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경수 사장님
09
부제: 같이 맞는 좋은 아침입니다.
"라떼."
도경수와 멀어진지 정확히 닷새째, 며칠 째 마시고있는 술로 온전치 못한 속과 정신 때문에 눈을 감고 빙빙 도는 세상에 끙끙 앓는 소리만 뱉고있었다. 그래, 금요일이니까 참자.
아침에도 게워내고 온 속을 손으로 비비며 눈을 감고있다가, 라떼, 하는 목소리에 눈을 떴다. "두잔. 일시불." 도경수가 지갑에 시선을 고정한 채 주문을 하고있었다.
얼마만에 보는 얼굴인지, 말을 걸까 싶다가도 칼같이 카드만 내밀고 고개를 돌려버리는 도경수 모습에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려니, 부가 설명도 없이 그냥 도경수 카드를 받아들고 결제를 끝내 다시 돌려줬다. 라떼 두잔, 내놓자마자 쌩하니 가져가버리는 도경수의 뒷모습을 빤히 쳐다봤다.
"라떼 좋아해요?"
"네, 저 웬만한건 좋아해요."
"다행이네. 마셔요."
맨날 앉던 자리에 가서 앉나 싶었더니, 웬 이쁘장하게 생긴 여자가 앉아있는 테이블로 가 앉아서 들고있던 라떼 중 한 잔을 그 여자에게 내민다.
다나까 말투밖에 모르는 줄 알았더니, 듣기에도 어색한 요체를 쓰며 오랜만에 보는 다정한 표정을 짓는다. 코를 한번 훌쩍이고 애써 고개를 돌렸다.
딱봐도 비싼 브랜드 백에, 배우같은 차림, 얼굴도 만만치않게 이쁜 그 여자는 가히 도경수의 애인이라고 내일 당장 기사가 나도 괜찮을 법했다, 누구와는 다르게 말이다.
왠지 먹먹하고 답답한 가슴을 "언니, 나 물 한 잔만." 얼음이 잔뜩 담긴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마시며 쿵쿵 두드렸다.
"빨대 좀 다시 주세요."
"예,예.. 여기요."
그러다가 마주친 도경수의 눈을 급하게 피했다. 빨대를 다시 달라는 손님에게 빨대를 서비스로 한 백개는 주고 싶었다. 여전히 느껴지는 시선에 앉을 수가 있어야지.
뻘쭘하게 앉아있다가 도경수랑 또 눈이 마주칠까 뭐라도 해야는 겠는데 할 건 없고, 하는 수 없이 김종인 때문에 꺼놨던 핸드폰을 다시 켰다. "후-"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켜진 핸드폰은 까똑 까똑 까똑 까ㄸ....까....까...ㄲ...ㄲㄲ... 기다렸다는 듯이 울리기 시작했다.
[야] [찾아가?] [어? 읽었네?] [깔끔하게 전화로 할까?] [친구야] [내가 월급 받아먹는 친구 돈 그렇게 쪼아먹으라고 가르쳤니?] [이 오빠 굉장히 비루해.]
읽자마자 더 빠른 속도로 타자를 쳐대는 김종인은 정말 저 말대로 비루해보였다.
- 야 죽을래?
"미안해-. 얼마 나왔어?"
- 육만 이천오백원.
"오늘 쏠게."
- ....또 먹냐
"응, 당연한 소릴 해. 나 알바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데리러 와. 알겠지.
- 야, 나 지금 속 쓰려 죽겠...
"이따봐, 종인아."
픽 웃으며 건 전화는 신호음이 두번을 채우기도 전에, 야 죽을래?, 여보세요도 가볍게 생략한 김종인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들렸다.
어제 같이 한 잔 하던 내가 무작정 들이붓다가 정신을 못차리는 바람에 결국 김종인이 모든 술 값을 지불했는데, 아주 오늘 아침부터 돈 달라고 지랄지랄 개지랄이다.
하는 수 없이 큰 맘 먹고 오늘 마실 술은 내가 내기로 마음 먹었다. 오늘 쏠게, 당찬 내 선포에 김종인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또 먹냐며 시들시들해졌다. 당연한거 아냐?
오늘이 바로 핫한 불금인데, 애인도 없는 주제에 누나가 술 사준다면 빠딱빠딱 나와서 마셔야지! 속 쓰리다는 종인이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 이따봐 종인아, 전화를 끊었다.
화면의 통화 종료 버튼을 단호하게 여러번 두들기며 전화를 끊고 고개를 들면 "....." 또 도경수와 눈이 마주치는게 아닌가. 아씨, 왜 자꾸 쳐다보고 지랄이야.
매일 풀어놨던 머리를 바짝, 질끈 묶으며 대한민국 돈 없는 알바생의 면모를 보여줬다. 한번만 더 그딴식으로 쳐다봐, 어디. 지지않고 도경수를 노려봤다.
그러면 도경수는 날 쳐다보며 소리 없이 입 모양으로 ' 일 해 요 ' 언제 나와 연을 끊었냐는 듯이 나른한 표정을 지었다. 나참, 일을 하든 말든!
"허!!" 어이가 없어 콧물이 튀어나올 정도의 콧김을 뿜어내며 일어나 등을 돌렸다. 씨발, 이게 뭐야. 왜저래?
도경수 사장님
현재 시각 오후 8시 46분, 카페에 남아있는건 알바생인 나와 전처럼 느긋하게 책을 읽고있는 도경수 단 둘이다. 같이 있던 여자는 한 6시 쯤 나갔나? 혼자 앉아있기가 한참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불상 마냥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마감 들어가야 되는데, 저 새끼 저거 또 뻔뻔하게 앉아있는게 분명 말 시켜달라는 표현임이 분명했다.
마감 시간이 9시인건 알고있으니, 일단은 기다려야지, 알아서 나가겠거니. 김종인이라도 빨리 오기를 바라면서 걸치고 있던 알바복을 벗었다.
침 넘어가는 소리도 들릴 만큼 조용한 카페에서, 도경수의 책장 넘어가는 소리만 간간히 들리는 이 곳에서, 슬리퍼를 질질 끌며 커튼을 하나씩 쳐댔다.
"으,아..." 마지막으로 남겨둔 도경수 테이블 쪽의 커튼을 치려는데 비켜줄 생각은 커녕, 날 신경도 안쓰고 앉아있는 이 새끼 때문에 이상한 소리를 흘렸다.
하마터면 도경수 쪽으로 엎어질 뻔한 상황에 안도의 한숨을 쉬며 카운터로 돌아가려는데, 탁- 하고 잡힌 손목에 발걸음이 멈춰졌다.
"비켜달라고, 왜 안합니까."
"......"
"왜, 나가라는 말 안합니까."
"....."
비켜달라는 말을 왜 안하냐며, 나가라는 말을 왜 안하냐며 나를 올려다보는 도경수의 표정은 평소와 같이 다정하고 예뻤다.
"별 방법을 다 써도 소용이 없네, 이 여잔."
"....."
"못 당해내."
"......"
내 팔목을 잡고있던 손에 힘을 조금 풀어, 조금 밑 쪽으로 내려온 도경수의 손은 이내 내 손을 잡았다. 못 당해내, 하며 벌떡 일어난 도경수는 이번엔 내 머리를 풀렀다.
"뭐,뭐하시는거예요!!" 머리칼을 얼른 두 손으로 고정하며 도경수에게 인상을 찌푸렸다. 난데없이 머리를 왜 풀어버려?!
머리끈을 달라고 해도 고개를 절레절레 좌우로 저으며 미소짓는 도경수 때문에 참다참다 팔이 아파서 하는 수 없이 잡고있던 머리칼을 풀어버리고 손으로 대충 정리했다.
"안묶을테니까, 머리끈 줘요." 당돌한 꼬마애처럼 앙칼진 내 목소리에 이상한 소리를 내며 웃음이 터진 도경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빨리,"
"뭐가 그렇게 급합니까."
"친구 오기로 했어요, 여기로 곧 올...."
"ΟΟΟ?"
"......"
도경수는 달라고 요구하면서도 그 와중에 공손하게 내민 내 두 손에 머리끈을 올려주며 뭐가 그렇게 급하냐고 나를 내려다봤다.
그제서야 떠오른 종인이 생각에 도경수에게 친구가 올거라고 말하며 머리끈을 주머니에 넣으려는데 마침, ΟΟΟ? 하는 낮은 목소리, 난 안봐도 김종인이겠거니 "어." 대답했다.
누구? 라는 듯한 표정을 짓고있는 도경수는 나와 종인이를 번갈아보며 쳐다봤다. 저렇게 까만 아이 처음보죠? 껄껄. 종인이에게 내 가방을 넘겨주고 도경수 앞에 섰다.
"네네~" 하며 내 가방을 들고 카페 밖으로 나간 종인이를 확인하자마자 도경수는 날 내려다보며 "누구?" 눈을 동그랗게 떴다.
"친구요."
"......"
"안나가세요? 저 퇴근해야 되는... 아,"
"....데리러 올 남자 없다 그랬던 것 같은데,"
"......"
"......"
"....데리러 온 게 아니라 같이 밥 먹으려고... 쟨 진짜 그냥 친군데..."
"....갑시다."
친구라는 내 말에는 아무 말도 없더니, 안나가냐고 앞장 서서 나가려는 내 팔목을 다시 한번 잡고는 데리러 올 남자 없다하지 않았었냐며 따져 물었다.
저,저놈이 데,데리러 오고 싶어서 온게 아니고 내,내가 부른건데여...ㅎ... 전 술 친구도 몇 없는 찐따라... 종인이 없으면 안돼여..ㅎ 쫄보같이 쭈그러들어 입을 열었다.
진짜 친구라며 설명을 하면서도, 내가 왜 이런 해명을 해야하는건가 싶었다. 어쨌든 도경수는 내 말을 듣자마자 한숨을 푹 쉬며, 갑시다, 앞장 서서 카페 밖으로 나갔다.
"들어가세요."
"네."
"......"
".....일찍 들어가요, 이따 전화 합니다."
"....예....그러세요...."
비서인지 뭔지 하는 사람이 가져다 놓은 차에 올라타는 도경수에게 인사를 건넸다, 여전히 표정이 꿍한게 찍소리도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는데
그러는 내 옆의 종인이를 의식하며 노려보던 도경수는 이내 내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일찍 들어가요 이따 전화합니다, 하며 쾅하니 차 문을 닫아버렸다.
"나 쟤한테 뭐 잘못한거 있냐."
도경수 사장님
"야, 그만 마셔."
"웅"
"아, 야."
도경수와의 관계를 자꾸만 의심하는 종인의 짓궂은 장난에 강한 부정을 취하며 술만 들이키던 ΟΟΟ은 꼴랑 소주 반 병 먹고 엎어진지 오래였다.
술도 못하는게 왜 자꾸 술을 쳐먹겠다고 요새 자꾸 부르는건지, 한숨을 한번 쉰 종인은 본인 지갑에서 현금을 꺼내들고 일어나 계산을 하고 다시 앉았다.
그리곤 엎드려서 상과 딥키스를 나누고 있는 ΟΟ의 옆에 놓여있는 그녀의 핸드폰을 들어 전원을 켰다.
아까부터 30분마다 한 통씩 날아오는 도경수의 문자로 ΟΟΟ은 핸드폰을 꺼둔지 오래였다. 처음에는 일일이 답장하더니 어느순간 배터리를 쿨하게 분리하는게 아닌가.
"이름이 뭐랬더라" 하고 중얼거린 종인의 혼잣말은 굳이 필요없을 법 했다.
[어딥니까] [아직도 아까 그 사람이랑 같이 있습니까] [지금이 몇시죠] [ΟΟΟ씨] [밥을 몇시간동안 먹습니까] [ΟΟΟ씨, 나 전화합니까?]
처음에는 30분 간격, 후에는 10분 간격, 지금은 5분 간격으로 문자를 보내고 있는 이 남정네가 아까 그 사람임을 확신했다.
글만 봐도 연애숙맥 티가 좔좔 흐르는 문자에 웃음을 터뜨린 종인은 이내 답장 버튼을 눌러 타자를 치기 시작했다.
[ 도경수씨? ]
[ 누굽니까 ]
[ 상근 3동 동사무소 앞 오돈겹살 ]
그리고는 흡족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내려놓은 종인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음식점에서 빠져나왔다.
도경수 사장님
[상근 3동 동사무소 앞 오돈겹살] 문자를 확인 하자마자 바로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이름은 몰라도, 눈치 하난 빠르고 적응력 좋네. 입가에 웃음끼가 서렸다.
최대한 밟으며 도착한 오돈겹살, 시끌벅적한데 혼자 동 떨어져 상에 엎어져있는 여자, 안봐도 ΟΟΟ이구나 싶어 얼른 달려가 일으켜 세웠다.
"......" 눈을 꼭 감고 일어날 생각이 없어보이는 ΟΟΟ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누가 업어가도 모른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건데, 그 누가 내가 아니었음 어쩔 뻔 헀어.
"ΟΟΟ씨."
"....."
"ΟΟΟ씨, 일어나봐요."
".....아웅..."
차에 겨우 태우고 집이 어디냐고 물으려해도 도저히 입을 열 생각을 안한다. 하-. 뻐끔뻐끔 입술은 자꾸 움직이는게, 열 듯 하면서 꾹 다무는게 여간 미치는게 아니었다.
갑자기 더워지는 기분에 라디오를 최대한 작게 틀면 마침 자정에 맞춰 들리는 애국가가 울려퍼졌다. 와 미친, 타이밍 좋네.
창문을 열고 먼 산을 바라보며 애국가를 4절까지 조용히 읊었다. 여전히 깰 생각이 없어보이는 ΟΟΟ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식은땀만 닦았다.
우리 집으로 데려가면 분명히 내일 아침에 고래고래 소리 지르면서 튀어나가겠지. 혹시 몰라, 날 향해 자명종 같은걸 던질지도. 끔찍한 상상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
"....."
그리고는 한참동안 가만히 그녀를 지켜봤다. 아무 생각없이 그저 보기만. 별다른 후끈함도 없이 마냥 구경했다, 마냥. 여자한텐 처음 해보는 말이지만, 참 사랑스럽다.
입고있던 자켓도 벗어서 위에 덮어주고 조수석 시트도 평평하게 살금살금 내려주니, 그럴 듯하게 잘 만한 모양새는 되는 듯 했다.
나도 눈 좀 붙이려고 차시트를 내리고 눕는데, 아, 숨소리를 색색 내는게 거슬린다고 해야하나, 도저히 정신 집중이 안된다. 와, 진짜 미친다. 잠에 들 수가 있어야지.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내가 나도 우스워 웃음이 터졌다. 여자 하나가 사람 미치게 하네 진짜. 차에서 나와 담배 몇개 피우고, 핸드폰 만지고. 결국 밤을 꼬박 새웠다.
새벽 내내 한번도 안깨고 잘 자는 그녀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니 졸음도 없이 꽤 빨리 지나간 듯 했다. 이제 이따 오후 업무 보면서 쏟아질 졸음이 걱정 되기는 하지만.
슬슬 불편한지 몸도 뒤척이고 끙끙 앓는 소리를 내는걸 보니 곧 일어나겠다 싶어서 백미러로 대충 머리를 정리했다. 피부도 푸석푸석하고, 옷도 똑같은데. 하.
차에 항상 두고 다니는 립밤을 꺼내 대충 슥 바르고 뽁뽁 하며 야무지게 바르고 있으면 "움...." 하며 그녀가 일어날 듯 뒤척였다.
뭐지, 왜 긴장되지. 움직이던 모든 행동을 멈추고 "아우, 속이야...씨..." 역시 예사스럽지 않은 말과 함께 상체를 일으키는 그녀를 쳐다봤다.
눈을 감은건지 뜬건지, 여기가 어딘가 싶어 고개를 두리번 거리는 모습이 귀여워 웃음이 났다. 상황 파악이 안되는지 무작정 몸부터 가리는 그녀를 톡- 건드렸다.
"좋은 아침 입니다."
"......"
"같이 맞는 아침, 컨디션 좋네요."
......
이,일단 사과부터... 드릴까여.....ㅎ?
제가 너무 늦게온 것 같아요...
사실 제 임시 저장 함에는 7일 전부터 많은 글들이 쓰여있는데
도저히 줄거리 전개에 감이 안와서, 엄청 밍기적거리다가 결국 오늘....
오늘 글도 썩 마음에 들지 않지만 더는 미룰 수 없어서ㅠㅠ
죄송해요
이제는 늦을 일 없으니, 후딱 또 오겠습니다 !
날 가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