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선선한 바람이 불고, 적당히 푸른 하늘을 보며 너를 떠올릴 때면 나는 어느새 교복을 다시 입고 있었고, 그때의 바람과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고등학생으로 돌아가 있었다. 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농구를 하던 너를 그저 바라보기만 하며 적당히 두근거리는 심장으로 설렘을 안고 있던 그때로. 늘 해맑던 너가 안 좋은 표정을 한 채 교실을 들어오면 무슨 일이 있을까 많이 궁금 하지만 물어볼 수 없다. 너의 주변 아이들이 너에게 무슨 일이 있냐며 물어보지만 너는 귀찮은 듯이 너에게 뻗은 손길들을 다 쳐내고 엎드려 버린 채 너를 가둬버린다. 그런 너에게 다가가서 무슨 일이 있는지, 팔뚝에 있는 상처는 어떻게 된 것인지 다 물어보고 싶지만 나는 너가 모르는 사람들 중 한 명, 아니, 그저 같은 반인 아이들 중 한명일 뿐. 그럴 땐 나의 위치가 정말 많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너에게 다가가고 싶지만 다가가지 못하고 용기조차 못 낼 위치. 그렇게 나 혼자 설레어 하고 나 혼자 실망하고 상처를 받았던 그 시절의 짝사랑. 졸업식 날에도 너의 주위 조차맴돌지도 못한 채 그렇게 나의 짝사랑은 끝나 버렸다. 나도 대학교를 가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다 보면 너를 자연스럽게 잊게 되겠지 했지만 대학교를 가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SNS에서 너의 소식을 발견하면 심장이 자연스레 쿵쿵 뛰며 그 시절로 돌아가 버린다. 행복함이 가득 찬 너의 SNS를 보며 나는 안심했지만 어느 날 덜컥 모든 게시물을 삭제해버리고 프로필 사진 마저 없애 버리면 그때는 또 걱정이 되었다. 너에게 심각한 일이라도 생긴 것은 아닐까 하며 가슴을 졸였다. 그렇게 대학생 시절에도 나의 걱정은 온통 너 뿐이었다.
그러다 내가 취업을 하게 되고 나는 자연스레 너를 잊어갔다. 직장 생활에 바쁘게 쫓기며 주변을 살펴 볼 겨를 없이 나는 30대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30대가 되자 고등학생 때 친구들이 결혼을 한다며 청첩장을 주기 시작했다. 아, 이제 결혼을 할 나이가 되었구나 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 얘기를 하다가 문득 너의 생각이 났다.
“ 걔는 어떻게 지낸데? “
“ 걔? 걔 곧 결혼 한다고 하더라. “
“ 진짜? “
“ 응, SNS에 글 올렸어. 한 번 봐봐. "
너의 소식을 듣자 마자 나는 너의 SNS를 들어갔고 단 한 개의 게시물이 올라와 있었다. 그 게시물에는 환하게 웃고 있는 너와 옆에서 더욱 환하게 웃고 있는 여자가 있었다. 사진과 함께 글에는 ‘ 나의 상처를 이해해 주고 보듬어 준 사람, 고맙고 사랑하는 ㅇㅇ이와 결혼을 합니다. ‘ 라고 쓰여져 있었다. 너의 상처를 이해해 주고 보듬어 준 사람과 결혼을 하는구나. 안심이 되었다. 나는 미련하게 또 너를 걱정하고 있었다. 정작 곁에 아무도 없는 나 자신을 눈치채지 못하면서 어리석게 너를 걱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걱정도 한 시름 덜어 놓을 수 있겠다. 행복하게 웃고 있는 너의 얼굴을 엄지로 한번 쓸어 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인사를 하며 보내 주었다. 나의 걱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