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있는 건물 옥상 밑으로 환한 불빛을 내며 빠르게 경쟁해서 가는 자동차들과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에 헝클어진 내 앞머리를 다듬어주는 너의 손길과
너의 넓은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들려오는 잔잔한 발라드 음악
이게 다 꿈만 같았다.
"..성규야.."
"응..?"
"만약에..아주 만약에 말이야.
너가 생각한 것보다 내가 나쁜 놈이면 넌 어쩔꺼야?"
"...."
그의 말에 말이 나오질 않는다.
그래도 상관없다고 남우현 너가 어떤지 상관하지 않는다고 이 말이 나와야하는데
그의 눈빛이 너무 슬프다.
무슨 말을 해도 그에게 위로가 되질 않을꺼 같다.
복잡해진 머리 속으로 인해 멍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니
그는 다시 살풋이 웃어보이더니 내 머리를 약하게 헝클이고 일어선다.
"뭘 그렇게 생각해, 그냥 대답은 들은 걸로 칠게.
이제 내려가자. 밤공기라 그런지 춥다"
그의 손을 붙잡고 옥상에서 내려가는 계단 분위기는 정적이었다.
원래 그의 옆에 손을 붙잡고 장난치며 내려간 계단인데
오늘의 나는 그저 그의 뒤에서 끌려가듯 내려갈뿐이다.
옆에 갈 자신이 없다.
언듯 본 그의 눈이 계단 전등에 비쳐 반짝이는 걸 보았다.
코끝이 빨갛게 변해버린건 내 기분 탓일까?
그리고 그 일 후에 그의 집착이 시작되었다.
--
띵동-
의아함에 선뜻 문을 열 용기가 안났다.
'이 시간에 올 사람없는데..호원인가??뭐 두고 간건가?'
호원인가 하는 마음에 문을 열기 위해 금속 문고리를 손에 잡자 어딘가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차가운 금속 문고리의 온도가 손을 통해 뼛 속까지 차갑게 만드는 느낌에 이 문을 열면 안될꺼 같은 느낌..
'쾅-' '쾅-'
격하게 문 두드리는 소리에 놀라 저절로 미간이 찌푸러졌다.
"어떤 새끼야.."
짜증스레 문을 열자 그 앞에는
이호원도 아닌 남우현도 아닌
같은 반 동우가 서있었다.
"더럽게 빨리 여시네요??"
불량스러운 교복 복장에 이번에 염색 잘 나왔다고 자랑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한 이상한 남색도 아닌 머리에
장난스런 웃음을 진 채로 한 손에 있던 하얀 봉투를 내게 들이밀었다.
"이건뭔데..그리고 넌 학교 안가냐?"
"너 우편함에 있길래 가져왔다.
그리고 내가 언제 학교 제대로 가는거 봤냐?"
우리 집에 매일 오고 성격도 좋아서 얼마 없는 친구중 그래도 좀 더 친한 친구라 불리는 아이다.
그런 동우에게도 항상 불만인건
"호원이 형은 없냐?"
이상하리만큼 호원이에게 관심을 가진다.
가끔 난 그저 동우에게 호원이를 만나기 위한 징검다리 같은 존재였다.
"없으니까 빨리 꺼져"
"야!!!김성..."
쾅-
동우가 더 말하기도 전에 문을 신경질적으로 닫아버렸다.
어차피 영양가도 없는 말장난들 뿐이다.
그저 나의 관심은 동우가 건네준 하얗고 말끔한 하얀 봉투뿐이다.
안에 좀 두꺼운 종이라도 들은 듯 제법 부풀어 올라 있었다.
"보내는 이도 없고 받는 사람도 없고 뭐야 이 편지"
편지 봉투의 윗부분을 찢고 안을 확인 해보니
안에는 편지와 사진이 들어있었다.
"이게뭐야"
제일 호기심이 가는 사진을 꺼내 본 순간
내 머리를 망치로 쳐낸 듯 큰 혼란에 빠져들었다.
사진 속에는 사촌 동생 명수가 머리에 피를 흘린 채 컴컴한 방 속에서 의자에 묶힌 체 기절해 있었다.
너무나 큰 충격에 어찌해야 할 줄 몰랐다.
누가 이딴 장난을 친건지 아니면 저게 정말 내가 아는 명수가 아니길 바랬다.
"이..이게뭐야..명수가...왜...."
머리의 톱니바퀴들이 고장난 듯 아무 생각이 나질 않았다.
"펴..편지..편지."
순간 안에 같이 있던 편지가 생각나자 급히 편지를 꺼내 확인했다.
",,,!!!!!"
정말 공포와 충격이란 단어가 내게 이리 와 닿은 적이 없었다.
하얀 이면지 종이에 익숙한 검정 글씨체들
"성규야, 우리 다시 한번만 해보자
010-4387-4545"
그리고 밑에 적혀있는 익숙한 번호
"씨발..남우현...남우현 이 개새끼..."
끓어오는 감정으로 인해 눈물만 흘리며 입술만 깨물었다.
그 놈에 대한 분노와 이름 모를 감정으로 인해 손도 떨려왔다.
모든 감각들이 마비된 듯 그저 본능의 움직임에 따라 어느순간 내 손에는 핸드폰의 자판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남우현..진짜 끝까지.."
이제 길고 긴 악연은 끝난 것 같았는데 왜 이제와선 날 이렇게 해집어 놓는 건데 왜..
'뚜루루-'
연결음에 따라 불안감과 두려움으로 인해 심장이 요동치는 느낌이다.
마비 됬던 감각들이 돌아와서 예민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감각들을 따라 내 귀에서는 조그만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니가 있어야만 여기가 paradise.
억지로 너를 가둬버린 paradise.
깨어선 갈 수 없는 슬픈 paradise.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는 paradise.'
"....."
익숙한 노래였다.
항상 남우현의 벨소리의 노래는 맘에 안들었다.
항상 가사가 맘에 안들어서 기억했다.
그 노래가 지금 내가 있는 공간 어딘가에서 울려퍼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