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글씨 - 과거
검은글씨 - 현재
“이제와서 후회하면 뭐 어쩌자는거야.”
여자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했다. 힘들게 말한거였다. 꾸역꾸역 애써 꺼낸말이였다. 그만큼 신중했고 생각하고 또 생각한 문제였다. 근데 왜 그리워하는거야. 여자는 한숨을 푹 내쉬곤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썼다.
“…짜증나.”
보고싶어.
잊혀지지않아.
*
“진짜 왜그래? 나랑 한 약속은 아무것도 아니야? 왜 항상 너만 생각하냐고!!!”
울음섞인 외침이 작업실에 날카롭게 울렸다. 여자는 눈물을 애써 참았지만 가득찬 눈은 한계라는걸 알려주는듯 눈물을 방울방울 흘리고있었다. 그리고 여자의 앞에 있는 남자는 고개를 숙이곤 아무말도 하지못했다.
“사진이 그렇게 중요해? 날 잊을만큼?! 생각도 안날만큼?!!”
남자는 차마 할말이 없었다. 변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누가봐도 자신이 잘못한거였다. 일주일전부터 약속한걸 까먹어버리다니. 남자가 고개를 숙인채 가만히 있자 남자의 정수리를 원망섞인 눈빛으로 노려보던 여자는 신경질적으로 눈물을 박박닦고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헤어져.”
남자는 그 말에 놀라 고개를 들었다. 여자와 남자의 눈이 마주치고 여자는 굳게 결심했는지 주먹을 꽉 쥐었다. 단순하게 내뱉는 말이 아니라 진짜 헤어질 생각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여자는 남자의 눈을 보자 마음이 약해져 방금 한말을 취소하고싶었으나, 그러기엔 자신이 너무 힘들었다. 사랑하는 감정이 사라진건 아니다. 다만 지칠뿐이다. 남자는 여자의 헤어지잔 말에 놀랐으면서 답이 없다. 몇초간의 눈빛이 오가고 작은 한숨과 함께 여자의 입이 열렸다.
“…친구들이랑 만나는날 야외촬영있다고 안왔지? 내 생일날엔 잡지촬영있다고 안오고. 저번달에 놀이공원가는날에도 급하게 일잡혔다고 안왔었잖아.”
“……”
“더 말해줘? 이게 몇번째야?”
“……”
“…그만하자.”
“……아”
그렇게 여자는 돌아서고, 돌아서는 순간 눈물이 주체없이 터졌다. 아까 흘린 눈물은 맛보기였던건지 쉴새없이 흘러나와 앞이 흐릿했다. 천천히 발을 떼고 작업실을 나갔다. 남자는 잡지않았다. 이별을 고하고 멀어지는 그녀를 잡지않았다. 잡지않는 그가 미웠다. 항상 아쉬운건 자신이었는가보다. 더 사랑한것도 나였고, 애타는건 자신이었나보다. 바깥공기는 겨울에 가까워진 가을이란걸 실감나게 해줬다. 쌀쌀했다. 이쁘게 차려입고 나온 아이보리색 원피스가 바람에 살짝씩 팔락였고 서늘한 바람이 몸에 닿자 서러워진 그녀.
“…나쁜새끼!! 개새끼야 넌!!! 나쁜놈!!!”
길거리를 걸으며 미친사람처럼 소리를 치자 지나가는 사람들은 이상한 눈빛으로 여자를 바라봤고 그에 굴하지않고 여자는 욕을 해댄다. 나쁜놈, 개새끼. 내가 얼마나 잘해줬는데. 항상 이해해줬는데. 그렇게 여자는 울며 자신의 집으로 향했고 작업실에 남은 남자는 멍하니 여자가 나간 문만 바라봤다. 너무 멍하고 꿈속같아서 잡지못했다. 헤어지자니. 헤어지잔 말이 이상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남자는 둔했다. 자신의 감정에 너무나도 둔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화들짝 놀라 뛰쳐나가보지만 차가운 밤공기만 닿는다. 가로등은 잔잔히 그를 비췄고 그녀는 떠났다는걸 실감나게해줬다.
뒤늦게서야
아주 뒤늦게서야 그의 눈엔 눈물이 흐른다.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옆에 있던 벽을 집고 흐르는 눈물을 닦을생각도 하지못한채 고개를 숙이고 눈물만 뚝뚝 흘린다. 그깟 사진이 뭐라고. 그깟 돈이 뭐라고... 눈물이 끝없이 차올랐고 앞이 흐릿했다.
*
“보고싶다고!! 보고싶다고!! 아!! 보고싶다!!!”
“미친놈아!! 왜이래 이거!!”
남자는 포장마차에서 빈속에 소주를 끝없이 들이켰다. 헤어진지 고작 2주밖에되지않았는데 2년을 보지못한것같다. 술에 취해 남자는 보고싶다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고 남자의 친구는 식겁하며 남자를 말렸다.
“데리고와!! 내 여친 데리고오란말이야!!!”
남자는 발음이 꼬였고 눈은 이미 풀려있었다. 이미 자신의 주량을 훨씬 넘긴후였다. 친구는 더이상 술을 마시는건 무리라 생각했고 남자를 등에 업고 포장마차를 나섰다.
“보고싶다고…! 보고싶다고!!”
“그러길래 진작에 잘하지!! 움직이지말라고! 너 존나 무겁거든?!!”
끙끙거리며 남자를 업은 친구는 손을 막 흔들며 택시를 잡았고 택시가 서자 문을 열고 우악스럽게 남자를 집어넣는다. 친구는 앞좌석에 타고 남자의 집으로 향했다. 가는 와중에도 남자는 끊임없이 보고싶다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나중엔 눈물까지 흘리며 소리를 질렀다.
“미친놈아 제발 그만좀해!! 이 화상아!!!”
우여곡절끝에 남자의 집에 도착했고 친구는 남자를 현관에 집어던져놓듯 놔두곤 가차없이 문을 닫고 집을 나섰다. 남자는 혼자 집에 남았고 보고싶다고 끊임없이 중얼거리며 서서히 잠에 빠졌다.
*
여자는 sns에 올라온 남자의 사진을 보며 눈을 떼지못한다. 결국 사진을 캡쳐하고 한참을 바라보고 또 바라본다. 나쁜새끼 웃는것좀봐. 안힘들어? 나 안보고싶어? 왜이렇게 잘살고있는건데? 왈칵 눈물이 터지고 배게에 얼굴을 묻는다. 난 널 생각만하면 눈물만 나는데. 짜증나. 보고싶어. 그립다고.
남자는 변기를 붙들고 구토를 한다. 먹지않고 빈속으로 술만 들이켜 올라오는것은 없었지만. 남자는 정신을 덜차린 와중에도 자신이 참 한심하단 생각을 했다. 그때 붙잡으면 달라졌을까. 이렇게 허망하게 헤어지진 않았겠지. 보고싶다. 보고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