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졸업식이더라, 내일. "
" 벌써 졸업식이야? "
파란만장했던 고등학교 생활이 끝난다는 것이 못내 아쉬운지, 내 앞자리에 걸터앉아 뒷머리를 긁적인다. 새끼, 보기보다 정이 많은가. 눈도 못 마주치고 슬리퍼 뒤축으로 교실 바닥을 건드리는 모습이 애잔하기까지 해 어깨를 토닥였다. 걱정 마 인마, 우리가 졸업한다고 헤어질 사이냐. 자주 연락할 거니까 기운 내라. 형이 술 사줄게.
" 너는… 안 서운해? "
" 어? "
" 학교도 다른 데고… 삼년 내내 같은 반이다가 처음 떨어지는 건데. "
" 여자애도 아니고. 대학 가서 아싸 될 까봐 그러냐? 친구 없으면 형 불러, 거하게 놀아준다. 짜식. "
" …그래. "
평소답지 않게 한숨을 푹, 내쉬며 어깨를 떨어트리는 걸 보니 영 찝찝한 게, 위로는 커녕 불난 데 기름 부은 격인가 싶다. 졸업식이 문제가 아니라 다른 일이라도 생긴 건가. 설마, 여자친구랑 헤어졌나?
" 지원아. "
" 어, 송윤형. "
" 여친한테 차였냐? "
드디어 고개를 드나 싶더니, 한심한 놈 쳐다보듯 나를 보고 다시 고개를 떨군다. 여친 문제가 아닌가?
" 너, 나 여자친구 있는 거 본 적 있어? "
" 없지. 너 모태솔로…… 아."
" 됐다, 친구가 여친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놈. "
" 아니 이게. 야, 지원아. "
두터운 야상 주머니에 손을 꽂고 일어나려던 김지원이 다시 의자에 앉았다. 왜, 송윤형.
" 무슨 일… 있었냐? "
" ……. "
다시금 고개를 숙이더니 이번에는 스마트폰을 꺼낸다. 야, 야. 뭐 하냐 지원아, 나한테 대꾸할 가치도 없어서 그러냐. 어? 문자 왔네.
「 송윤형 」
「 너 」
「 못 보잖아 」
「 졸업하면 」
" 야… 너는 무슨 이걸 문자로 다 하고 그러냐. 그냥 형님 못 보는 게 너무 슬퍼요, 하면 되지. "
" 지랄, 형님은 무슨. "
어처구니가 없다며 헛웃음을 터뜨리더니, 이내 미소를 지으며 내 머리를 헝클어트리고는 일어나 운동장 쪽 창문으로 간다.
" 밖에 눈 온다 윤형아. "
" 어어, 눈 오네. 크리스마스 때도 안 오더니. "
" 졸업하지 말라고 오는 건가봐. "
" 이 새끼가 또. "
" 너, 많이 보고 싶을 거 같다. "
" 그래, 형님도 지원이가 많이 보고 싶을 거다. "
* * *
올해 졸업식은 무사히 치러졌다. 좁은 강당은 3학년들과 그들의 가족으로 인해 미어터질 듯했고, 늘상 그렇듯 한참 이어졌던 교장의 훈화와 강당 벽에 달아놓은 풍선, 졸업을 축하한다는 플래카드, 창문 밖으로 보이는 하얀 운동장마저 뭉클하게. 그리고,
" 지원아! "
" 송윤형? "
커다란 꽃다발을 들고 조심조심 걸어오는 송윤형도.
" 꽃다발 큰 거 받았네, 들고 다니면 앞도 안 보이겠다. "
" 아, 이거. 내 거 아니라 네 거. 방금 뛰어가서 사온 거니까 버리지 말고 갖고 가. "
짐을 떠넘기듯 꽃다발을 내게 안긴 후 양 손을 흔들며 뒷걸음질친다. 저거, 저러다 또 넘어지지.
" 형님은 외식하러 간다, 우리 지원이 곧 보자, 연락해라! "
" 어, 연락할게! "
" 졸업 축하하고! "
" 너도! "
뒤를 돌아 달려가는 송윤형을 보고 있자니 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3년 동안 느낀 기분.
아주 이상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