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츄잉
저희 아들보다 제가 더 기다렸던 그 날이 되었습니다.
저희 아들이 제게 사랑한다는 사람을 소개시켜준다는 날이요.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지만 저는 보통의 다른 어머니들과 같이 예쁜 아가씨를 상상하며
지독한 설렘속에서 아들의 연인을 맞을 준비를 했습니다.
아들이 사랑하는 여자에게 괜히 흠이 될까 늙어 주름져 버린 얼굴에 곱게 분을 바르고 눈화장도 했습니다.
짙은 마스카라와 아이라인만 그린게 아니라 색조화장까지 넣어 공들여 화장을 했습니다.
입을 일이 없어 장롱속에 깊이 넣어두었던 한복까지 주름하나 없이 펴서 꺼내 입었습니다.
아들이 올시간이 되었는데도 오지 않자 베란다와 대문을 왔다갔다거리며 아들이 어디까지왔나
조신하지 못하지만 부산스럽게라도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이해해주세요,선생님.
부모의 마음이야 다 똑같은 거 아닙니까. 특히 저는 백현이에게 건 기대가 남들과 다르게 좀 큰 터였습니다.
아버지없이 밝게 자라준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지만 백현이는 항상 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평소보다 더 큰 기대를 했습니다.
"백현이니?"
초인종소리가 들리자 저는 체면도 잊고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아들도 엄한 제가 이렇게 행동하는 걸 보고 놀라더군요.
제 아비를 닮은 속쌍꺼풀이 옅게진 눈이 커지는 걸 보고 전 더 머쓱해졌습니다.
하기야 아들로써는 조급한 제 어미의 모습이 낯설었겠지요. 늘 아비없는 자식이란 소리를 들려주기 않기 위해 악이란 악은 다 쓴덕에
엄한 제모습이 각인 되있을 백현이니 저는 이러한 느낌을 받아도 할 말이 없습니다.
저는 민망한 느낌도 없앨 겸 집안에 어서 들어오라고 손 짓 했습니다.
하지만 제 아들은 오랫동안 밖에서 서있었습니다.
생각과는 조금 빗나갔습니다.
분명 백현이라면 얼른 집안에 뛰어들어와 붕뜬 목소리로 같이 온 연인의 칭찬과 자랑을 쏟아낼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이상하다,이상하다.
라고 생각했지만 조급하게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혹시 부끄러움을 몹시 많이타는 여자일꺼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백현이의 손이 가늘게 떨립니다. 그리고 탄식하듯 한숨을 내뱉고 집안에 들어왔습니다.
백현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분명히...여자겠지요...
"백현아 누구니?"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예요."
"어머,백현아 못된 장난은 이제 하지 않기로 했잖니."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예요....어머니."
제 아들이 소개시켜준 사람은 다름아닌 남자였습니다.
배우상에 짙게 진 쌍커풀이 매력적이고 키가 큰 아주 잘 생긴 남자였습니다.
캐주얼한 옷이 매우 자유로워보였지만 그 남자의 얼굴은 심히 담담해보였습니다.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남자였습니다.
내 입에선 저절로 한숨이 나왔습니다.
"어머니."
"백현아,내 아가.이 엄마가 이해가 안되는데 다시 한번 설명해 줄래?"
"내가 사랑하는 박찬열,찬열이야."
"아-장난을 치는것도 정도가 있지.죄송해요.우리 백현이 원래 이런 장난 안치는 앤데-"
"어머니!제 말 좀 들어주세요!!"
"장난도 장난으로 끝내야지.엄마 간 떨어질뻔했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라고요!!!"
"................."
제 말을 거역할줄 모르던 제 아들,백현이가 악에 받쳐 소리를 질렀습니다.
평소에 쓰지 않던 어머니란 호칭까지 써가며 버럭버럭 화를 내기 까지 했습니다.
한참뒤에 인식이 되더군요.
이게 무슨 상황이고 제 아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눈을 질끈 감아버렸습니다. 이게 현실이 아니면 좋겠습니다. 차라리 현실같은 악몽이면 좋겠습니다.
불행히도 현실입니다.
불행하게도,바보 같게도.
"이름이 박찬열이고 나랑 동갑이예요. 같은 학교 같은 과예요. 엄청 성격도 좋고 활발해서 지금 과대도 하고
보다시피 잘 생겨서 다른 사람들한테 인기도 무지 많은데 못난 나를 이렇게 사랑해주고
정말 똑똑해서 교수님들이 좋아해. 그리고 나 떄문에 믿지도 않는 하느님한테 나 행복해 달라고 기도도 하고-"
두서없이 횡설수설 말을 하던 백현이는 이내 감정이 북받치는지 말을 더 이상 잇지 못했습니다.
저도 거짓말 보태지 않고 억장이 쿵하고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제 아들 말이 귀에 들어올리도 없었고요.
내가 듣지 않는 것을 눈치채자 찬열씨는 백현이를 뒤에서 다정하게 끌어안았습니다.
일반적인 사랑하는 연인들과 다름 없이.
나는 그런 그들의 행동을 혐오스럽게 바라보았습니다. 같은 남자입니다.
같은 남자들이 이런 행동을 하니 속에서 역겨움이 올라옵니다.
만약 제 아들이 여자였다면 찬열씨의 이런 행동은 좋게 봐주고 가산점까지 붙여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제 아들과 찬열씨는 남자인걸요.
"찬열이는 나를 많이 사랑해요."
"그래서?"
"우린 서로 사랑하고 있어요."
"그래서 어쩌자는 말이니?"
냉정하게 말했습니다.아니 더 냉정해져야합니다.
백현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그 옅게 속쌍커풀진 아비를 닮은 눈에서 눈물한줄기가 흘렀습니다.
이게 과연 멀쩡한 사랑인가요. 다른 사람들 축복 속에서 이뤄질 사랑인가요.
백현이는 울지 않으려고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꽉깨물었지만 두 눈에선 눈물이 쉴새없이 흘러내렸습니다.
"찬열씨 죄송하지만 저는 지금 백현이와 단 둘이서만 있고 싶네요."
"하지만...저희는 그저....."
"제 아들과 저의 일이예요.초면에 무례하지만 자리를 좀 피해주세요."
"어머님.저야 상관없지만 백현이는 어머님의 아들입니다."
어머님.
저는 이 호칭에 순간 소름이 오소소 돋았습니다.
남의 어머니를 높여 부르기도 하지만 찬열씨가 그 호칭을 쓰는 건 그런 뜻이 아닐꺼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죠.
지금 누가 누구편을 드는건가요.
겨우 초면에 보는 낯선 사람에 불구하는 찬열씨가 이런 말을 꺼내는게 화가 납니다.
제가 허탈하게 웃어버리니 눈치를 보던 찬열씨는 백현이의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주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달콤한 목소리로 제 아들의 귀에 속삭여주었습니다.
울지마. 그 모습이 가관입니다. 저는 아예 팔짱을 끼고 두사람을 쳐다보았습니다.
말도 안돼요.
우리나라같은 보수적인 나라에서 동성애가 가당키나 합니까.
특히 우리 백현이는 동성애가 어울리지 않습니다. 저렇게 똑똑하고 현명한 아이가 동성애라니요.
제 아들이 다른 사람에게 손가락질 받는 꼴은 죽어도 못봅니다. 아비없이 죽을힘을 다해 키운 소중한 아이입니다.
"백현이는 잘못이 없어요.그저 제 고백을 받아준 것 밖에 없는 걸요."
"찬열씨는 제발 빠져주세요!!"
"찬열이한테 뭐라하지마!!차라리 나한테 해!!"
찬열씨가 제 아들을 옹호하는 모습에 다시 미간이 잔뜩 찌푸려집니다.
정말 내 아들이 맞는 걸까요. 저기서 찬열씨의 부축을 받으며 울고 있는 아들이 정녕 제 아들이 맞는 걸까요.
아닙니다.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는 백현이에게 다가가 땀에 젖어버린 앞머리를 옆으로 넘겨주고 시선을 맞추며 물었습니다.
"백현아..이 엄마가 부탁이 있어..."
"........"
"지금까지 있었던 일 거짓말이라고해줘..딱 한번만.."
"어머니."
"제발 한번만."
애원해서라도 거짓말이라고 듣고싶습니다.
눈물이 나오려고 합니다. 제가 애원하는 일은 오히려 지극히 정상적인 일입니다. 제 아들이 심각할 정도로 비정상적이지요.
그런데 자꾸 눈물이 나옵니다. 이런 사랑을 인정하기 싫습니다.
"너는 내 아들이 아니다."
"..어머니..?"
"꺼져.내 집에서 꺼져버려.꼴도 보기 싫다.넌 더러운 남자일 뿐이다."
곱게 자라온 내 아들에게 꺼지라고 했습니다. 더러운 남자라고 했습니다.
찬열씨와 계속 사랑하게 된다면 이보다 더 한 말을 들을 제 아들 입니다. 이 정도로 충격받기 이릅니다.
"난 이런 아들따위 두지 않았다."
"............"
"그러니 난 너 따위를 모른다. 몰라."
현실을 부정하기로 했습니다.
막상 연애하게 되면 손가락질을 받는 사람보다 더 아픈 사람은 그 손가락질 받는 사람의 가족일것입니다. 지켜보는 사람이 얼마나 아픈지 백현이는 모를것입니다.
차라리 그 아픈 사람의 입장을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잔인하지만 그게 훨씬 더 편할 것 입니다. 서로서로에게.
"이건 사랑이잖아요!!사랑은 죄가 아니잖아요!!!"
나는 고개를 빠르게 가로져었습니다.
이건 죄입니다. 다만 윤리와 도덕에 의해 만들어진 보이지 않는 죄입니다.
윤리와 도덕에 어긋나는 사람들은 어딜가서나 환영받지 못합니다.
찬열씨는 잘생긴 얼굴을 찌푸리며 저를 빤히 바라보더군요.
그의 까만 눈동자가 저를 응시합니다. 그 까만 눈동자로 저를 바라보는 시선은 차갑지만 절실하게 사랑하고 있는게 느껴집니다.
저는 그 시선을 외면했습니다.
저는 잘 못한게 무엇 하나 없지만 먼저 그 시선을 회피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선생님.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엄마의 마음 잘 알겠어요."
남겠지요. 내 마음을 이해하고 이 사랑을 포기하겠죠.
늘 그렇듯이 제 옆에 남아주겠죠. 나는 그제서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제 아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엄마한테 두번다시 찾아오지 않을께요."
"백..현아...?"
"이제 엄마라고 부르지도 않고 아는 척도 안할께요."
그리고 제 아들은 무작정 뛰쳐나갔습니다. 목적지도 없이 대문을 열고 빠르게 어디론가 가버렸습니다.
찬열씨는 백현이를 따라가고 싶어하는 눈치였지만 멍하니 서있는 저를 보고 그냥 제 옆에 남았습니다.
저는 백현이가 뛰쳐나가고 한참뒤에 오열했습니다.
웁니다.
그저 웁니다.
내가 내쫓았습니다. 왜 하필 남자여야할까요.
내 뜻은 이게 아니었는데 왜 이렇게 밖에 표현할 수 밖에 없었을까요.
찬열씨는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아 울던 저를 조심스럽게 일으켜줍니다.
백현이에게 하듯 따뜻한 손으로 저를 천천히 일으킵니다.
"백현이 잘 챙기겠습니다."
따뜻하게 말해주는 당신이 너무도 미웠습니다.
괜히 잘 있던 아들과 나의 관계를 무너뜨린것 같아서 당신을 괜히 증오합니다.
그리고 찬열씨는 내게 꾸벅 인사를 하고 머쓱하게 걸어갑니다. 내게서 멀어져갑니다.
선생님, 제 아들은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한달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사랑을 쫓아나가더니 기어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뿐만아니라 연락도 없었습니다.
저도 연락을 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독하지요?
하지만 서로 연락을 하면 상처가 될것이 알기에 우리는 서로에게 전화한통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제서야 백현이가 제 아들인걸 실감했습니다.
억척스럽고 사랑을 쫓아 나가버렸던 저처럼요.
헛웃음이 나오더군요.
다른 누구의 아들이 아니고,
제 아들 변백현이.
정말 제 아들이 맞나봅니다.
편지가 길어졌네요.
선생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