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때, 준영씨의 소식 들었을 때 로이킴씨는 어땠나요? "
상우가 당황스러움에 동그래진 눈으로 저와 마주보고 앉아있던 사회자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사회자는 이미 말끔하게 정리되어진 큐카드를 정리하는 척 하며 상우의 시선을 피한지 오래였다. 사회자의 무릎으로 아프지 않게 내려쳐지는 큐카드를 가만히 바라보던 상우는 이번엔 방청객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방청객들은 마치 모두 같은 가면이라도 쓴 듯 다들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치 선물을 뜯어보기 전의 표정들. 상우가 저들이 예상하고 있던 대답을 해줬으면 한다는, 아니 그럴거라는 확신과 기대에 가득찬 표정들. 그 표정들에 질려버린 상우는 이미 흙빛이 된 표정에 억지로 미소를 그려넣으며 작가를 찾았다. 작가는 가면을 쓴 수많은 사람들의 앞에 삐죽 튀어나와 앉아서는 스케치북에 무언가를 쓰고있었다.
사과를 하려는 건가? 대본 수정을 하지 못해서 잘못 넣어진 질문이라고 사정을 설명해주려는 것인가? 스케치북에 그어지는 희미한 검은 선들을 바라보는 상우의 입술이 바짝 말랐다. 그리고 작가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스케치북을 들어올린순간, 상우는 입구멍을 긁어대는 욕짓거리를 그대로 뱉어낼 수 밖에 없었다.
[ 대답하면서 계속 이어갈게요. ]
어렸을 적 부터, 저의 속을 행동이나 표정으로 드러내는 법이 없었던 상우는 저의 속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들어낸 적이 손에 꼽혔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손가락이 하나 더 굽혀지고 있었고. 하지만 이 이상으로 저를 드러내는것은 스스로 저의 무덤을 파는 것과 마찬가지라는걸 알았기에 상우는 그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억지로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양 손으로 저의 허벅지를 문질렀다. 아, 준영씨요?
" 아, 네.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 동료로써 엄청 돈독한 사이셨는데, 그 소식을 들었을 당시에 어떤 기분이셨나요? "
" 어떤 기분이랄게 있나요. "
아무런 사이도 아닌데요, 뭐. 상우는 이 상황에서 뱉어봤자 저에게 득 될 것 하나 없는 무미건조한 한마디의 말을 꿀꺽 삼킨 상우는 저의 쪽으로 몸을 돌린 사회자를 바라보았다. 조금은 감정이 실린 눈으로 저를 쳐다보는 상우의 눈빛에 당황한 것은 사회자였다. 사회자는 당황스러운 제 표정을 감추지도 못한채 애써 상우의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상우가 할 생각도 없는 그 뒷이야기를 들으려 슬금슬금 상우의 눈치를 보았다.
사회자 또한 상우에 대해 돌아다니는 증권가의 어두운 소문을 알고 있던것이었다. 아니. 사회자뿐만이 아니라 아마 이 녹화장을 꽉 채운 방청객들도 모두 알 것이었다. 이 질문을 억지로 끼워넣은 작가도 그 소문을 알기에 그런 짓을 했던것이고.
다른 질문을 던질 텀을 주기 위해 가만히 사회자를 바라보던 상우는 여전히 저의 시선을 피하며 대답을 기다리는 사회자의 행동에 피곤한 눈을 꼭 감아버렸다. 상우의 맞은편에 위치한 눈부신 조명때문에 눈을 감아도 눈이 뻐근한것이 마치, 처음 무대에서 조명을 받았을 때 낯설었던 기분이 느껴지는 듯 했다.
사회자들과 지금 이 곳의 방청객들이 궁금해하는 그 당시의 상우는 고작 스물한살의 어린나이였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그 당시, 한창 유행하던 케이블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여함과 동시에 우승을 한 상우는 일약 스타덤에 올랐었다. 그리고 그로인해서 다른 누구에게는 특별할지 모르지만, 상우에게는 그저 평범했던 나날들이 한순간에 뒤엉켰고. 하지만, 그런 얽힌 삶을 살면서도 상우가 그나마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저와 마음이 맞았던 친구이자 형인 준영이 곁에 있었던 덕분이었다. 지금은 비록 얼굴 한 번 마주하지 않는 사이가 되어버렸지만.
공통점이라고는 젊은 나이, 그리고 성별. 더 있다고 해도 다섯 손가락에 꼽힐정도로 준영과 상우의 교집합은 굉장히 적었다. 상우는 피곤할때면 기타를 꺼내들고 조용히 저 혼자 노래를 불러대는 반면에, 준영은 피곤하면 제 자신이 지쳐서 죽겠다는 소리가 나올 때 까지 사람들을 만나 놀고는했다. 그렇게 그 둘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인생관도, 즐겨듣는 노래의 장르도, 소소하게 들어가서는 이상형까지도 극과 극이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물론 그 둘에게도 의외였던 그 조합이 탄생하게 된 것은 기막힌 인연이나 운명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냥 작가들이 붙여놓길래, 방송구조상 같은 조가 되고 짝이 되는 일이 많아서. 어쩌다보니 그 둘은 같이 집을 구해 살며 같은 방송을 하고 같은 노래를 부르며 친해져 있었다. 그들 스스로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복잡한 뒷상황이 어찌되었든 둘은 환상의 콤비라는 허울좋은 이름을 붙이며 나름 성공적인 연예활동을 했었다. 하지만, 그 둘의 시작과 같이 그 둘의 마침도 모든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랐다.
그 둘의 마침표는 조금은 이르다싶은 시기에 찍혀졌다. 마치, 그 둘이 붙을거라고는 예상도 못했었던 그 둘의 시작과도 같이 그 둘이 헤어질거라고는 사람들이 생각도 하지 않고있었을 때에. 게다가 일방적인 준영의 펜놀림으로 그려진 마침표였다. 그렇기에 그 둘의 마지막은 이렇다할 멋드러짐도 없이 끝나버렸다.
상우는 어느정도 조용해진 분위기에 다시 천천히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저의 눈을 사납게 찔러대는 하얀 조명에 상우는 저도 모르게 살짝 인상을 썼다. 그리고 다시 사회자의 쪽을 바라보았다. 사회자는 아까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상우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상우는 한숨을 폭 내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 그냥, 그렇구나 했어요. 준영이형은 워낙에 자유로운 사람이었으니까. 그랬으니까 그런 고백을 했을 때에도 딱히 놀라거나 그러지 않았어요. "
" 멋진 우정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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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언제적 커플인지는 논하지 않기로 해여....ㅋㅋ
이게 얼마나 마이너스러운 커플인지는 더더욱요...ㅎ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냥ㅇ 그래여 준로가 서른살 되어서 얼굴 한 번 보지 않는 원수사이가 되는 걸 보고싶었을뿐.
후편은 백만년뒤에 나오겠져ㅕ...사실 이거 장편인데..아무튼 그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