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재 고민상담소
두 무릎을 바짝 당겨 얼굴을 묻었다. 지금 제 손에 들린 이 아작난 시계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26살. 멀쩡히 군대도 졸업도 끝낸 대한민국 청년으로써
백수로써의 삶은 달갑지 않았다. 집에서 끊임없이 날라오는 날카로운 시선에 모처럼 양복을 빼입고, 손목에 찬 에르메스 스켈레톤을 흔들어 보이며 집을 나섰다.
뚜벅 뚜벅. 꽤 중후해 보이는 구두까지 신고, 머지 않는 길을 걸어 면접장으로 향했다. 한 눈에 담긴 제가 근무하게 될 것이라 자부하고 있는 곳은 파라다이스
그 자체였다. 물론 거기까진 좋았다. 근무시간 오후 한시에서 밤 열시까지. 시급 4850원. 파격적인 조건에 냉큼 이력서를 들고 들어선 곳에선 제 또래쯤
되어보이는 남성이 저를 반겼다.
"어서오세요, SG 25입니다."
"26살 유영재 입니다. 제가 자사의 한 획을 그어 제 뼈와 살이 분리되는 한이 있더라도, 열심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아, 알바면접..점장님 연락 못받으셨어요? 그만두기로 한 알바생 그냥 하기로 했는데,"
씨발, 그때 그냥 할복할 것을.
보기좋게 깨져버린 시계 액정을 보며 한숨을 내쉰다 한들 바뀌는 것은 없었다. 뭐 어쩌겠어? 이렇게 된거 그냥 빌어야지 죽기야 하겠어.
꽤 당당히 집으로 돌아가던 발걸음은 단 한마디에 그대로 무너져 버렸다.
"시계에 발이 달린것도 아니고, 어떤 새끼인지 잡히면 도륙을 내어버리던지 해야지."
망설임 없이 뒤돌아 나온 발걸음은 목적지도 모른 채 그저 바람이 이끄는 대로 그렇게 걸어갔다. 그마저도 한여름에 땀이 고여버린 무거운
겨울 양복 덕택에 제가 자리 잡은 곳은 오래되고 황량한 찾는이 하나 없는 놀이터였다. 삐걱 거리는 그네에 앉아 한숨을 내쉬자 젠장맞게도
톡하니 끊어진 쇠사슬에 그대로 바닥에 주저 앉았다. 어떻게 죽으면 아프지 않을까. 연애는 해보고 죽어야 하는 건데. 수십 수백가지의 생각들로
가득 찬 머리를 흔들다 제 시선에 잡힌 조금은 짧게 타버린 꽁초를 향해 단숨에 달렸다.
"어,"
"제건데여"
제 눈앞에 있는 꽁초를 향해 손을 뻗는 순간, 길고 조금은 까무잡잡한 손가락이 먼저 꽁초를 들어올렸다. 후후- 두어번 불어 모래를 털어 버리더니
금새 입에 물고 지포라이터를 켜 깊게 빨아 들이는 남자의 행동에 아, 정말 저는 인간으로서의 자격이 없구나 하는걸 여지없이 깨달았다.
그대로 쓰러지 듯 모래밭위에 누워버리자 그런 제게 드리우던 검은 그림자의 무거운 시선이 저를 향했다.
"한입 하실래요?"
"...됐어요."
탁- 신경질적으로 그의 손을 쳐버리자, 힘없이 날라가버린 담배꽁초는 그대로 모래밭위에 툭 하니 떨어졌다.
그래, 모든게 제 잘못이였다. 그깟 담배꽁초가 뭐라고, 아니 나까짓게 뭐라고. 꽤 능력있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상담소를 운영하고 있어요.
그렇게 단숨에 난 1년간의 백수에서 어엿한 직장인으로 자리 잡았고, 출근 날짜까지 잡힌 상황에서 더이상 무서울 것은 없었다.
당당히 집으로 들어가 아버지 앞에 흙이 잔뜩 묻은 양복과 함께, 시계를 내밀자 껄껄 웃으시던 아버지는 급하게 골프채를 찾으시더라.
그대로 방으로 쪼르르 들어와, 월급타면 그까짓거 세개는 사드립니다! 큰 소리를 뻥뻥치고 그 날만은 달콤한 잠에 빠졌던걸로 기억한다.
연신 깊은 곳에서 부터 올라오는 한숨을 막을 길이 없었다. 퀴퀴한 곰팡이 찌든내와 텁텁한 시멘트 향은 지금 제가 있는 곳을 절실히 느끼게 해주었다.
멋드러지게 빼입은 수트를 탈탈 털어 보이고 목을 가다듬은 뒤 심호흡을 했다. 더이상 물러 날 곳은 없었다. 여전히 사람 좋은 웃음은 여전한 사장님께
허리를 숙였다. 열심히 해요. 제 어깨를 다독이는 그의 손길에,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한달. 한달만 버티자. 두 주먹을 꽉 쥔 채 그렇게 다짐했다.
"아아, 예 상담원 유영재 입니다."
몇 번이고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칙- 입에 뿌린 쌉쌀한 구강청정제의 맛에 두어번 입맛을 다셨다. 가방에서 주섬주섬 제 물건들을 책상위에 올려놓자 그럴듯하게
자리 잡은 제 근무지에 만족했다. 물론, 빛이 들어오지 않아 곰팡이가 잔뜩 낀것과, 달랑 거리는 백열등. 갈라진 시멘트와 제 동료가 저 작은 쥐라는 것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뻐근한 어깨를 두어번 주므르며, 몰려오는 잠을 애써 떨쳐내려 애를 썼다. 어디가세요 사장님? 아 편의점 알바여. 그만두려고 했는데 걍 하기루 했어여.
손을 팔랑거리며 집을 나서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았다. 씨발, 너구나 문종업. 내 일자리를 빼앗은 년이.
차마 입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을 곱씹으며, 손가락 끝으로 톡톡 책상을 쳐댔다. 얼마나 지났을까 오늘은 이렇게 공치는 건가 싶은 답답함에 서랍 깊은 곳에
넣어두었던 만화책을 피는 순간, 따르릉- 요란한 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아, 루피 나중에 만나.
큼큼, 목소리를 두어번 다듬다 또 바로 받는 건 남자로서의 자존심이 허락을 하지 않는 다는 생각에 3,2,1 숫자를 세아리고
수화기위에 손을 뻗자. 뚝 하니 끊겨버린 벨소리에 한숨을 내쉬며 넣어두었던 책을 다시 꺼냈다.
따르릉,
이 새끼가?
혹여나 끊겨버릴까 급하게 수화기를 들고 귀를 가져다대자 까랑까랑한 목소리가 다급히 들려왔다.
"네, 상담원 유-"
'죽고싶어요,'
유영재 인생 첫 고객의 전화가 걸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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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복해야지 그냥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실은 뒤에 바로 썰써야 하는데 우리만 웃길까봐 못쓰고 있음...실화라 우린 웃긴데....
보는 사람있음 썰풀고 아님 조용히 가서 예 쓰던거나 마저 쓸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