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보니 익숙한 내 방이 아니란 사실에 조금 놀랐지만 옆에서 자고있는 승현이를 보니 여기가 승현이 방이라는 것 을 알수있었다. 아아 외박이라니…. 집에 들어가면 어떤 꼴이 날지 뻔할 뻔자다.
생각보다 깊게 자고있길래 깨우기 미안해져서 게임이나 하려고 휴대폰을 키니 「또라이」라고 적힌 이름과 찍힌 부재중이 셀수없을정도로 찍혀있길래 놀랐다. 족히 200통은 넘어보인다. 워낙에 타자치는것또한 귀찮아하는 녀석이라 다행히 문자는 안왔길 바랬다. 그런 녀석이 문자까지 보냈다면 정말 화가 머리끝까지나서 열렸다는건데. 두근 두근 두근, 문자함을 열어보니 내 바램과는 다르게 김종인에게 문자가 3통이나 와 있다. -어디인데 전화안받아 -이태민 진짜 미쳤냐? -집에서 보자.
“아 씨발….”
어떡하지. 어떡하지. 감이 안온다.
“화장실은 복도 끝인데.”
나 혼자 궁상맞게 불안해 다리를 떨며 머리를 감싸쥐고 끙끙거리고있는데 갑자기 들리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언제 일어났는지 승현이가 손가락으로 오른쪽을 가리킨다.
“언제 일어났어?”
“방금.”
에라, 모르겠다. 휴대폰 전원을 꺼버리고, 책상위에 던지듯 올려놓았다. 나도 이젠 모르겠다. 최승현 옆으로 냉큼 기어가 앉으니, 승현이는 심심하지 않은지 또 MP3다.
“넌 맨날 그것만 들어?”
“뭐 할게 있나.”
“음….”
학교가 쉬는 날은 좋으면서도 항상 이 모양이다. 뭘 해야할지 어딜 가야할지 갈피를 못잡겠고, 귀찮아서 집에서만 뒹굴거리게 된다. 술이나 마시러 갈까 생각도 했지만 지금이 아침이라는 점에서 생각을 지웠다. 아침에 할만한게……영화. 영화볼까?
“영화보자. 너 무서운거 잘 봐?”
“넌 잘보냐?”
“잘 보는 편이지.”
“……그럼 보든가.”
“나갔다 오자, DVD빌려야지.”
승현이 녀석이 꽤 탐탁치않은 표정을 지었지만 아무것도 안하고 빈둥거리는것보단 백배는 나았다. 가기싫다는 녀석을 억지로 끌고 일어나 대충 옷을 빌려입으니 덩치가 있는 놈이라 그런지 나한테는 헐렁거리고 아빠옷을 입은마냥 크기만 하다. 그래도 타이트한것보다는 편하기는 편해 어쩔수없이 입고 아무 옷이나 보이는데로 최승현에게 건네주니 뭐냐는듯이 본다.
“입어.”
“귀찮게….”
역시나 그냥 티조차도 잘 어울린다. 그러고보니 최승현은 꽤 잘생긴 얼굴이니까? 대충 지갑을 챙기고 여전히 가기싫은 표정을 짓는 녀석을 끌고 나오자 거실에있는 어제 본 그 남자애가 보인다. 아 민호랬었나.
“아, 안녕-”
“안녕하세요. 근데 어디 가요?”
어린놈이 키도 크다. 최승현이랑 최민호 사이에 끼니 무슨 고층 아파트사이에 빌라가 따로없다.
“심심해서 영화보려고 DVD빌리러가.”
“아 그래요?”
“어머니는?”
“아, 잠깐 장보러 나가셨어요.”
“그래-”
그럼 갈께. 최승현을 끌고 신발을 신는데 최승현이 영 싱거운 얼굴로 쳐다보길래 참다못해 왜? 하니 쓸데없게. 한다.
“쓸데없이 저 새끼한테 말은 왜 걸어?”
“그럼 못 본척 하고 지나가냐?”
“그리고 우리 엄마를 니가 왜 찾아.”
“그럼 말도 안하고 니네 집을 왔다갔다 하리?”
“참 도련님이다?”
“칭찬으로 알아들을께.”
푸흐흐- 웃으니 바보같은 놈. 하고 중얼거리는게 다 들린다.
유추프라카치아
영화가 벌써 중반부를 넘어서고 후반부에 들어서자 역시 영화는 후반부터가 제맛. 이라는 말이 있듯이 흥미진진해지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잔인한 장면들이 끊이질않아 비위가 좋은 나도 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그럼에도 어머니가 주신 팝콘을 먹고있는데 순간 손이 닿아서 쳐다보니 영화는 뒷전이고 땀을 뻘뻘 흘리는 최승현이 영화에서 아예 눈을 피한채 팝콘만 먹고있다.
“너 안봐?”
“너나봐.”
그 순간 먹고있던 팝콘을 내려놓을정도로 잔인한 장면이 나왔고, 최승현이 갑자기 아 씨발. 하고 눈을 감는다. 어 이것봐라?
“야 너 못보지 이런거.”
“아니야.”
“에이, 못보면서-”
“아니라니까!”
“맞는데 뭘?”
“잘 보고있,!”
갑자기 어두워서 켜놨던 은은한 빛의 조명등이 꺼지고, 영화도 뭐도 다 꺼졌다. 눈을 크게 뜬 채 딱 봐도 놀란 녀석이 주위를 살피더니 슬금 슬금 오는것이 보며 결국 웃음이 터져버렸다. 푸하하하하-
“야 웃냐? 웃겨?”
눈물까지 매달고 웃는 나를 보며 배가아픈듯 이를 아드득 아드득 갈다가 다시 티비가 켜지고 영화가 끊긴장면부터 이어서 틀어지자 기왕 들킨거. 라는 생각을 했는지 찰싹 달라붙는다.
“씨발 진짜 저딴걸 왜 보는지 모르겠어.”
“그렇게 무서워? 내가 손 잡아줄까?”
“꺼져!”
결국 영화가 끝날때까지 내 곁에서 찰싹 달라붙은 녀석은 결국 방에있으면 자꾸 생각이 났는지 불안한듯 보이다가 내 멱살을 잡고 일으켰다. 순간 놀라서 이 녀석이 설마 그거 하나 보여줬다고 날 치려나?! 했는데 알고보니 일으키려는데 어딜 잡아야할지 난감해서 멱살을 잡았단다. 참 나.
“나가자.”
“아깐 나가기 귀찮아하더니?”
“나가자면 나와.”
“아 예예-”
결국은 끌려가다시피 나왔는데 최승현이 날 데려간 곳은 카페였다. 뭐야 뭔 카페야. 별로 커피를 좋아하지않아 시큰둥하게 레몬티를 시키자 최승현은 아메리카노를 시킨다. 뭐 차가운 도시 남자 이런건가?
“여자도 아니고 그게 뭐냐.”
“레몬티는 여자만 마시라는 법 있어?”
“생각해보면 하는짓이 다 여자같네. 기집애도 아니고.”
“넌 뭐 남자다운줄 아냐? 남자가 공포영화도 못보고.”
“뭐? 그럼 너는 뭐 남자답냐? 아주 태민양이 딱 어울리는데 태민양이라고 불러줄까? 태민양?”
“허, 참 나? 그럼 오빠라고 불러줄까? 어?”
“좋네 오빠.”
“퍽도 좋겠다….”
뒤이어 나온 초코머핀을 먹는데 영 뚫어져라 쳐다본다. 뭐냐?
“태민양은 단거 되게 좋아하네? 아주 독보적인 기집애취향이야. 훌륭해.”
해보자는거지?
“오빠는 너무 멋있네요. 남자가 공포영화 하나 못보고.“
파스타를 들고 온 알바생이 우리를 당황해서 쳐다본다.
“주문하신 크림파스타 나왔습니다.”
“아아, 그건 우리 태민양한테 주세요.”
너 지금 진짜 해보자는거지?! 나는 이를 바드득 갈았다가 이내 포크로 파스타를 수저에 대고 돌돌 말고 최승현에게 갖다댔다.
“오빠 드세요.”
일부러 애교섞인 콧소리까지 내자 알바생이 우리를 당황해서 번갈아보더니 그.그럼 좋은시간 보내세요. 라며 후다닥 뛰어간다.
“너나 먹어 태민양. 오빠는 그딴거 안먹거든.”
한번 해보자 이 새끼야.
**
결국은 계속 말다툼만 하다가 어쩌다보니 최승현이 우리집까지 데려다 주는 꼴이 되어버렸다. 여전히 여자취급을 하며, 위험하니 오빠가 데려다줄께. 비아냥이 다분한 말투였다. 그래서 나도 비아냥거렸다. 오빠는 공포영화도 못보는데 나 데려다주고 가는길에 너무 너무 골목길이 무서워서 오줌 싸는거 아니야? 최승현이 눈을 부라린다.
“나 저기만 돌면 되니까 가. 다 왔어.”
“아, 간다. ”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해주고 모퉁이를 돌자마자 갑자기 누군가가 미는 바람에 어깨가 담에 부딪혔다. 갑작스레 강하게 부딪힌 뼈들이 아픔을 호소한다. 으으.
“씨발년아 니가 미쳤지”
“조,종인아.”
“저 새끼 누군데, 지금까지 저 새끼랑 있었냐? 저 새끼랑 뭐했는데!”
“쟤랑 그냥 친구야.”
“그래서 저 새끼랑 잤냐?”
“그냥 친구라고 했잖아.”
“왜? 너 피섞인 니 동생인 나랑도 섹스하는데 저 새끼라고 못할거있냐? 어?”
“김종인.”
“내가 보기엔 니가 진짜 미친것같거든. 나한테 뒤지고 싶어서 환장한것같은데, 오늘 너 잘 걸렸어.”
진짜 단단히 화났는지 그동안과는 차원이 다른 발길질과 주먹에도 울지 않았다. 그냥 아픔이 느껴지질않았다.
유추프라카치아
“뭐야.”
평소때는 잘도 일찍일찍 오더니 2교시가 끝나서야 온 이태민은 오다가 물벼락이라도 맞은 사람처럼 교복이랑 머리카락이 다 젖어있었다. 그리고, 여기저기 맞은 상처들과 뺨은 얼마나 맞은건지 부어올라있었다. 어제만 해도 괜찮았던 놈이 왜이래? 조금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어 쳐다보는데 바보같은놈이 또 바보같이 웃는다. 뭐가 좋다고.
“너 왜이래.”
“괴물이 화가나서.”
괴물? …아. 그 괴물. 불치병이라더니 온통 맞은 자국 뿐이구만.
“너 맨날 집에가면 이렇게 맞냐?”
혹시 얘도 그건가, 가정폭력. 술먹고 들어와서 폭력휘두루는 아빠 막 이런거? 괜한 걱정에 계속 부어오른 뺨과 터질대로 터진 입술을 보는데 이태민이 괜찮아- 하고 실실 웃는다.
“웃지마, 못생겼어.”
참 나. 하고 앉은 이태민이 벌러덩 책상에 드러눕는다. 으구구구 하는 할머니들이나 내는 소리를 내면서.
“오늘은 올꺼냐?”
“응? 어디?”
“우리 집.”
“왜? 이 누나 없으니까 심심하냐?”
“엄마가 너 한번 데리고 오면 밥 맛있게 해준다네.”
“가고는 싶은데………아, 못가겠다. 다음에 갈께.”
“그러던가.”
괜히 신경쓰여서 계속 쳐다보는데 그게 이태민은 부담스러웠는지 결국 내 눈을 가려버린다.
***
“왜 또 데려다주는거야?”
그야 불안해서. 라고 차마 낯간지러워서 할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아무말없이 따라가니 이태민이 다왔어. 하고 어제처럼 또 같은 곳에서 멈춘다.
“가-”
“그래.”
알겠다고 수긍을 하고 뒤를 돌아 가는 척을 하다가 진짜 그냥 갈까? 싶었다. 별로 이상한것도 없어보이고. 그래서 그냥 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들리는 파열음에 반사적으로 몸을 돌렸고, 주저없이 뛰어가니 이태민이 보인다. 그리고 왠 남자? 남자는 이태민에게 다가갔고. 그대로. 키…스? 키스? 놀라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떠도 둘은 키스를 하고있어다. 남자끼리 키스를. 저게 가능해? 남자랑 남자가 키스하는게 가능한거야? 토할것같아 헛구역질이 나왔다. 더러워. 아 씨발. 이태민의 웃는얼굴이 떠올라 헛구역질이 더 심해졌다. 호모새끼. 더러운새끼. 저딴거랑 내가 무슨! 온갖 욕짓거리를 내뱉고 뒤를 돌아 주저없이 집 방향으로 뛰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