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해는 뜨지 않은채 주변만 어스름히 밝아지고, 푸른 빛이 창을 통해 들어왔다.
한참을 자리에 누워 눈만 꿈뻑이던 그녀는 어느 정도 잠이 달아나자, 그제서야 몸을 일으켰다.
혼자 쓰기에는 넓은 감이 있는 방을 터덜터덜 가로질러, 화장실에 들어가 어제 바르고 잔 슬리핑팩을 대충 씻어내고 샤워를 했다.
" ...거의 다 썼네, "
조만간 샤워코롱을 사러 나가야겠다고 다짐한 그녀였다.
그녀는 여름철엔 대부분 얇은 스키니진만을 입고 다녔다. 물론 본부에서만.
본부의 아침은 이렇게 시작한다.
am 07:45
본부에서도 어느 직급 이상만이 사용할 수 있는 식당 입구에서, 세훈이 아침부터 수트를 차려입은채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엘리베리터가 식당이 있는 34층에 멈춰섰다.
그리고는 세훈이 그렇게 기다리던 그녀가 내렸다.
" ..ㅇㅇ씨 "
그녀를 부르는 세훈의 얼굴이 희미하게 밝아졌다.
얼른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세훈이었다.
" 좋은 아침입니다. "
" ...네, "
" 잘 잤습니까, "
" 네. "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아침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대화를 나눴다. 세훈만이 참여하는, 일방적인 대화.
아침이 나와도 상황은 같다. 다만 그녀도 어느 정도 말을 할 뿐.
" 사람 먹는데 뭘 그렇게 빤히 쳐다봐요, "
" 기분 나쁘셨습니까, 죄송합니다. "
" .... "
" 어제보다 많이 드시는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
" ...네, 그러세요 "
" 더 드세요. 아침은 든든하게 먹어야죠. "
세훈이 제 접시에서 넘겨준 방울토마토를 빤히 내려다 보고만 있는 그녀였다.
그런 그녀를 지켜보던 세훈이 포크로 토마토를 집어 그녀의 입가에 갖다대었다.
" 아- 해요. "
" ... "
" 옳지, 잘 먹네. "
이렇게 아침 식사 시간도 끝났다.
am 08:13
오전업무가 비교적 이른시간부터 시작되는 세훈은, 2층에 위치한 랩에 그녀를 직접 바래다주었다.
여기서부터는 연구원들만이 가진 출입증이 필요했다.
그녀의 허리를 감고있었던 세훈의 손이 아쉽게 떨어지며 그 굴곡을 슬쩍 훑었다.
" 오늘 점심은 같이 못 먹습니다. "
" ..어디 가시는데요? "
" 외근입니다. "
그녀가 질문을 해 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쁜지, 세훈의 안색이 조금 밝아졌다.
" ..항상 조심하구요, "
" 당연하죠. "
" 왠만하면 밑에 애들 시키고. "
" ..걱정 해주는 겁니까? "
" ... "
" 오늘 저녁은 밖에서 먹어요. 제가 사겠습니다. "
" ..알겠어요, 연락하세요. "
부끄러워하는 그녀를 보고 살풋 웃은 세훈이 그녀의 볼에 살짝 입을 맞추고 긴 손가락으로 한참동안 그녀의 볼을 쓸었다.
이 둘의 인사는 길었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진 모르는 일이니까.
am 8:17
" 김박사님, "
" 아, 민석씨. 일찍 오셨네요 "
김민석, 올해 30세.
일본 동경대 생물학 석사.
현재 랩실에서 근무 중.
주업무는 마약 밀수&거래.
" 오늘 아침 먹기 싫어서 그냥 일찍 출근했어요. "
" 아, 그러셨구나.. 과일이라도 좀 드시지. "
" 괜찮아요. 저 오분 뒤에 브리핑 하겠습니다. "
" 네, 그러세요. "
그녀는 랩 (Lab.; 연구실, 실험실) 안에 마련된 자신의 사무실에 들어가 컴퓨터를 켜서 밤새 온 메일을 확인했다.
똑똑-
" 들어오세요. "
" 브리핑 하겠습니다. "
민석이 자신의 파일과 똑같은 파일을 그녀에게 건네며 소파에 걸터앉았다.
" 우선 오늘은 회진부터 하셔야 합니다. 오늘 새벽에 타오군이 현장에서 오른팔에 총을 맞았는데 그리 심하진 않아서, 제가 수술 들어갔습니다. "
" ...아, neurorrhaphy (신경 봉합술) 들어갔네요. 지금 B.P (Blood Pressure; 혈압) 도 정상이고, 혈중 산소농도도 이만하면, 뭐, 정상이네요.
SDO (saturation dissolved oxyzen; 고압산소) 좀 투입하죠. "
" 네. "
" TDM (therapeutic drug monitoring; 치료 약물 농도 감시) 만 신경써서 해야겠네, IM (Intra-muscular injection; 근육 주사) 하나하고.. "
" .... "
" 이정도면 될 것 같네요. 새벽에 놀라셨겠어요.. 잠도 못 주무셨는데, 오늘 괜찮으시겠어요? "
" 괜찮습니다. 수술 때문에 밀린 일도 많습니다. "
" 그래도, 힘들면 꼭 말하세요. "
" ....다음 일정 말씀 드리겠습니다. "
" .... "
민석의 파일이 한장 더 넘어가자, 그녀도 민석을 따라 종이를 넘겼다.
" 두시에 그랜드 앰베세더 호텔에서 티솔그룹 임원들과 티타임이 있으십니다. "
" 이번에는 뭔데요, "
또, 라는 말을 붙이려다 애써 삼켜낸 그녀였다. 또, 마약 거래겠지.
" 코카인이요. 오늘은 가볍습니다. "
" 네, 알겠습니다. 다음은요? "
" 그 다음은, "
" .... "
" 어제밤에 창고에서 꺼내온 리저버 (reserver; 보류자, 대기자), 연구 시작하셔야 합니다. "
" .... "
" 끝입니다. "
" .... "
" 9시에 타오군 회진하러 가겠습니다 ㅇ박사님. "
" ㅇ,아, 네. "
거의 4년만에 맡는 리저버이고, 이번이 두번째라 그녀가 떨리는건 당연했다.
리저버는 보통 납치된 일반인들이나 인터폴 중에서 무작위를 가장한 관리자의 직감으로 선정되는데, 이들은 복잡한 연구와 검사 끝에 두 갈래의 다른 길을 걷게 된다.
하나는 Lab.a.
말 그대로 실험 조교다. 간단한 임상실험의 피실험자가 되어주고, 랩에서의 각종 잔심부름을 하는. 일종의 시다바리다.
또 다른 하나는 E.M.
실험 대상이다. 여기서 말하는 실험은 좀 전에 말한 임상실험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실험이다. 결론만 말하자면, E.M이 된다면 살아남을 수 있는 가능성은 ,
거의 제로에 가깝다.
그녀는 앞이 캄캄해짐을 느꼈다.
앞으로 다가올 일은 감히 상상 할수도 없었고, 상상되지도 않았다.
am 9:00
" 가시죠, 회진. "
" 아, 네. "
" 박사님 안녕하세요! "
" 어, 종대씨! 여긴... 아, 민석씨 보러 오셨구나. "
" 크흐흐, 네. "
김종대, 올해 30세.
개구진 얼굴과는 다르게, 주업무는 납치와 인질극.
" 그럼 그냥 회진 저 혼자 갈게요. 얘기 좀 더 하세요- "
" 아닙니다, 저도 같이.. "
" 에이, 진짜 괜찮다니까요. 여기 계세요. "
" 야, 김종대. 꺼져. "
" 너무했어어!!! "
" 그러지 말구요 민석씨- 어차피 타오군 하나만 하면 되는데, 저만 갔다올게요. "
" 그래애, 나 심심하다고- "
" ... "
결국 연구실에 붙잡힌 민석이었다.
am 9:03
엘리베이터가 7층에서 멈춰섰다.
5층부터 12층까지는 조직원들의 주거공간이다.
타오는 703호에 거주중이었다.
703호로 향하는 그녀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똑똑,
" 타오군, 저 들어갈게요- "
" ....바싸님, "
해맑은 미소로 그녀를 맞이하는 타오. 올해 22세.
어렸을 때 고아원에서 조직으로 들어와 킬러로 길러짐.
" 타오군 어제 다친데 보러 왔어요. 좀 어때요? "
" 총알이 바킨게 아니라 스쳐서 갠찮아요. 근데 좀 아파요.. "
" 많이 아플거예요, 당분간은. 총알이 신경을 건드렸거든요 "
" 아아.. 시른데 타오 아픈거. "
" 내가 최대한, 안아프게 해줄게요. 일단 드레싱 먼저 할까요? "
상처부위를 확인하기 위해 타오의 오른팔에 감긴 붕대를 풀어내는 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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