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뻐근해.." 밤새 일을 마치고 피곤한 몸을 의자에서 일으켰다. 서랍 속에 있던 차키를 손에 쥐고 불을 끄기전 한 번 더 나갈 준비가 끝났는지 사무실 안을 살폈다. 그리곤 불을 끄자 온 복도가 어둠으로 가득했다. 으시시한 기분을 없애려 휴대폰을 꺼내 후래쉬를 켰고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갔다. 엘레베이터 불빛을 확인하고 곧 올라오는 엘레베이터를 타고 내려갔고 아침부터 부슬거리며 내리던 비는 아직까지 자신을 잊지말라며 내 발끝을 적신다. 우산의 빗방울을 몇 번 털어내고 차 안으로 들어와 의자에 기대 눈을 잠시 감았다. 이 무한정한 검은색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 그건 오로지 나만이 알 수 있는 숙제겠지. 허탈한 잡 생각을 마치고 마른세수 몇 번에 정신을 깨우며 눈을 떴다. 손에 쥐고 있던 차키를 꽂고 시동을 걸었다. 피곤에 찌든 눈이 뻑뻑함을 가득 안고 운전을 방해했다. 뿌옇게 서리는 김 또한 시야를 답답하게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에어컨을 켜야만 했다. "후.. 샤워도 못하고 집에 들어가자마자 기절이겠는데.." 나는 도시에서 가까운 시골에 집이 있다. 한적하고 초라한 집들이 즐비한 이 곳에 어느 순간부터 하나 둘 돈 좀 쥔 사람들이 땅을 사들였고 자신의 부를 과시하며 으리으리한 집들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집 또한 그런 집들 중 하나였다. 끼익- "뭐..뭐야... 제발..." 이게 꿈이길 바라면서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내 눈 앞엔 한 생물체가 앉아서 내 사이드 조명에 비춰지고 있었다. "내..내가 친건가..?" 온 몸이 떨려왔다. 깊은 새벽 풀벌레 소리만이 가득한 이곳에 목격할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었다. 도망가야하나 저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가야하나 한참을 고민했다. 그 동안에도 꼼짝도 않고 내 차 앞에 누워 내리는 비를 온몸으로 맞고 있었다. "일단.. 나.. 나가봐야겠지..." 떨리는 손으로 차 문고리를 열었다. 우산을 쓰는 그 기본적인 행위조차 잊은채 앞으로 걸어나갔다. 점점 가까워지는 그 아이. 나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이 아이의 생사가 궁금했다. 숨을 죽이며 다가가 그 아이의 어깨를 잡아당겼다. "으악!! 왜... 왜.. 나.. 안쳤는데.. 왜.." 너무 놀라 그만 뒤로 주저앉아 버렸고 그 아이는 빗물 속에 숨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교복으로 보이는 하얀 블라우스에는 핏물이 묻어있었고 그 아이가 누워있는 자리엔 빗물에 씻겨나간 핏물이 흥건했다. 난 더이상 무엇을 판단 할 수가 없었다. "저..저기.." 내가 말을 꺼내자 아이는 힘에겨운듯 몸을 일으켰고 자기 다리 사이에 고개를 쳐박고는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그런 그 아이를 그냥 지나칠 수도 지갑에서 돈을 꺼내 쥐어주고 그 자리를 떠날 수도 없었다. 길을 가다 다친 동물을 보아도 그냥 지나치진 않듯 이 아이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괜...찮아.." 난 그 아이의 머리를 끌어당겨 내 가슴에 안았고 어깨를 내 두팔로 감쌌다. 토닥임이나 등을 쓸어내림도 없이 그냥 그렇게 꼭 안았다. 사이드 조명은 우리 둘만을 비추고 있었고 비는 그칠 생각이 없는 듯 우리 둘의 위로 쏟아졌다. 더이상은 이 곳에서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무엇이든 해야했고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우리 집에.. 갈래..?" 그러자 그 아이가 품 속에서 빠져나와 나를 올려다 봤다. 다시금 시선을 바닥으로 떨어뜨리더니 미새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 아이를 바닥에서 일으켜 내 차로 데려가 운전석 옆에 앉혔고 얼마 남지 않은 내 집으로 향했다. 차에서 내려 필요 없어진 우산을 썼고 그 아이와 함께 집 안으로 들어왔다. "여기 잠시만 있어 수건 가지고 올게.." 끄덕- 욕실에서 수건을 가져와 그 아이에게 다가갔고 물기를 닦아주려하자 뒤로 한 걸음 물러나는 아이였다. 머쓱해진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척 하며 그 아이의 손에 수건을 쥐어주고는 내 몸에 있는 물기를 닦았다. "음.. 옷 벗고 이걸로 입어 일단." 내가 주는 옷을 멀뚱히 바라보고만 있더니 우물쭈물 어찌할바를 몰라보인다. "뭐해?" "그..그냥 여기서.. 갈아입어요..?" "그럼? 사내끼리 뭘. 그냥 입어." "...." 그 아이가 옷을 벗자 드러나는 상처들이 한 두번 맞은 것들이 아니었다. 얼굴의 상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곳저곳 제대로 치료해주지 않아 덧나고 흉이 져있었다. "잠깐.. 그대로 이리와 앉아볼래?" "네..?" "피가 아직도 나잖아. 약 좀 바르자. 안돼겠다." "괜찮은데.." "내가 안 괜찮아. 너 내 옷에 피 묻힐꺼야?" "아..아니요.. 그런건 아닌데.." "그럼 앉아 얼른." "네.." 쇼파에 앉아 있는 그 아이의 옆에 약상자를 가지고 앉았다. 가까이 다가가자 보이는 상처들에 경악을 했다. 도대체 무슨일을 당했길래. 이 어린아이가 이토록 맞을 일이있었던건지.. "이름이 뭐야?" "....백현이요. 변백현." "오, 이름 이쁘네. 잘어울린다." "아.. 아야.." "아파? 사내새끼가. 좀만 참아. 붕대만 두르고 얼굴에 연고만 바르면 될것 같아." "네.. 감사합니다.." "근데... 아, 아니야. 자, 다 됐다. 뭐 좀 마실래?" "아...아니요. 저기.. 너무 죄송한데요... 저 여기서 살게 해주시면.. 안되요..?" "뭐? 내가 비록 너를 칠뻔했기 때문에 여길 데려왔지만 내가 그렇게까지 너에게 호의를 베풀어야 할 이유를 모르겠는데?" "아.. 아니에요.. 잘못했어요.. 그럼.. 오늘만이라도.." "오늘은 여기서 쉬어. 대신 내일 내가 이 집을 나갈 때 너도 나가. 알겠어?" "네.. 감사합니다.." 안그래도 쳐진 눈이 겁에 질려있었다. 내가 너무 했나싶었지만 난 자원봉사자도 아니었고 이곳에 신원도 모르는 아이를 들이기도 싫었다. 한 번은 호의지만 계속되는 권리를 줄 이유도 없었기에. "여기서 쉬어. 내 말 명심해. 내일은 나가 줬으면 해." "네.." "그럼 잘 자." "..." 긴장이 풀렸던지 몸에 힘이 없었다. 방으로 걸어가는 길이 울퉁불퉁 튀어나오고 양 옆의 벽이 나를 향해 좁혀왔다. 토할 것 같은 기분. 이 더러운 기분이 싫었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헛기침을 해댔고 방으로 기어가 약을 꺼내들었다. 물도 없이 허겁지겁 약을 삼켰고 그대로 난 깊은 잠에 들었다. 차가운 느낌에 미간을 좁히며 눈을 떴다. 그때 보이는 한 아이가 깜짝 놀라며 깼냐고 물었다. 누구지.. 이 아이는..? "누구야?! 넌 누군데 여기에 있어?" "아.. 아저씨가 어제.." "내가? 하.. 무슨 동정에 또 이런애를 데리고 온거야.." "기억.. 안 나세요..?" "미안. 난 기억이 안나. 그러니 그만 우리 집에서 나가 줄래?" "아.. 죄송해요.. 저기.. 죽은 여기이 놓고 갈게요. 드세요.. 감사했습니다.. 안녕히계세요." 지긋지긋한 단기기억 상실증. 또 뭔진 몰라도 일을 친 것 같은 찜찜함이였다. 저 아이가 뭘 잘못한 것도 아닌데 너무 다그친 것 같아 다급하게 1층으로 내려갔지만 이미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굳이 내가 그 아이를 붙잡아야 할 이유도 붙잡았어도 할 이야기도 없었기에 지친 몸을 눕히려 등을 돌렸다. 그때 가는 팔이 나를 끌어 안았고 난 얼어버렸다. 너무 차갑고 내가 잃어버린지 오래인 순박한 마음이 담겨있었다. 등엔 녹아버린 얼음이 물이 되어 내 등을 축축하게 적셨고 내 마음까지 파고들어 물 속에 빠뜨렸다. 이 아이의 떨림이 나에게까지 전해졌고 난 넌지시 물었다. "뭐...뭐야...." "아저씨 나 좀 여기서 살게 해주세요.. 제발..." 난 돌려버린 등을 다시 돌려 그 아이를 바라봤고 그 아이의 눈물은 마치 이른 새벽 맺혀있는 이슬 같았다. 나도 모르게 그 아이를 끌어 안 았고 눈을 감고 그 아이를 느꼈다. 그 어릴적 나를 보는 것 같아서.. 뭐라도 잡고 싶던 처절했던 나를 보는 것 같아서.. "이름.. 이름이.. 뭐야?" "백현이요.. 변백현.." "혹시 내가 내일 또다시 너를 기억하지 못하면.. 백현이라고 다시 알려줄래..?" 끄덕- 난 너의 볼을 붙잡았고 어느새 우린 같이 숨을 쉬고 있었다. 짧은 입맞춤 그것이 우리의 앞날의 시작이었다.
어떻게 끝내야 할지 모르겠어서 진부하게 끝나버렸네요. 늦은밤 뒤척이다 적어봅니다. 아까운 시간이 아니었길 바랍니다. 읽어주신분이 계시다면 감사합니다. 좋지 않은 필력이지만 더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