열이 꼭 쥐고 있는 박찬열 샤프로 시선을 돌렸다. 박찬열은 꼭 샤프를 쓸 때 샤프를 쥐는 손가락이 아프지 않게 해주는 샤프 중간이 말랑말랑한 비싼 샤프만 쓴다. 이렇게 좋고 비싼 샤프를 사놓고선 공부는 안 한다. 그래서 언제 한 번 물어 본 적이 있다. 공부도 안 해서 샤프도 안 쓰는 새끼가 이렇게 비싼 새프 써서 뭐하냐고, 그랬더니 박찬열은 정말 이걸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병신 같은 대답을 했다.
그냥 비싼 샤프 쓰면 공부 잘하는 것 같지 않냐? 그리고 뭣보다 깐지가 나잖냐. 깐지가.
깐지 같은 소리하네. 좆이나 까라 병신아. 분명이 이 새끼는 자기가 키우던 또리가 죽은 이후에 또리 간식 비 때문에 간당간당하던 용돈이 죽은 이후에는 많이 남으니 그것이 어색하고 마음이 허해서 그 돈을 이런데 쓰는 게 틀림없다. 에휴, 존나 안쓰러운 새끼. 그렇게 책상을 한바탕 뒤집은 박찬열이 프린트 한 장이라도 버릴라치면 왜에~ 니 소중한 메모리 상자라며~ 나중에 아들한테 보여줘야지~ 하면서 자꾸 옆에서 얄밉게 놀리는 김종대 때문에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그 많은 프린트들을 들고 빈자리로 갔다.
박찬열이 자리를 바꾸고 얼마 안돼서 드르륵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드르륵하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애들은 순간 조용해졌다. 도경수에게로 쏟아지는 반애들의 시선을 도경수는 알아차리고도 무시하는 건지 아님 못 알아챈 건지 조용히 자리에 앉아서, 가방에 있는 책들을 꺼내 책상 속으로 집어넣다 책상 속에 뭐가 있는 지 넣던 책을 빼고 손을 집어넣었다. 잘 안 꺼내지는 지 미간을 좁히며 꺼낸 그것은
북어 020117 박찬열
이라고 국어를 북어로 바군 박찬열의 국어 책이었다. 그걸 본 박찬열은 하하, 하면서 그 큰 눈의 눈동자를 굴리면서 책상 위에 있는 책을 슬그머니 가져갔다. 저, 병신새끼. 도경수는 다시 책상 안으로 손을 넣어 휘적휘적 거렸다. 저렇게 휘적거려지는 걸 보니 남아있는 건 없나보네 라는 생각을 하기도 잠시 도경수의 손에서 주욱 하며 설문지가 나왔다. 게다가 여자의 나체가 그려진 안내문이, 그리고 야, 변백현 죽이지 않냐 라는 문구가 적힌, 어, 씨발 존나 쩌네, 어제 야동 봄? 주소ㄱㄱ 라고 쓰여있는 나와 박찬열과의 대화가 있는, 청소년의 음란물 방지라고 쓰여 있는 안내문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