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을 지내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공부를 잘하는 아이나 운동을 잘하는 아이 또는 놀기를 좋아하는 아이 등 여러 부류의 아이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른바 '신은 불공평하다' 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줄 만큼의 특별한 존재감을 발휘하는 인물이 드물지만 한두 명씩 꼭 있는데, 민종이 생각하기에 오 실장이 그러한 케이스였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급 회장이었던 오재준을 담임이 항상 오 실장으로 부르는 바람에 오재준은 항상 오 실장으로 불렸다. 전교에서 오재준을 모르는 학생은 전학생을 빼고는 없었지만 오 실장을 모르는 학생은 없었다. 전학생마저도 다 알았다. 그만큼 오 실장의 존재감은 특별했다. 입학 첫날부터 엎어져 잘 정도로 주변 환경에 무심한 편인 민종마저도 오 실장의 이름은 외울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를 말하자면 우선 오 실장은 잘생겼다. 키는 큰데 머리통은 TV에 나오는 연예인들처럼 작았고, 햇빛에 그을려 시커먼 고등학생 남자애들 사이에서 눈에 띄게 흰 피부를 갖고 있었다. 얼굴은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잘생기기도 했지만 여자애들이 주로 좋아하는, 흔히 말하는 꽃미남 스타일처럼 곱상하게 생겼다. 여자애들은 오 실장에게 환장했다. 발렌타인 데이나 빼빼로데이가 되면 오 실장의 책상에는 초콜릿과 선물이 쌓여 있었고, 전교에서 가장 예쁘다고 소문난 김은민이 오 실장을 좋아한다는 것은 거의 모두 아는 사실이었다. 남자반과 여자반으로 갈라져 있었지만 김은민은 틈만 나면 오 실장을 찾아와 이 문제를 가르쳐 달라 저 문제를 가르쳐 달라 오 실장에게 말을 걸기 바빴다. 항상 전교 1등인 오 실장은 아이들이 묻는 문제는 전부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김은민은 설명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았지만 말이다.
처음에는 오 실장을 아니꼽게 보는, 박우성을 비롯한 불량한 몇몇 남자 아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오 실장은 남자 아이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오 실장은 거의 대부분의 운동을 잘 했다. 특히 축구를 잘 했기 때문에 축구 시합을 하면 오 실장이 속한 팀은 항상 이겼고 자연스레 남자 아이들도 오 실장을 따랐다. 한번은 아침 시간에 사건이 터졌다.
" ...오늘은 돈 없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고개를 푹 숙인 심소한이 대답했다. 공부는 그래도 좀 하는 녀석인데 어쩌다 박우성 녀석한테 찍혀서는. 박우성의 옆에 서 있던 민종이 한숨을 쉬고 박우성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말했다.
"이 새끼 오늘은 진짜 없는 것 같다. 이쯤에서 관두자. 곧 담임도 올 텐데."
...물론, 민종 역시 박우성이 그 말을 들을 리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정말 관두기를 기대하고 한 말은 아니었다. 박우성은 몇 번 으르렁 거리며 욕을 하더니 심소한의 멱살을 잡아 눈앞으로 끌어올렸다. 민종은 마음속으로 심소한의 애도를 빌며 책상에 엎드려 잠을 청했다. 아니, 그러려던 참이었다.
"내가 학교에선 이 짓 안 하려고 했는데 말이야. 씹. 어? 돈은 재깍재깍 내......"
"앉아."
낮고 조용한 음성이 교실에 울려퍼졌다. 동시에 떠들썩하던 교실이 몇 초간 정적에 휩싸였다. 민종이 고개를 들자 아이들의 시선은 모두 한 곳으로 모여 있었다. 민종 역시 숨죽이며 박우성과 오 실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얼어 있는 심소한과 주먹을 치켜든 채 서 있는 박우성, 그리고 박우성의 치켜든 팔을 한 손으로 잡아 막고 있는 오 실장의 모습이 보였다. 박우성은 현재 상황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눈꺼풀을 두어 번 끔벅거리다 곧 사나운 목소리로 오 실장을 향해 으르렁댔다.
"이 새끼가...!"
그 순간이었다. 박우성이 미처 움직이기도 전에, 박우성이 오 실장에게 잡힌 왼팔이 기형적으로 꺾였다. 민종은 순간적으로 숨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박우성과 같은 불량한 학생들과 어울리면서 싸움이라면 좀 한다 하는 것들을 많이 보았던 그였지만, 그토록 정확한 각도로 팔을 꺾는 기술을 구사하는 고등학생은 처음 보았던 것이다. 토마토처럼 시뻘겋게 변한 박우성의 얼굴이 자신을 향했을 때, 민종은 정신을 차렸다. 박우성을 도와줘야 하나? 하지만 저 새낀 반드시 나중에 오 실장같은 놈쯤은 혼자서도 충분한데 왜 괜히 도와줬냐며 투덜댈 것이 분명하다. 또한 오 실장의 시퍼런 기세에 민종 역시 감히 박우성을 돕겠다고 나설 엄두가 나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
"씨발. 담에 안 내면 보자. 씹새끼."
다행히 민종의 고민은 박우성이 씩씩대며 심소한에게 화풀이를 함으로써 마무리되었다. 그제야 오 실장은 박우성의 팔을 놓아주었고, 박우성은 아픔을 최대한 참고 있는 것 같이 터질 듯하게 새빨간 얼굴로 한 팔을 붙잡고 서둘러 민종의 옆으로 와서 앉았다. 교실은 여전히 조용했다. 오 실장은 천천히 긴 다리를 움직여 교탁으로 갔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민종이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무서운 놈."
박우성의 성난 눈초리가 자신을 훑는 것이 느껴졌지만, 민종은 그 순간 오 실장의 눈빛 이외에는 아무것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민종이 그 말을 한 순간, 오 실장의 눈빛이 자신에게로 와 멎었던 것이다. 항상 선하게 웃는 녀석의 모습밖에 보지 못했었다. 그러나 민종은 오 실장의 자신을 향한 눈빛이 방금 전 박우성을 보던 것과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벌레를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순간 민종은 '난 박우성 같은 놈과는 달라' 따위의 유치하기 그지없는 항변을 하고 싶었다.
그 이후로 오 실장의 말에 반항하는 녀석은 없었다. 원래도 아이들 대부분은 오 실장을 좋아했지만, 그 사건 이후론 오 실장은 박우성의 기세에 눌려 기를 펴지 못했던 아이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이따금씩 박우성을 비롯한 몇몇 아이들이 뒤에서 오 실장을 욕하기는 했지만, 감히 그 앞에서 무슨 짓거리를 하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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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이 가까워지자 들뜬 분위기가 반 전체에 스며들어 있는 것 같았다. 학교는 떠들썩했다. 그 중 반은 오 실장과 김은민에 대한 이야기였다. 드디어 김은민이 오 실장에게 고백을 했던 것이다. 그것도 공개로. 오 실장은 생각할 시간을 달라는 뻔한 대답을 했는데, 김은민은 오 실장이 자신의 고백을 받아줄 것이라는 것에 한 치의 의심도 없어 보였다. 벌써부터 연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둘이 키스를 했다는 둥, 갈 데까지 다 갔다는 둥 별의별 소문마저 나돌았다. 그러나 소문의 주인공인 오 실장은 예상 외로 덤덤히 자기 할 일을 할 뿐이었다. 사교적인 녀석은 친구들이 짓궂게 놀리면 장난스레 받아치기까지 했다. 기분 나빠하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김은민이 말을 걸어도 평소처럼 웃으면서 대할 뿐이었다. 아마도 무언의 긍정이리라.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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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민종은 늦게까지 혼자 학교에 남아 있다가 막 교문을 나서는 중이었다. 학교는 그다지 부자라고 하기에는 뭐한 동네에 위치해 있었기에, 학교 주변에서 비싼 외제차 따위를 보는 것은 매우 드물었다. 그래서인지 어둑어둑해서 시야가 별로 좋지 않았음에도, 교문 앞에 세워진, 한 눈에 보아도 비싸 보이는 외제차는 민종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관찰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차를 향해 한 걸음 내디딘 순간, 나직한 말소리가 또렷이 민종의 귀에 꽂혔다. 차 뒤편에 누군가 있다. 민종은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뚝 멈추었다.
"다시 말해봐. 오재준."
"...여자친구. 생겼다고."
민종은 다시 한 번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뒤이어 울리는 목소리는 오 실장의 것이 너무나 분명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