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주로 피씨로 업로드하고 모바일로 확인을 하지 않는데
모바일로 보니 경우에 따라 움짤이 잘 안뜨는 것 같습니다ㅠㅠ
혹시 안보이신다면 새로고침을 한번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요즘 지은 집 치고는 드문 6세대가 사는 작은 빌라였다.
그럼에도 이웃들이 뭐하고 살고있는지 알 겨를도 없었다.
입사 전 취득하기로 했던 각종 자격증 준비로
낮에는 공부를 밤에는 밀린 잠을 자느라고
여기가 서울이니 부산인지, 나의 기숙사인지 자취방인지도 가끔은 까먹을 뻔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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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화분들. 주인이시구나."
자격증 시험이 끝나고 오랜만에 올라간 옥상에서 재떨이 주인을 만났다.
"말라 비틀어가길래, 제가 물좀 줬어요, 괜찮죠?"
하얀 츄리닝을 입은 꽤 어려보이는 남자였다.
"아... 네. 감사하죠 저야."
싱긋 웃으며 가벼운 목례를 했다.
"누나 서울사람이예요?"
"아, 경기도긴한데,"
"그렇구나, 근데 누나 부산에는 어떻게 왔어요?"
"직장때문에 왔어요. 아직 학생이죠?"
"네, 대학교 다녀요. 와.. 누나는 직딩이네요"
살포시 웃은 남자애가 평상에 걸터앉았다.
바람이 불어와 노랗게 탈색한 머리가 민들레처럼 흩날렸다."대학생.. 좋을 때죠. 졸업을 하고나면요, 어른이 되어야할것만 같아요."
"누나, 말 편하게 해요. 지민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그 애는 자기 이름이라며 헤헤 웃어보였다.
"이름 이쁘다, 지민이."
"누나, 누나도 예뻐요."
훅 들어오는 소년같은 고백에 웃음이 났다.
"너 인기 꽤 많겠다, 그지?" 지민이는 통통한 입술을 꾹 다물며 수줍게 웃어보였다.
20살 시절의 기억이 났다.
지민이는 22살. 대학교 1학년이라고 했다.
1학년 1학기를 끝마치자 마자 군대를 들어갔다 얼마 전 전역을 해 칼복학을 했다고 한다.
나름대로 귀엽고 착해 가끔 평상에서 만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눴다.
부산이 고향이지만 부모님이 조용한 마을로 이사를 가시면서 자취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며 지민이는 나와 가까워졌다.
"근데 지민이 너, 담배는 어디서 배운거야?"
"누나, 잔소리는 사절인데,"
"아니 그냥, 좀 궁금해서. 20살때부터 폈어?"
"군대가서 배웠어요. 그래야 선임들이랑 더 대화를 한다거나..쉰다거나, 그럴 수 있었으니까.
전역하면 끊어야지, 했는데 잘 안되네요."
지이이잉- 지이이잉- '김남준'
"어 무슨일이야?"
-동기들이랑 부산놀러왔는데, 너도 나와. 한잔하자.
"뭐? 지금? 야 김남준 넌.. 미리 좀 말해주지."
-서프라이즈야, 우리 서면이니까 빨리 튀어와라-
빈 맥주캔을 한 손으로 구기며 일어서서 담배를 꺼내드는 지민이와 눈으로 인사하곤 급하게 서면으로 달려갔다.
-
"탄소야!!"
"야, 얼굴 빨개진 것좀 봐, 너 술도 못하면서 무슨.."
소주병과 맥주병이 아무렇게 나뒹구는 동기들의 테이블에 앉았다.
남준이는 이미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있었다.
왁자지껄 밤 늦도록 술자리는 이어졌다.
오랜만에 만난 동기들과의 풀 이야기들은 너무나도 많았다.
양 옆으로 아이들이 많이 취해갈 때쯤, 남준이가 옆으로 앉았다.
"여기 누가 오자고 그랬어?"
"내가 찾아봤어. 좋지."
"그러네, 부산 애도 아니면서 이런 곳은 어떻게 알았대."
남준이가 직접 고른 곳이란다.
이젠 취해버린 남준이는 배시시 웃으면서 테이블에 고개를 묻었다.
"아 저새끼 취했어-"
"야야, 냅둬, 쟤 무거워 우리가 처리할게."
동기들이 남준이를 부축했다.
"어 그럼 나 화장실좀 갔다올게."
"응 계산하고 나가있을게."
흰 복도를 따라 걸었다.
후 하고 숨을 내쉬니 소주 냄새가 훅 올라왔다.
고개를 푹 숙이고 걷는데 툭하고 머리가 부딛혔다. 마주오던 남자의 가슴팍에.
"죄송..."
"..."
까만 두건을 쓱 까만 앞치마를 두른 민윤기.
까만 신발에 까매진 장갑을 끼고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민윤기.
아, 민윤기다. 보고싶었어.
까만 눈동자가 길을 잃은 채 흔들리고 있었다.
"윤기야..."
가슴팍에 자수가 민윤기의 현재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맛있는 갈비'
안쓰럽고, 아프고, 안타까웠다. 동시에 안고싶었고, 입을 맞추고싶었고, 보고싶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와락하고 윤기를 안았다. 윤기는 미동이 없었다.
나를 껴안아주지 않았다.
난 그대로 윤기를 더 꽉 안았다.
"나쁜놈.."
다시 윤기를 밀쳐내도 그 애는 변다른 반응이 없었다.
하다못해 말 한마디도 없었다.
"...넌 여전히 아무렇지 않구나, 정말 넌 어렵다, 어려워."
"...난 너가 전부였어!"
뒤돌아가는데 윤기가 별안간 소리쳤다.
뒤돌아보니 그 애는 처음보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 감정인지 느낄 순 없었다.
"몰랐어, 넌,,, 표현을 안했으니까."
"도대체 내가 언제 안했는데? 내 나름대로 너에게 티 엄청 냈어, 난!"
성큼성큼 긴 다리로 나게 달려온 윤기가 내 손을 잡았다.
"...나름대로? 착각했나본데, 상대방이 알아챌 수 있게끔 하는게, ...그게 티를 내는거야."
"넌 말이야, 나보다 더 중요한 사람이었어 그때. ...넌 날 알잖아. 날 알아줬잖아."
몇 년간 소식도 없이 사라졌던 사람이 다시 나타나선 한다는 말이.
자길 알아준 내가 그때 참으로 중요한 사람이었고 전부였단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윤기는 나에게 스무살 때도, 지금도 여전히,
"아직도 난 널 모르겠다, 윤기야."
-
그날 밤 나는 집으로 가 한참을 울었다.
엉엉, 소리내어 운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저릿하게 가슴이 아팠다.
"번호...번호라도...물어볼걸..."
나 스스로도 바보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휴지를 뽑아들며 엉엉 울었다.
와중에 번호를 못물어본걸 억울해하다니.
"아씨..찌질해 진짜."
눈물을 슥슥 닦아내고 자리에 누웠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난 그런 모습의 민윤기를 바랬던 것이 아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그 애가 어엿한 어른이 되어 지난 날을 사과하며 다시 나에게 와주기를 바랬다.
너무 동화같은 이야기지만, 사실은 정말 난 그래주길 바랬다.
이기적인 나에게 돌아온 것은 초라한 그의 모습이었다.
-
"저기, 혹시 여기 알바생 중에.. 민윤기라고."
"아 그친구요? 단기였는데? 이제 안나와요."
"아...네 감사합니다."
다음 날 퉁퉁 부은 눈이 가라앉기만을 기다렸다가 갈비집으로 달려갔지만 윤기는 찾을 수 없었다.
나쁜자식. 6년만에 안긴 윤기의 품은 따뜻했다.
물론 그 온기가 그 아이의 온기라기보단 고깃집 숯불에서 나오는 열기였겠지만.
속상한 마음으로 집으로 오는 내내 윤기의 목소리가 머리에 멤돌았다.
난 너가 전부였어.
윤기의 입에서 나올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말.
정말 스무 살 그 시절, 나는 윤기의 세상이었을까.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버렸는데 여전히 그런걸까?
아, 시간을 다시 되돌리고싶다.
다시 시작하고싶어 제대로 너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