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owers :: Lavender
W. flowers
이 이야기는. 아무것도 없던 내 인생이라는 악보에.
희망이라는 음을. 사랑이라는 가사를 그려준 한 소년의 이야기.
그리고 나의. 시작과도 같은 이야기.
#5.
링거까지 뽑아버리고 병실도 돌아온 나를 본 간호사들의 표정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드디어 사고를 쳤구나. 하는 표정을 짓더니 피가 철철 흐르는 손목을 소독하고 이번에는 주사바늘을 상처부근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꽂았다.
급히 뛰어나간 간호사를 보고 왠지 육성재에게 연락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간호사의 감시를 받으며 누워있자 얼마 있지 않아 육성재가 급하게 뛰어들어왔다. 분명 혼낼거다.
" 너....!! "
" ................ "
" 왜 그랬어? 어딜 갔던거야? 함부로 돌아다니지 말랬잖아!! "
그럼 하루종일 답답하게 방에만 있어야 해? 대꾸하고 싶었지만 아까 바닥에 노트를 내팽게치 온 탓에 아무 말 없이 육성재를 노려보는 것으로 대신해야 했다.
나는 왜 눈을 뜬거지. 눈을 감고 있는 것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내 눈 앞에 보이는 것들이 답답하다. 모든게 사라졌으면 좋겠다.
화가 난 표정을 한 육성재 앞에서 보란듯이 손가락을 깨물었다. 오늘따라 피를 많이 본다. 물론 그 날만큼은 아니지만.
놀라서 아무말도 못하고 서 있는 육성재 앞에 주저 앉아 피가 묻은 손가락을 바닥에 이리저리 문질렀다. 의미 없는 낙서 따위가 아니였다.
- 꺼져.
날 좀 내버려 두라는 경고의 의미였다. 올려다 본 육성재는 한 대 치기라도 할 얼굴로, 혹은 금방이라도 울 듯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차라리 때려.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돌보는데도 마음 한 톨 내주지 않는 나를. 차라리 미워하고 때려.
난 육성재 입에서 험한 욕이 나오길 바랬다. 나를 탓하고, 증오하길 바랬다. 그래야 너를 미워하는 내 마음이 한 결 편해질 테니까.
하지만 육성재는 그러질 못한다.
" ........... 내가 미안해... "
" ................ "
끝까지 무슨 죄책감에 붙잡혀서는. 나를 불편하게 만들지.
" ... 화내서 미안해. 내일. 다시올게. "
" .............. "
" 그만 갈테니까.. 앞으로 그러지마. "
'그러지마' 라는 건 함부로 나간 행동을 말하는걸까, 내가 손가락을 물어 뜯은 걸 말하는걸까. 아니면 둘 다일까.
육성재는 아픈 눈으로 내 손을 보더니 다가오려는 걸음을 멈추고 뒤돌았다.
늘 서슴치 않고 내게 걸어온던 육성재인데, 난생처음으로 어쩌면 다신 찾아오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엄습해왔다.
" 9126호 보호자입니다. 네, 저 애 좀 잘 봐주세요. 나갈때도 왠만하면 제지해주시구요. "
그 생각이 나를 덮치자마자,
바닥에 주저 앉아 엉엉 울어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