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끄어어엉어어억! "
손에 들린 붉은색 딸기우유. 딸기우유. 딸기우유! 경수가 눈알을 부라렸다. 눈알을 부라리는 경수를 보던 백현이 손에 들고있던 이온음료를 허공으로 던졌다가 받아들었다. 이번엔 또 왜? 백현의 물음에 경수가 손에 들고 있던 딸기우유를 집어던졌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바깥으로 터지는 딸기우유의 붉은 색에 백현이 인상을 찌푸렸다. 저놈의 히스테리 또 도졌지. 순식간에 집중된 이목에 백현이 경수의 팔을 툭툭 쳤다. " 누가 내 초코우유 딸기우유랑 바꿔치기했냐고! " 경수가 씩씩댔다. 주위에 큰 일이라도 난 듯 이목을 집중시켰던 사람들이 설마 그거 하나 때문에 그런거야?! 하고 저마다 소리지르며 수근댔다. 남 험담은 못 듣게 소근대도 제 험담은 잘 듣는다고 경수가 바닥에 발을 한번 굴렸다. " 왜, 내가 이걸로 화내서 불만있는 놈들 다 나와봐! "
땅바닥에 던진 딸기우유를 가리키며 눈을 희번덕대자 귀엽다며 경수를 쳐다보던 1,2학년 여자 학생들도 고개를 돌렸다. 바닥에 터진 딸기우유를 그 위에서 몇번이고 짓밟던 경수가 씨익 웃으며 백현을 쳐다봤다. 자리에 멈칫한 백현이 경수를 보며 마주 웃었다. 저렇게 웃을 때면 무슨 꿍꿍이인지 항상 꿈자리가 뒤숭숭하곤 했다. 직접적으로 당한게 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왜? 하고 백현이 알딸딸하게 물어오자 경수가 입을 열었다.
" 내 피같은 초코우유를 몇번이나 바꿔치기한 새끼를 데려다가 족치자. 좋지? "
얼떨결에 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거부해봤자 돌아오는 것은 앙갚음밖에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백현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경수가 진하게 미소지었다.
" 내 손에 잡혀봐라. 얼굴이 피떡이 되도록 족쳐줄테니까. " 라고 했던 경수의 다짐을 무시하듯 경수가 교실에 없는 날이면 초코우유는 감쪽같이 사라지곤 했다. 덕분에 죽어나가는 것은 경수의 주위사람들이었다. 초코우유에 대해 민감함을 가지고 있는 경수는 초코우유가 사라진 날이면 자리에서 쿵쿵 뛰어다니거나 악을 지르기도 했다. 처음 하루 초코우유가 없어졌던 날 자리에서 방방 뛰며 소리를 버럭버럭 질러대는 경수의 행동에 얼굴과 행동이 매치가 안 된다며 수근대던 아이들도 이제 그러려니 했다. 가끔씩 수업방해를 받는다며 주의를 주던 선생님들도 말로 해선 안되겠다 싶었는지 거의 포기단계였다. 이래서는 초코우유 범인이 잡히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한 경수가 비장한 얼굴로 초코우유를 책상 위에 올려뒀다. 이제 이 길고 긴 게임의 막을 내릴 시간이었다. 초코우유를 책상 위에 두고 하루종일 잠수하기로 했다. 더불어 잠수하게 된 백현 투덜거리며 경수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 어, 야야. 누구 온다. "
체육시간 텅 빈 교실에 누군가가 올 리 만무했다. 백현의 소근거리는 말에 경수가 백현의 머리를 밑으로 내리눌렀다. 졸지에 머리가 눌리게 된 백현이 아, 손 좀 치워봐! 하고 바둥댔지만 그 말이 들리는지 안 들리는지 경수가 남은 한 손으로 백현의 입술을 찾아 입을 막았다. 드르륵, 하고 교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경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처음 보는 얼굴이 경수의 책상으로 슬금슬금 다가오고 있었다. 도둑치고는 얼굴이 잘생겨서, 도둑같이 보이지도 않는데 경수의 책상 위로 손을 뻗었다. 경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쪼꼬만 경수가 책상 밑에서 튀어 올라온 것이 놀랍지도 않은지 시큰둥한 표정으로 경수를 쳐다보던 남자아이가 안녕하세요, 하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얼떨결에 인사를 받게 된 경수가 ' 어? 그랭! ' 하고 손을 흔들었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딸기우유와 초코우유를 바꾸는 남자아이의 행동에 기막혀하며 손가락질했다. " 도도도도도도,도둑! "
흥분에 말을 더듬기 시작한 경수의 행동에 머리를 정리하며 백현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머리를 박은 모양이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백현이 다시 자리에 주저앉았다. 남자아이는 백현에게 잠시 시선을 뒀다가 경수에게 시선을 돌렸다. 경수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백현을 쳐다봤다가 남자아이의 가슴께에 시선을 돌렸다. 명찰이 달랑거린다. 김종인. 경수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얼굴도 잘생겼고, 키, 키, 키,키키키키,도 크고. 여자아이들의 로망이라던가 여자아이들의 로망이라던가 여자아이들의 로망이라던가 할 만큼 멋있게 생겼는데 왜 이런짓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지 않았다.
" 도둑이라뇨. "
특유의 표정인듯 나른한 얼굴에서 튀어나온 목소리에 오히려 당황스러운 것은 경수였다. 도둑이라뇨? 이렇게 눈 앞에서 우유를 처먹고서는 도둑이라뇨?! " 니가 내 초코우유 처 마셨잖아! '"
경수의 말에 종인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 이거, 마셔도 된다면서요. "
" 언제! "
경수가 소리지르자 밑에서 한참 뒷통수를 붙잡고 있던 백현이 자리에서 불쑥 일어섰다. 종인의 얼굴을 보더니 어? 너? 한다. 경수가 백현을 보며 물었다. 너 얘 알아? 경수의 물음에 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 어, 얘 걔잖아. 니가 저번에 쟤 옷에 초코우유 쏟아서 미안하다고, 책상위에 쏟은 초코우유 새로 사 둘 테니까 마시라고. "
경수가 맹한 표정을 지었다. 그랬던 적이 있었나..? 이내 맹한 표정이 알았다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 너 그때! " 종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때요. 그제서야 경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 아아, 너구나.. 가 아니라, 근데 왜 계속해서 내 걸 마셨냐고! "
" 마시라고 해서요. 언제까지라고는 이야기 안 해 주셨었잖아요. " " 당연히 한 번 아니야?! "
" 계속해서 올라와 있길래요. 그래서 미안해서 딸기우유 항상 올려놨었잖아요. " " 내가 제일 안 먹는 우유야! " 경수가 눈을 치켜뜨며 바락바락 소리지르자 종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 알았어요. "
" 알았어?! "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는지 경수가 인상을 찌푸렸다. 종인이 두 손을 들더니 경수의 양 볼따구를 잡았다. 순식간에 황당함으로 물든 표정의 경수가 종인의 얼굴을 쳐다봤다. 종인이 조곤조곤 말을 내뱉었다. " 찹쌀떡 같이 생겨서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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