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서 쓰는 일기
by. SEIGE
글잡 "롕" 님의 "모범생이지만 속으로는 여주 씹어삼키고 남은 황민현 × 팔랑거리는 여주" 썰을 바탕으로 한 내용입니다 :)
https://instiz.net/writing/6049585
# 딸에게 보내는 편지
엄마는 다 알아
오마이걸 - 비밀정원 Piano Cover
사랑하는 딸 여주의 결혼을 축하하며
작고 여린 핏덩이가 자라 걸음마를 떼고, 스스로 글을 읽고, 이것저것 만지고 망가뜨리고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내일이면 결혼을 한다는 것이 믿겨지지가 않는구나.
고등학교 때 너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했을 때, 처음엔 뭐 초등학생도 연애하는 때고 상대가 전교 학생회장이고 하니 우리 딸 진짜 남자친구 잘 만났네 하는 생각 뿐이었다. 아침에 잘 일어나지도 않던 애가 꼭두새벽부터 일어나서 교복으로 싹 갈아입고, 틈만 나면 엄마아빠한테 남자친구 얘기를 늘어놓으며 카톡 사진도 남자친구와 찍은 사진을 한가득 올리던 너를 보며 걱정스러운 한편으로는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기우와는 달리 연애를 하면 성적이 떨어진다는 말은 너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줬기에 걱정을 조금은 덜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너는 엄마아빠의 생각보다 더 빨리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는 걸 느꼈다. 네가 막 고2에 접어들 무렵, 너의 담임선생님과 앞으로의 진로를 상담하려 학교를 찾아갔을 때였다. 교무실이 어디 있는지 찾아 헤매던 중, 딸내미가 방송부 활동을 열심히 하는데도 엄마라는 사람이 돈 번다는 핑계로 그거 한 번 들여다보지도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혹시나 네가 있을까 “방송실” 팻말이 적힌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방송실 안은 그래도 사람이 있긴 했는지 문이 살짝 열려 있었고, 네가 있을까 들여다본 그 문 틈 너머에서 남자친구를 껴안으며 입맞추던 너를 보았다. 예상보다 네가 사랑하는 남자친구와 더 깊은 것을 나누는 듯한 모습을 보고 그저 그 문 앞에서 멍하니 한참을 서 있었다.
그날 너의 담임 선생님은 걱정스러운 말은 커녕 너는 잘 하고 있다고, 지금처럼만 쭉 열심히 하면 서울대까지 노려 볼 수 있다며 이렇게 너 같은 딸이 있어서 자랑스럽다는 요지의 말을 했다. 늘 공부를 잘 하던 너와 학생회장인 네 남자친구와의 연애는 선생님들까지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공부를 잘 하는 게 대견하다며, 둘이 잘 어울린다고 칭찬을 하는데도 방송실에서 남자친구와 입맞추던 네 모습이 자꾸 생각이 나서 갑자기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터져 나오더라. 상담하기 전에 방송실에 찾아가지 않았다면 네가 학교에서 잘 해내고 있다는 말을 듣고 내 딸이 이렇게 잘 하고 있다고만 느꼈을 거야. 담임선생님이 적잖이 당황하면서 엄마를 달래는데도, 울음을 멈추지 못하고 일한다고 신경 못 써줬는데 너에게 미안해서 갑자기 눈물이 났다고 얼버무리고 상담을 마무리한 기억이 나네.
네가 그날 학교에서 돌아와 엄마가 학부모 상담 때 울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무슨 일이냐 물었을 때, 방송실에서 남자친구와 깊은 애정을 나누던 너의 모습이 그저 아이 같고 귀여운 내 딸이 맞는 건가 싶었다. 너는 서서히 어른이 되어 가고 있는데 엄마 아빠는 아직도 너를 철부지 어린 아이로만 생각했고, 뜻하지 않게 그런 너의 모습을 떠올리니 한동안은 슬픔에서 벗어나기가 힘들었어.
앞으로의 네 대학과 미래를 치열하게 고민하던 고3 때, 엄마는 친구들과 함께 대학입시 운세를 잘 보기로 유명한 점집을 찾은 적이 있다. 너는 고3이 되고 네 남자친구는 대학생이 되어 서로 볼 시간이 없어 슬퍼하는 것도 잠시 너의 담임선생님은 네가 진짜 칼을 갈았다고 할 정도로 좋은 성적을 거두는 중이어서 어떤 점괘가 나올지 궁금하고 두렵기도 했다.
보살님이 엄마를 보며 네게 남자친구가 있냐고 묻길래 둘이 사귄 지 3년째고, 남자친구가 이번에 대학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사실 엄마는 네 남자친구가 대학에 들어가면 아무래도 헤어지거나 연애 때문에 공부에 소홀해지는 것이 아닐까 걱정하고 있다고 보살님에게 털어놓았다. 그때 보살님이 하던 말은 너무 의외여서 놀랐어. 네가 천생 배필을 만났는데 뭐가 걱정이냐며, 둘이 이렇게 합이 잘 맞아서 서로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주니까 괜히 쓸데없이 뭐라 하지 말고 그냥 너를 지켜보라고만 하셨어. 그때 그 말을 듣고도 네 남자친구가 이렇게 평생의 반려자가 될 거라고 상상이나 했겠니.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네가 남자친구네 대학에 가지 못하고 대신 네게 수학 과외를 해 주던 언니가 다니는 여대로 가게 되었을 때, 너는 기뻐하면서도 오빠랑 같이 학교생활을 못 한다고 시무룩해 있었지. 환경이 달라지고 서로 다른 상대에게 마음을 돌리기 쉬울 법도 한데 긴 시간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 너희들의 모습을 보며 엄마아빠도 같이 행복해지는 기분이었어.
앞으로도 같이 살면서 지금까지 해 온 것처럼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다시 한 번 결혼을 축하해.
- 여주가 엄마아빠 딸로 와 줘서 행복했던 엄마가
***
“아아아아아악! 아 챙피해 진짜! 이제 엄마 얼굴 어떻게 볼거야 황민현!”
씻고 있는 민현을 기다리며 엄마가 쓴 편지를 읽으며 눈물이 핑 도는 것도 잠시, 엄마에게 고등학교 시절의 비밀을 들켜버린 창피함에 눈물이 쏙 들어가 버린 여주는 그저 신혼이고 나발이고 쥐구멍에 숨어 버리고 싶었다. 그날 담임선생님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무슨 일 있냐며 엄마가 상담하다가 많이 우셨다는 얘기를 하질 않나 같은 반 우진이가 뜬금없이 남친이 잘 해주는지의 여부를 물어보질 않나 아무튼 그날 좀 이상하다 싶었는데...
민현은 여주의 비명 소리에 무슨 일인가 다급히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마자 여주가 휘두르는 베개를 맞으며 내가 못 살아, 오빠가 문 제대로 안 닫아서 엄마한테 들켰잖아! 하는 꾸중을 들어야만 했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잠시 멍하니 서 있던 민현이 편지를 여주에게 건네받고는 아 뭐야, 그거 때문에 그래? 하며 크게 웃었다.
“엄마가 그날 왜 그렇게 울었는지 이상하다 했지. 그때 속으로 얼마나 속상했겠어.”
“그래서 여주도 속상했구나. 어쩜 좋지. 아직도 이렇게 귀여워서.”
그러니까 이제 우리 엄마 아빠한테도 잘 해줘야 돼요. 아까 전까지도 창피해하던 모습이 무색하게 여주는 생긋 웃으며 민현의 목에 팔을 둘러 가볍게 입을 맞췄다. 민현에게는 쪽, 하고 입맞춰 오는 소리가 마치 새들이 지저귀는 것 같이 들려 왔다. 햇볕이 따뜻한 어느 한낮, 예쁘게 가꾸어진 정원에서 지저귀는 작고 귀여운 새들과 함께인 기분이 들었다. 그 기분에 취한 민현은 여주의 머리를 쓸어내린 뒤 부드럽게 침대에 눕혀 짙게 입맞췄다.
그리고 다시, 두 사람이 아주 어릴 적부터 가꿔 온 비밀스러운 정원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후기 |
뜻하지 않게 엄마에게 현장을 들켰지만 그 사실을 뒤늦게서야 알아버린 여주.... 민현이도 여주도 겉보기에 학교생활에 충실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다 보니 주변의 어른들도 응원을 아끼지 않게 됩니다. 그 응원 덕에(?) 비밀스러운 시간들을 많이 쌓아가고, 알아 가면서 앞으로 있을 잠깐의 헤어짐을 겪고도 결국 다시 만나게 되어요. 앞으로 글을 쓰면서 그런 과정들을 엮어나갈 예정입니다 :) 늘 관심 가지고 읽어주시는 분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