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경수 사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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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사장실에서 있었던 일.
"바닐라 라떼 두 잔, 테이크 아웃이요."
신문을 한 손에 들고 휘적휘적 카페로 들어오는 도경수와 눈이 맞자마자 고개를 돌려 시선을 회피했다. 작게 들리는 도경수 웃음소리, 이러는 날 즐기는 듯 했다.
스크래치가 잔뜩 나는 내 자존심에 얼른 고개를 번뜩 들고 눈을 마주하면, '좋아해요, 많이.' 그저께 라면을 먹으면서 도경수가 했던 말이 오버랩 됐다. 아, 또 후끈해.
'몰랐다면 바보지. 안그럽니까.' 라면 국물을 후르륵 하면서 어찌나 뻔뻔하게 말하던지, 지금 내 앞에서 와있는 모습도, 바닐라 라떼 두잔 테이크 아웃, 너무 뻔뻔해 어이가 없다.
날 좋아하는데 뭐 어쩌라고? 앞으로 좋아하지 않도록 노력할거라고? 사귀자고? 그냥 이렇게 애매하게 지내자고? 뭔 결론이 없어, 결론이. 사귀어줄 것도 아니지만.
"바닐라 라떼 두잔 나왔습니다."
"ΟΟΟ씨."
"빨대는 여기요."
"ΟΟΟ씨 퇴근입니다."
".....예?"
이것저것 분주한 나를 카운터 앞에서 미소를 지으며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던 도경수는 내가 라떼 두잔을 본인에게 건네자마자 ΟΟΟ씨, 내 이름을 불렀다.
못들은 척, 눈도 마주하지 못한 채 빨대만 꽂아주고 다시 구인구직 신문을 펴 제자리에 앉으려는데, ΟΟΟ씨 퇴근입니다, 하는 도경수의 말에 붙이려던 엉덩이를 다시 들었다.
예? 오늘 처음으로 도경수의 눈을 제대로 마주하니 눈을 감고 피식 웃음 소리를 낸 도경수는 내게 라떼 두 잔 중 한 잔을 내밀었다. "마셔요."
일단은 고분고분 도경수가 시키는대로 라떼도 받아들고 한입 쪽 빨았다. 이보게 자네, 나 퇴근하려면 지금부터 4시간이나 남았는데 퇴근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요.
"박명진씨한테 말해놨으니까 얼른 나와요."
"......아, 저기."
"알바비 펑크 날 일도 없어요."
"......"
"나 못믿습니까."
박명진, 그러니까 우리 카페 점장님에게 미리 말을 다 해놨다며 날 닥달하던 도경수는 이내 카운터로 들어와서는 내 짐까지 챙기기 시작했다. 아니 뭐가 이렇게 갑작스러워.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멍하니 서서 도경수의 뒷모습만 쳐다보고 있으니 갑자기 뒤를 돈 그가 나 못믿습니까 하며 내 앞치마 뒤 리본의 한쪽 끈을 잡아당겼다.
묶어놨던 리본이 풀리면서 앞치마가 헐렁해지고, 얼떨결에 일단은 앞치마를 벗으니 때에 맞게 내 짐을 다 챙긴 도경수가 나가자며 발을 뗐다.
"어,어디 가는건지는...."
"오늘 하루 만큼은 내가 하자는대로 해요, 이유를 불문하고."
"네? 제가 왜...."
"이유를, 불문하고."
"....."
내 손을 꼭 쥔 채 카페에서 나와 본인 회사 로비로 들어선 도경수에게 물었다. 어디 가는 건지는 알려주세요, 힘없이 마냥 끌려가던 발에 힘을 주고 가던 길을 멈췄다.
바보같이 도경수 옆에서 총총총 따라 걷고있는 지금이 새삼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 내가 왜 알바를 하다말고 얘네 회사에? 이유도 모른채? 그것도 도경수랑?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하는 도경수에게 잡힌 손을 당겨 그를 멈추게 하곤 어딜 가냐고 묻자, 오늘 하루 만큼은 내가 하자는대로 해요, 도경수가 날 지그시 내려다봤다.
아니 그러니까 왜요. 내가 그래야할 이유를 물으려다가 마침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띵동- 소리와 함께 다시 발을 떼는 도경수의 "이유를 불문하고" 단호함에 입을 다물었다.
도경수 사장님
엘리베이터를 타고 몇층인지도 모르는 조용한 곳에서 내리니 '사장실' 이라는 패가 걸려있는 문이 보이고, 그 통로에 웬 여직원 둘이 프론트마냥 앉아있었다.
그 곳을 휑하니 지나가며 도경수가 "누구 올라오면 호출하라고 해요." 하면 이쁘게 생긴 그 여자 둘은 동시에, 네 알겠습니다. 하고 고개를 꾸벅였다. 대단한 사람 맞긴 맞구나.
엘리베이터 안에서 도경수의 "오늘 나랑 밥 같이 먹어줘요" 부탁 아닌 부탁만 계속 머릿속에 새기며 그를 따라 사장실이라는 곳에 발을 디뎠다. 와, 넓다.
내가 우리 집 거실보다 넓어 보이는 사장실을 감탄하며 둘러보는 동안 도경수는 푹신푹신해 보이는 의자에 앉아서 뭘 바삐 뒤적거리고 있었다.
대충 다 둘러봤다 싶어서 도경수 쪽으로 다가가 뭘 그렇게 열심히 뒤지나 고개를 빼꼼 내밀면 도경수가 상체를 갑자기 빽 들고는 날 쳐다봤다. 왜,왜요.
"나랑 밥 먹어줄겁니까."
"....."
"아 나랑 고작 밥 한번 같이 못먹어줍니까."
"....아,아뇨... 먹을게요. 같이 먹..."
"그럼 입어요."
".....?"
"저기 탕비실가서 갈아입고 와요."
흠칫하며 도경수를 내려다보고 있는 내게 대뜸, 나랑 밥 먹어줄겁니까, 같이 안먹어주면 울거라는 표정으로 물어오는 그에게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너무 귀엽잖아.
그런 나를 본 도경수는 한 쪽 발을 바닥에 쿵 내려찍더니 밥 한번 같이 못먹어주냐며 짜증아닌 짜증을, 투정아닌 투정을 부려댔다. 먹을게요, 먹을게.
솔직히 밥 같이 먹는게 뭐라고. 못먹어줄게 뭐있나 싶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밥 먹겠다며 입을 열자마자 도경수는, 그럼 입어요, 하곤 내게 웬 쇼핑백을 들이밀었다.
이건 또 무슨 쇼핑백이야. 쇼핑백과 도경수를 번갈아보며 쳐다보자 그는 벌떡 일어나서 내 손에 직접 쇼핑백을 쥐어주고 탕비실에서 갈아입으라며 날 살짝 밀었다.
뭔지도 모르고 일단 탕비실에 들어와서 쇼핑백을 그제야 열어보려는데 "싫다고 그냥 나오면 문 안열어줍니다." 바깥에서 들리는 도경수 말에 순간 불안해졌다.
말하는거보니 내가 싫어할 만한 옷이구만. 시발 또 무슨 이백만원짜리 바지 아냐? 쇼핑백의 테이프를 대충 찢어 열어서 속 내용물을 살펴보니 웬걸.
"이게 뭐에요!!!!!"
"얼른 입어봐요."
"문 열어요, 빨리."
"문 안열어준다고 말 했잖습니까. 한번 입어보고 이상하면 벗어요, 그럼."
"...이런거 한번도 안입어봤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한번 입어봐요. ΟΟΟ씨 생각하면서 산건데."
"아, 입을줄도 몰라요, 빨리 문열어요."
"그럼 내가 입혀줘요?"
"....뭐요?"
베이지색 원피스가 눈에 들어오자마자 빽 소리를 질렀다. 이런 내 반응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태연하게 얼른 입어보라는 도경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이럴줄 알았지.
쿵쿵 거리며 걸어가 문을 열려는데 "....." 바깥에서 도경수가 밀고있는지 열릴 생각을 안했다. 문 열라는 내 말에도 꿈쩍 안하는 도경수는 정말 꿈쩍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내 생각하며 샀다는 말에 어쩔 수 없이 다시 한번 원피스를 제대로 꺼내보는데, 길이도 짧고 허리 라인도 엄청 부담스럽고. 저 새끼는 도대체 나의 뭘 생각하면서 골랐다는거야?
원피스라면 유치원 재롱잔치 때 입어본 현란한 무대의상이 마지막이었는데. 이런 원피스를 입어본 역사가 없는 난 어색해서 도저히 입을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이런건 어떻게 입는건지, 머리부터 넣어? 다리 부터 넣어? 등 뒤의 자크는 누가 잠가줘? 입는다 쳐도 입는 법을 모르겠다. 입다 찢어지겠네, 찢어지겄어, 썅.
마음먹고 입으려 두 발짝 문에서 떨어졌다가 또 막막해지는 마음에 얼른 문으로 달려가 입을 줄도 모른다며 문을 쿵쿵 두드렸다.
그러자 문이 살짝, 아주 살-짝. 누구 눈 한짝 보일 만큼 문을 연 도경수는 그 틈으로 본인 입술을 쭉 내밀더니, 내가 입혀줘요? 쳐맞을 소리를 또 했다.
뭐요? 그 얄미운 입술을 두 손가락으로 쳐버리고 문을 쾅 닫아버렸다. 밖에서 들리는 도경수 웃음소리에 열불이 뻗쳐 입고있던 티셔츠를 훽 벗어던졌다. 하, 참.
도경수 사장님
"아, 진짜 미치겠네."
일단 다 입긴 입었는데 어째 길이도 너무 짧고, 바디라인도 너무 여실히 드러나고. 쇼핑백에 같이 들어있던 힐도 너무 높아 좀만 걸으면 다리에 쥐가 날 것 같았다.
거울이 없어 대충 창문에 대고 흐릿하게 보이는 실루엣을 확인하는데 잘 어울리는 것 같지도 않고. "다 입었습니까." 하는 도경수의 재촉에 심장이 점점 더 빠르게 뛰었다.
"문 열어도 됩니까."
"......"
"ΟΟΟ씨."
"ㅠㅠ"
"ΟΟΟ씨 아직.... 아."
내가 구두소리를 또각또각 몇번 내자마자 문에다 대고 다 입었냐며 물어보는 도경수 목소리에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뭐라고 하면서 나가지, 일단 욕부터 할까.
도경수는 본인 부름에 내가 대답없이 가만히 있자 문을 똑똑 두드렸다. 그래, 뻔뻔하게 나가자. 힐이 높아 들리지도 않는 뒤꿈치를 들고 문 쪽으로 다가가 문고리를 잡았다.
그새 올라간 치마도 내리고 허리에 달라붙은 원피스를 한번 더 주욱 늘리고. 살며시 문을 열고 발을 떼면 도경수가 코 앞에 서있었다. 세상에, 놀래라.
"......"
".....이상해요?"
"....."
삐이-
' 사장님, 지금 막 회장님께서 8층으로 올라가셨습니다. '
"......?"
한참을 서서 나를 보고 아무 말없이 쳐다보는 도경수의 표정은 조금 화나보였다. 의심의 여지없이, 잔뜩 구겨진 표정과 미간을 보고 뭔가 마음에 안들었음을 확신했다.
이상해요? 괜히 주눅 든 목소리로 그에게 묻자 고개를 끄덕였다가 금세 또 좌우로 저었다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는 행동을 하는 도경수를 쳐다봤다.
본인이 그렇게 입으라고 해서 기껏 입었더니 표정이 왜저래? 뭐 시발, 애초에 내 몸매가 소화 못할 옷이란건 충분히 알고있었을거 아냐? 나 참! 장난 똥때려?
애꿎은 치마만 자꾸 내리면서 도경수가 뭔 말이라도 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난데없이 삐- 하는 소리가 들리고 곧이어 어디선가 웬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회장님께서 뭐? 8층이 뭐 어쨌다고? 소리의 근원지도 아직 파악 못한 나년이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고 있으면 "아, 미쳤나." 도경수가 갑자기 내 팔목을 잡았다.
이 사람 방금 욕한거 맞지? 처음듣는 도경수의 찰진 욕짓거리에 놀라 얼떨떨할 겨를도 없이 또각또각또각 발목이 부러져라 도경수에게 끌려갔다.
"여기 가만히 있어요."
"예?"
"아무 소리도 내지마요. 걸리면 우리 둘 다 끝이야."
도경수 사장님
"어쩐 일이세요."
"하나 밖에 없는 자식새끼 생일인데 와봐야지, 그럼."
책상 밑에 구겨져서는 도경수와 도경수 아버지로 보이는 사람의 대화를 듣고있다. 내 앞에 앉아서 방금까지 업무 보던 사람처럼 앉아있는 도경수를 쪼그려 올려다봤다.
다,다리 조금만 오므려주지.... 시방새... 점점 땡기는 근육과 내 고질병인 요통이 겹쳐 식은땀이 뻘뻘 났다. 혹시 낑낑대는 신음이라도 새어나갈까 입을 앙 다물고 있으면
자식 새끼 생일인데 와봐야지 그럼, 자식 새끼 생일인데, 자식 새끼 생일인데, 생일인데, 생일인데, 생일인데, 생일, 생일....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내 뒷통수를 때렸다.
저 분한테 자식새끼면 도경수고... 하나밖에 없다면 더더욱 도경수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는 도경수를 다시 올려다봤다.
오늘 하루 만큼은 내가 하자는 대로 해요, 이유를 불문하고.
이유를 불문하긴 씨바.... 소리없는 한숨과 함께 고개를 숙여 무릎에다 머리를 콩콩 찧어댔다. 뒤져라, 뒤져. 나가 뒤져. 응?
도경수 생일을 몰라서 평소처럼 군게 내 잘못이 아니란건 잘 알면서도 괜히 미안하고 쓸데없이 미안하고 이상하게 미안하고, 그냥 미안한 마음에 속이 상했다.
"축하는 이번주 주말에...."
"안해주셔도 됩니다. 저 거창한거 싫어하는거 잘 아시잖아요."
"니 좋으라고 거창한 파티 열어주는게 아니란거, 너가 제일 잘 알텐데."
"......"
"꼭 참석해. 기업행사 빠지는건 그렇다쳐도, 주인공 빠진 생일파티는 뜬소문 돌게하니까."
애꿎은 이마만 시뻘겋게 물들도록 무릎에 콩콩 박아대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어째 두 사람의 대화의 분위기가 점점 살벌해지는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저린 내 허리도 점점 살벌하게 저려오는 것 같았다. 와 세상에, 생리할 때도 이렇게까진 아픈 적이 없었는데, 이를 악물고 허리를 콩콩 두드렸다.
자세를 조금만 바꾸면 그나마 나아질 것 같은데 이건 뭐 움직였다간 소리 날까봐 그러지도 못하겠고 식은땀만 뻘뻘 흘리면서 소리없는 아우성을 쳐댈뿐이었다.
도경수 아버지의 마지막 대사의 말투가 왠지 곧 나가실 것 같은 분위기를 형성했다. 제발, 제발. 얼른 나가시기만을 간절히 바라며 땀을 닦고 허리 필 준비를 하고 있는데
"저야 잘하고 있죠." 아버지의 엄한 훈계에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은 도경수가 말을 이었다. 누가봐도 말대꾸잖아 이 씨바라!!!!!!!!!
' 또각- '
"......."
"......."
"......."
순간적으로 욱한 나머지 도경수의 종아리를 한 대 치다가 몸을 움직여, 작지만 분명한 구두소리를 내버렸다. 본능적으로 시선을 깔아 날 쳐다본 도경수와 눈이 맞았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울음이 가득한 내 눈빛에 도경수는 아차하며 다시 고개를 들었다.
부자 밖에 없는 공간에서의 여자 힐소리, 그리고 그 소리에 어느 한 곳을 쳐다보는 아들. 아들이 쳐다보는 그 곳에 그 힐을 신은 여자가 있을거란건 초딩이 와도 알 법했다.
"잘하고 있는거, 확실하냐."
"....."
"요새 너 여자 생겼다는 말이 계속 들리는데,"
"......"
"재미 다 봤으면 알아서 정리해라."
"....."
"이번주 파티 참석도 이주랑 같이 하는건 알고있겠지. 쓸데없는 연애질에 애비 손 가지 않게 해."
"......"
"간다."
"들어가세요."
"나와요."
쾅- 하는 문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도경수는 내게 나오라며 손을 내밀었다. 못나가요, 미안해서 어떻게 나가요. 고개를 푹 숙이고 차마 들지를 못했다.
"뭐합니까, 안나오고."
"....미안해요."
"뭘 말입니까."
"저때문에... 또 곤란해졌잖아요...."
"도대체 뭐가요."
"아버지가 말씀하시는 소문의 여자도 저고, 쓸데없는 연애질의 여자도 저고, 여기 숨어있던 것도 저고... 어떡해요?"
"푸흡-."
직접 의자에서 내려와 앉아서 내 앞에 쭈그려 앉아 얼른 나오라고 재촉하는 도경수에게 거의 울듯한 목소리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괜한 구두소리를 내서는 안들어도 될 말까지 듣게하고, 안그래도 생일 몰라준 것 때문에 사과할 참이었는데 지금 이 순간 도경수에게 아주 미안한 것 투성이었다.
근데 도경수는 나때문에 곤란해진 상황임이 틀림없는데도 끝까지, 뭘 말입니까, 도대체 뭐가요, 심지어 웃기까지하며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내 눈을 마주하려 애썼다.
"이제 우리 서로 부모님까지 뵌 사이네요."
"....."
"기분이 어때요."
"....농담이 나와요?"
대뜸 서로 부모님을 뵀다며 씨익 웃는 도경수가 새삼 대단해보였다. 뭐 이딴 생각없는 병신새끼가 다있어? 너무 놀라워 말이 나오지도 못했다.
기분이 어때요, 재차 내 반응을 묻는 도경수에게 농담이 나오냐며 미간을 찌푸렸다. 능청스럽고 태연한 도경수 표정은 괜히 불안해 한 사람 민망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괜찮아요."
"......"
"나 아직 재미 보지도 못했는데 정리할게 뭐 있습니까."
"......"
"난 지금 시작이라도 하고 싶어 미치겠는데."
"......"
"ΟΟΟ씨랑 쓸데없는 연애질, 시작이라도 해보고 싶은데."
"....."
"괜한 걱정말고 나와요."
"......"
"도대체 뭘 불안해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