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경수 사장님
11
부제: 해피 도사장 데이
"일어나요, 얼른"
쪼다같이 책상 밑에서 나올줄을 모르는 내 손을 잡고 얼른 일어나라고 직접 일으켜주는 도경수의 힘에 의지해 주춤주춤 일어났다. 세상 참 편하게 산다, 넌.
책상에 여러번 머리 박던 날 봤었는지 뒷머리를 쓰다듬으며 먼지를 털어주는 도경수를 쳐다보다, 앉아있는 동안 심하게 올라갔을 치마를 다급하게 내렸다. 빤스는 안보였겠지?
양손으로 어기적 어기적, 타이트한 아래쪽을 잡아다가 밑으로 끌어당기면 그 모습을 본 도경수의 표정이 또 아까처럼 심하게 일그러졌다. 또, 또. 아까 그 표정.
지가 입혀놓고 기껏 입은 사람한테 짓는 저 어이없는 표정!! 도대체 뭐가 문제냐는 듯이 도경수를 째려봤다. 뭐가요. 뭐. 입으라는거 입었더니 뭐가 불만인데요.
"입으라고 진짜 입습니까?"
".....예?"
"됐어요, 기다려요."
무슨 말이라도 해보라는 듯이 고개를 빳빳하게 들어 도경수를 노려보자 그는 대뜸 한숨을 쉬더니 나보고, 입으라고 진짜 입습니까? 랜다. 이 미친놈이 문 안열어줄 땐 언제고?
콧물까지 튕겨내며 코웃음을 치고 예? 하자 다시한번 내 차림을 확인한 도경수는 이내 몇발자국 떨어지더니 핸드폰을 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유진씨."
"....."
"이딴 클럽다닐 때나 입고다니는 옷 달랬습니까, 내가?"
"......"
"짧은거 절대 안된다고 했죠. 너무 달라붙는 것도 피해달라고 했고요."
"......"
"내 말을 듣긴한겁니까."
"......"
"지금처럼 트렌드 같은 개소리 할까봐 굳이 얘기 해준거잖아, 짧은거 야한거 싫다고."
도경수는 200만원짜리 바지 사주던 날 한번 들은 적이 있었던 것 같은 유진이라는 이름을 부르더니 곧 짜증과 화를 잔뜩 억누른 듯한 목소리로 조곤조곤 따지기 시작했다.
자기가 골랐다더니 순 구라네. 뭐? 내 생각을 하면서 사? 순구라, 구라쟁이. 통화를 끝내고 한숨을 쉬면서 내 쪽으로 걸어오는 도경수를 신경 안쓰는 척 고개를 돌렸다.
말을 걸거나 말거나 힐을 콩콩 바닥에 찍으면서 상한 머리카락이나 뜯어내고 있으면 "갑시다" 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뉘예? 어딜요?
"내 생일 자축하러요."
도경수 사장님
어딜 향하는지도 모르는 차에 올라타 아까 도경수가 나한테 훽 던진 파우치 백을 뒤늦게 열었다. 카페에서 도경수가 챙겨간 내 핸드폰, 지갑, 화장품 등등이 빼곡히 담겨있었다.
이건 또 언제 정리해놨담? 이것저것 꺼내보는데 벌써 내가 손가락으로 들춰보며 발견한 도경수 명함만해도 한 대여섯개가 되는 것 같았다. 음, 이런게 예쁜 쓰레기라는건가.
근데 이건 뭐, 또 받기싫다고 백을 탈탈 털면서 주섬주섬 내 짐만 쏙 챙길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내적 한숨 후에 말 없이 파우치백을 닫고 손에 고이 쥐었다.
그리고 어느새 어둑어둑해진 하늘만 바라보며 대화없는 차의 정적을 즐겼다. 같이 저녁이나 먹으려는 건가?
빠른 듯 천천히, 거친 듯 부드럽게 달리는 차의 창 밖을 구경하며 눈만 꿈벅꿈벅 거리고 있으면 '지잉-' 파우치 백에서 강한 진동이 느껴졌다. 아, 놀래라.
한창 조용할 때 울려, 지구 자전하는 소리 마냥 크게 울려댄 진동소리에 놀라 얼른 핸드폰을 꺼내다가 귀에 가져다댔다.
"여보세요"
- 오늘도 그 사람이랑 같이있냐?
"넌 어디가서 내 친구라고 하지도 마. 알겠어?"
- 내가 뭘
"....됐어. 나중에 얘기해."
- 술 값도 내가 냈겠다, 니 좋아하는 도경수인지 뭔지 그사람도 불러줬겠다. 뭐가 문제야? 난 칭찬받을 생각으로 전화 걸었다, 친구야.
어기적어기적 전화를 뻣뻣하게 꺼낸 탓에 누군지 확인도 못하고 받은 전화는, 오늘도 그 사람이랑 같이 있냐? 말투만 들어도 김종인임을 확신했다. 이 개새끼.
순간적으로 뱉을 뻔한 욕을 간신히 삼키고 최대한 나긋나긋하고 친절하게 입을 열었다. 어디가서 친구라고 하지도 마, 오밤 중 외간 남자한테 날 맡기고 튄게 친구냐? 엉?
내가 뭘, 퉁명하게 돌아온 김종인 대답에 얼탱이가 없다. 생판 남인 남자한테 술 취한 여자를 맡기는게 그럼 정상이냐 이 시발새끼야!!!!! 하고 턱 끝까지 차오른 말을
"....." 힐끔힐끔 날 쳐다보는 도경수 때문에 삼켰다. 도경수 옆에서 도경수 얘기를 격하게 나눈다는게 좀 뭐한 감이 없지 않아 있어서 나중에 이야기 하자고 분을 삭였다.
난 아직도 그 날 아침의 기분이 생생하다고. 눈 뜨자마자 잘생긴 남자가 누워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 그 충격적인 상황, 난 진짜 순간적으로 얼마나 놀랐는데.
칭찬받을 생각으로 전화 걸었다는 종인이를 만나 어서 뺨이라도 한대 갈궈주고 싶었다. 침착하자, 침착. 옆에 도경수가 있어서 넌 다행인줄 알아라, 진짜.
그리고 뭐? 니 좋아하는 도경수? 이건 또 무슨 헛소리야? 도경수가 무슨 만인이 좋아하는 도경수니? 누구 맘대로 내가 도경수를 좋아해? 허, 참.
- 왜. 잘 안됐어?
"헛소리말고 잠이나 자."
- 아 왜. 야, 내가 너 잘되라고 그렇게 도와줬는데 이러기냐?
"뭘 도와줘, 도와주긴. 잘 될 것도 없는데."
- 새끼 또 튕기네, 그러지말고 얘기 좀 해보지? 좋다고 할 땐 언제고.
김종인은 뭐가 그렇게 궁금한지 자꾸 말해달라고 찡찡대기 시작했다. 잘될건 뭐가있고 잘 안될건 또 뭐가 있는가. 도경수랑 내가 무슨 사이인줄 알고 이래, 얘는.
단호하게 김종인의 요구를 끊어내고 얼른 끊으려는데, 좋다고 할 땐 언제고, 종인이의 어마무시한 발언에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얘 진짜 뭐라는거지.
저번에 술 같이 마실 때 도경수랑 무슨 사이냐고 놀릴 때와는 확실히 다른 진지한 말투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언제 좋다고 그랬어, 내가 뭐가 좋다고 그랬어."
- 도경수
"......"
- 뭐야, 기억 안나?
"......"
- 보고싶은데 연락 안하기로 해서 연락도 못한다고 진짜 못생기게 울었는데, 너.
"......"
- 시발? 진짜 기억 안나? 요새 술 먹자고 부를 때 마다 너 도경수 얘기만 했잖아, 내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진짜야?"
- 술 오지게 먹고 기억 못하는구만. 아, 나만 불쌍해, 나만.
"......"
- 됐어 끊어, 아무튼 난 니가 그렇게 노래부른 도경수한테 연락 와있길래 화해했나 싶어서 부른거니까 내 탓은 하지마라.
주량도 진짜 적은데, 기억고자가 되버리는 주사까지 또 도졌나. 진짜 짜증나는 듯 자기 할 말만 우다다다 뱉고 끊어버리는 종인이를 보니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고 내가 도경수를 보고싶어해서 도경수 얘기만 주구장창 했다는건 또 이상하고. 아까부터 히죽히죽 웃고있는 도경수를 쳐다봤다. 내가? 쟤를? 왜?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내가 술 먹은 곳의 CCTV란 CCTV는 다 뒤져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도무지 이해를 하려해도 이해가 되야말이지.
"내 얼굴에 뭐 묻었습니까." 하고 나를 쳐다보는 도경수에게 "아,아뇨. 하하" 멋쩍게 웃으며 얼른 고개를 돌렸다. 너무 빤히 쳐다봤나. 모르겠는걸 어떡해.
"나 못들은척 해야되는 겁니까."
".....?"
"안들으려고 했는데 소리가 너무 커서 다 들리는걸 어떡합니까."
"....."
마주친 눈을 성급히 돌리고 지난 밤들의 기억을 곱씹고 있는데, 나 못들은척 해야 되는 겁니까, 웃음이 섞인 도경수 목소리에 기억이고 나발이고 심장이 내려앉았다.
들었어? 들은거야? 눈알이 빠져라 도경수를 쳐다보니 웃음을 참는 듯 참지 못하는 그가 마침 빨간불에 차를 세우고 나와 눈을 마주했다.
"울 정도로 내가 보고싶었습니까."
"....."
"아니라고 잡아떼는건 이제 안믿습니다. 다 들었어요."
도경수 사장님
"손님,"
"....."
"저기 저 분이 주문하신 모히또입니다."
"....에?"
웬 칵테일 바에 데려온 도경수는 정작 잠깐만 기다려 달라며 밖에 나가고 없고, 나 혼자 앉아서 물만 주구장창 마셔댈 뿐이었다. 아, 눈치보이게 진짜.
뻘쭘한 자세를 좀 어떻게 해보고자 얼음이라도 와그작 와그작 씹어먹으면서 시계를 쳐다보고 있는 동안 앞에서 뭘 열심히 만들던 바텐더가 대뜸 내게 웬 칵테일을 건넸다.
내 뒤를 가리키며, 저기 저 분이 주문하신 모히또 입니다, 하는 웨터의 손짓을 따라 뒤를 돌면 "....." 난생 처음 보는 남자가 내게 손을 흔드는게 아닌가. 웩, 시부랄.
"안먹어요." 칵테일 잔을 멀찍이 떨어뜨려놓고 기분 나쁘다는 듯이 다시 뒤를 돌아보니 이번에는 윙크를 한다. 지랄도 풍년이네. 나 원.
관심 없으니까 그만 두자는걸 온몸으로 표현했다. 모히또인지 도히또인지 예쁘게 생긴 술을 벌컥벌컥 원샷-. 쨍소리 나게 빈 잔을 내려놨다.
그제서야 벌리던 입을 다물고 핸드폰만 만지며 내 시선을 회피하는 남자에게 내적 미소를 지었다. 흥, 이런데 처음 와본거 존나 티낼거야. 흥흥.
"이거 하나 더 주세요."
"모히또요?"
"몰라요, 그냥 제가 방금 마신거."
그러다 방금 마신 칵테일 하나 더 주문했다. 이거 마시고 물을 마시니 너무 밍밍한게 도저히 목을 달랠 무언가가 없었다. 계산은 도경수가 알아서 하겠지 뭐.
보통 바의 술 주문은 어떻게 하는건지 알게뭐야, 그냥 내가 뭐 먹고싶은지만 말하면 되는거 아니겠어? 이거요. 몰라요. 그냥 제가 마신거요. 이름도 모르는 술을 주문했다.
금방 뭐를 들고 쉐킷쉐킷하더니 아까와 같이 예쁜 술을 내게 건넨 바텐더에게 고개를 꾸벅하고 이번에는 좀 더 홀짝홀짝, 맛을 느끼려했다.
"맛있나요?"
"네. 맛있어요. 술 못하는 저한테는 완전 딱이네요. 이름이 뭐라구요?"
"모히또요. 헤밍웨이가 즐겨마시던 칵테일로 유명하죠."
맛을 느낀 이후로는 몇 잔을 더 시켰는지, 물 마시듯 마셔대고 주문하고, 물 마시듯 마셔대고 주문하고를 반복했다. 도수가 아무리 낮아도 알코올은 알코올인가.
달달하고 청량하니 술을 좋아하기만 하는 내 입에 딱 맞는 듯한 칵테일을 들고 바텐더에게 조잘조잘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취기가 올랐다는 증거라면 증거려니.
완전히 취한건 아니지만 슬슬 얼굴에 열이 오르는 느낌이 들면서 모히또를 내려놨다. 내가 이만큼 마시도록 도경수는 안오고 뭐하는거야.
주섬주섬 파우치백을 더듬거리며 도경수에게 전화를 걸고자 핸드폰을 들었다. 매너 없는 놈. 전화번호부를 좌르륵 얼른 뒤지고 있는데 "손님" 또 바텐더가 날 불러왔다.
"저 손님이 주문하신 준벅입니다."
칵테일을 한 잔 더 내오는 바텐더에게 손을 절레절레 흔들며 거절하려는데, 저 손님이 주문하신 준벅입니다, 하는 말에 또 다시 뒤를 돌아봤다.
또 아까 그새끼야, 설마? 인상을 잔뜩 구기고 뒤를 돌아보는데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 멀리서 손을 살랑살랑 흔드는 도경수가 눈에 들어왔다. 뒷북쩌네.
"뭐야, 그새 몇잔을 한겁니까."
"모히또인지 뭔지, 맛있길래 마셨어요. 왜요."
"....화났습니까?"
"모히또 없었으면 화났을거예요."
"푸흡-. 이것도 마셔봐요. 이것도 달달해서 입에 맞겠네."
손을 흔드는 도경수에게 칫하며 다시 앞을 보자 어이쿠하며 얼른 달려와 내 옆에 자리를 잡은 도경수는 대뜸 내게 새로운 칵테일을 건넸다.
술이라면 싫은게 없는 내가 얼른 받아들어 홀짝 마시면 "맛있습니까." 아빠 미소를 짓고 나를 내려다보는 도경수에게 순간 가슴이 꽉 막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디갑니까." 취기인지 뭔지 갑자기 훅 오른 열에 정신을 못차리고 칵테일을 들고 따로 앉으라고 구비되어있는 테이블로 달려가 앉았다. 아, 왜이러지. 취했나.
"취했습니까."
"....아뇨."
"술 못하네. 그러면서 술은 왜 좋아합니까."
"남이사, 좋아하든 말든."
후다닥 자리를 옮기는 나를 보고 "넘어져요" 하더니 내 짐들을 챙기고 얼른 내 맞은편에 앉은 도경수는 취했냐며 내 칵테일을 가져가 본인 입에 대고 한입 마셨다.
어쩐지 자꾸 도경수를 보기 싫고, 목소리도 듣기 싫고, 눈도 마주하기 싫고. 술 못하면서 왜 좋아하냐는 도경수 질문에 웅얼웅얼 틱틱대버렸다.
그런 내 반응에 잠깐 멈칫한 도경수는 이내 금방 씩 입꼬리를 말아올리더니 "소용 없다니까." 한번더 내 칵테일을 홀짝 마셨다. 그만 마셔, 내거야.
"나한테 해줄 말 없습니까."
"......"
"왜 이렇게 나를 못쳐다봐요."
그리고 곧 내 눈을 마주치려고 애쓰며 본인에게 할 말이 없냐고 묻는 도경수의 눈을 요리조리 피했다. 해줄 말은 있는데, 전화로 해주면 안될까요. 아니면 문자.
어쩌다 한번 눈이 마주치면 왠지모르게 가슴이 먹먹하고 눈이 저절로 돌아가 입이 열리지 않았다. 왜 이렇게 나를 못쳐다봐요, 하는 도경수도 이미 그를 눈치챈 모양이었다.
"새,생일 축하해요...." 하는 수 없이 고개를 푹 숙이고 들리지도 않을 목소리로 생일 축하한다고 전했다. 이게 뭐라고 부끄럽고 지랄이야?
"안들리는데, 뭐라구요?"
"생일 축한다구요...."
"왜 자꾸 내 눈 피합니까."
"......"
"평소엔 잘만 쳐다보더니, 지금은 왜그렇게 날 못봐요."
".....아, 하지마요."
"부끄럽습니까."
도경수가 눈 좀 마주쳐달라며 내 코 앞까지 얼굴 쭉 빼자마자 가슴이 마구마구 뛰었다, 정말 마구마구. 얼굴도 열이 올라 곧 터질 것 같다고 해도 오버가 아니었다.
하지말라는 내 말에도 꿈쩍 않고 또 앞으로 넘어온 내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주더니 부끄럽냐고 묻는 도경수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떨어져.
"ΟΟΟ씨 술 먹이길 잘했나봅니다, 내가."
"....."
"술만 먹으면 거짓말도 못하고, 본심도 못감춘다고,"
"......."
"취중진담이라는 말은 ΟΟΟ씨를 위해 있는 말이라고 김종인씨가 문자 날렸는데."
"......"
"ΟΟΟ씨 나 좋아합니까."
"......"
"난 ΟΟΟ씨 좋아해요."
제자리로 돌아가 엉덩이를 붙이고 큼큼 거리더니 나를 빤히 쳐다보던 도경수는 나에게 술 먹이길 잘했다며 남아있던 칵테일을 또 한번 홀짝 마셨다.
술만 먹으면 거짓말도 못하고, 본심도 못감추고. 내 술버릇을 나긋나긋하게 읊던 도경수는 김종인한테 문자를 받았댄다. 그래, 그 개새끼는 12년 우정이고 뭐고 없는거다.
미친듯이 뛰는 심장을 어떻게 하느냐고 속으로 주문을 외우다가, ΟΟΟ씨 나 좋아합니까, 도경수의 직구에 머릿속이 하얘졌다. 난 ΟΟΟ씨 좋아해요, 그 말에는 더욱이.
나도 몰랐던 내 본심을 하루 아침에 도경수로부터 알게된 기분따위 없이, 야무지게 쥐고 있는 주먹까지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심장이 떨렸다.
한동안 내 대답도 없고, 내 대답을 기다리는 도경수는 더 말이 없고. 조용하게 들리는 바의 음악만 가득했다. "....." 마저 남은 칵테일을 한 입에 털어넣었다.
내가 도경수를 좋아한다고? 솔직히 마냥 알 것 같지만은 않다. 믿기지도 않고, 무엇보다 부정할 수 없다는게 더 황당할 뿐이었다.
"....전 연애할 시간 없어요. 해본 적도 없구요, 할 줄도 몰라요."
"......"
"사람 못믿어서 겁도 많아요. 남자랑 뽀뽀하고 키스하고 자고, 이런거 무서워요."
"......"
"도경수씨 여러가지로 귀찮게 할거 불 보듯 뻔해요."
"......"
"미안해요. 연락은 도경수씨가 먼저 할 때 까지 안할...."
"또 그럽니까."
한참을 고심하다 결론을 내렸다. 여러가지로 부족한 면이 생각해보니 많았다. 연애할 시간도 없고, 해본 적도 없으며, 할 줄도 모른다.
세훈이 병원비 벌려면 안그래도 시간이 빠듯하고, 해본적도 없는 남자와의 스킨십은 아직 생각만해도 설렌다는 감정보다는 무서움이 앞서는 것 같기도 했다.
사람을 못믿어서 이래저래 신경쓰는 부분도 많은 나는 사소한 것에도 의심, 질투부터 할게 뻔했기에 어쩐지 드라마에서 보는 의부증은 멀기만한 병 같지도 않았다.
이런 내가 연애, 할 자신이 없다. 겁나서 피하는 거라고 비웃는다면 그러려니, 겁나서 피하는게 맞았다. 미안해요. 도경수에게 고개를 숙였다.
연락은 먼저 하지 않겠다고 말하며 짐을 챙기고 일어나려는데, 또 그럽니까, 하는 도경수 목소리에 엉덩이는 떼보지도 못한 채 고개를 다시 들었다.
"연애 하는 시간이 따로 있습니까? ΟΟΟ씨랑 내가 근 한달간 마주친 만큼만 만나도 연애할 시간 충분 하겠네요."
"......"
"내가 항상 카페 내려가서 보고싶은 얼굴보고, 보통 대화 나누고."
"......"
"별다른거 없어요, 지금처럼만 만나면서 서로 좋아하고. 키스? 싫다면 안해요."
"......"
"뭐든지 처음이라는게 있는 법이에요. 안해봤다고 피하는 바보가 어디있습니까. 할 줄 모른다고 피하는 바보가 어디있어요."
"......"
"피하려고만 하지마요, 단순하잖아. 좋으면 좋은대로 합시다."
"....."
"당신 연애할 시간 있고, 할 줄도 알아요."
숨 한번 쉬지않고 내 눈을 제대로 마주보며 이야기를 늘어놓는 도경수를 보며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안정을 되찾는 것 같았다.
내가 뭘 두려워하고, 뭐 때문에 피하는지 정확하게 알고있는 듯한 도경수는 그런 나를 안심시키고 설득하려 애썼다.
"......"
어느새 취기는 싹 가시고, 멍해진 정신으로 앉아있는 나를 또 평소처럼 씩 웃으면서 쳐다보던 도경수는 보다 더 자신있는 얼굴로 내게 입을 열었다.
"손,"
"....."
"손 잡아도 됩니까."
"......"
그런 도경수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됐어요, 이제 됐어요!!!!
얘네를 어떻게, 무슨 빌미로 이어줄까 엄청 고민했는데 겨우 이었어요ㅠㅠ
여기까지 달려오기도 벌써 11편.... 끝까지 가려면 멀었....다고 합시다.
난 독자분들을 평생 볼 생각이니까요, 껄껄.
글을 쓰다보니 저도 연애하고 싶네요
누가 도경수같은 남자 좀 소개시켜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