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있으면 선생님 오시니까 교과서 꺼내 놓고 있어" 1학년 8반의 반장 김종인의 낮고도 왠지 모르게 까랑까랑 한 목소리가 교실 안을 가득 메우자 시끄러웠던 교실 안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화장을 하던 여학생들은 그런 종인의 말에 급히 화장품을 가방 안으로 집어 넣은 뒤 자리로 돌아가는 종인을 곁눈질로 바라보며 예뻐 보이고 싶은지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야, 김종인. 쟤네 너 또 쳐다 봐" 종인이 자리에 앉자마자 종인의 바로 뒷자리에 자리한 태민이 턱을 괸 채로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종인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여학생들을 보고선 다시 책상으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너 쳐다보는 애들이 더 많네" "아, 근데 왜 쟤는 나 안 쳐다보냐. 지 친구를 한 번도 안 봐" "쟨 맨날 저러지 않냐, 뭐 새삼스럽게 그래" 태민의 불만 가득한 말투에 종인은 이미 익숙해진 듯 태연하게 대답을 하고 다시 교과서에 집중을 하는데 도무지 태민의 투덜거림이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자 고개를 여학생들 쪽으로 돌렸다. "야, 못난이!" 종인의 부름에 한 여학생이 고개를 살짝 종인과 태민이 있는 쪽으로 돌렸다가 무시라도 하듯 다시 MP3로 시선을 옮겼다. "저거, 저거 또 무시하네" "이름 불러라, 이름. 새끼야" "쟤 이름 안 부른 지 몇 달이 된 거 같은데, 오글거려서 어떻게 불" "야, XX!" 태민의 부름에 아까 종인의 말을 무시했던 여학생이 조용히 고개를 돌려 태민과 종인을 쳐다보았다. "뭐" "뭐? 뭐라고? 뭐?" "어, 뭐. 할 말 있냐?" 여학생 치곤 심하게 시니컬한 XX의 말투에 태민은 못말린다는 듯 고개를 저었고 종인은 태민과 똑같이 턱을 괸 채로 XX를 쳐다 보았다. "아주, 여자가 그렇게 시크해서 어따 쓸래?" "어디든 쓰겠지, 허여멀건아" "어쭈, 까불어?" 태민의 말에 XX은 으쓱이며 다시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는 데에 열중했다. 그런 둘의 모습을 보던 종인은 작게 웃으며 몸을 살짝 뒤로 돌려서 태민을 툭툭 쳤다. "저러다 또 비글된다, 냅둬" "그 때 장난 받아주나 봐라" "둘 다 똑같아" "뭐래" 종인의 어깨를 괜히 툭 치는 태민이었다. - "이.. 민, .. 태.." "... 으.." "야, 이태민!" 누군가의 큰 부름에 부스스 한 모습으로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일어난 태민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살짝 옆으로 틀어 목소리의 주인을 찾으려는데 갑자기 태민의 얼굴 앞으로 누군가의 얼굴이 확 다가왔다. "작작 좀 자라" ".. 아, 뭐야. 아까는 그렇게 어, 어? 막.." XX인 것을 확인한 태민은 비몽사몽 한 상태로 잠도 다 깨지 않은 채 어눌하게 말을 이어갔다. XX는 그런 태민이 답답하지만 귀여운 구석이 있다고 느꼈는지 대충 태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누나가 부르는데 벌떡 못 일어나네, 잠만보 돋네, 진짜" "누나? 아이고, 예. 키 153인 누님~" 태민의 깐족거림을 바로 앞에서 들은 종인이 가만히 그런 둘을 보고 있다가 XX가 태민을 때리려 들어올리는 손을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XX의 어깨를 감싸 몸을 빙 돌렸다. "매점 가자" "징그럽게 왜 이래, 갑자기. 그래" 능청스러운 XX의 행동에 종인은 자기도 모르게 웃으며 교실 밖으로 나가면서 태민을 쳐다 보았다. "너도 오든가~" "야, 야! 어깨동무 안 푸냐!" 태민의 외침에 XX와 종인은 동시에 메롱을 하고서 매점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본 태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둘을 바짝 쫓아 가서 종인과 똑같이 XX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XX야, 쟤보다 내가 더 좋지?" "둘 다 오늘 약 먹었냐, 징그럽게 왜 이래" 그런 XX의 말에 종인은 보기 드문 능글거리는 말투로 말을 했다. "너 좋아한다고~" "생 난리를 떤다, 떨어. 남자 구실 못 하게 해 줘? 둘 다 손 내려" 한 번 말로 꺼내면 실천으로 옮기는 XX을 알기에 태민과 종인은 군말 없이 팔을 내렸다. "쓸데없이 까칠해, 아주" "맞아, 여자애가 말이야. 이래서 남자친구가 생기기나 하겠니" 둘이 동시에 불만을 토해낼 때 XX는 아무렇지 않게 입을 열었다. "나 남자친구 있는데?" XX의 말에 태민과 종인은 그 자리에 멈춰 잠시 동안 멍을 때리다가 그대로 앞서 걸어가는 XX을 붙잡아 누구 하나 잡아먹을 듯한 표정을 하고 XX에게 물었다. "누구" "누구랑 사귀는데" 태민과 종인이 동시에 굳은 표정을 하고 묻자 XX는 가만히 둘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다가 태민과 종인의 턱 밑에 손을 갖다 대고서 말했다. "요 있네, 허여멀건 애랑 까만 애" XX의 말에 태민은 헛웃음을 짓고 종인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푹 숙였다가 XX에게 헤드록을 걸어 머리를 콩 쥐어박았다. "아, 왜!" "어디서 우릴 속이고 있어, 진짜 놀랐네" 그런 종인의 말을 거들기라도 하듯 태민이 XX의 정수리를 손가락으로 톡톡 치며 투덜거렸다. "사람 놀라게 하는 데엔 뭐 있다, 진짜. 다음에 또 이러면 확 안는다, 어?" "헛소리를 해라, 헛소리를" "진심이거든, 그니까 하지 말라고" "예, 알겠습니다~ 아, 아. 김종인 이거 좀 풀어, 어? 아, 빨리!" XX의 말에 종인은 아차, 하며 팔을 풀고서 XX의 뒷목으로 손을 옮겨 살살 주물렀다. "그러니까 이런 장난 치지 마, 아프냐, 많이?" "어, 아파. 윽... 내 목 나간다" "병신.." "맞고 싶다고?" "아니, 매점 가자고, 얼른" 종인의 말이 끝나자마자 수업종이 치는 바람에 그 셋은 결국 매점을 가지 못하고 다시 교실로 돌아가 수업을 들었다. -------- 안녕하세요, 작가 'TK' 입니다. 이번에 처음 시도해보는 작가 시점으로 쓴 픽이어서 그런지 계속 수정하고 수정해도 뭔가 부족한 것 같네요. 그래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첫 화는 프롤로그를 겸해서 쓰는 글이니 좀 짧은 점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