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졌냐?"
문 밖에서 에네스가 조용하게 노크를 한다. 다니엘은 문에서 등을 홱 돌리고 앉아서는 아예 대꾸도 안한다. 에네스는 어떻게 풀어줘야될지에 대한 답답함에 두통이 오는듯 머리를 꾹꾹 누른다. 사건의 발단은 그냥 볶음밥이었다. 다니엘은 에네스가 만든 새우 볶음밥을 제일 좋아했다. 그래봤자 냉동 칵테일새우를 사다가 요리한 것이었지만 에네스의 특별 조리법으로 만드는 것은 제법 맛이 있었다. 오늘은 다니엘이 그것을 먹고싶다며 에네스를 에네스가 만들어줬는데 문제는 그 안에 들어있던 피망이었다.
"...왜 피망 넣었어?"
다니엘이 오른손에 자기가 쓰는 분홍색 유아용 숟가락을 꼭 쥐고 낮게 깔린 목소리로 정색을 하고 말했다. 에네스는 건강에 좋으니까. 라고 딱 잘라 대꾸하며 신문을 읽었다. 다니엘은 그가 신문을 보는 틈에 숟가락으로 피망을 식탁 위로 조심조심 옮겨 떨어트리고 있었다.
"버리지마. 하나도 남기지마. 다 먹어."
여전히 신문을 보는채로 에네스가 말하자 다니엘의 눈이 휘둥그레 졌다. 투시라도 하는 것일까. 자신은 굉장히 조용하게 버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의아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세심하게 피망을 골라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새 신문을 내리고 자신을 째려보는 에네스와 눈이 마주쳤다. 다니엘은 어색하게 웃으며 피망을 다 골라낸 볶음밥을 잔뜩 퍼서 입에 넣었다. 에네스는 그런 그를 무시하고 부엌으로 갔다. 신경 쓰지 않는구나 싶어 다니엘은 활짝 웃으며 편하게 볶음밥을 먹었다. 얼마 지나지않아 에네스가 프라이팬을 들고 다시 나타났다. 그 안에는 볶은 피망이 잔뜩 들어있었다.
"자, 많이 먹고 건강하자."
기껏 세심하게 피망을 빼서 골라놓은 다니엘의 '완벽한' 볶음밥 위에 피망이 우수수 데코레이션되는 참혹한 현장이었다. 다니엘은 울먹이는 표정이 되어서는 숟가락을 소리나게 내려놨다. 화내는가 싶더니 에네스가 화난 표정으로 쳐다보자 꼬랑지 내린 강아지처럼 방으로 도망가 문을 잠궈버렸다.
"내가 미안해. 뭐하면 풀릴래?"
다니엘은 솔깃해서 새우 튀김이나 새로 나온 무선 조종 헬기를 떠올리지만 이내 넘어가지 않겠다고 결심하며 고개를 휙휙 젓는다. 에네스는 고민하다가 정말 하기 싫은 표정으로 다니엘을 부른다.
"......자기야 나와♡"
다니엘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평생 닭살이 나본 기억이 별로 없었는데 바로 지금 자신의 팔에 닭살이 우수수 돋아 있었다. 에네스가 아잉 뿌잉을 시전하는 소리를 듣다 못해 다니엘이 문을 벌컥 열었을땐 그는 삼 더하기 삼은 귀요미를 외치며 귀여운 춤 동작을 하는 중이었다. 둘의 눈이 마주치고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