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owers :: Lavender
W. flowers
이 이야기는. 아무것도 없던 내 인생이라는 악보에.
희망이라는 음을. 사랑이라는 가사를 그려준 한 소년의 이야기.
그리고 나의. 시작과도 같은 이야기.
#1.
오랫동안 꿈을 꾼 느낌이었다. 정신이 들자, 굳이 눈을 뜨지 않아도 이 곳이 어디인지 알 수 있었다. 눈을 뜨기 전 마지막 기억이 너무나 생생했으니까.
기억의 흐름과 함께 왼 손목의 아픔이 스물스물 느껴지자 더욱 눈을 뜰 수 없었다. 필시 이곳은..
" 응. 나 병원이야. "
병원이겠지.
" 아니. 내 딸.. 아니야. 그런거. "
최악이다. 의식을 되찾은 것도 충분히 최악인데 처음 듣는 목소리가 저 여자의 것이라니. 차라리 낯선 의사나 간호사가 나을 뻔했다.
행여라도 내가 깬 것을 들킬새라 눈치채지 못할만큼만 인상을 찌푸렸다. 인상이라 해봤자 내 미간이 조금 좁아지는 것 뿐. 크게 의미있는 행동이 아니다.
하지만 무엇이라도 표현해야 했다. 내 기분은 지금 그만큼 좋지 않다고. 여자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는 걸 보니 그다지 달갑지 않은 통화인가보다.
눈을 뜨지 않아서 통화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기계음을 타고 들려오는 남자의 성난 목소리가 그녀와 통화하고 있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미친듯이 조용한 것을 보니.. 아마 내가 지금 누운 이 병실은 1인실.. 내지는 2인실이겠지. 이 여자의 사치로는 1인실일것 같다만.
" 알았다고. 날 더러 어쩌라는거야? 미성년자는 보호자가 필요하다잖아..!! "
날카로운 여자의 목소리가 병실을 가득 울렸다. 티비나 소설에서보면 병원 냄새가 난다던데. 코 끝에 맴도는 것은 여자의 독한 향수냄새 뿐이었다.
머리 아파. 내가 눈을 뜬다면 어떻게던 급히 떠나겠지. 두 번 다시 뜨지 않을 수 있었던 눈을 뜨고 내 눈 앞에 나타난 세상의 색깔을 마주했다. 하얀색. 병원의 색이었다.
" 뭐야. 잠깐만. 다시 통화할게. "
여자는 내가 의식을 찾은 걸 확인한 모양인지 통화를 마치고 급히 다가왔다. 또각또각.
여자의 구두굽 소리에도 고개를 돌리지 않고 천장만을 바라봤다. 이건 내 나름의 시위다.
" 정신을 차렸으면 말이라도 하지 그러니? "
" ........ "
" 정말 가지가지한다. 넌 날 곤란하게 하는 법밖에 몰라. 지 애비랑 똑같아서는... "
" ........ "
" 겁대가리도 없이 손목을 긋고.. "
손목. 그 고통에 정신을 차렸지만 실제론 통증이 없었다. 그저 단단한 무언가가 손목을 쥐고 있는 무거움이 느껴졌다.
며칠이나 자고 있었는지는 아는거야? 너 때문에 나랑 성재랑 다섯 번은 번갈아 가면서 밤을 샜어. 너란 애는.. 얘, 너 듣고 있니?
" 하.. 의사 불러두고 난 갈테니까. 성재 오기 전까지 가만히 있어. "
" .......... "
" 성재도 이제 네 오빠니까. 제발 말 좀 듣고 얌전하게 살아. "
" .......... "
여자는 여전히 반응이 없는 날 뒤로 한채 한숨을 쉬고 멀어져 갔다. 뒷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보고 싶지 않았다. 모순된 마음.
고개를 돌리면, 내가 정말 눈을 떴다는 것을 실감할 것 같았다.
" 참, 그런데 너.. 찾아오는 친구도 있었니? 꽃이 꽂혀 있던데 성재는 아니라더라. "
" ............ "
" 하긴. 있을리가. "
그 말을 끝으로 스르륵 문이 닫혔다. 여자의 마지막 말에 무의식 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새하얬던 세상의 색이 보라색으로 바뀌는 순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