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에게 있어 너는
계절에 상관 없이 몸을 다 덮는 학교 가디건에
늘 혼자 있는 교실의 공기같은 아이라면
나에게 있어 너는
글을 사랑하는 아이
아이들을 좋아하는 아이
도서관에 갈 때면 몸을 다 덮는 큰 담요와
점심시간과 석식시간이 되면 연기처럼 사라지는 그런 아이였다.
*
너를 처음 만난건 학교 입학식.
지루한 교장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며 꾸벅꾸벅 조는 아이들 가운데
혼자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열심히 경청하는 네가 신기했다.
그래서 2시간 내내 주구장창 네 표정만을 주시했었다.
뭐가 그렇게 신기한건지 호동그랗게 뜬 눈과
구김살 하나 없는 얼굴
그리고 틴트로 떡칠되어 있는 입술이 아닌
그 나이에 맞는 아주 말랑해 보이는 선홍빛 입술
미용실은 단 한 번도 가보지 않았을 것 같은 갈색머리
내가 생각해도 좀 변태같지만 하얗진 않은 피부지만 빛을 받아서인지 반짝반짝한 얼굴
어디에도 없는 귀한 얼굴은 아니였지만
그래도 학교와 학생이라는 타이틀에서는 보기 드문 얼굴이였다.
그것도
고등학생이
*
같은 반 짝궁 옆 번호
신기하게도 학기 초에는 늘 너와 붙어있었다.
조별 활동이나 특기 시간에도 너와 나는 떨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부끄러움이 많은 건지
아니면 아직 어색해서인지 자리에 있는 시간보다 없는 경우가 더 많았다.
수업이 끝나면 내가 말을 걸 새도 없이 책과 담요를 들고 쌩하니 나가버렸다.
마치 '나에게 말걸지 마세요' 하고 티를 내듯
하지만 무었 때문이였을까?
난 그런 모습 마저도 귀여워 보였다.
그리고 니가 귀여움의 정점을 찍은 날.
니가 나에게 처음으로 말을 건 날
많은 시간이 지난 후인 지금도 난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
점심시간
오랜만에 책이나 읽어볼까 하고 들어간 도서관은
사서 아주머니 한 분 빼고는 아무도 없었다.
물론 너도 빼고.
제일 구석진 자리에서 빛바랜 파란색 덩어리가 꼬물꼬물 움직이고 있길래
뭔가 하고 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점심도 먹지 않은건지 자신의 큰 담요를 덮어쓰고 잠을 자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 광경이 너무 웃겨서 사진을 찍으려 했지만 나중에 깰 너를 대비해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햇볕이 따뜻하게 비치는 창가 앞
파란 담요를 뒤집어 쓰고 잠자리가 불편한지 조금씩 움직이며 끼잉거리는게 영락없는 고양이 같았다.
이런 비유를 싫어할지 모르지만 내 눈에는 그래 보였다.
옆으로 삐져나온 담요가 신경쓰여
살짝. 아주 조심히 덮어주려던 순간 니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창에서 내려온 빛에 눈을 찌푸리며 나에게 내뱉은 첫 마디
"뭘꼴아?"
*
그 이후로 너와 나는 가까워 졌고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더 없는 소중한 친구가 되었다
...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난 그 해 8월 이사를 가게 되었다.
너와 아름다운 흑역사를 그 자리에 고이 묻어둔 채
가끔은 그립기도 하다 그 때의 너와 내가
지금은 어디 있을지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을지
내 기억은 날지
아, 이건 너무 무리한 부탁인가
지금 나는 너에게 말한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나에게 넌 아름다운 기억으로나마 흐릿하게 남아있음을
너도 내가 아주 작은 기억의 한 자락에 번진 잉크자욱처럼 잊지 않았기를
하지만 잊지는 못하겠지?
네 첫키스를 뺐어간 나쁜놈이니까
보고싶다.
내 첫사랑
내 청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