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병실속에는 시끄럽게 삐삐대는 기계소리만이 가득했다. 환자명, 내 이름… 김성규.
눈커풀을 들어올릴 힘조차 없어서, 숨을 들이쉬는 것 조차 힘들어서, 점점 무서워졌다. 끝을, 알 것만 같아서
시한부 인생이란걸 받고나서 처음 한달, 미친듯이 부정했다. 울고 불고 원망가득한 욕만 내뱉었더라
그리고 둘째달, 인간이란게 참 무서운게 상황에 적응하고 체념하게 되었다. 죽는거? 그 쯤은 두렵지 않았었다. 다만 내 옆의 남우현이….
세달째로 막 접어들때는 우현이와의 다툼이 잦아졌다. 남은 날은 길어봤자 일년인데, 말할 시기가 다가 온 듯했다. 아니, 이미 한참 지났을지도 몰랐었다.
마침내 모든걸 말하고나니 홀가분해진 나 자신과는 다르게 우현이의 표정은 한없이 구겨졌다. 우현이는 웃을땐 이쁘지만 화나면 무서웠다. 예나 지금이나
"성규형, 아니야 안돼…"
"우, …ㅎ……"
"그래…나 우현이잖아, 그러니까 김성규 정신 좀 차려 제발… 응?"
"…"
"절대 못보내. 김성규 안죽어, 왜 죽어! 눈 떠! 나 봐야지…"
"……미…안,"
이젠 목소리마저 안나온다. 안돼는데 우현이는 내 목소리를 참 좋아했는데. 또 잘생긴 얼굴 구겨지네
쩍쩍 갈라지다 못해 저절로 삼켜지는 목소리덕에 개떡같이 입만 미약하게 뻐끔거려도 남우현은 찰떡같이 알아들었는지 이를 부득 간다.
산소를 공급한다며 씌어진 마스크따위 제 역할을 잃은지 오래였다. 도움따위 하나도 안돼, 우현이랑 말하고 싶어
우현아, 남우현. 어떻게 된 애가 이름도 먹먹하냐. 할말은 되게 많은데 이름만 불러도 눈물이 나.
"울지마, 성규형. 마지막인 것처럼 그러지마, 제발… 부탁이야, 내가 미안해…"
남우현은 진짜 바보다. 지가 왜 미안해, 그래도 주삿바늘 가득한 내 팔, 안 미워해서 다행이다.
음, 우현이랑 내년에 벚꽃보러 가기로 했는데. 그치? 아직 제대로 된 여행한번 가본적없어서 아쉽네.
우리 고모네 집에 계곡도 가기로 했었고, 겨울엔 너네 사촌형네 집가서 눈사람도 만들기로 했는데…
"안돼, 안돼… 안돼! 김성규!! 정신차려, 눈 떠. 장난 그만 쳐 진짜……"
운다, 우현이가
남우현 우는 거 처음 본다, 울어도 잘생겼네.
미안해, 남우현. 내가 다 미안. 내가 하필 김성규라서, …감히 내가 널 좋아해서 미안해.
추억들, 약속들, 너에게 다 짐으로 떠넘기고 나 먼저 가서 미안해.
이쁜 사람 많이 만나다 와, 나 까먹진 말고. 넌 잘생겨서 할아버지라도 알아볼거야 내가.
아! 죽고나서는 우현이가 좋아했던 내 모습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작게 선을 그려대던 기계가 일정한 소리를 내뱉으며 직선을 그었다.
그나마 파르르 떨리던 속눈썹마저도 이젠 움직임이 없었다.
기계음과 함께 우현의 울음소리가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