쾅, 쾅. 철제 문이 열리는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콰지직, 콰지직 하는 소리도 들렸고, 멀리서 비명소리도 들렸다. 직감했다. 끝이 왔구나.
애써 침착하게 침대에서 일어나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놈이 들어오면 머리를 날려버릴 생각이었다.
콰지직 하고 머리가 깨지는 소리가 옆방까지 난 후, 내 방의 문이 끼리릭 열리자... 어른 키 만큼의 높이에 손을 뻗었는데, 그 자리에 있어야 할 머리가 없었다.
놀라 얼어버린 내 앞, 열린 문 틈 사이엔 의외의 아이가 서 있었다. 악귀처럼 피칠갑을 한, 마녀 아가씨가.
"오빠, 마지막 인사 하러 왔어. 나 여기 나가려고."
소름돋을 만큼 정다운 말투의 인사였다. 피로 떡이 된 머리를 스윽 매만지면서, 그리고 손에서 떨어지는 피가 귀찮다는 듯이 툭툭 털어버리고선, 그 앤 내게 다가왔다.
순간 깨달았다. 문을 열어제치고 애들의 머리를 깨부수며 내 방까지 쳐들어온 건, 나 역시 치워버리기 위해서라는 걸.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저 괴물같은 힘을, 당해낼 재간은 없을 것이다. 나는 저 아득한 원톱에 비하면 한참이나 떨어지는 2등급이었으니까.
"네가 어디로 가는 지 몰라도, 같이 가자. 어차피 네 손에 죽으나 미스터 최 한테 죽으나 똑같아. 내가 시간을 벌테니 넌 도망가."
그 애는 피식 웃더니 내게 스윽 다가오면서 말했다.
"오빠 도움 필요없으니까, 그냥 여기서 내 손에 죽어. 그게 편할 걸."
"너한테도 나쁜 계산은 아냐. 너도 그 사람들 능력 알잖아? 혼자 도망치는 것 보다 날 이용하는 편이 나아.
어차피 나야 누구 손에 죽든 죽겠지. 너한테 시간을 벌어줄 정도의 힘은 있어. 이용할 만한 가치는 있어."
그 앤 깔깔 웃으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오빠 같은 여우 새끼를 어떻게 믿고 같이 가? 가다가 내 뒤통수라도 치려고??"
씨발. 다 알고 있었네. 너야말로 존나 능구렁이 새낀데. 어쩌지? 나는 저 애를 따라가다가 머리통을 후려치고 도망을 갈 생각이었다.
운이 좋아 살아남는데도 어차피 이런 난리가 난 마당에 연구소가 계속 존재할 수는 없었다. 여기엔 더 있지 못할 테니. 일단 위기라도 넘기고 보자는 거였는데. 간파당했다.
이럴땐 어쩔 수 없이 솔직하게 딜을 해야 했다. 한마디 더 꺼내려는 찰나, 그 애는 참지 못하고 내 이마쪽에 손을 날렸다.
슬쩍 스쳤는데도 제법 깊은 상처가 났다. 뇌에 구멍이 나기 전에 거래를 성사시켜야 했다.
"핵심만 말할게. 너랑 숲쪽으로 같이 가다가 반대쪽으로 흩어져. 내가 너인척 하고 도망가며 교란 시킬테니까, 넌 니가 가고 싶은데로 가.
여기서 힘 빼지 말고 도망치는데 전력을 다하라고. 그게 너한테 더 현명해. 괜히 나랑 싸우면서 시간낭비 말란 소리야."
"좋아, 콜. 내가 가는 쪽 반대로 달려가. 내 뒤통수 치는 순간 네 머리통도 날라갈테니 알아서 하고."
201호를 뛰쳐나와 우리는 계단을 향해 미친듯이 달렸다. 그앤 서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난 동쪽으로 가는 척 했다.
그러다가 다시 그 마녀 뒤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미스터 최가 달라붙었단 건, 결국 둘 다 죽을 운명이란 거였다. 기왕에 죽을 거면, 저 년 머리를 박살내고 죽고 싶었다.
저 마귀 때문에 항상 2류였던 내가 존심을 살릴 마지막 기회였으니까.
"이 씨발 새끼가. 귀찮게 결국 따라왔네?"
"미스터 최가 따라붙었어. 어차피 우리 둘 다 죽게 생겼네? 기왕 죽는 김에 네 머리통이나 한번 날려보려고."
"이런 미친 새끼가!!!!"
아귀다툼이었다. 하얀 실험복이 붉게 물들도록 얻어 터졌다. 하지만 그 년은 내 머리를 후려치진 않았다. 그냥 흥미로운 쥐새끼 가지고 노는 고양이 마냥
나를 짓이기고 있었다. 나는 그게 더 화났다. 항상, 저 마녀랑 붙으면 난 죽기 직전까지 얻어터지기 일쑤였고. 오늘도 그랬다. 목숨을 건 실전인데도, 똑같은 결과였다.
"죽여, 망설이지 말고 이대로 죽이라고!!!"
내 앞머리를 붙잡고 마지막 일격을 날리려는 그 애에게 난 호기롭게 외쳤다. 그 애가 내 머리를 날리는 순간, 미스터 최가 금세 따라 붙을 것이다.
그리고 나면 어느 정도 힘이 빠진 저 마귀는 그 놈 손에 죽겠지. 혼자 죽는 건 아닐테니까 차라리 그러라고 소리를 질렀다.
어차피, 지옥 갈 길동무 하나 데려가는 거라면, 이 순간 따위는 중요치 않았다.
피식, 웃던 그 마녀는 재미있는 소리를 들었다는 듯이 깔깔 웃었다. 여유 있는 표정이었다. 두려움 따위 잊은 저 표정. 살귀와 같았다.
"목숨 구걸 안 한 덕분에 산 줄 알아. 나 쫓지 말고 너도 도망쳐. 살아 남음 언젠가 또 보자고."
그 애는 내 머리를 가볍게 나무에 쳐박더니 다시 도망치는 듯 했다. 의식이 흐릿해지면서도.... 나는 이를 갈았다.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면, 네 머리통은 내가 날려주겠다고. 이런 꼴로 날 살려준 댓가를, 반드시 치르게 해 주겠다고..
하지만, 난 이 아비규환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