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1억
제 28화_
우리 빼고 모든 건 그대로
가영은 새벽에 물이 마시고싶은지 방에서 나왔다. 그러다 앓는 소리에 놀래서 가영이 급히 윤기에게 다가갔고
윤기는 편히 잠에 들지도 못한채 소파에 앉아서는 악몽을 꾸는듯 인상을 쓴채로 앓는 소리를 내었고.. 가영이 급히 윤기의 어깨를 잡아 흔들었다.
"윤기씨 괜찮아요!?"
윤기가 눈을 작게 뜬채 갑자기 숨을 몰아쉬었고, 가영이 윤기를 꼭 안아주었다.
"…괜찮아요. 아무 일도 없으니까.. 걱정 마요."
"……."
"괜찮아요? 윤기씨.."
"…악몽을 꿨어요."
"……."
"이유도 없어 비난을 받다가 교도소에 갇히는 꿈."
"……."
"교도소에 갇혀서 수많은 눈들이 저를 보고 있었어요."
다시금 눈을 감은 윤기는 한숨을 내쉬었다. 가영은 윤기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여태 맨날 무심한 모습만 보이다가 이렇게 약한 모습이라니..
"아니이! 이렇게 사랑스러운 사람을 누가 교도소에 쳐넣는대!?"
"……."
"…안 그래요?"
"…그러게요."
분명 윤기는 작게 웃었고, 가영도 따라 웃었다.
아직 그쪽을 만난지 얼마 안 됐지만.. 더 알고싶어졌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당신은 어떤 사람인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너무 익숙한 천장이 보이기에 자연스레 고갤 돌려 옆을 보았을 땐..
그 누구도 없었다. 뭘 기대했던 거야.. 정신을 차리고선 상체를 일으켜 앉아 세웠을까..
"……."
내가 왜 여기있는 걸까.. 왜 내가 전정국 집에 있는 걸까. 생각해 보아도 답은 찾을 수가 없었다.
어제 분명 술을 마셨고 그 뒤로는 아무 기억도 나지 않으니까.
어제 분명 나는 석진씨 덕분에 추악하게 혼자 술을 마시다 술집에서 나온 걸로 기억을 하는데..
쭈뼛쭈뼛 침대에서 내려와 문을 열고선 거실을 보면, 전정국은 없었다.
시계를 보면 벌써 12시가 넘어있었고, 전정국은 아마 출근을 했겠구나 싶었다.
이상했다. 왜.. 나는 세달 전으로 돌아간 기분이 드는 걸까. 퇴근하는 너를 반겨주면 될 것 같은 이 느낌은 도대체 뭘까.
너에게 너무 익숙해져있는 나이기 때문에?
"…일어났냐."
"…어."
전정국은 담배라도 사고 온듯 주머니에 담배를 넣으며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를 지나쳐 방으로 들어가며 겉옷을 벗는 전정국을 지켜보며 또 아련한 생각이 들었다.
예전같았으면 나를 지나치며 최소 내 볼을 쓸어주었을텐데, 이제 이것들은 다 망상이 될 뿐이다.
"저기."
"…어."
"나 왜 여기있어..? 진짜 기억이 하나도 안 나서."
전정국은 어이가 없다는듯 작게 웃으며 방에서 나와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너 어제 완전 떡 되가지고 경찰서 갔잖아."
"…내가?"
"어, 웬 양아치같은 여자애들한테 걸려서 니한테 맞았다고 쇼하는데 얼마나 웃기던지..
니는 왜 그렇게 떡이 될 정도로 술 마시고 집도 못 찾아가서 이 사단을 만드냐?"
"…걱정하는 거야?"
"걱정이냐 이게? 나한테 피해가 가니까 하는 소리지.. 왜 하필이면 내 번호를 알려주고 그래.
잘난 네 남친 두고.. 네가 이렇게 혼자 무리해서 술마시는데 네 애인은 신경도 안 쓰냐?"
"…신경 써..!"
"……."
"싸워서.. 싸워서! 내가 봐주기 싫어서 연락 안 받았던 것 뿐이거든."
괜히 너에게 자존심 상하는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가 나를 많이 사랑한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나도 다른 사람에게는 대접 받으며, 사랑 받으며 산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왜..
"다음부턴 나한테 연락 오는 일 없게 해. 경찰서든, 어디든."
내 마음은 더 아픈 걸까 생각을 해보았다.
"넌 어땠는데?"
"…뭐가."
"경찰서에서 연락왔을 때.. 내가 술에 취해서 몸도 못가누고 있었을 때. 너는 어땠는데."
"……."
"마음이 아팠어?"
"마음이 왜 아파."
나는 아마도.
"꼴보기 싫었어."
네가 이런 말을 하는 게 여전히 가슴이 아픈 걸 보니.. 너를 아직 마음 속에서 지우지 못한 게 분명했다.
하지만 아니라고 부정을 해야만 했다. 너와 나는 이루어질 수 없을 테니까.
"해장 안 해도 되지? 대충 씻고 가."
"…넌 내가 만약에 애인이랑 헤어지면 어떡할 거야?"
"……."
"다시 우리가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네가 누누이 말했잖아."
"……."
"우린 성격 안 맞는다고, 어떻게 맞춰 살아가냐고.. 못 한다고. 그건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말이야."
"……"
"너랑 헤어지니까 나도 알겠더라."
"……."
"나도 못하겠다. 사랑이 너무 어려워."
"……."
"카페 가면서 데려다줄게. 씻고 나와."
전정국의 차를 타고 집 앞에 도착했을까, 나는 내리고싶지 않았다.
이상하게 문고리에 손을 뻗을 수 없어서 가만히 허공만 바라보고있으면 전정국이 내게 말했다.
"안 내려?"
"카페 옮기지 마."
"……."
"왠지 기분이 안 좋을때.. 너 보면 이상하게 조금은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아서.. 문득 생각나면 보러 가게."
"진짜 아무말이나 그냥 내뱉는구나."
"……."
"우리가 서로 얼굴 보면 마음이나 편해질 사이가 아니잖아."
"……."
석진씨 때문에 힘들었던 감정이 터져버렸다. 전정국의 손을 붙잡고 엉엉 울고싶었지만, 전정국은 나를 벌레보듯 바라보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 된 것일까.. 생각을 해봐도.. 원인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내려."
전정국은 담배불을 붙였다. 내 앞에선 담배 한 번 피지 않았던 너였기에 날 놀라게 했다.
"가면 되잖아."
너는 나를 참 구질구질하게 만들구나.
"부회장님 서류 여기에 놓겠습니다."
"…어."
"사모님께서 오늘 점심에.."
"시간 안 된다고 전해. 그리고 점심은 나가서 혼자 먹고 와, 천천히 들어와도 되니까."
"……."
"나가봐."
윤기는 처음으로 보는 차가운 석진의 모습에 의아한듯한 표정을 하고선 방에서 나왔다.
여직원들도 아까 마주쳤던 석진의 모습을 떠올리며 서로 떠들기 바쁘다.
"오늘 부회장님 컨디션 완전 별로인가봐. 인사하는데 개무시했다니까?"
"너도 무시당했어? 나도! 나만 그런줄 알고 상처받을 뻔.."
윤기가 여직원들을 지나쳐 휴식실로 들어가 가영에게 전화를 걸었고, 가영은 집에서 팩을 하며 윤기의 전화를 받는다.
- 이게 무슨 일이에요? 먼저 전화를 다 하고?
"점심 같이 먹을래요?"
- 와 갑자기 이렇게 전화해서 설레게 한다고?
"한두시간 정도는 시간이 될 것 같아서."
- 나는 완전 콜이지! 근데요 근데요.. 열린이랑 부회장님이랑 대통 싸운 것 같은데.
"…싸워요?"
- 그래요! 열린이 어제 외박했대요. 그것도.. 전남친 집에서 자고 왔다나 뭐라나.. 부회장님 얘기 꺼내기만 해도 표정이 완전 안 좋구..
"…아."
- 뭐 들은 거 없어요? 나 완전 궁금해 죽을 것 같잖아.
"부회장님도 표정이 안좋으시긴 한데.."
- 그래요? 어머.. 둘이 싸운 거 맞네! 진짜 이게 무슨 일이람.. 어머어머 진짜 한 번 떠봐요! 나 너무 궁금한데?
"…풉."
- 왜 웃어요!?
"아니요. 그냥요.."
- 아, 왜 웃었는데요! 말 해요!? 진짜.. 짜증내기 전에!
"귀여워서요."
- 에!?
"……."
- …….
"가영씨 부끄러우면 말 없어지는 거 알고, 또 말 없어질까봐 일부러 말안한 건데."
- …뭐가요! 당연한 소리를 하니까 어이가 없어서 그렇지!
"뭐하고 있었어요?"
- 그냥.. 얼굴이 너무 땡겨서 팩 좀 붙이고 있었는데.. 윤기씨는요? 통화 가능한가봐요? 맨날 카톡도 3시간에 한 번씩 답하던 사람이.
"아…그거."
- 얼마나 나한테 관심이 없으면 답장을 그렇게 늦게 해? 나는 오면 바로 보고 답장하고 그러는데! 그것도 읽씹하다가 나중에 답하는 게 더 어이없어.
"…관심 없는 게 아니에요."
- 그럼 뭔데요!
"답장오면 너무 떨려서 뭐라 답장을 해야 마음에 들까 생각만 여러 번 하다가 보낸 거예요."
- 와….
"또 전화할게요."
- …….
윤기가 전화를 끊자마자 얼굴이 빨개져서는 휴식실에서 나와 여직원들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한편 가영은 귀에 대고있던 핸드폰을 치우지도 못한채 돌처럼 굳어서는 허공만 바라보다 헛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미쳤나봐 진짜..
그러다 열린이 방에서 나와 터덜터덜 움직여 물을 마시자, 가영이 팩을 떼어내며 열린이에게 말을 걸었다.
"야아 길열린! 너 무슨 좀비냐? 걷는 게 왜 그래?"
"……."
"무슨 일 있었지? 무슨 일이 없어서야 전정국 집에서 잘리가 없지."
"거짓말하는데엔 이유가 있는 거겠지?"
"거짓말?"
"……."
"거짓말하는데 이유가 왜 있냐? 나는 선의의 거짓말은 개소리라 생각해. 거짓말이 치고싶어서 그냥 하는 거지 선의는 무슨.."
"……."
"왜? 부회장 그 놈이 너한테 거짓말했어?"
"…어."
"무슨 거짓말이길래 애가 이렇게.."
"전에 만났던 여자를 몰래 만나고 있었어, 연락도 하고.. 어제는 나랑 얘기하는데.. 내가 울고있는데 나 두고 그 여자 만나러 갔어."
"…근데 너."
"……."
"안 슬퍼?"
"어?"
"왜 안 울어..? 너 원래 슬프면 바로 울잖아."
"……."
이상했다. 열린이는 울지 않고 떳떳하게 가영에게 말을 하고 있었고, 가영은 이상하다며 열린을 한참 바라보다 말했다.
"너무 화가나서 눈물이 안 나는 건가.. 근데 그 사람 뭐야? 세상 스윗해서 전혀 안 그럴 거라 생각했는데! 바람? 바람을 펴?!"
"……."
"진짜 세상에 믿을 남자 하나도 없다더니! 진짜라니까? 다 확! 여자를 만들어버리던가 해야지!"
"윤기씨는? 괜찮아?"
"어?"
"…요즘 기분 좋아보이네."
"너 나.. 윤기씨랑 만나는 거 어떻ㄱ.. 야아! 길열린!"
열린이 방으로 그냥 들어가버리자, 가영이 얼굴이 붉어져서는 혼잣말을 한다.
"설마 나 빼고 우리 사이 다 알고있던 거 아니지? 나만 바보처럼!!??"
지민은 테이블 의자에 앉아서 팔짱을 낀채로 무언갈 생각하는듯 눈을 굴렸고, 직원이자 대학 동창인 태형이 지민의 눈 앞에 손을 휘이- 저으며 말한다.
"야 너는 오늘 하루종일 멍만 때리냐? 사장이 이렇게 허술해서 쓰냐?! 이렇게 일 할 거면 나한테 사장 넘겨."
"내가 진짜 가운데에서 잘못한 것 같아서.. 못참겠다!!"
"왜 갑자기 소릴 질러! 깜짝놀랬네!"
"잠깐 혼자 일 좀 하고있어!! 나 잠깐 열린이한테 다녀올게!"
"어!? 야아아아!! 이제 곧 손님 몰려들텐데! 나 혼자 어떻게 하라고오오오!!!"
지민이 터벅터벅 옷 하나 갈아입지않고 가게에서 나가버리자, 태형은 안쓰럽게도 표정을 지으며 손을 뻗으며 지민을 불러도
지민은 뒤 한 번 돌아보지않고 그냥 나가버린다.
아무리 전화를 해도 받지않는 열린에 석진은 마른세수를 하며 창밖을 보았다.
어제 그렇게 그냥 가버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그냥 가버린 자신을 탓하는듯 석진이 책상에 엎드려 한숨을 내쉬었다.
중요한 전화가 옴에도 받지않고 허공만 바라보던 석진이 고갤 들어 다시금 핸드폰을 들고 열린이에게 전화를 건다.
"……."
"뭐? 그래서 진짜 그 여자가 따로 만나고 있었던 여자가 맞다는 거야??"
"둘이 사귀고 안 사귀고는 나도 몰라.. 둘이 가벼운 사이가 아니란 것만 대충 알겠더라."
"야.. 길열린.. 괜찮아?"
"괜찮으니까 내가 너랑 이렇게 앉아서 떠들고있지."
"…나는 또 가운데에서 말 잘못한 걸까봐 얼마나.. 아우.. 진짜 길열린!! 어떡하려고 그래!"
"…모르겠어."
"……."
"화도 나고, 어이가 없어서 무작정 연락 오는 건 다 피하고 있어."
"……."
"그렇게 석진씨만 믿고, 따랐는데.. 진짜 너무 크게 배신당한 느낌이라 지금.. 내가 어떻게 해야할지 하나도 모르겠어."
"…당연히 화가 나지! 하지만.. 네가 정말로 석진형을 많이 사랑했다면, 이렇게 피하지만 말고.. 만나서 서로 얘기를 풀어나가는 게 맞는 게 아닐까."
"…이상해 지민아."
"…왜."
"나 지금 석진씨 만나기 싫어."
"……."
"만나면 할 말도 없을 것 같아서.. 그래서 아무것도 못하겠어."
열린이 무릎을 모아 무릎에 이마를 댄채 웅크려 한숨을 내쉬자, 지민이 손을 뻗어 열린이의 머리를 헝클이며 말했다.
"진짜 길열린 많이 컸구만!"
"…오글거리게 뭐하는 짓이야."
"예전에 전정국이랑 만날 때는! 시도때도없이 전정국 괴롭히더니.. 지금은 무작정 피하기만 하고..
너 진짜로 석진이형 사랑한 게 맞기는 하냐? 진짜로 석진이형을 사랑했다면 당장이라도 만나서 따지고, 때리고 다 하고싶었을 텐데.
너 지금 무작정 피하기만 하는 거 보면.. 내가 보기엔 사랑이 아니라, 단지 그냥 조금 좋아했던 것 같은데?"
"…나 석진씨 사랑했어."
"전정국 때를 생각해봐. 똑같이 사랑했으면서.. 왜 사랑하는 방식이 다르냐? 전정국 때는 전정국이 잠깐이라도 아는 여자랑 얘기만 나누면
그렇게 눈에 불을 키고 달려가서 따지고 난리를 치더니, 지금은 무슨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 밖에 내놓은 것 마냥 신경도 안 쓰잖아?"
"……."
"내가 보기엔 길열린 전정국.. 너넨 진짜 10년동안 소름돋게 서로 닮아졌다니깐. 하는 짓도 어쩜 이렇게 똑같나 몰라."
"전정국도.."
"…응?'
"전정국도 나처럼 이랬어?"
"응."
"……."
"전정국은 이미 한참 전부터 지금의 너처럼 많이 혼란스러워 했고, 힘들어했지."
"……."
"전정국 걔가 얼마나 웃긴지 아냐? 희연이누나 얘기 나한테 해주는데.. 희연이 누나 이름을 네 이름으로 부르는 거 있지?
지도 깜짝깜짝 놀란다니까? 아주 가관이었어 걔."
"……."
"어우.. 내가 무슨 소리냐.. 아! 몰라! 어차피 너네도 다 마음 정리한 것 같으니까 하는 소리야! 암튼.. 전정국 걔도, 너도 똑같다, 똑같아!"
"……."
"일어나! 밥 먹어 이년아!"
지민이 열린이의 방에서 나오자마자 어지러진 집 안을 치우기 시작했다.
매번 보는 바닥에 놓여진 여자 윗 속옷을 들어 혀를 쯧쯧차며 베란다로 향하는 지민은 뒤를 힐끔 보며 열린이의 걱정을 하는듯 했다.
"아무래도 혼자 두면 안 될 것 같지.."
"이런 미친놈 같으니라고.. 혼자 치킨집을 직원 혼자 마감하라는 새끼가 어디있냐 진짜.."
태형이 지민에게서 온 문자를 확인하고선 화를 내다가도 문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면 윤기와 가영이 들어와 자리를 잡아 앉는다.
뭔가 저 여자 어디서 본 것 같은데.. 하며 메뉴판을 갖다 준 태형이 여자를 한참 바라보다 속으로 생각한다.
박지민 친구였나? 같이 찍은 사진 있었던 것 같은ㄷ..
"혹시 여기 사장 어디갔어요?"
"아.. 잠깐 볼 일 보러.."
"아.. 얘는 처음으로 친구가 치킨 먹으러 와줬는데 어딜 내뺀 거야? 이런 개자식!"
가영이 테이블을 주먹으러 내리치자, 태형이 가영에게 아는 척을 하려다가도 무서운지 뒷걸음질을 쳤고
그 다음으론 윤기가 태형을 죽일 듯.. 바라보자 아예 주방으로 도망친다.
사실 윤기는 죽일 듯 바라본 게 아니라, 그냥 같잖게 바라본 것 뿐인데 말이다.
"친구가 여기서 일해요?"
"네! 친한 놈이라 소개 좀 시켜줄려고 했더니만.."
"아.. 치킨집.. 그것도 백화점 옆이라니."
"지나가다 몇 번 봤을 수도 있을 걸요? 애가 뭐랄까.. 살짝 떡상이라고 할까나.. 떡같이 생겼어요."
"떡이요?"
"네. 떡.. 아, 근데요. 윤기씨 나보다 두살 더 많은 거잖아요?"
"네."
"내가 그냥 오빠라고 불러도 되는 거죠?"
"…에?"
"……."
"아, 네."
"그럼 말도 같이 놓을테니까. 그쪽도 같이 놓는 걸로? 존댓말 쓰면 뭔가 엄청 멀어보이잖아."
"……."
"알았지 오빠?"
"크흡.."
윤기가 침을 잘못 삼켜 기침을 하자, 가영이 반응이 재밌는지 웃으며 박수까지 치기 시작한다.
"왜 그래요? 왜 왜."
"그냥.. 천천히.. 편해지면 놓을게요."
"치.. 그럼 나도 윤기씨가 놓으면 놓을래요."
윤기가 물을 마시며 다른 곳을 보았을까..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핸드폰 진동 소리에 윤기가 전화를 자연스레 받는다.
"여보세요. 아.. 오름아, 잘지냈어? 삼촌은 잘 지냈지.. 그냥 이것저것 하면서.."
뭐가 그렇게 좋은지 실실 웃으며 전화하는 윤기의 모습이 마냥 신기한지 가영이 턱을 괸채 윤기를 바라보았고
전화를 끊은 윤기가 아직 미소를 띄운채로 가영을 바라보았고
눈이 마주치면, 윤기가 신기할 정도로 정색을 한다.
"뭐예요? 전화 끊고 나랑 눈 마주치자마자 왜 정색이지?"
"제가 언제요."
"방금. 완전 개정색 했는데? 나 기분 나빴는데??"
"개정색 까지야.. 뭐 먹을래요? 일단 시켜요."
"그렇게 오름이가 좋아요? 조카인데도?"
"…그럼요."
"그럼 아예 딸을 낳으면 되겠네."
"……."
"나랑 애 한명 낳아요."
"……."
윤기는 가영의 화끈한 성격에 또 한 번 감탄하는듯 작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고
주방에서 둘의 대화를 듣던 태형이 똥씹은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집을 잘못 찾아오신 것 같은데.. 치킨집은 왜 오셨대 진짜.."
"주문이요."
"아, 예~!"
"고마워 오빠.. 내가 다리도 이렇고.. 손도 이렇다보니까! 어딜 나갈 수가 있어야지이.."
"……."
"오빠 어제부터 표정이 너무 안 좋은데.. 무슨 일 있는 거 맞지?"
"…죽 식으면 먹어라."
"여자친구랑 싸웠구나."
"……."
"혹시 나 때문이야?"
"…어."
석진이 그 말을 하고선 나가려는듯 현관으로 향하자, 유비가 급히 석진의 발목을 붙잡는 말을 꺼냈다.
"나 오빠가 행복하길 바래!"
"……."
"나는 누군가의 인생에 악역이 되고싶지 않은 사람이야. 나는 오빠가 애인분이랑 계속 만났음 좋겠어.."
"……."
"나 때문에 싸우게 된 거라면.. 미안해. 내가 한국에 아는 사람이 오빠밖에 없고 그래서.. 어쩔 수가 없었어."
"내가 정말 잘되길 바랬다면."
"……."
"염치없이 계속 찾아오지는 않았겠지."
"…그래, 내가 너무 잘못했어. 오빠 못 잊고 계속 찾아갔던 거 맞아! 근데.. 오빠가 이렇게 힘들어 하는 거 보니까.."
"너 사라지고 지옥에 살듯이 매일 힘들게 살았어. 불씨 하나 없던 내 인생에 간신히 나타나 촛불 켜주던 사람이 그 사람이야."
"……."
"나 이 사람까지 떠나보내면 못 살아.."
"……."
"하지만 그 사람을 두고 너를 보러 온 건.. 너를 잊지 못해서가 아니라, 너를 아직까지 사랑해서가 아니라.
불쌍해서야."
"……."
"그래도 옛정이 있으니 사람하나 살리는 샘 치고 너 보러 와준 거니까. 제발.."
"……."
"제발 내 인생에 끼어들지 말아줘라. 나 그 사람 없으면 숨 못 쉬어."
"오빠는 그 사람 없어도 살아."
"……."
"결국엔 나 못잊어서 위안삼아 그 사람 만나는 거잖아. 오빠는 나를 여태 잊지 못하고 밤을 새웠잖아."
"…아니야."
"오빠는 그 사람에게서 내 모습을 찾으려 애썼어, 분명히 오빠는 그랬을 거야. 오빠는 나를 많이 사랑했으니까..
금방 잊을 만큼 대충 사랑하지 않았어!"
"……."
"결국 오빠는 다시 나한테 올 거잖아."
유비가 쩔뚝이며 석진에게 달려가 뒤에서 끌어안았고, 석진은 유비를 뿌리치지도 못한채 마른세수를 했다.
"거짓말 못 하겠어.. 나 오빠 계속 사랑할래."
"……."
"김석진을 어떻게 잊어.. 그 여자랑 헤어질 때까지 기다릴게.. 응?"
석진은 자신의 허리춤을 꼭 안은 유비의 손을 강제로 떼어내고선 말했다.
"절대 안 헤어져."
석진이 집에서 나가자, 유비는 주저앉아 엉엉 울었고, 석진은 나오자마자 차에 올라타 답답한지 가슴팍을 주먹으로 내리치기 시작했다.
"됐다니까.. 그냥 네 집 가서 자.
- 내 친구가 힘들어하는 꼴을 보면 나는 물 받지 못하는 꽃과 같다니까아.
"갑자기 착한 척 하지 말아줄래.."
- 나 벌써 한병이나 마셨다!
"…전정국이랑 술 마셔?"
- 엉.. 왜? 올래?
"미쳤냐! 안 가..!"
- 그럴 것 같아서 예의상 물어 본 거야.
"…많이."
- …….
"많이 마시지 마.
- 나? 아니면 전정국?
"둘..다!"
- 아, 당연하지!! 일단 끊어어! 들어갈 때 전화할게.
전화를 끊고선 나는 할 짓 없이 방에 앉아서 핸드폰이나 하고있다.
석진씨에게선 아까도 세통이나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고 싶었지만.. 받으면 또 다시 아무렇지 않게 예전처럼 돌아갈까봐.
석진씨를 봐주게 될까봐 받을 수가 없었다.
핸드폰을 두던 시선을 허공에 둔채 공허한 마음을 처리하려 한숨을 내쉬어보지만.. 한숨을 쉴 수록 돌아오는 건 절망 뿐이었다.
너와 끝내면 다 끝일 것 같았는데. 왜 오히려 더 나를 복잡하게 만드는 거니.
"와 나는 또 디비디방 와서 애니 보는 건 처음이네.."
"겨울왕국은 애니 측에도 못끼죠.. 어느 영화보다 더 재밌는데."
"겨울왕국 좋아할 것 같이 생기지도 않아서는.."
DVD방에 온 둘은 그 어떤 것도 먹지않고, 마시지도 않고 반쯤 누워서 영화를 보고있었고.
가영은 DVD방이라고 해서 진도를 뽀뽀라도 뺄 줄 알고 기대하고 왔는데 이게 웬말인가.. 겨울왕국이라니..
가영이 삐진듯 팔짱을 낀채로 앉아서 화면만 바라보고있자, 윤기는 힐끔 가영을 보고선 푸흡 웃는다.
가영은 기분이 나쁜지 뭐요! 하며 윤기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기분나쁘게 웃는다 진짜?"
"원래 웃는 게 이런데 어떡해요."
"고쳐요!"
"노력할게요."
"참나! 노력한다니까 또 할말 없네."
가영이 단단히 삐진듯 윤기를 보지도않고 화면만 보자, 윤기가 조용히 가영의 손을 잡았다.
가영이 놀란듯 고갤 틀어 윤기를 바라본 뒤에 고갤 숙여 손을 보았다.
뭐야 이 사람.. 완전...
"그쪽.. 연애고수죠!!!"
"영화 봐요."
"완전.. 자연스러운 거 보면.. 이거이거.."
[대만투리투리!! 이리ㅣㄹ로 ㅗ와아아아]
지민이한테 온 문자에 딱 봐도 데리러오라는 것 같아서 급히 옷을 입고 술집으로 향했다.
왜 나는 술집으로 가면서 신이 난 걸까. 분명.. 네가 있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술집에 도착하자마자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콧노래를 부르고있는 박지민이 보여서 그쪽으로 다가가면
전정국도 꽤 많이 마셔서 취한듯 아무 표정없이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전정국은 술에 취하면 항상 화를 내곤 했다. 네가 취한 모습도 되게 오랜만에 보는 구나.
"전정국 너도 취했어?"
"…왜 왔는데."
"박지민이 오라고 해ㅅ.."
"박지민 데리고 가."
"너는? 너도 데려다줄게. 차 어디다 세웠어?"
"대리 부르면 돼."
"뭐하러 돈 써? 멀쩡한 사람이 이렇게 눈 앞에 있는데! 일단 나가자."
박지민을 부축하고 술집 앞까지 나오는데 성공했다. 박지민의 주머니에서 차키를 꺼내 시동키를 누르면 저 멀리서 시동 켜지는 소리가 들렸고
박지민을 질질 끌고 힘겹게 그쪽으로 향하려고 하면, 어느새 나한테 부축 당하던 지민이는 전정국의 손에 끌려간다.
전정국이 박지민을 질질 끌고선 뒷좌석에 아무렇게나 내동댕이를 치고 나를 바라보았다.
"너도 타. 내가 데려다줄게 너 너무 취했잖아."
"……."
"괜찮아? 너무 많이 마신 거 아니야?"
"너."
"……."
"왜 자꾸 나 보고 웃어?"
"…어?"
"그만.."
"……."
"그만 좀 웃어, 돌아버릴 것 같으니까."
"전정국.. 그야.. 나는.."
"…너 나 사랑해?"
"…사랑했ㅈ.."
갑자기 전정국이 내 손목을 잡고 힘으로 몰아붙여 키스를 했다.
벽에 쿵- 하고 등이 닿았고, 아파서 인상을 쓰고 신음 소리를 내어도 전정국은 무식하게 힘을 쓰며 내 입술을 탐했다.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전정국의 가슴팍을 세게 밀어내니 전정국이 힘이 잔뜩 풀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미쳤어..?!"
"넌 날 사랑하지 않았잖아."
"…뭐?"
"혼자 병원가서 엄청 무서웠을 텐데.. 근데 넌 나한테 말하지 않았잖아."
"……."
"네가 힘들면 같이 힘들고 싶고, 아프고 싶은데.. 너는 네 생각만 했잖아. 너만 아프면 된다고 생각했잖아.."
무언가로 머리를 세게 맞은 것 같았다.
아무 말도 없이 전정국을 올려다보면, 전정국은..
"…전정국."
울고있었다.
-
-
-
-
-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다 썼당 >~< 얼른 씻고 자야쓰겄다 헤헤헤헤헤헿
하... 아련보스.. 울지 마.. 정..국..아... 하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