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막히는 식사가 끝난뒤 종인은 경수의 어머니와 황인혜라는 여자가 같은 차를 타고 사라지는 것까지 보고 나서야 겨우 제 차로 돌아올 수 있었다.
경수는 그 여자가 룸으로 들어오자마자 답지 않게 성질을 부리며 그녀에게 급한일이 있다는 씨알도 안 먹힐 거짓말을 하고 정말로 룸을 빠져나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경수의 어머니는 경수가 그럴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그녀와 저를 자리에 앉히고 지극히 개인적인 자신의 의미없는 사업얘기를 늘어놓더니
마지막 커피가 나오고 나서도 한참을 그렇게 있고서야 자리를 파해주었다.
그 시간 아까운 장소에서 저가 얻은것은 황인혜라는 여자가 생각보다 사업면에서도 안목이 좋았다는 것.
경수의 어머니는 도대체 무슨 생각인 것일까. 왜 경수도 없는 자리에 저와 그녀를 앉혀놓은 것이지.
그리고 인혜라는 그 여자도 경수와의 결혼을 대충 알고 있는 것 같은 눈치였는데 왜 저에게 찾아와 경수와 그녀의 중매역할을 자신에게 부탁한 것일까.
생각할 수록 나오는 답이라곤 하나밖에 없었기에 종인은 마른세수를 하며 제 차에 올라탔다.
"왜 이제서야 와."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얼굴에 종인은 제가 방금까지 생각하던 모든것을 까맣게 잊어버린채 조수석에 팔짱을 끼고 앉아있는 경수를 멍하게 쳐다보았다.
경수의 손가락 끝에 아슬하게 걸려있는 제 차키까지도.
정신을 어디다 두고 다니는건지, 아까 경수가 룸을 빠져나갈때 테이블 위에 제 차 키를 가지고 나갔었나보다.
종인은 어쩐지 한대 얻어맞은듯한 기분에 차 시트에 기대며 하하 웃어버렸다.
"엄마는 진짜 자기 멋대로야."
차 시동만을 켜주며 '너희 집으로 가자.' 고 다짜고짜 명령하는 경수에 종인은 어쩌지도 못한채 결국 차를 자신의 집으로 몰고있었다.
짧은 침묵 뒤로 경수의 심통난 목소리가 그의 어머니에 대한 그의 마음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고 있어서 종인은 웃어버릴 수 밖에 없었다.
"너도 그래! 엄마가 시킨다고 또 그걸 낼름 한다고 해버리냐."
갑작스럽게 저에게 돌아온 비난의 화살에 종인은 그저 못들은척 운전만을 할 뿐이었다.
경수는 앞을 보고 있는 저가 느낄 수 있도록 있는 힘껏 자신을 노려보더니 이내 다시 조수석 제 자리로 고개를 돌렸다.
종인은 벌써 가까워지는 제 집이 원망스럽기 그지 없었다. 그냥 이렇게 경수와 한 차에서 아무생각도 하지 않은채 나란히 앉아있고만 싶었다.
이대로 확 여행이나 가버릴까, 하는 답지 않은 생각까지 하며 종인은 차고에 차를 주차하고는 안전벨트를 풀었다.
아무리 좋아도, 모든 일에는 끝이 있기 마련이었다.
"다 왔어, 내려."
"누가 뭐라고 해도 난 결혼 안해. 너가 아무리 다리 놓아준다고 해도 안 할꺼야. 생각 없어."
갑작스런 말이었다. 아까부터 계속 그 생각만 하고 있었나보다. 저도 꽤나 고민 많이 했겠지.
종인은 그런 경수가 사랑스러워 가만 시트에 기대 그를 들여다보았다.
볼 것도 없는 차고를 조수석 창문을 통해 바라보고 있는 경수가 어쩐지 나의 세상으로 한 발자국 더 들어와준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결혼은, 말했듯이 경수의 선택사항이 아니었다.
그가 용기를 내준것은 고마웠지만 안타깝게도 최소한 결혼은. 이렇게 간단히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경수야. 떼쓰지마."
"애 다루듯 타이르지마!"
경수는 자신에게 뻗쳐온 종인의 손을 잡아채며 의미없는 조수석 창문대신 종인의 눈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살아오면서 되지 않는 것은 몇 없었는데 종인이 관련되기만 하면 왜 이렇게 안되는것 투성이가 되는지 모르겠다.
종인도 경수 자신이 결혼하는거 원하지 않으면서 항상 저 혼자 어른인척 희생하는척, 경수는 진절머리가 났다.
"..우선 내리자."
한숨을 푹 내쉰 종인이 차 문을 열고 내렸다. 경수는 이대로 종인의 페이스에 넘어가고 싶지 않았다.
종인도 저와 같은 생각이라는 것을 확인받고 싶었다.
니가 결혼하는 것 싫다고, 같이 있고 싶다고. 그런 얘기가 듣고 싶었다 경수는.
하지만 종인은 언제나 능구렁이 같아서 제가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일어나지 않자 조수석 문을 손수 열어주며 자신의 안전벨트까지 풀어주었다.
"..오늘 자고 가라, 경수야."
종인은 항상 저에게 못내 져주는 척을 하였지만 사실 둘의 싸움에서 언제나 우위에 서 있었던 쪽은 저가 아닌 종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