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하남이랑 동거하는 썰
02
엄마에게서 온 메시지를 보고 한참 멍청히 서 있던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고 내 방 앞에 어색하게 서 있는 김한빈을 바라보았다. 여자 방이라고 함부로 들어오지 않는 듯 한 발짝도 안 움직이고 그 자리에만 서 있는다.
그렇게 국자를 든 채 순진하게 눈을 꿈뻑이는 한빈이의 모습을 빤히 쳐다보고 있자니, 지금이 대체 무슨 상황인지 서서히 파악이 되기 시작했다.
동거라니..
내가 김한빈이랑 동거라니!!???
"야..이거..진짜, 진짜야?"
끄덕끄덕. 잔뜩 당황한 내 목소리에 갈색 머리통이 위아래로 흔들렸다. 그 단호한 대답에 다시 뭐라 할 말을 잃고 멍청하게 서 있으니, 마냥 어색하게 굳어있던 한빈이가 슬쩍 웃는다.
"우리 부모님 또 외국 나가셨거든요. 이번엔 좀 오래 있게 됐는데 누나네 어머님이 둘이 같이 살아보는건 어떠냐고 하셔서.."
"우리 엄마가??"
아 세상에. 어쩜 내 의사는 하나도 안 묻고 멋대로 이런걸 정해버릴 수가 있지.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터졌다. 당장 엄마한테 화를 낼 생각으로 핸드폰 화면을 켜니 마침 엄마한테서 전화가 걸려온다. 나는 일단 쉼호흡을 한 번 하고 전화를 받았다.
[딸! 한빈이 만났니?]
"엄마!!"
[아, 너 이렇게 화 낼 줄 알았다니까.. 미안해, 미리 말 못 해줘서.]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고 왜 엄마 멋대로 다 정한거야? 나한텐 한 마디도 안 하고?"
[왜, 너 예전에 한빈이 되게 좋아했잖아. 그리고 요즘 여자애 혼자 사는게 엋마나 위험한데. 곁에 남자 하나 있으면 든든하고 좋지 뭘.]
"그걸 지금 말이라고..!"
[어릴 적부터 부모님 바빠서 혼자 지내던 앤데 또 혼자 살게 되는거 안쓰럽잖아. 난 내 딸 맡길 든든한 사람 있어서 좋고 넌 안 외로워서 좋고 한빈이는 따뜻한 밥 먹을 수 있어서 좋고. 그리고 너 요새 자꾸 외롭다고 강아지라도 키워야 겠다고 막 그랬잖아?]
"아니 한빈이가 강아지도 아니고.. 하 정말 내가 엄마 때문에 미치겠다."
[너 혼자 살기에는 그 집 너무 크고 쓸쓸하잖아. 나랑 네 아빠 그 집에서 이리로 옮기고 항상 네 걱정만 했어.]
엄마의 말에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내가 대학생이 되던 올해 초, 부모님은 일 때문에 지방으로 내려가셔야 했다. 난 대학때문에 계속 원래 집에 남아서 혼자 살게 되었고. 어느정도 준비는 했지만 막상 혼자 살게 되니 적응이 되질 않았다. 그런 딸을 걱정하며 부모님은 얼마나 마음고생 하셨을까.
[오랜만이라 좀 당황스럽겠지만 잘 지낼거라 믿어. 한빈이 좋은 애인거 알잖아. 응?]
"아.. 내가 졌다, 진짜."
[이번달 말에 한 번 올라갈게. 밥 잘 먹고 한빈이랑 잘 지내고 있어. 알겠지?]
"..네."
결국 나는 꼬리를 내리고 순순히 동의해버렸다. 어차피 엄마의 결정을 뒤집을 수 있을거란 생각은 안 했지만 3분만에 끝나다니 참 싱거운 반항이었다.
내가 뾰루퉁한 얼굴로 전화를 끊자 한빈이가 아까보다 더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우리가 연락이 끊긴 뒤로 어른들 사이에서 토막토막 들려오던 소식들에 의하면, 김한빈은 재능이 넘치는 아이였다. 공부도 잘 하고 운동도 잘 하고, 성격도 착하고 예의도 바르고 모범적이며 리더쉽이 뛰어난.
어른들의 예쁨을 독차지 하는 듯 간간히 들었던 그의 이야기는 전부 다 칭찬이었다. 우리 부모님이 김한빈을 무한 신뢰하는 이유가 어느정도 이해가 갔다.
"누나."
"어?"
"일단 씻고 나와요. 해장국 맛있게 끓여줄테니까."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그래, 이왕 이렇게 살게 된 거 재밌게 지내보지 뭐.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제대로 한 번 끓여보라고 하자 김한빈이 진지한 눈빛을 보내더니 국자를 휘두르며 부엌으로 돌아갔다. 나는 갈아입을 옷을 챙긴 뒤 욕실로 향했다. 얼른 씻고 김한빈표 해장국 먹어봐야지.
개운하게 씻고 나오자 콩나물국 냄새가 빈 배를 자극했다. 일단 맛있는 냄는 합격.
"누나 이리와요. 내가 머리 말려줄게요."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꾹꾹 눌러서 물기를 짜고 있으니 김한빈이 다가와서 수건을 가져간다. 나는 그를 따라 부엌으로 들어와 식탁 앞에 앉았다. 이것저것 냉장고에 들어있던 밑반찬들을 예쁘게 꺼내놓고 밥이랑 국을 야무지게 떠다 놓은 모습이 기특해서 웃음이 나왔다. 빙글 웃는 얼굴로 돌아보며 잘 먹을게, 인사하니 수줍게 웃는 김한빈이다.
"오 맛있는데?"
"정말요?"
"응. 짱이야! 언제 또 끓여본 적 있어?"
"아뇨. 처음 해봤어요."
어째 나보다 요리 실력이 더 좋은 것 같다. 난 자취를 일 년 가까이 했지만 늘어나는 요리 실력은 없고 밥하기 싫다는 게으름만 심해져서 즉석식품으로 대충 끼니를 때우곤 했는데.. 앞으로는 종종 한빈이한테 밥 해달라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맛있게 식사를 하는 동안 한빈이는 조심조심 내 머리칼을 만지며 물기를 닦아냈다. 나는 그 손길을 그러려니 하며 열심히 밥을 우물거리다가 문득 떠오른 의아함에 고개를 꺾어 김한빈을 바라보았다.
"근데 너 왜 자꾸 존댓말 써?"
하도 자연스러워서 그냥 넘겼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어색하다. 몇 년 안 봤다고 어려운 척이야 뭐야. 김한빈은 내가 입 안에 들어있는 밥을 오물오물 다 씹어 삼킬때까지 아무 말 없이 날 내려다보다가 빙긋 웃으며 물었다.
"그럼 반말 쓸까요?"
"아무래도 그게 편하지 않겠어?"
"그래 그럼."
순식간에 편안하게 말을 놓는 모습에 잠시 멍해졌다. 존댓말도 그렇지만 반말도 뭔가 어색한 느낌이다. 너무 오랜만이라 그런가. 나는 쩝 입맛을 다시고는 마저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러다 뒤에서 계속 머리를 말려주는 김한빈을 애써 내 앞에 앉힌 뒤 이런저런 과거 얘기를 나누며 식사를 끝냈다.
잠시 뒤, 설거지조차 본인이 하겠다며 날 부엌에서 내보내는 김한빈을 향해 애정이 가득한 눈빛을 쏴준 나는 양치질을 끝내고 소파에 늘어졌다. 그리곤 거실에 놓여진 두 개의 트렁크 가방과 두 개의 박스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가 부엌에서 나오는 김한빈을 향해 팔랑팔랑 손을 흔들었다.
"왜?"
"너 짐은 저게 다야?"
"응. 그건 그렇고 나 방 좀 알려주라. 어느 방 써야 할 지 모르겠어서 그냥 일단 여기다 짐 놨는데.."
"어제 잠도 거실에서 잤어?"
"응. 소파에서."
아이고. 바보같이 이불도 없는 소파에서 새우잠을 잔 모양이다. 그냥 아무 데나 들어가서 편하게 자면 되는걸. 나는 가방 하나를 집어들고 김한빈한테 따라오라는 눈치를 줬다. 그러자 그가 냉큼 자기 짐을 들고는 내 뒤를 따른다.
안방은 가끔 올라오시는 부모님이 쓰시기에 맞은편에 있는 빈 방을 열고 들어갔다. 가방을 내려놓고 김한빈에게 잠시만 기다리라고 한 뒤 이불을 가지러 안방으로 갔다. 한 번에 다 옮길 심산으로 커다란 이불더미를 꺼내 낑낑대며 들고 있는데, 갑자기 손이 가벼워졌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뒤를 돌아보자 김한빈이 날 보며 웃더니 이불들을 가뿐하게 들고 방을 나간다. 빈 손으로 그 뒤를 졸졸 따라가니 어느새 나머지 짐들도 다 옮겨놓은 상태였다. 어딘가에 버리지 않고 이 방에 냅뒀던 책상과 서랍과 책장은 앞으로 한빈이의 차지가 되었다.
짐을 풀고있는 그의 모습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니 우리가 같이 살게 되었다는 게 정말 실감이 났다. 난 그냥 살 좀 빠진게 끝이지만 김한빈은 어릴 때보다 훨씬 멋있어진 것 같다. 여자들한테 인기 많겠네. 실없이 웃으며 붙박이장을 열어 옷을 넣고있는 한빈이를 쳐다보고 있던 나는 그가 꺼내드는 교복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헐 교복이네."
"응. 나 고등학생이잖아."
그의 말에 바보같이 아.. 하면서 깨달았다. 맞아, 지금 한빈이가 고3이지. 다시 실없는 웃음을 흘리고 있던 나는 짐정리를 대충 끝낸 김한빈에 의해 방에서 나왔다. 내 어깨를 가볍게 감싸고 데리고 나오는 행동이 되게 자연스럽다.
"야 기맘빈."
"응?"
"너 그동안 여자친구 많았지?"
내 뜬금없는 물음에 김한빈이 의아하단 얼굴로 나를 내려다봤다. 그리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나를 소파에 앉히더니 자기도 내 옆으로 와 앉는다. 빨리 대답하란 의미로 팔을 쿡 찌르자 그가 웃음을 터뜨리며 대답했다.
"나 여친 사귄적 없어."
에이, 거짓말. 한빈이의 단호한 대답에 말은 안 해도 얼굴에서 다 티가 날 정도로 내 표정이 구겨졌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내 반응에 그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내 눈을 빤히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나 모태솔로 맞아요, 누나."
사과사과
ㄹㅎㅎㅎ일단 늦어서 미안해요..ㅠㅠ
아무래도 평일엔 할 일이 많아서 금요일~일요일 사이에만 업뎃이 가능할 것 같아욥..
하루종일 글 생각을 하는데 쓸 시간이 없네여ㅠㅠㅠ게다가 제가 워낙 글 쓰는게 오래 걸려서ㅠㅠㅠ주말에 폭풍업뎃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ㅅ;
읽어주시는 분들 다 감사드려요♡
그리고 암호닉 신청해주신 워더 님 사랑합니다..♡
암호닉이나 원하는 소재 있으시면 맘껏 주셔도 돼요!^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