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간다. 그게 그 녀석이 처음과 마지막에 들려준 이야기다. 그녀석과 만난건 학교 옥상에서였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서로 담배만 뻐끔뻐끔 피워대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조용히 서로 담배만 피워댔다. 서로가 없었던 것처럼. 그 녀석은 피고 있던 담배를 대충 벽에 비벼끄더니 손가락으로 퉁-하고 튕겨냈다. 건물 밑 화단으로 어지러이 낙하한다. 녀석은 담배꽁초가 바닥으로 떨어지고나서야 서서히 움직였다. 글쎄. 그당시에 그녀석과 내가 어떤 이유로 옥상에 올라갔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석과 나는 둘다 똑같은 생각을 하고 옥상에 올라갔던 것 같다. 옥상에 올라와서 하늘을 보고, 자신의 상황을 소름끼치게 느끼고, 담배한모금 쭉 빨아재끼고.
녀석이 그쯤되서야 마음의 정리를 끝냈는지 나를 바라봤다. 딱히 무슨 말을 하진 않았다. 단지 그 큰눈으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나도 마주보고 어깨를 으쓱했다. 그녀석도 내가 같은 이유로 올라왔다는 것을 알았던 걸까? 입꼬리가 기묘하게 말린 웃음을 지어보였다. 나도 아마 그런 비슷한 웃음을 짓고 있었을거다. 기묘하게-웃는것도 우는것도 아닌 그런 이상한 웃음. 나는 그런 상황이 싫어서 손으로 바깥을 살짝 가르켰다. 무슨 춤이라도 추는양, 혹은 대사 없는 연극을 찍는 것처럼 우리는 그렇게 말 없이 서로의 몸짓을 관찰햇다. 서로에게 딱히 무슨 말을 할 처지가 될까. 서로에게 간섭하지 말자. 아마 그 녀석도 그렇게 생각했겠지. 녀석은 내 손짓을 보고는 그 기묘하디 기묘한 웃음을 지은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몸짓이 너무나도 소름끼치는 영화의 한장면처럼 느리게 지속됫다. 녀석은 아무런 부담도 느끼지 않는 몸짓으로 가볍게 난간에 올라섰다. 때마침 바람이 세차게 불어왔고, 녀석의 옷이 바람에 휘날렸다. 긴 머리와 치마가 나풀나풀 흩날린다. 녀석은 양손을 펼쳐서 바람을 느끼는 듯한 자세를 취한채 다시금 나를 바라보았다. 마치 날아가기 전에 자신이 있던 땅을 한번 더 바라보는 모양새로...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I...go...난 간다."
그리곤 하늘을 향해 몸을 던졌다. 가볍게 날아오른 몸이 곡선을 그리며 지면을 향해 낙하했다. 꽃송이가 떨어진다. 녀석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귀를 스친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쿠웅-.
땅이 울리는 것만 같았다.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머리 속을 휘감고 있던 죽고싶단 생각이 사라졌다. 나는 뭐에 홀리기라도 한듯 허겁지겁 그 자리를 떠났다. 무서웠다. 두려웠다. 난 여태껏 내가 죽음을 향해 걸어간다고 생각했었다. 나 역시도 같은 겁쟁이었지만, 다른 겁쟁이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햇다. 나는 죽음에게 당하지 않는다. 난 내가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하지만 아니었다. 죽음이 나에게 성큼 다가오자 너무나 두려웠다. 다리가 떨리고 눈 앞이 까맣게 변했다. 머리 속은 순식간에 어둠으로 둘러싸여 방금 전 떨어진 꽃송이 하나만 눈 앞에서 아른거렸다. 기묘한 웃음이 눈꺼풀 위로 새겨진듯 했다.
난 도망쳤다. 두려웠다. 무서웠다. 미친듯이 옥상을 뛰쳐내려가 집으로 달려들어갔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배게에 머리를 박고 잊으려했다. 잊어야만 했다. 잊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기묘한 웃음이 옆에서 웃고있다.
나는 겁쟁이다. 알고 있다. 그렇게 나는 죽는다는 생각을 잊고 몇일을 보냈다. 어느덧 사는 것에 익숙해지고, 지금 삶에 만족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또 불행하지도 않았다. 그렇게되어서야 나는 이 곳을 다시 찾을 용기를 끄집어냈다. 노란색 진입금지 표시를 끊어내고, 다시금 옥상으로 올라섰다. 몇일이 지났지만 이곳은 변함이 없었다. 마치 그때의 하늘 그때의 바람, 그리고 그때 피웠던 담배인 것만 같았다. 한 쪽 구석에선 그 녀석이 담배 연기를 내뿜고, 나는 또 기묘한 웃음으로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하겠지. 녀석은 연극이라도 하듯이 나풀거리는 옷을 휘날리며 다시금 하늘로-.
꽃 송이가 날아오르겠지.
나는 난간 위에 섰다. 팔을 벌리자 바람이 시원하게 나를 감쌋다. 심장이 다시 뛰는 것만 같다. 지금 이렇게 서보니 그 녀석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
"I...go..."
난 하늘을 날아간다. 나도 간다.
기묘한 얼굴이 나를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