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린다.
오늘도 숨만 가쁘게 내쉬는 한강우의 눈위를 손으로 휘휘 젓다 대충 주위에 자리를 잡았다. 고등학교 2학년때 쯤이였나, 신작이 나올때마다 신나가지고선 서점에 발발 쫓아다니게하던 작가 이벤트가 있었다. 딱 그날이 오늘처럼 적적하게 비가내리는 날이었는데, 날씨도 안좋으니까 제발 집에 붙어있으라는 내 말은 들은채도 않고 그 소고집을 제 스스로도 이기지 못해 벌어진 사고였다.
딱 팬 싸인회가 열리는 바로앞 횡단보도에서, 빗길에 미끄러진 차와함께 눈을 감은 이 멍청한 한강우는 어찌나 좋은 꿈을 꾸는지 동창들이 전부 군대에 들어간 지금까지도 일어날 생각을 않는다.
"그 작가 이번에 결혼한다 그러더라.
신간도 나왔던데...
아 그러게 내가 그날 가지말라고 했잖아!"
그 작가도 너같은 팬 있는거 알면 아주 놀라 뒤집어질거다. 또 한강우는 듣지도않을 말들을 툭툭 내뱉다가 의자에앉아 천장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대로 무거운 두팔을 놀려 할일없이 인터넷만 뒤적거리다, 익숙한 얼굴을 한 남자의 배너. 한강우가 그렇게 찬양하던 작가가 맞았다.
뭐....라디오같은거도 하는건가.
" 야 너 사연신청 같은거 해볼래?
아 됐다 이게 뭔 자랑이라고"
한강우라면 아주 기겁을 하면서 반대했을거야. 그치? 너라면...
ㅡ
"야 한강우. 나오늘 생일이다.
뭐 딱히 바라는건 없고, 생각해보니까....
니가 사연신청 하는거 좋아할거같기도하고...
그거 그 작가가 읽어주는거 듣고 놀라서
벌떡 일어날까도 싶어서...
그리고 나 오늘 친구들이랑 놀러갈거거든!
좀 말도 안되는 바람이지만 생일 선물로 니가 일어나있음 좋겠다!"
이제 혼잣말은 아주 당연한 일과가 돼버렸다. 아니 사실 앞에 한강우를 두고 하는말이지만 대꾸가없으니 아주 면목상의 대화일 수 밖에. 이미 한강우 얼굴만 보면 눈물이 날거같은 시기는 지나버려서, 언젠간 깨어날거에요. 하는 의사가 주는 실낱같은 희망만 가지고 매일 하루도빠짐없이 이곳을 들린다. 매일 아침 한강우가 깨어있을거란 생각은 꼭 챙겨둔 채.
어서 나오라고 핸드폰 벨소리는 자꾸 울리는데, 몇발자국 섰다 뒤를 돌아보고, 다시 그걸 반복하고. 항상그랬었지만 이정도로 발걸음이 무겁지는 않았었는데. 또 혼자서
"가지마?"
하는말을 던지곤, 더이상 만류할 수 도 없을만큼 끝김없이 흘러나오는 벨소리에 혹여나 한강우가 악몽을 꿀까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사연신청 한다! 나중에 뭐라 하지마! 하는 당부를 일러놓고서.
ㅡ
"......캬....됐다 됐어."
"뭔데?"
"그 강우가 좋아하던 작가 라디오 사연신청."
"강우? 얘이름으로 신청했어?"
"응. 음...밤에 하니까 놀다 들어가서...
라디오 틀어주고..."
현모양처가 따로없다. 친구의 웃음섞인 말과함께, 툭툭 떨어지던 비가 서서히 얼음을 머금더니 금새 주변을 뿌옇게 물들였다.
너 일어나면, 눈도 같이보고, 영화도 같이보고...
너랑 하고싶은거 100개까지만 채우려고 아껴적는다고적었는데
오늘꺼까지 적으면... 100개다.
ㅡ
문앞에서 묻은 눈을 훌훌 털어내고 들어간 병실의 모습은 여느때와 다를것 하나없이 같다.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려 왔다갔다 거리며 발걸음을 옮기다 핸드폰을 창가에 두고 한강우 옆에앉아 한올 옮겨지지도 않은 머리칼을 만지작거렸다.
"누구 남자친군지 참 인물이 좋아.
좀...어깨가 좁은거 빼고"
또 혼자서 바보같이 깔깔 웃어댔다. 그러다 현실이 자각된다싶으면 언제그랬냐는듯 표정을 말끔히 지워낸다. 근데 너 어깨좁은건진짜 신의 한수야. 사람이 다 잘날 순 없잖아
이러면 막 얼굴 발게져서 좇아왔었는데.
아,또 옛날 생각난다.
라디오가 중간 무렵쯤 왔을때, 사연신청이 되었을까 조마조마하게 기다리던 중이었다.
손가락으로 도경수 볼을 톡톡 두드리다가, 한 다섯번째쯤 닿을려던 내 손가락 끝보다,
"한강우?"
한강우의 미간이 먼저 살짝 좁혀졌다.
조금씩 손가락도 움직이는것 같고. 괜찮냐는 말을 건내기도전에 뛰쳐나가 의사 선생님 우리 한강우가요!!! 하며 병원이 떠나가라 소리를 쳐댔다.
'오늘은 조금 특별한 사연이네요.
주소나 이런건 따로 적혀있지 않고요.
신청자이름이....
한강우....
강우?'
ㅡ
"뭐....어깨가...."
한강우가 일어나고서 몇시간이 지나서까지 아주 대성통곡을 해댔다. 무어라 말 한마디 꺼내려하면 또 그 목소리에 말을 끊어버리고.
그러다 한강우가 그'어깨' 라는 말을 꺼내자마자 울음이 뚝 멈췄다.
예전에도 어깨 이야기만 나오면 그 큰 눈을 부라리면서 쳐다봤었거든.
"다 들었어?"
"응. 다 들렸어. 매일매일 한글자도 안빼놓고
다 기억해. 근데있잖아.
나진짜, 니가 생각도 못할만큼 좋은꿈을 꿨다"
ㅡ
"작가님"
"어 강우야"
"제가 꿈에서 봤던 그거요"
"응"
"지금 이 상황이랑 비슷한거 맞죠.
근데 그거진짜 꿈이에요? 라디오에서...나 안다며.
한강우라 그러니까 당황해가지고 막..."
"조용해,누구온다"
"야 한강우, "
"어?"
"누구랑 그렇게 이야기를해.
너도 뭐 나처럼 혼잣말..."
"아냐. 그냥"
"너 이제 정신과 치료도 병행한다고. 곧 통원치료도 가능하데"
ㅡ
"그래서...이름이 뭐라고?"
"한강우요"
" 니 이름이 한강우라고?"
"예...이름 한강우..."
"아, 아냐 내가미쳤지 무슨생각을..."
"선생님 아....해수누나"
"어?"
"작가님은 잘 계시죠?"
괜찮아, 강우야.
오늘
ㅅ어
"야
;
"
외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