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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글 암흑(暗黑) 18 l BL
익소에서 온 소녀 전체글ll조회 787l
암흑(暗黑)

Written by. 익소에 사는 쏘블리들





“ ……그래서 수술을 해도 완치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리고 워낙 리스크가 커서-“



하얀색 의사가운을 입은 사내가 눈을 천천히 깜빡이며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가 말하는 주제에 흥미를 잃어 의자를 밀치고 일어났다.



“그냥 말씀 하시죠. 내가 걸린 병이 불치병이다. 현대의학으로서는 고칠 수 없는 병이니 평생 장님으로 살아라. 32년동안 눈뜨고 살았으니 남은 생애에선 그냥 눈감고 살죠 뭐. “



앞에 앉은 사내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무엇을 말하려고 했으나 병원 냄새를 싫어하는 나는 그를 가뿐히 무시한 채 문을 열고 나왔다.





+++





“사표 내겠습니다.”



나는 하얀 봉투를 내밀며 말했다. 그래도 많이 정든 곳이고 돈도 많이 줘서 좋았는데…… 조금은 아쉽지만 별수 있나. 눈이 멀면 컴퓨터 타자도 못 칠 테고 고객도 만날 수 없으니. 이 회사와 나의 인연은 여기까지 인가 보다.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한이연씨? “


“사표 내겠다고 했습니다.”



그의 얼굴에선 다양한 감정을 볼 수 있었다. 노여움, 당황함, 슬픔. 음…… 봉투가 마음에 안 들었나? 그가 왜 저런 표정을 짓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문을 열고 나가려던 순간 그의 한마디가 나를 불러 세웠다.



"아니 잠깐. 왜 그만두겠다는 겁니까?"


"개인사 문제라서요. 죄송합니다 과장님."



잘라내듯 대꾸하는 나의 말에 그의 표정이 다시 한번 굳었다. 뭐에 저렇게 화가 난 거야? 내가 회사를 그만 두는 게 그렇게 기분 나쁠 일인가?
그는 길고 하얀 손으로 자신의 턱 선을 매만지며 말했다.


"개인사라...무슨 개인사 길래 이런 급작스런 사표를 내는 건가요? 같이 3년을 일해온 동료로써 그 정돈 알 권리 있다고 봅니다만,"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훝으며 단호하게 말하는 그의 태도로 보아, 이유를 말하기 전까진 나를 내보내지 않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순간 그의 매서운 눈초리를 보고 잠시 주춤했지만, 이내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정말 개인적인 문제라서요.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나는 그 자리를 도망치듯 빠른 걸음으로 나왔다. 어딜갈까.. 막상 회사를 나오니 할 것이 없다. 남은 시간은 6개월 남짓하다. 빠른 속도로 퇴화할 것이다. 언제 제가 제대로 활동 했냐는 듯. 마음속 깊이 흘러오는 착잡함에 숨을 삼켰다. 지금이라도 뭔가 많이 봐 두는 편이 좋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한강이었다. 다리에서 내려다보이는 강에 불꽃이 핀 듯 했다. 찬란한 수면이 시야 가득 들어왔다. 그래, 나는 지금 사진을 찍고 있는 거다. 시간이 흘러서 머릿속 사진 한 귀퉁이가 닳아 없어진다고 해도 영원히 남을.
퍽 감상적인 생각이었다. 난간에는 지나다니는 차들의 매연으로 까맣게 무언가가 껴있었지만 힘을 주어 잡았다. 6개월 뒤면 손에 뭐가 묻든 알지도 못하겠지. 그렇게 까매진 손바닥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을 무렵 무언가가 단단하게 어깨를 붙들었다.



"뭡니까"

"그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겁니까?"



몇 시간 전만 해도 내 상사였던 사람 얼굴에 초조함이 묻어 나는 게 보였다. 이런 얼굴은 맹세코 처음이었다. 어깨를 잡은 손을 떼내려다 말았다.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럼 왜 생전 안 하던 짓을 하고 계십니까"


"개인적인 사정으로.."



말을 끝내지 못했다. 상대방에게 잡힌 어깨가 지끈거렸다. 이 남자는 제가 손에 힘을 줬는지도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내 기억으론 이렇게 정신 빼놓고 사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초조함을 넘어 언뜻 절박함까지 보이는 얼굴에 대놓고 귀찮으니까 참견 말고 사라지라는 말은 할 수 없어 그냥 입을 닫았다.



"앞으로 입에서 개인사정의 ㄱ만 나와도 둘이 같이 강에 뛰어드는 겁니다"


멀쩡하다 못해 어딘지 냉철하기까지 했던 사람이 갑자기 왜 이러실까.


"왜 갑자기 사표 내고 이러고 있는지 말씀하세요"


"제가 왜요"


무슨 상관이 시길래. 왜, 말하면 눈이라도 떼 주려고? 문득 들여다본 남자의 눈이 활활 타올랐다.



"말, 하십시오"


"그렇게 따지면 그쪽도 지금 정상 같지 않으신데요."



남자는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우리 사이에 대화가 사라졌다. 눈에서 시선을 떼고 상황파악을 하려 노력했다. 삐뚤어진 넥타이 하며. 생전 안보이던 모습을 보이는 건 피차 본인도 마찬가지인 것 같은데. 나는 하나도 궁금하지 않은 게 남자는 일까지 내팽개치고 뛰어올 만큼 궁금한 모양이었다.



"그냥 건강이 좋지 않습니다. 그게 다에요."



크나큰 후유증을 남기겠지만 지금으로썬 담담히 말이 나왔다. 6개월 후엔 글쎄, 어떨까



"건강이요? 자세히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가볍진 않아요. 달갑지도 않고"



예를 들면 어깨를 붙잡혀 다리 한가운데 있는 이 상황처럼. 더 이상 이야기해 주지 않을 걸 알았는지 한숨을 내쉰 남자가 내 팔목을 붙잡고 어딘가로 이끌었다. 뭐하시냐 물으니 배웅. 한 마디를 내뱉더니 기어코 입을 닫아버렸다. 멀리서 남자의 검은 차가 보였다. 길 옆에 차를 아무데나 대 놓은 것 같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지간히 급했나 보지.



"저녁 하셨습니까"



햇볕이 찬란히 남자의 머리 위에 내려앉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남자 역시 절대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사진첩에 남을 남자였다. 저녁을 먹었냐는 그의 물음에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이 남자의 이름이 뭐였더라. 아, 맞아. 김찬영. 김찬영……. 그의 이름을 속으로 중얼거려보았다.



"좋아하는 음식 있어요?"


"아무거나 잘 먹을 수 있어요."


"…아무 거라니, 꽤 어려운 대답이네요."



그는 자연스럽게 내게 차 문을 열어주며 내가 타기 쉽도록 배려해주었다. 이것은 병자에 대한 예의 일까. 아니면 잠시나마 직장 동료였던 이에 대한 예의 일까. 퍽이나 어이없는 의문임을 알면서도 그가 내게 건네주는 호의의 정체가 꽤나 궁금해졌다. 잠시 고개를 들어 그와 눈을 맞추며 질문해볼까 하다가도,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차에 올라탔다. 곧 그 역시 차에 올라탔다. 느리게 고개를 돌려 창 밖을 바라보았다. 옅은 금빛 색 햇빛가루가 강 위에 부셔져 드넓이 뛰놀았다. 눈을 감았다. 온통 검은색 밖에 보이지 않았다. …일말의 두려움이 가슴 끝을 저릿하게 타고 올라왔다. 조금은 씁쓸했다. 눈을 감으면 펼쳐지는 이 끝없는 어둠이 익숙해질 날이 올까. 온통 어둠으로 가득 찬 세상에, 내가 익숙해질 수 있을까. 다시 금 눈을 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운전석에 앉아 벨트를 메는 그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잘생겼네, 라는 말이 무의식 중에 나올 정도로 미남자였다.



"제가 자주 가던 단골집으로 가도 괜찮겠습니까?"



정말 나랑 저녁을 할 생각이었나, 그리 생각하며 무심히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작게 한숨을 뱉으며 핸들을 잡았다. 일에 관해선 한없이 냉정하고 야무진 그가 저렇게 걱정스러운 눈을 한 채 한숨을 쉬다니, 참 그답지 않았다. 김찬영, 이 남자와는 딱히 친분이 깊지 않았다. 그저 직장 상사와 부하직원 정도? 그러고 보니 이렇게 둘이 식사를 하는 것도 처음인 것 같다. 팀 전체가 모인 회식에서는 몇 번 본 것도 같지만…….지금 이 남자와 단둘이 식사를 하러 간다는 게 조금은 의아하다. 동료들 사이에선 공과 사가 철저한 남자라고 들은 기억이 있는데 아니었나? 어차피 회사를 관두면 끊어질 얕은 인연 중 하나라 생각했다. 한데, 일방적으로 사표를 건네고 회사를 그만뒀어도 남자는 여전히 존재했다. 6개월 후면 까무룩 죽어버릴 터인 내 시야에.


차 안에는 정적이 흘렀다. 난 창 쪽으로 고개만 돌려 휙휙 지나가는 거리를 눈에 담았다. 어둑해지는 터라 곳곳에 켜진 불빛의 잔상이 길게 늘어졌다. 눈이 안보이게 된다는 건 어떤걸까. 거멓게 죽은 동자 위에 쏟아지는 빛에도 무감하게 되는 건가.



"이연씨"



창 쪽만 두던 시선이 그에게 돌아간다. 무언가 어수룩하다 싶이 미소 지은 남자의 입이 달싹였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당연했던 순간들이 그리워질까……. 그런 생각."


"……예?"


"그러는 과장님께서는 무슨 생각으로 절 따라 나오신 거십니까?”




따지는 게 아니라 궁금했다, 진심으로. 나와 유달리 사이가 좋았던 것도 아닌데 내게 희한한 관심을 쏟는 이 남자의 의도를 잘 모르겠다.



"찬영입니다, 김찬영."



뭔가 언짢아 보이는 그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생각보다 뜬금없었다.



"저도 압니다."


"그럼 이름을 불러주세요. ……직급이 아니라."



한동안 그 말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왜 내게 이름을 듣고 싶은 것일까? 곧 아무 사이도 아니게 될 인연인데. 혹여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엄습했다. 하지만, 혹시나. 아닐 것을 알면서도. 조심스레 입을 달싹였다.



"좋아요, 찬영씨. 그런데 왜 찬영씨는 나한테 관심을 줘요? 저 좋아해요?"


"……."



그의 얼굴이 사뭇 일그러졌다. 그 모습은, 마치 치부를 들킨 아이 같은 표정이라서 나는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좋아해요."


"…!"


"라고 말하면 저 멀리 하실 거죠?"



느리게 말을 잇는 그의 표정이 꽤나 처연해 보여서 나는 입을 다물었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마음이 언짢았다.  말도 안돼. 혹시 이 남자를 나를 놀리는 것이  아닐까. 김찬영이 내 병을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딱히 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알 리도 없겠지만 그래도…. 입술을 꽉 깨물었다가 입에 힘을 풀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모양인지 미간이 얼얼했다.



"뭘 그렇게 놀라고 그래요. 그냥 해 본 말인데"



남자의 얼굴에서 표정을 읽어보려 노력했다.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만 당신 표정이.. 그래, 남자는 마치 사랑에 빠진 풀 내 나는 소년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 얼굴을 담담히 마주 볼 자신이 없었다. 곧 암전이 될 내 세상에서 모든 감정, 느낌은 재가 되어 사라질 것이었다. 기억만이 의미 있는 세계가 곧 도래할 것이었다. 이런 건 의미가 없었다.



시선을 창 밖으로 돌렸다. 별 생각 없던 차 안의 공기가 텁텁해졌다. 차 안에 맴도는 공기가 마치 내 목을 꽉 조이기라도 하는 것 마냥 답답하여 차 창문을 내렸다. 선선한 바람이 코를 한번 휘감고 사라졌다. 친한 사이도 아니었기에 따로 할 말도 없었고, 사실은 말을 나누고 싶은 기분도 아니었기에 시선을 창 밖으로 던졌다. 어느새 차는 도심을 달리고 있었다. 저녁 노을이 어스름이 지는 듯 주변은 이미 붉은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창 밖을 타고 날아든 잡다한 소리가 귓가에 퍼져 들었다. 눈이 피로했다. 뻑뻑하고 따가웠다. 질끈 눈을 감았다. …모든 게 꿈결 같았다. 조금 있으면 깨어날 꿈같이.



"...차가 막히네요."



김찬영의 목소리가 아른거린다. 감은 눈은 뜨지 않았다. 또 한번 어수룩하게 미소 지을 그가 그려진다.



"미안해요, 늦은 저녁 먹이려고 태운 건 아니었는데,"



"...아, 괜찮아요."




노을 빛이 차 안을 가득 메운다. 나는 그 빛에 취해 퍽 감정적인 투로 중얼거렸다. 노을 빛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자 조금은 서러워 진듯하다. 내 서러움을 싣고 차는 조용히 목적지를 향해간다.



" 이현씨. 제가 잘 가는 맛 집 도착했어요."


"그냥 아무데나 들어가셔도 됐는데요."



내 말에 그는 나지막하게 웃어온다. 그리곤 나를 식당 안으로 안내한다






"들어가시죠. 이연씨"



마치 에스코트라도 하듯 조수석의 문을 열어주는 그를 보며 이연은 부담스럽다는 듯 망설이다 한숨을 푹 내쉬고는 차에서 내렸다.



"저는 여자가 아닌데요."나의 말에 찬영이 쑥스럽게 웃으며 대꾸했다.



"압니다. 여자 같아서가 아니라, 그냥 챙겨주고 싶어서요."



첫사랑을 고백이라도 하는 듯한 말투에 되려 내가 민망해졌다. 애써 무시하고는 차에서 내렸다. 그때, 갑자기 시야가 어두워졌다.


갑작스레 찾아온 어둠에 잠시 몸이 휘청했다. 놀란 그가 나를 붙잡는 게 느껴졌다.



"이연씨? 괜찮습니까?"



글쎄. 괜찮은 건가? 스스로에게 묻고 있을 찰나. 다시 눈앞이 밝아졌다.



"아. 괜찮아요. 그냥 잠깐…."



잠시 나를 살피던 그는 이내 안심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팔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다시 눈을 한번 깜빡 하고 이내 그가 안내한 음식점으로 들어섰다. 그 음식점은 마치 그처럼 단정한 외관의 한정식 집 이었다.



+++



식사를 다 마치고 그가 나를 집에 데려다 주었다. 그러고서 헤어지는데, 그가 뭇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마치 사귄지 얼마 되지 않은 커플이 헤어지는 게 아쉬워 짓는 표정 같아 입가에 옅은 웃음이 머금어졌다. 이내 그는 손을 흔들고는 등을 보이며 천천히 멀어지기 시작했다.
 


"찬영아."


"…!"



멀어지던 그는 내가 내뱉은 말 한마디에 화들짝 놀란 듯 뒤돌아보며 동그래진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에게 걸어가 휴대폰을 내밀었다.  ㅡ그러니까 이건, 전혀 예상에 없던 내 돌발행동이었다.



"회사도 나왔겠다, 내가 너보다 나이 많겠다. 반말써도되지? 핸드폰 번호 가르쳐줘"



그의 얼굴이 내 행동을 가늠하기라도 할 것 마냥 날카로워졌다. 나는 아무일 없다는 듯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에게 핸드폰을 밀며 어서, 라고 재촉했다. 그러자 그가 조금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받았다. 눈도 곧 보이지 않을 것 인데, 잠시 나마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핸드폰으로 번호를 꾹꾹 눌러 되돌려 주었다.  배실 배실 웃는 게 느껴 질정도로 김찬영은 기분이 좋은 듯싶었다.



"다행이다. 다행이에요."



김찬영은 번호를 눌러 전화를 걸었다.



"진짜네요. 정말 오늘 행복한 하루네요. 마음속에 꽃이 내려요."



살짝 미소 지은 그가 해사하게 웃어 보였다. 좋은 게 좋은 거겠지.



"연락해요 이연씨. 내가 이연씨 아프다면 어디든 달려갈게요."



간단하게 전화번호를 주고받고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여자가 된 듯싶어 거절하려 했지만 어쩌면 오늘이 마지막 이니까. 라고 자신을 합리화시켰다.



+++



녹진녹진한 몸을 이끌고 샤워실로 향했다. 뜨거운 물에 몸을 맡겼다.  쏴아- 피곤과 함께 근심, 걱정, 세상에 미련까지 쓸어 내려라. 그렇게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머리를 감으려 샴푸에 손을 대는 순간 눈앞이 새까맣게 변했다. 그 덕에 샴푸를 짜려던 어정쩡한 자세 그대로 바닥에 박아 버렸다. 몸에 큰 충격이 있자 어느 정도 시력이 다시 돌아왔다. 최근 들어 세상이 단색이 되는 게 흔해졌다. 몸이 점점 더 안 좋아 지고 있는 게 느껴졌다.

샤워를 끝마치고 간단히 머리를 수건으로 비비며 나왔다.


카톡-


수건 터는 소리와 함께 알람음이 거실을 울렸다. 확인 차 몸을 굽혀 손을 뻗는 순간세상이 모두 어두 껌껌하게 변했다. 별 한 점 없는 우주마냥. 타버린 재마냥 모든 것이 거멓게 변했다. 조금만 지나면 괜찮을 줄 알았던 눈이 되돌아 오지 않았다.



아...



인생 전부가 어둠에 질식 당해 버린 마음 이였다.  나는 어둠에 먹혀버렸다. 막상 현실로 들이 닥치니 두려웠다. 옷 입지 않는 피부가 오돌토돌 닭살이 돋았다. 추웠다. 무서웠다. 모든 것이 멈춰버렸다. 몇 시간을 웅크리고 있었다. 태초의 태아처럼 그렇게 있었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백치가 된 거 같았다. 실 끝에 걸린 조그만 티끌만이 머릿속을 부유했다. 그것이 무엇 일까. 한참을 생각했고. 답은 없었다. 그저 그렇게 있었다. 하고 싶은 대로 해야지. 몸 가는 대로 손을 뻗었다. 우물쭈물 망설이던 손은 휴대폰을 잡았다. 그리고 목록 맨 첫 번째에 있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이연씨?"



말없이 목소리를 느꼈다. 그래. 나는 저 중 저음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구나. 그렇구나...



"이연씨 무슨 일 있어요? 이연씨? 여보세요? "



그래, 그거면 됐다. 마지막으로 들었으면 됐다. 손은 긴장이 풀려 스르르 힘이 풀렸다 톡. 휴대폰 떨어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퍼졌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카톡은 뭐라고 왔을까. 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눈이 안보는 데도 궁금함과 중 저음의 목소리만이 머릿속에 남았다. 나는 미친 듯이 크게 웃었다.포효에 가까운 울음 섞인 웃음 이였다.



마치 정신이 나가기라도 한 것마냥 화장실을 가득 메우던 웃음소리가 어느새 흐느낌이 되어 나를 울렸다. 거짓말……. 거짓말. 아직은 이래서는 안 됐다. 나는 빛으로 가득 찬 세상을 더 볼 권리가 있는데…….이 거친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 일에 매진한 내게, 신은 너무나도 잔인했다. 끝 없이 눈물만 흘리며 내 무릎을 감싸 안는 와중에도 찬영이 떠올랐다. 배실 배실 기분 좋은 웃음을 짓던 찬영이 떠올라 더 서글펐다. 정말로 그게 마지막이 돼버렸다는 사실을 차마 믿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오늘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예상했으면서도 캄캄한 시야가 믿기지도, 적응되지도 않았다.



"찬영아……. 김찬영……."



너무 울어 잠긴 목소리로 익숙하지만 낯선 그 이름을 불렀다. 내가 아프면 달려와주겠다며 아이처럼 해사하게 웃던 찬영이가 보고 싶다. 하지만 그 아이가 오더라도 그 걱정스러운 눈빛과 맑은 미소는 볼 수 없다. 더 이상은…….끝없는 어둠이다.  눈꺼풀 같은 얇은 막으로 세상을 차단하는 것과는 다른 막연한 어둠이었다. 눈을 감아도 어둠 속에서 빛의 잔상들이 눈 앞에 색색이 퍼지는 일은 이제 없다.



어떡하죠 찬영씨?



줄줄 흐르는 눈물에 끅끅 거리며 손바닥으로 눈두덩 이를 짓뭉개듯 닦았다. 찬영의 얼굴이 어물거린다. 두렵다. 따끔거리는 눈가를 쉴새 없이 거칠게 닦았다. 흐릿해지지 말아요.


그렇게 한참을 웅크리고 있었을까. 바닥을 더듬으며 몸을 일으켰다. 휴대폰. 휴대폰을 찾아 야해. 휴대전화가 어둠에 갇힌 나와 세상을 이어줄 유일한 끈으로 느껴졌다. 그때 현관문이 큰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쾅쾅.



"이연씨! 이연씨 안에 있습니까? 이연씨!!"



그다.



대답을 하려 했지만 한참을 울던 목소리는 잠겨 나오지 않았다. 다급하게 앞을 더듬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급한 마음에 발에 걸리는 의자며 탁상이 넘어지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찬영……. 찬영씨……!"



주춤주춤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바닥에 널브러진 가구들이 발에 채였다. 모서리에 긁혀 다리와 발에 상처가 나는 것에 신경 쓸 겨를도 없을 만큼 내 머릿속은 그로 가득 차 있었다.그가 정말로 달려와줬다는 사실에 벅차면서도 또 다시 울컥하며 눈물이 쏟아졌다.



"이연씨! 안에 있어요? 어디가 아픈 거예요?"



나만큼이나 다급한 목소리로 날 부르는 찬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내며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찬영씨, 나…… 나 여기 있어요. 나, 나 여기에……."



"문 열어줘요, 이연씨. 아니, 내가 들어갈게요. 내가 들어 갈 테니까 무서워 말고 비밀번호 말해줘요, 응?"



"비밀번호……. 86…0903……."





내 말을 토씨 하나 놓치지 않겠다는 듯, 찬영이는 아무 말 없이 하나하나 번호를 눌렀다.



끼익.

곧 현관문이 열리고 두려움에 잠식된 나는 급하게 뛰쳐나왔다. 맨발에 드로우즈만 걸친 채 나는 하얗다 못해 창백해진 나신을 가릴 생각도 못하고 찬영에게 매달리려고 애썼다.  그리고 마치 구원자라도 찾듯 미친 듯이 찬영의 얼굴을 더듬거렸다. 이 어두컴컴한 곳에 한 뼘의 빛이라도 들어오길. 큰 축복은 바래지 않았다. 그저 눈 앞에 사람만 볼 수 있길.



"이연씨, 이제 괜찮아요. 나 왔으니까 진정해요. 다 괜찮아요."



엉망진창인 내 모습에 놀란 듯 찬영은 미친 듯이 매달리는 날 감싸 안으며 다정히 속삭였다. 다 괜찮아요, 무서워하지 말아요…….녹아 내릴 만큼 다정한 목소리에 차츰 몸의 떨림도 잦아들었다. 날 감싸 안아주는 찬영의 품이 너무 따뜻했다. 문득 내가 이리도 약한 인간이었나 싶었다. 마지막으로 울어 본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만큼 감정이라는 것에 무디다고 생각했었다. 헌데 지금 내 꼴을 보니 지금까지 내가 알던 나는 내가 아니었나 싶은 생각에 자조적인 웃음이 나왔다. 이 얼마나 우스운 꼴인가. 황당한 얼굴을 한 의사를 등지고 병원을 박차고 나올 때의 나는 어디로 간 건가. 과거의 나에게 욕을 시원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난...... 보지 못하게 되기 싫다. 남은 한 평생 동안 저 밝은 빛을 보면서 살고 싶다.



"진짜로 오실 줄 몰랐는데... 왜 그런 표정이에요. 벌써부터 얼굴에 주름살생기면 큰일나는데.."



바람 빠진 웃음을 지으며 찬영의 깊게 패인 주름을 손가락으로 꾹꾹 눌렀다.  찬영은 물끄러미 바라보다 나를 따라 작게 미소 지었다.  슬퍼 보이는 표정. 허나 서로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로 눈빛만 주고받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헐벗은 몸에 달라붙는 차가운 공기에 반사적으로 몸을 부르르 떨자 찬영은 혀를 차며 나의 몸을 공주님 안기 포즈로 들어올렸다.


"으앗! 차..찬영씨!"


"이연씨 내가 매일 맛난 거 사줘야겠어요. 너무 가벼워요."


금세 어두운 표정으로 내려다보는 찬영의 얼굴에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들킬까 애써 떨구자 숙인 머리 위로 찬영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놀리지 말아요... 투덜대는 내게 건성으로 예 예 하며 대답하던 찬영은 조심스레 나를 침대위로 내려놓았다. 그리곤 이불을 끌어와 차게 식은 나의 몸을 꽁꽁 싸맸다.


"아프지 말아요."


"...네...."


"약속 하는 거예요? 그리고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언제든 불러요. 미안해 하지도 말고요. 물론 밤에 불러주면 더 좋지만요."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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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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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이 소설은 익소에서 생성되는 릴레이 소설입니다! 익소에 와서 참여해주세요!!
10년 전
독자1
어디서 많이 본 제목인가 했더니..! 반가워 쏘블맄ㅋㅋㅋㅋㅋㅋ
10년 전
독자2
엇 ☞☜ 뒤에 더 있지..? 내가 뒤에 이은 것 같은데..★ 일부러 자른것 맞지ㅠㅠㅠ
10년 전
글쓴이
d아아아ㅏ아아아 헐!!!!!!!내ㅏ 그거 add 안했나봐!!!
미안해!! 해줄께!!

10년 전
독자3
엇 아니야☞☜ 그냥 좀 놀램ㅋㅋㅋㅋ
10년 전
독자4
헐 보석안의 후예다..
10년 전
독자5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왠지 뭔가 많이 보던거라고 생각해똥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0년 전
독자6
익숙하다했더니 릴소였엌ㅋㅋㅋㅋㅋ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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