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 51,000자의 긴 글입니다. 본편은 줄글인 반면, 두 편의 외전은 썰체로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 총 3부작 중 마지막 편입니다. 이전 편들을 읽지 않았다면, 이해를 하지 못할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 Keyword는 각 이야기를 나누는 선이기도 하지만, 해당 키워드 이후로 이어지는 이야기들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이 글에는 다양한 장치가 있습니다. 글의 끝자락에 이를 해석하는 구간을 첨부하였습니다.
• 감사합니다.
Keyword 1 해몽 |
꿈을 꿨다. 정체를 알아낼 수 없을 정도로 까마득한 높이에서 무언가 활공하고 있는 모습을 가만 지켜보기만 하는 꿈을 꿨다. 작은 점에 불과한 것은 한없이 먼 곳에 존재하여 눈살을 찌푸려야만 겨우 그 유무를 분간해낼 수 있었으나, 결코 시선을 뗄 수는 없었다. 홀려버리기라도 한것처럼 눈조차 함부로 깜빡일 수 없었다. 꼭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빛을 머금은 달을 닮은 것이 한없이 아름답다고 중얼거릴 뿐이었다. 시간조차 존재하지 않는 공간에 서서 그 검은 점을 바라봤다. 하늘만을 바라보고 있는 탓에 제가 밟고 있는 것이 땅인지, 아니면 허공 위에 떠 있는 것에 불과한지조차 알 수 없었다. 얼마나 오래간, 아니면 찰나의 순간일 뿐인지도 모르는 시간동안 멍하니 서있다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때는 먼지에 빗댈 수 있을 정도로 작았던 점이 점차 크기를 키워내고 있었다. 빠른 속도로 거리를 좁혀오는 그것이 무엇인지 감히 어리짐작 해낼 수 없었지만, 미지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은 들지 않았다. 작게 쿵쿵 뛰어오는 심장은 순전히 설렘 탓이었다. 눈을 깜빡이지도 못한 채 시선을 하늘에 고정시킨 채 기다리다보면, 작은 점에는 서서히 형체가 생겨났다. 넓적한 날개를 가진 두꺼운 형체. 독수리였다. 순식간에 코앞까지 다가오는 존재의 위압감에 눌려 눈을 꾹 감았다 떠보자, 노란 부리가 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한 걸음 뒤로 물리며 다시 한번 눈을 깜빡이자, 커다란 독수리가 날개를 펄럭이며 제 앞에서 부유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거대한 날짐승은 그 아름다운 자태로 저 먼 하늘에 있을 적보다 사람을 더 효과적으로 홀리고 말았다. 더는 시선을 못 떼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느리게 날개를 펄럭이면서도 미동 없이 공중에 떠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면 황홀경에 빠진듯 정신이 몽롱해졌다. 닿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손을 뻗었다. 독수리는 느리게 뻗치는 손을 갸웃거리며 쳐다보았다. 눈을 몇번 깜빡인 녀석은 곧 목을 움직여 얼굴을 가까이 해오더니 제 손을 부리로 꽉 물었다. 갈고리처럼 휘어진 부리 끝이 살갗을 파고들었지만 조금도 아프지 않았다. 검붉은 색의 피가 새어 나오는 꼴을 보고 있자니 오히려 기분 좋은 웃음만이 흘러나왔다. 날개를 펄럭인 독수리가 두발짝 다가왔다. 손을 움직여 거대한 몸집에 갖다 대니 부드러운 깃털이 만져졌고, 검붉은 피는 이에게 스며드는 대신 깃털에 튕겨나가듯 바닥으로 추락했다. 제 얼굴 옆으로 온기가 느껴져 상황을 살피려던 찰나 무언가 목덜미를 파고들었다. 목을 가볍게 무는 부리에서는 냉기가 뿜어져 나왔다. 더욱 깊이 여린 살을 파고드는 느낌이 났지만, 아프지 않았다. 무언가 빠져나가기라도 한듯 목덜미가 싸늘해지는 느낌에 몸을 떨기도 전에 녀석은 제 머리칼에 얼굴을 비비며 온기를 전했다. 제 귓볼을 차디찬 부리로 툭툭 건드린 독수리는 곧 딱딱 소리를 내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일어나라."
...
... 응? 몸을 바르르 떤 닝이 잘 떠지지 않는 눈을 애써 깜빡였다. 흐릿한 시야에 걸리는 훤칠한 인영을 보기 위해 그녀는 다시 손을 들어 눈가를 비볐다. 그제서야 교복 셔츠를 단정하게도 입은 채 입꼬리만을 옅게 올리고 있는 인물이 선명하게 보였다.
"가야 한다." 시계를 가리키는 기다란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돌리자 7을 향한 시침과 12를 향해 기어가고 있는 분침이 보였다. 눈을 두어번 더 깜빡인 뒤에야 똑딱거리며 부지런하게도 달리는 시침 소리가 들려왔다. 어젯밤에 짐을 미리 싸놓길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기숙사에도 들리지 못한 채 교실까지 캐리어를 끌고 갈 뻔했다. 한숨을 푹 내쉰 그녀가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우시지마는 보나마나 최소 2시간 전쯤에 일어나서 아침 운동도 한 뒤에 교복으로 갈아입은 것이 분명했다. 시계보다도 더 부지런한 인간이었다. 말없이 침대에 엎어져 있기만 한 닝을 가만 내려다보던 우시지마가 마침내 손을 뻗어 어지럽게 흐트러져 있는 긴 머리를 옆으로 옮겼다. 휑하니 드러난 목덜미에 피어난 붉은 꽃을 지그시 바라보던 그가 몸을 굽혀 가볍게 입을 맞췄다.
"오늘은 머리를 묶지 않는 것이 좋겠다."
귓가에서 들려오는 저음에 몸을 움찔 떤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이제 와서 신경 써주는 거야?"
옆의 협탁 위에 걸쳐져 있던 티셔츠를 그녀에게 건넨 그가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옷을 받아드는 얼굴에 걸려 있는 미소를 눈에 담은 우시지마는 굳이 답을 내어놓지 않았다.
"가면서 내 가방도 들어주면 안 될까?"
"그래."
해사한 웃음을 지어 보인 닝이 벌떡 일어나려다 욱신거리는 허리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우시지마가 미간을 구겼다.
"괜찮나?"
"... 아니."
"업어줘야 하는 건가?"
"아니! 걸을 수 있어."
본인의 몸보다 한참 큰 티셔츠를 뻣뻣한 움직임과 함께 겨우 입은 닝이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그를 눈치채곤 눈을 가늘게 떴다.
"걸을 수 있다고."
"... 알겠다."
*
“어, 우리 같은 반이다!” 말간 웃음과 함께 본인을 올려다보는 얼굴을 내려다보는 그의 입꼬리가 높이를 달리했다. 닝은 너무 좋다고 재잘거리며 우시지마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다지 일찍 등교한 편도 아니었으나 개학 날이어서인지 반에는 몇 사람뿐이었다. 떡하니 비어있는 창가 옆의 맨 뒷자리를 차지한 닝이 아랫입술을 감쳐문 채로 우시지마에게 배시시 웃어보였다. 의자에 몸을 앉힌 그는 말없이 시선을 돌려주고만 있다, 한 손을 들어 그녀의 목에 느슨하게 걸려 있던 보타이를 죄어 주었다. “불편한데 ...” “보인다.” 입을 일자로 문 그녀가 어깨 너머로 넘겼던 머리를 다시 앞으로 흘렸다.
"네 탓이야."
"그건 아닌 것 같다."
맞받아치려던 닝이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
"내 말을 안 들은 사람은 너니까, 부분적으로는 네 탓이야."
"그래." 차라리 끝까지 수긍도 안 하면 괜히 물고 늘어져라도 볼텐데, 제 말에 또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며 닝은 입맛을 다셨다. 다음에는 내가 아니라 와카가 가리게 만들거야. 그래봤자 대수롭지 않게 여길 것이 벌써부터 눈에 훤히 그려졌으나, 그건 나중에 두고보기로 했다.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냐는 얼굴을 하는 우시지마에게 그녀는 그저 고개를 가로저으며 신경 쓰지 말라 전했다. 고3이 되면, 무언가 달라질거라 생각했었다. 우시지마야 뭐, 평소 하던대로 배구만 열심히 하면 되는 사람이지만, 저는 엄연히 입시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음에도 생각보다 별 거 없었다. 어차피 배구부의 매니저 활동은 계속해나갈 예정이었고, 공부도 결국 항상 해오던 대로 하면 되는 일이었다. 성인이 되면 제 주변의 세상이 송두리째 사라지고 새로운 세상에 발을 들이게 되리라 막연히 생각했던 적이 있었는데, 지금보니 마냥 그렇지도 않을 것만 같았다. 나이라는 건 생각보다 꽤나 무의미한 숫자에 불과한가보다.
"근데, 널 보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왜지?" 제 자신은 변화 없이 항상 있던대로 살아가는 것만 같은데, 우시지마는 물론이고 제 친구들은 모두 키도 크고 얼굴선도 굵어져 가는 모습이 눈에 띄게 티났다. 꼭 나만 그 자리에 멈춰 있는 것처럼. 턱을 괸 채로 말을 고르던 닝이 마침내 ‘어른이 되어가서 그런 건 아닐까?’ 하는 어림짐작에 가까운 답을 내놓으려던 순간이었다.
"와카토시 군-"
텐도와 굉장히 유사한 말투였지만, 텐도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높고 얇은 목소리에는 활기가 가득차 있었다. 의아한 눈으로 고개를 돌리자 큰 키의 청순가련하게도 생긴 여자애가 보였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딱히 발이 넓은 편은 아니었으나, 한두번 스쳐가는 얼굴조차도 대충 ‘마주쳤던’ 인물 정도로는 기억을 잘했다. 그리고 이 여자애는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보아도 초면이었다. 누구길래 멋대로 요비스테까지 하는거지?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더니 1학년 때의 제 모습은 생각도 않은 닝이 입을 꾹 다문 채 상황을 가만 지켜봤다. 그때, 방금 공책에서 뜯어낸 듯한 종이를 여학생이 내밀었다.
"사인 해주라!" 신기한 애네. 그런 결론을 내리며 눈을 깜빡거리고만 있으니 우시지마가 제게로 시선을 돌렸다.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냐 묻는 듯한 얼굴을 마주한 닝이 마침내 실소를 흘렸다. 이름이라도 써- 하고 넌지시 말을 건네자, 책상에 올려져 있던 제 필통에서 펜을 꺼내 간 그가 정갈한 글씨체로 우시지마 라고 적었다. 해맑게도 웃은 여학생은 그의 손을 톡톡 건드리며 고맙다 이야기하곤 저들의 자리에서 가장 먼 곳에 위치한 오른편의 맨 앞자리로 향했다. 시선으로 그 움직임을 따르던 닝이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다시 고개를 돌렸다. 굳이 필통의 지퍼를 잠그고 있는 모습을 눈에 담은 그녀가 입꼬리를 당겨 올렸다.
"아는 애야?"
"모른다."
"근데 왜 와카 이름 막 불러?"
"모른다."
턱을 괸 채로 우시지마를 시선만으로 올려다보며 닝은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저가 말을 잇지 않으니 똑같이 눈을 마주하고만 있는 모습이 꼭 강아지를 닮아 있어서, 그녀는 또 소리 내어 웃어버리고 말았다.
"와카, 저번에 사토리가 싸인 만들어야 한다고 했을 때 다 같이 만들었었잖아. 근데 왜 성만 썼어?"
"네가 무섭게 쳐다보고 있었다."
"누구를, 쟤를?"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감정이 얼굴에 훤히 드러나는 인간이지라 원체 뭣도 못 숨기는 편이긴 했지만, 무던한 사람이 알아챌 정도로 적나라한 적대감이 느껴진 걸까. 그래도 다정한 목소리가 마음에 안 든걸 어쩌나? 물론, 질투는 아니지만. "센스가 생겼나 보네."
"네가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뿐이다."
눈치 있게 행동해놓고도 그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하는 우시지마가 마냥 사랑스러워 그의 머리를 흐트러트렸다. |
Keyword 2 순수 |
"초코 우유 사러 갔다 올게!" "같이 안 가도 되나?" "와카는 아까 레온이 불렀잖아." 아. 잊고 있었던 건지, 이제서야 떠올린듯한 얼굴의 우시자미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춘 닝이 손을 흔들어주곤 가볍게 걸음을 옮겼다. 건물을 나서자마자 잔뜩 개화한 벚나무들을 머릿속에 담으며 미소를 머금은 그녀는 우시지마의 몫도 잔뜩 사가야겠다 중얼거렸다. 하이라이스 말고는 별다는 취향 없이 무엇이든 다 잘먹는 그는 딱히 뭐가 좋다 싫다 호불호를 내비친 적이 없었다. 저 먹고 싶은 건 뭐든지 다 먹어도 괜찮다는 장점도 있었으나, 이럴 때면 결정을 쉬이 못 내린다는 단점 또한 존재했다. 하는 수 없이 다 사갈 수밖에. 어차피 이따가 만날 새로운 1학년들에게도 나름의 축하 선물 삼아 나누어 주면 될 일이었다. 그 전에 다른 애들이 안 털어가면 말이지. 이것저것 품에 담을 수 있는대로 모두 담고 보니 양이 꽤나 많았다. 이정도면, 넉넉하겠지? 눈대중으로 양을 가늠한 닝이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던 중 제 앞을 가로막은 남학생의 옆으로 돌아가지도 못한 채 그대로 멈춰 섰다. 말 대신 헛기침으로 비겨달라는 의사를 표하니 일자로 자른 앞머리를 한 남학생이 고개를 돌렸다. 저 못지 않게 감정 표현이 풍부한 사람인지, 그는 곧바로 눈이 튀어나올 듯이 크게 떠 보였다. "헉, 내가 도와줄까?" 반말?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으나, 눈치를 못 챘는지 열의가 가득한 목소리로 도와줄게! 라고 외치고는 빵과 음료수를 반 정도 거둬가는 그에게 닝은 굳이 무어라 말하지 않았다. 엊그제 코치에게 받아 보았던 1학년 부원 리스트에서 보았던 사진 중 하나와 겹쳐지는 얼굴이었다. 반짝이는 눈빛 하며, 누군가를 도와줬다는 사실에 뿌듯해진 건지 싱글벙글한 얼굴 하며 아무래도 순진하고도 순수한 아이 같았다. 놀려먹기에는 제격. 음 ... 사토리로부터 괜한 장난기가 옮아버렸나 보다. "반 친구들한테 돌리려는 거야? 뭘 이렇게 많이 샀어?" "반은 아니고, 친구들." "아아- 그러면 넌 몇 반이야?" 계산대 위로 군것질거리들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후배를 힐끔 쳐다본 닝이 태연한 얼굴로 지갑을 꺼냈다. "나? 난 3반이야." "에에? 우리 옆 반이잖아! 하지만, 난 널 본 적이 없는데?" 당연히 본 적이 없겠지. 난 3학년 3반이니까. 이 후배님의 이름과 반은 기억이 안 났지만, 말하는 뉘앙스를 보아하니 4반이나 2반인듯 했다. 3반이었으면 바로 들통나는 꼴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아닌가 보다. 제가 그의 말을 안 듣고 있다는 모르는지 옆에서 계속 재잘거리는 이에게 대꾸는 하지 않은 닝이 직원에게서 받아든 봉투를 손목에 걸었다. "어, 그러면 내가 도와줄까? 바로 옆 반이니까 같이 가줄게!" "괜찮아. 너는 사려던 거 아직 못 산 거 아니야? 그러다 수업 늦겠다-" 그제야 본연의 목적이 기억난 건지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보며 그녀는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꾹 참아냈다. 처음으로 귀염성 있는 애가 들어오려나. 봉투의 가장 위에 얹어져 있던 오렌지 주스를 집어 든 닝이 키는 저보다 한참 큰데도 마냥 애같이 행동하는 남학생의 손에 쥐여주었다. "고마우니까 내가 이거라도 줄게. 이따 보자-" "헉. 고마워! 이, 이따 봐!" 살풋 웃어준 그녀는 유유히 매점을 나섰다. 사토리랑 에이타가 꽤나 뿌듯해 할만한 장난임이 분명했다. 닝은 하야토에게 먼저 자랑을 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계단을 올랐다. * "너, 거짓말도 할 줄 알아?" 이야기를 늘어놓자마자 놀라운 얼굴로 묻는 레온에게 닝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난 거짓말 안 했어." 곰곰이 이야기를 되짚어보며 미간을 찌푸리던 세미가 곧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네, 1학년이라곤 안 했네." "그렇지, 그리고 이따 보자는 말도 거짓말은 아니었다고?" 자랑스럽다며 눈물을 훔치는 척을 해 보이는 텐도에게 혀를 내민 닝이 우시지마의 손을 만지작거렸다. 다른 곳을 빤히 보고 있는 그에게 뭘 보고 있는 거냐 물으니 그녀를 힐끔 내려다본 우시지마가 손가락으로 어느 지점을 가리켰다. "뭔데?" 그의 손을 따라 고개를 돌리니 아까 본 흑발의 자로 잰듯한 앞머리를 한 남자애가 보였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다시 휘둥그레하게 눈을 뜬 남학생이 저들 쪽으로 달려오다 말고 끼기긱- 소리를 내며 멈춰 섰다. 우시지마를 알아본 건지, 그를 멍하게 올려다보다가 얽혀있는 두 개의 손으로 내려갔던 시선이 다시 제 눈으로 올라왔다. "어 ... 3반 갔을 때 없었는데!" 여전히 상황 파악이 안 됐는지, 순수한 물음에 세미는 입을 틀어막으며 고개를 돌렸다. 텐도는 이미 숨이 넘어가도록 웃어대고 있었다. "이상하네. 우리는 계속 반에 있었는데. 그치?" 맑은 눈으로 우시지마를 올려다본 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를 내려다보던 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에? 하지만 ..." 열심히 머리를 굴리는 건지 남학생의 눈썹이 꿈틀댔다. 기어가 이리저리 돌아가는 소리가 제 귀에 들려오는 것 같았다. 바닥에 쓰러지기 직전인 텐도를 눈으로 흘긴 닝은 1학년 후배를 더 놀렸다가는 지각은 물론, 세미의 얼굴이 터져버릴 것 같아 미소를 머금은 채 입을 열었다. "3학년 3반으로 온 거 맞아?" 멀뚱멀뚱 서 있던 아이는 곧 상황 파악을 한 건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버렸다.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기라도 하듯 기어이 웃음보를 터트린 세미와 체육관 벽에 기댄 채 자지러지고 있는 텐도의 등을 레온과 하야토가 문 쪽으로 떠밀었다. "가자-" 돌이 되어버린 후배님의 팔을 툭툭 건드리자 어버버거리며 입을 틀어막던 그가 조심스레 손을 입에서 떼어냈다. "그, 저, 저는 배-배구부라서, 그-" "아, 내가 매니저야. 같이 가자." 웃는 닝의 얼굴을 마주한 그의 백짓장같던 얼굴은 곧 새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고, 텐도와 세미의 웃음소리는 더욱 크게 울려 퍼졌다. "가자." 하고 제 손을 잡아당기는 우시지마의 손에 이끌려 움직이지 않았더라면, 울기 직전인 표정을 한 1학년 후배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르겠다고 닝은 생각했다. 강아지가 배구부에 들어왔다. 당연히 사족보행을 하는 진짜 강아지는 아니었지만, 제 의견이 대백과사전에 영향이 갈수만 있다면 고시키 츠토무를 일컫는 대명사 중 하나로 강아지를 넣고 싶었다. 카와니시는 물론이고, 요즘 들어 시라부도 예민한 고양이 마냥 귀여운 짓을 하는 순간들이 늘어나서 예뻐하고 있었지만, 츠토무의 귀여움은 차원이 달랐다. 키만 180이 넘는 꼬맹이일 뿐인 그는 순진하게도 제 장난에 끝까지 속아 넘어간 탓에 저만 쳐다보면 울상을 지었다. 허리까지 굽혀가며 죄송하다고 연신 사과를 해대는 츠토무의 머리를 헤집은 닝은 다정히 웃어주었다. "괜찮아, 퍼피!" 닝은 첫날부터 퍼피를 츠토무의 별명으로 채택했다. 이번에 새로 들어온 1학년들 중 가장 실력도 좋고 의욕도 역시나 하늘을 뚫을 정도로 대단한 아이였지만, 하는 행동은 갓 태어난 강아지가 따로 없었다. 중학교 때 에이스는 물론, 주장까지 했었다며 가슴을 펴 보이는 그에게 닝은 유달리 밝은 표정과 함께 눈을 반짝였다. 저에게 칭찬을 해주시려는 건가 싶어서 같이 얼굴이 밝아지던 츠토무는 곧 이어지는 말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와카도 에이스고 이제는 주장인데, 퍼피도 그렇게 되면 너무 좋겠다-" 이미 첫 정식 소개 때부터 우시지마에게 라이벌..! 이라고 중얼거리며 눈을 부라리는 바람에 시라부에게 한 소리 들은 터였으나, 물불 안 가리는 츠토무에게는 아무래도 그런 것 따위는 별 상관없는 듯했다. 닝의 말에 화르륵 타오르는 불길이 두 눈에 그대로 담길 정도로 눈을 반짝인 츠토무는 곧장 그녀의 옆에 앉아서 드링크를 마시고 있던 우시지마에게 우렁차게도 말했다. "제가 에이스 자리를 뺏을 겁니다!" 허리에 손까지 짚은 채 선전포고를 하는 츠토무를 시선만 살짝 들어 쳐다본 우시지마는 의아한 눈을 해보였다. 마치 그런 포부를 굳이 제게 이야기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묻기라도 하듯이. "그래." 이해가 안 되는 것과는 별개로 의문 대신 덤덤한 동의를 내놓곤 타올로 땀을 닦아내는 우시지마와는 달리 되려 부추기는 텐도 탓에 츠토무는 더욱 눈을 반짝이며 주먹을 꽉 쥔 채로 반드시! 하고 중얼거렸다. 와카랑 퍼피라니. 닝은 졸업도 전에 귀여움이 치사량에 다다라 쓰러지는 일이 먼저일지도 모르겠다고 세미에게 소곤거렸다. 세미는 난생처음으로 시라부와 같은 표정을 지었다. * 주제를 불문하고 무엇이든지 노력을 끝없이 하는 모습이 마냥 예뻤다. 우시지마를 이기려면 음식부터 도전해보라며 농담을 던진 텐도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탓에 밥을 억지로 꾸역꾸역 쑤셔 넣는 츠토무를 구경하던 닝은 웃다가 바닥을 나뒹굴 뻔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나 순수한 고시키 츠토무가 우시지마와 닝의 관계를 알게된 시점은 따지고 보자면 첫 대면 당시였으나, 직접적으로 확인 사살을 당한 뒤의 그의 반응은 가관이었다. "호, 혹시 그 ... 닝 상은 우시지마 상이랑, 그 , 사, 사, 사-" 똥 마려운 강아지 마냥 안절부절 못하는 그를 보며 또 배까지 부여잡고 바닥으로 쓰러져버리는 텐도와는 달리 닝은 나긋한 미소를 머금었다. "사귀는 거냐구?" "네, 네...!" "응, 작년부터 사귀고 있어-" 다정한 목소리에 홀린 듯 쳐다보기도 잠시, 그는 곧 주먹을 불끈 쥐었다. 우시지마 상을 이기려면, 여자친구부터! 하는 중얼거림에 그녀는 결국 웃음을 참아내지 못했다. 남이 했으면 같잖은 소리 한다고 인상을 찌푸릴 법한 말이었으나, 츠토무가 하니 그의 순수한 의도가 그토록 사랑스러워 보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배구 실력과는 관계없는 일이잖니-" "와카토시 군은 닝쨩이랑 사귄 뒤로 파워가 더 좋아졌는걸?" 애써 이 열정적인 강아지가 헛짓거리하지 않도록 달래보려 했으나 모른 체 하며 사람 속 뒤집어지는 소리를 키득거리며 하는 텐도를 닝이 굳은 얼굴로 내려다봤다. "텐도 사토리. 우리는 물통에 이름표를 붙이지?" "어? 그렇지- 닝쨩이 그것 때문에 속 많이 썩었잖아-" "그 말은 내가 네가 마실 드링크에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거야. 조심해, 알았지?" 거짓말을 하지 않는 닝의 웃는 얼굴이 가장 무서웠다고 츠토무는 먼 훗날에 이야기했다. |
Keyword 3 안심 |
어쩌다 이 신세가 되어버렸는지 모르겠다. 분명히 싫다고 의사를 표했음에도 이 자리에 앉게 된 이유를 모르겠다. 아, 그래, 한 가지 핑곗거리는 생각난다. 제 연인이 끌려가주니 저도 졸졸 따라온거다. 좋아, 다시 한 번 물어보자. "우리는 왜 여기 있는거야?" "끌려온 거다." 무어라 한마디 하고는 싶었지만, 꽤나 굳어있는 그의 몸을 보고도 감히 입을 열 수 없었다. 한숨을 푹 내쉬어보아도 제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주장이라는 이름을 우시지마가 가졌다 한들, 친구 관계에서 우위를 선점하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요물이 따로 없는 사토리와 은근히 사람 잘 꾀어내는 에이타, 그리고 너무 귀여워서 볼을 잡아뜯고 싶은 우리 퍼피가 좋다는데, 어떻게 모른 척 할 수 있겠어. 굳이 따져보자면 츠토무 때문이 맞지만, 그건 잠시 뒤로 밀어보도록 하자. 사건의 발단은 놀랍게도 타이치였다. 지금 이 끔찍한 상황이 시작된 가장 사소하고도 작은 시발점을 꼽아보자면 "영화 보고싶다." 라고 말 한 카와니시가 시작이 맞다. 그 다음은 닝, 나 자신이었다. "그럼 보면 되지." 불을 지핀 것은 맞으나 여기까지는 문제 삼을 수 없었다. 카와니시의 말에 자연스레 이어질 법한 어찌보면 당연한 응답이었다. 문제는 이 다음부터였다. "그럴만한 시간이 딱히 ..." "닝쨩 노트북 화면 크잖아- 그걸로 보는 건 어때?" "오! 다 같이! 좋습니다!" "퍼피, 영화 보고 싶어?" "네!" 음, 그래, 정확하게는 고시키 츠토무, 우리 귀여운 후배 때문이다. 얘가 그렇게나 반짝이는 눈으로 고개를 주억거리지만 않았어도, 제가 부실 안까지 노트북을 가져올 일도 없었을테고, 주도권을 텐도에게 빼앗길 일도 없었을테고, 저 시커먼 귀신이 포스터를 장식하고 있는 영화가 다운로드 될 일도 없었을테다. 도망가면 제 노트북을 부시겠다며 배구할 때나 보이던 눈빛을 하는 텐도의 말도 결코 우스갯소리만으로 넘길 수는 없었다. 젠장.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척이라도 했으면 돌파구가 생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것 따위 할 겨를이 없었다. 노트북 앞에 앉아있을 때, 멋대로 클릭을 하는 세미 때문에 눈 앞에 창백하게 질린 얼굴이 띄워지는 순간에는 척이고 개뿔이고 입 밖으로 비명부터 튀어나왔다. 지금 당장 노트북이 고장날 수는 없는걸까. 우시지마의 오른손을 두 손으로 쥔 채 간절하게 빌어보았지만, 쓸데없이 비싼 제 노트북은 성능이 참 좋았다. 로딩은 문제 없이 잘 되고 있었다. 내가 기절하는 게 빠를까, 내 노트북이 부서지는 게 빠를까. "와카, 우리 도망갈-" "어어? 닝쨩-" 소곤거리는 목소리는 용케도 들었다. 로딩 창이 떠 있는 노트북 화면을 한 손으로 쥐고 있는 텐도를 레온이 말리고 있다는 사실은 중요치 않았다. 쟤는 끌려나가는 일이 있어도 노트북의 반쪽을 손에 쥐고 나갈 인간이었다. 노트북 하나쯤은- 이라고 쿨하게 말 할 수 없는 제 자신이 미웠다. 물질을 잃는 대신 제 정신건강을 잃기로 선택하고 마는 제 자신이 미웠다. 닝은 결국 입을 꾹 다문 채 우시지마의 옆으로 더욱 붙어 앉았다. 문제가 컸다. 클리셰대로라면 공포영화를 볼 때는 둘 중 한 가지의 상황이 연출되어야 했다. 1번 시나리오 : 공포감에 바들바들 떠는 제가 우시지마에게 안기면 괜찮다고 달래주기. 2번 시나리오 : 우시지마가 벌벌 떨 때 제가 쿨하게 "뭐가 무섭다고!" 하고 호쾌하게 말하고는 안아주기. 그러나 둘 중 공포영화를 감당할 담력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와카는 왜 벌레는 아무렇지도 않아하면서 귀신을 무서워 하는걸까. 허무한 말만을 중얼거리고 있는 닝에게 로딩이 끝났다며 유레카를 외치는 텐도와 박수를 치는 츠토무는 영 도움이 안 됐다. "와카, 나 진짜 기절할지도 몰라." "..." 닝이 제 두 손에 꼭 잡혀 있는 오른손만을 내려다보고 있는 우시지마를 가만 쳐다봤다. 차라리 기절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 관람해보자구요-!" 파들파들 떨던 닝은 인트로부터 흘러나오는 불길한 음악소리에 벽으로 기어들어갈 기세로 몸을 쭈그렸다. 벽 속으로 스며들 수는 없는걸까. 퍼피는 왜 귀여워서 내가 텐도의 개수작에 넘어가게 만든걸까. 에이타 쟤는 보지도 못 하면서 왜 공포 영화를 보자는 말에 잘도 거들어준걸까. 도망가고 싶다. 불길한 폐가는 불길한 대로 그냥 놔두고 가면 안되는거야? 쟤네는 왜 굳이 거기서 살겠다고 설치는거야? 하여간 도통 이해 할 수가 없는 심리다. 저 주인공들도, 제작자도, 공포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그 중 제일 이해가 안 되는 심리는 아직도 도망가지 않은 나의 심리. 으- 인상을 찌푸리던 닝은 노트북에서 들려오는 문틀이 덜컹거리는 소리에 시선을 한 자리에 두지 못 하고 이리저리 돌려보다 옆의 우시지마를 올려다봤다. 얼굴은 무덤덤해보였으나, 손의 힘은 안 풀어진 것이 저와 같은 상태임이 분명했다. "꺄악-!" 우시지마를 올려다보느라 화면을 보지 못 한 순간에 여자의 겁에 질린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몸을 부르르 떤 닝은 곧 소리가 어째서인지 서라운드로 들려왔다는 깨달음에 두 번째 음의 근원지로 눈을 돌렸다. 츠토무가 하야토에게 들러붙은 채로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시라부도 경직되어 있는 모습을 보아하니, 그의 취향에도 영 아닌 듯 했다. 이 작은 방에 있는 인원 중 반 이상이 화면을 쳐다보지도 못 하고 있었다. 도대체 왜 다들 이 짓거리에 동참해준 건지 모를 일이었다. 물론, 그 중 나란 인간이 제일 한심했다. "와카." "..." "와카, 나 안아주면 안돼?" 작은 속삭임에 마침내 닝을 내려다 본 우시지마가 그녀를 가볍게 안아 들어 허벅지 위에 앉혔다. 조금, 아주 조금, 괜찮아지는 것 같기도 했다. 귓가에서 만만치 않게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가 들려왔지만, 의외로 그덕에 안정이 되었다. 부실에 숨어서 보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영화관이었으면 이렇게 숨지도 못 했겠지. 우시지마의 손을 여전히 꽉 쥐고 있는 닝은 망할 호기심 때문이라고 궁시렁거리면서도 차마 시선을 화면에서 떼어내지는 못 했다. 시작은 단순했던 영화는 저 괴기스러운 귀신이 튀어나온다는 사실 말고는 스토리가 꽤나 괜찮았다. 또한, 그녀가 몸을 바들바들 떨면서도 스토리 정도까지도 살필 수 있는 데에는 주변 인물들의 덕이 컸다. 귀신이 튀어나오기 직전에 먼저 왁! 하고 놀래키는 텐도를 찰진 소리가 나도록 때리는 세미, 시라부가 나지막하게 궁시렁대는 소리, 간간이 터지는 츠토무의 비명, 그리고 제 머리칼에 얼굴을 묻어버린 우시지마까지. 이보다 혼란스러운 공간이 있을 수 없었으나, 상황 자체가 굉장히 우스운지라 나름 견딜만- "아씨 ..." 갑자기 화면을 가득 채운 괴기한 것에 닝은 눈을 꾹 감은 채 제 얼굴을 우시지마의 큰 손으로 덮어버렸다. "와카." "... 응." "오늘 내 기숙사에 숨어 들어오면 안돼? 너무 커서 못 숨나? 나 못 잘 것 같은데, 나 진짜 못 잘 것 같은데." 점점 다급히 속도를 높이는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는 축축히 젖어가기 시작했다. "나 진짜 못 자. 차라리 다 같이 여기서 자면 안되려나? 나 방 혼자 쓰는데 오면 안-" 또 다시 고막을 가득 채우는 기괴한 음성에 그녀는 우는 소리를 내며 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그나마 제 속을 달래주는 것들은 츠토무를 달래기 위해 영화일 뿐이라고 되새겨주는 레온의 목소리, 제 허리를 단단히 감싼 우시지마의 큰 손과 목덜미를 간지럽히는 뜨거운 숨결 뿐이었다. * 영화가 끝나고도 사시나무 마냥 덜덜 떨고 있는 친구들과 후배들을 본 레온은 귀여운 동물 영상을 보자고 제시했고, 그렇게 장장 1시간이 넘도록 그들은 온갖 강아지, 고양이, 햄스터, 하다 못 해 아기 맹수 영상까지 보고 나서야 겨우 부실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문제는, 제게는 조금도 도움이 되지 못 했다는 사실이었다. 불이 꺼진 방에서 혼자 두려움에 떨다가 결국 노트북에 충전기까지 꽂아놓고 바닥에서 뒹구는 고양이 영상을 틀어놓았지만, 이 또한 영 도움이 안 됐다. 침대에 누운 채로 눈을 감으면 검은 시야에 아른거리는 그 기괴한- 으 ... 닝이 이불을 코까지 올려 덮고는 화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방으로 올라오기 직전에는 진지하게 우시지마를 여자 기숙사로 몰래 들이는 방법까지도 고려해보았지만, 터무니 없는 아이디어로 종결짓고는 끝내 포기했었다. 퇴학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들어오게 했어야 했는데. 아니, 애초에 노트북이 그냥 부서지도록 놔뒀어야 했는데. 닝은 혼자 씩씩거리며 벽에 껌딱지마냥 붙어 누워서는 손을 꼼지락거렸다.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더니, 그녀는 지금 머릿속에 귀염둥이 고양이들을 최대한 많이 새겨넣는 중이었다. 오늘만큼이나 기숙사를 혼자 쓰는 제 처지가 원망스러울 수 없었다. 지이잉- 그 순간 울리는 핸드폰을 닝은 공포심이 가득 어린 시선으로 흘겨보았다. 귀, 귀신 든 거 아니야? 아니야. 아니겠지. 하지만, 아까 영화에서도 이러다가 귀신 나왔는데? 이 시간에 전화 올 사람이 없는데? 왜, 왜 이 시간에 전화가 울리지? 혼자 길고 긴 독백을 중얼거리며 고심해봤자, 순전히 호기심 때문에 공포영화를 끝까지 시청하는 바람에 현재와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된 닝은 전화를 안 받고 편히 잘 인간이 아니었다. 설사 굉음이 들려온다 해도. 그녀는 기어코 부들부들 떨려오는 손을 뻗어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아는 사람이어라, 제발 아는 사람이어라- 주문을 외듯 반복적으로 한 구절만을 중얼거리며 저도 모르게 꾹 감고 있던 눈을 살짝 떠 보면, 익숙한 이름이 화면에 떠 있었다. "와카?" "닝." 눈을 꿈뻑거리던 그녀가 노트북 화면의 오른쪽 하단에 떠 있는 시계로 눈길을 주었다. 12시가 넘어가는 시각이었다. "아직까지도 안 자고 전화한거야?" "잠이 안 오면 전화하라고 하지 않았나?" 닝이 곰곰히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내가 그랬었나? 솔직히 말 하자면, 동물 영상을 튼 순간부터 기숙사로 올라올 때까지도 제정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우시지마를 기숙사로 몰래 들여오냐 마냐 고민하던 기억 밖에는 남아있지 않았다. 그것조차도 제 선택에 대한 후회로 그득한 탓일 정도로 머릿속이 안개에 끼인 듯 뿌옜다. "내, 내가 그랬어?" "응." "그럼 너도 잠이 안 오는 거야?" "응." 조금, 기분이 나아졌다. 아주 조금. "나도 무서워서 못 자겠어. 꿈에, 그, 귀신 나올 것 같아."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무어라 말을 해야 하는 지 고민하는 듯 싶었다. 아랫입술을 윗니로 꾹꾹 깨물던 닝이 침을 꿀꺽 삼켰다. "아무 말이나 해주면 안 될까? 네 목소리 들으면 나아질 것 같아." "무슨 얘기를 해야되나?" 그녀는 노트북 화면에서 열심히 뒹굴고 있는 아기 고양이를 쳐다보며 머리를 굴렸다. 길게 얘기할 만 한게 뭐 있을까. 무슨 주제든 한 마디로 끝내는 대단한 재주가 있는 그에게 기나긴 이야기를 해달라기엔 영 마땅한 것이 없었다. "모르겠네. 음- 그럼, 혹시 나 재워달라고 하면 해줄거야?" "가능한가?" 문득 머릿속에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었지만, 정말 해줄 지가 의문이었다. 목소리가 워낙 낮으니 반복적인 말이라면, 잘 잘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음- 양 세주면 가능할 것 같아." "양?" "응.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이렇게." 정적이 흘렀다. 하긴, 나 같아도 좀 껄끄러운 부탁이다. 핸드폰에 대고 양이나 세고 있으라니. 심지어 말 하는 당사자는 얻는 것도 없었다. 이제 영상이 끝나버려 새까만 화면만을 띄우고 있는 노트북을 발견한 닝이 강아지 영상을 틀기 위해 손을 움직이며 차라리 졸릴 때까지 내가 떠들겠다고 얼버무리려던 찰나였다. "양 한 마리." 낮게 내리깔린 목소리에 그녀는 다시 손을 거뒀다. "양 두 마리." 작은 웃음 소리가 입술 새로 흘러나왔다. 헛웃음 정도로 여긴건지, 말이 이어지지 않았다. 우시지마가 바로 눈 앞에 있기라도 한듯 배시시 웃은 그녀가 저 밖에 없는 공간에서 작게 속삭였다. "좋다. 계속 해 줘." "잘 때까지?" "우리 둘 중에 아무나 잘 때까지." "... 양 세 마리." 닝이 눈을 감았다.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규칙적이고도 담담한 목소리는 고작 양을 세는 것 따위조차도 자장가로 제격이었다. 양도 귀엽지. 말랑말랑하지. 그런 무의미한 생각의 꼬리를 물고 물어 이어나가며 그의 목소리를 온전히 담아내다 보면, 의식이 점차 흐릿해졌다. 언제 잠이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아침에 울리는 알람 소리에 맞추어 눈을 떴을 쯤에는 정신이 꽤나 맑았으며 핸드폰이 제 베개 옆에 대충 널부러져 있는 꼴이 보였다는 사실 밖에는 알지 못했다. 손을 뻗어 다시 핸드폰을 들어 전화 기록을 살피면, 40분이나 통화한 것으로 표시되어 있는 기록을 보고 그가 오래간 전화를 끊지 않았구나- 하고 유추할 뿐. "나 잠들고 나서도 계속 양 셌어?" "그냥 듣고 있었다." "음? 뭐를? 나 자는 거?" "응." "그게 도움이 됐어?" 의아하다는 닝의 표정과는 달리 우시지마는 당연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제 연인을 보고도 웃음을 참아낼 수는 없었다. |
Keyword 4 기대 |
고시키 츠토무의 의욕은 우시지마를 향한 경쟁심과 함께 하루가 멀다하고 불타올랐다. 우시지마의 연인인 닝이 애칭까지 붙여주며 예뻐해준다는 사실은 가뜩이나 활활 타오르고 있는 불에 잔뜩 부채질을 해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다른 이들 앞에서는 우시지마와 특별난 스킨십을 하지도 않는 닝이 츠토무의 볼을 챱챱 만져주기도 하고 강아지 쓰다듬듯 머리를 쓸어주기도 하니, 작은 불씨조차 산불로 번져버릴 수밖에. 한껏 어깨가 올라간 1학년 후배님은 훈련이 끝나고 휴식을 취하던 중 대뜸 고개를 치켜들며 말했다. "닝 상은 저를 제일 좋아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켁-" 드링크를 마시던 카와니시가 사레라도 들린 듯 콜록거리자 옆의 세미가 안쓰러운 얼굴로 등을 두드려주었다. 수건으로 우시지마의 얼굴을 닦아주던 닝이 고개를 돌려 한껏 기대하고 있는 얼굴로 눈을 반짝거리는 츠토무를 올려다봤다. "음, 츠토무가 제일 귀엽지. 우리 퍼피잖아!" 예쁘게 웃어준 닝이 다시 고개를 우시지마에게로 돌렸다. 한 마디 칭찬에 츠토무의 입꼬리가 꿈틀거렸다. 시라부의 짜증 어린 시선은 의문의 장막에 막히기라도 한듯 그에게 닿지 않는 모양이었다. "역시 닝 상은 저를 제일 좋아해주시는거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와카지." 그치? 드링크를 한 번에 들이키던 우시지마가 닝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츠토무는 와카토시군을 못 이기겠네-" 텐도의 말 한 마디에 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반드시 이길겁니다! 2학년들이 아무리 싸늘하게 구는 척 해도, 3학년들이 아무리 기이한 방법으로 그를 예뻐해도, 종국에는 고시키 츠토무가 배구부의 공식 막둥이 대우를 받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달라지지 않았다. 타이치 때와는 달리 닝이 츠토무를 어찌 대하던 질투심 따위 우시지마의 속에 들끓지 않을 정도로, 그는 정말 귀여운 똥강아지 같은 존재였다. 그 중에서도 본인 배 아파 낳은 아들인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츠토무를 귀여워하는 닝은, 그 날만큼은 고삐가 풀릴 수밖에 없었다. 그 많고 많은 후배들 중에서도 제 연인을 라이벌로 여기는 1학년 의욕 덩어리를 제일 아껴주는 데에는 꽤 많은 이유가 있었다. 놀리는 맛이 있어서도 있고, 텐도와 함께 우쭈쭈해주면 곧바로 불타오르는 모습이 마냥 귀여워서도 있고, 시라부가 갓파라고 일컫었던 그 머리 스타일부터 반짝거리는 눈까지 모조리 다 씹어먹고 싶을 정도로 귀여워서도 있었다. 그래, 근본적으로는 귀여워서였다. 하지만, 까칠한 시라부도 무관심한 우시지마도 츠토무만큼은 제대로 후배 취급해주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의욕이 한없이 불타오르는 만큼이나 굉장한 양의 노력을 쏟아부었다. 물론, 어느 하나 노력 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고, 우시지마도 배구에 모든 힘을 쏟아부었지만, 츠토무는 무언가 달랐다. 한 단어만으로 정확히 표현해낼 수 없을 정도로 인생은 배구로 시작해서 배구로 끝난다는 듯이 한 걸음 한 걸음에 열정을 담는 아이가 그 누구의 눈에도 안 예뻐 보일 수는 없었다. 이미 실력이 굉장한데도 높은 곳에 위치한 목표만큼이나 애를 쓰는 덕인지, 탓인지, 그는 유망주로 촉망받았다. 유망주인 츠토무는 그만한 기대감을 한 몸에 받았다. 본인에게 시선이 몰리는 만큼, 관심이 쏟아지는 만큼, 기름이 부어지기라도 한 양 불타오르는 성격은 절대적으로 성장을 물어왔으나, 문제가 하나 생겨났다. 기대감이라는 것은 꼭 성냥개비와도 같아서, 작은 희망이 될 수도 있지만, 그와 동시에 재앙을 불러오는 작은 불씨가 될 수도 있었다.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아무리 높이 날아올라도 날갯짓을 한 번 잘못 하는 순간, 방향이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순간, 아니, 바람의 흐름을 딱 한 번 잘못 타는 순간, 그를 아득한 곳으로 띄워올려주었던 기대감은 다시 그를 바닥으로 짓누르고야 마는 법이었다. 끊임없이 튀어오르는 트램폴린에 올라타기라도 한 것처럼 바닥에 나동그랄 틈도 없이 다시 솟아오르는 성정을 가진 아이를 바라볼 수밖에는 없는 제 속은 다른 의미로 불타오르고 말았다. 그리고 기어이 그 기대감이 물리적으로 어린 새의 날개를 잡아내리는 순간, 제 이성을 붙들고 있던 굵은 밧줄이 단숨에 풀려버렸다. 무슨 정신이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1학년 때도, 첫 후배들에게 저 망할 감독이 손을 들었을 때도, 모두 한 번씩 소리 높여 목소리를 낸 적은 있었으나 나름대로 이성만큼은 잘 붙잡고 있었다. 그러나 제 눈에 한 없이 순수하고 어리기만 해 보이는 아이의 고개가 정면을 바라보지 못 하게 된 순간에는 붉은 안개가 시야에 가득 드리웠다. 붉은 색으로만 가득 찬 제 세상에서는 주위의 사람들도, 저 노인의 지위도, 제 위치도 모두 사라져 버렸다. 무슨 말을 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날카로운 이빨을 내보이는 호랑이 마냥 으르렁거리다가 제게 돌아오는 몇 마디에 종국에는 소리까지 빽 질러버리고는 저를 조금은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어린 병아리를 부실로 질질 끌고 오는 장면만이 기억 속에 선명하게도 도장을 찍었다. 기대감이란, 양날의 검이었다. 이 검은 그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두 개의 날을 번뜩였다. 기대감이라는 날이 아무리 날카로워도, 반대편에 달린 실망감이라는 날은 그 배로 잔인했다. 기대감에 부응해 승리를 거머쥐더라도 언젠가 단 한 번이라도 실수를 하는 순간, 검은 제 주인을 도륙을 내버렸다. 더욱이 잔인한 사실은 아무리 애써도, 아무리 상처 입지 않기 위해 발버둥쳐도 결국 그 검의 주인은 언젠가 피를 흘리고야 만다는 사실이었다. 굳이 제 3자가 당신의 검이 주인을 배신했다고 이야기 해주지 않아도, 언젠가는 피를 흘리게 되었다. 그러니, 굳이 그 사실을 강조해 줄 필요는 없었다. 지금 이 어린 병아리가 방향을 잡지 못 해 둥지로 내려앉는 순간에 가장 충격을 받았을 인물은 장본인이지, 결코 옆에서 지켜보기만 하는 방관자가 아니라는 말이었다. 간이의자에 츠토무를 앉혀두고 얼음주머니를 즉석에서 만든 닝이 그의 볼에 갖다대었다. 항상 웃어주기만 하던 제가 발톱을 세운 꼴은 처음 본 탓인지 눈치를 보듯 눈도 못 마주치는 그에게 미안한 마음밖에는 들지 않았다. 2년이 넘어가도록 이 자리에 있어놓고, 몇 번이고 똑같은 장면을 지켜보기만 하다 뒤늦게 달래주기만 하는 제 미련함이 너무도 부끄러웠다. 츠토무의 손을 들어 얼음주머니를 들게 만든 그녀가 수건을 찾아 그의 얼굴에서 주르륵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주었다. "미안해." 둥지가 되어주어야 하는 내가 너를 제대로 지켜주지 못 해서. 다리를 부러트림으로서 더 잘 날아오르리라 믿는 인간의 단편적인 세상에는 깨우침을 주지도 못 하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작 손톱만한 상처를 내는 것 뿐인 사람이라서. "내가 힘이 없네." 그제야 저를 안절부절 못 하는 눈으로 올려다보는 츠토무에게 닝은 다정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래도 내 눈치만큼은 보지 말아. 너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미리미리 귀띔해주고. 내가 꼭 대신 말 해줄테니까." 이리저리 닝의 얼굴을 살피는 듯하던 어린 병아리의 눈에 다시 별이 깃들었다. 존경이라는 글씨가 그의 갈색 눈에 새겨지기라도 한듯이 선연한 모습에 그녀는 마침내 웃음을 흘렸다. 그는 귀여운 강아지도 닮았지만, 근본은 독수리가 될 어린 병아리라는 사실을 마침내 깨달았다. 하늘 높이 날아오를 아이. 하늘을 지배하는 맹금류의 왕이 되고 싶어하는 아이. 다리를 부러트려도, '너의 잠재력을 키워내기 위해서'라는 한 마디에 곧바로 날개를 펼쳐낼 대단한 존재. "츠토무는 이미 대단하니까, 기 죽지 마. 기 죽지 말고 지금껏 해온 대로 열심히 하면 더 대단해질테니까, 힘들어도 조금만 버티자." 그가 고개를 주억거리는 모습을 온전히 눈에 담아내었다. "힘들 때는 나한테라도 말 하고." "네...!" 닝은 웃음을 흘리며 그의 볼을 살폈다. 기대감은 어쩌면 이 아이가 우시지마보다 더 받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처음부터 정상에 둥지를 틀고 있던 새와 날아오를 준비를 하는 병아리의 차이였다. 끝에는 이 병아리도 같은 곳에 정착하리라는 확신에서 피어난 기대감. 그녀가 아랫입술을 꾹 물었다. 그리 합리화 시켜보려 해도 속에서부터 들끓는 화는 어쩔 수 없었다. "가라앉은 것 같으면 나와, 알았지? 일단은 쉬고 있어-" 다시 고개를 주억거리는 말간 얼굴을 흘깃 쳐다본 닝이 모든 감정을 제 발걸음에 담은 채 부실을 나섰다. "적당히 하세요." 시선조차 돌아오지 않았다. "같잖은 이유 대면서 손 들지 마세요. 도대체 왜 본인이 때리면 인간의 흠인 실수가 한 순간에 사라질 거라고 생각하세요? 한심해요. 방안을 제시하고 대처 방법을 알려주는 대신 손부터 드는 거." "닝 양-" "지금 감독님한테 말하고 있잖아요!" 본인을 말리려는 사이토 코치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닝이 왼발로 바닥을 쿵 내리찍었다. "정작 당하는 애들 중에서는 불평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괜찮은 것 같아요? 내가 입 다물고 알아서 얼음 들고 오니까 익숙해진 것 같아요?" 차마 손은 대지 못 하고 그녀를 말리려 애쓰는 코치와는 달리 감독은 눈길조차 안 준 채였다. "노력을 안 해서,” “연습을 빠져서," "한심하게 놀기만 해서," "관리를 안 해서," 강조라도 하듯이 그녀는 숨을 쉬는 순간마다 바닥에 발을 굴렀다. "그 꼴이 지속적으로 이어져서- 같은 이유라면 내가 조용히 입 다물고 살아보기라도 하겠어요. 근데, 고작 판단 오류 한 번 했다고, 실수 몇 번 했다고 손을 들어? 똑같은 실수가 이어지면 그 원인을 고칠 대책만 내어주면 되지, 왜 상처를 내? 어?" 그녀가 격앙된 목소리로 반말까지 내뱉었지만 돌아오는 말은 커녕 눈길조차 없었다. 자연스레 손이 말려들어갔다. 졸업이고 개뿔이고 신발을 들어 냅다 던져버리고 싶었다. "내가 한두 번-" 말을 이으려던 찰나 허리를 감싼 두 팔이 가볍게 닝을 들어올렸다. 어찌나 익숙해진 품인지, 굳이 고개를 들어보지 않아도 주인이 누군지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누가 어떤 이유로 이러는 지 잘 알고 있어서, 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와카! 내려놔!" 내려놓으라고-! 품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의 팔을 손에 쥐어봤자, 꿈쩍도 할 수 없었다. 우시지마는 으르렁거리는 제 연인을 구석의 드링크 통을 올려 둔 테이블 앞에 내려놓았다. "내가 대신 화 내주겠다잖아. 그 꼴 조용히 보고만 있을 수가 없으니까, 내가 욕 해주겠다잖아." 그에게로 몸을 돌린 닝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가 하는 행동 모두를 따라하는 거울처럼 우시지마도 똑같이 미간을 구겼다. "그만해라. 쫓겨나면 어쩔건가." "나- 나는 잃는 거 없어. 이제 와서 그러면, 골치 아픈 건 내가 아니라 저 인간이거든?" "네가 나가면, 우리는 어떡하라는건가." 곧바로 무어라 반박하기 위해 입을 열었던 그녀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결국, 또,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눈 뜨고 봐줄 수 없는 행위를 저는 또 눈을 감곤 모른 척 해야만 했다. 아무리 막아주고 싶어도 끝에는 힘이 없었고,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이미 찢겨진 상처에 연고나 발라줄 수밖에 없었다.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불에 찬 물을 끼얹은 듯 온갖 충동이 모두 사라짐과 동시에 서러움이 파도를 타고 몰려왔다. 무력감이란, 이토록 제 가치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내 의무, 권리, 목적. 모든 것이 희미해졌다. '해야 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의 괴리감. 그 사이를 파고드는 '하고 싶은 것'의 뚜렷한 존재감은 결국 언제라도 터져버릴 것처럼 빵빵하게 부어오른 눈물보를 날카로운 바늘로 찔러버리고 말았다. "난 또 보고만 있어야 돼?" "그것으로 충분하다." 서러운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 내렸다. 처음부터 그래왔듯이 거친 결을 가진 손이 부드럽게 뺨을 감싸왔다. 느리게 닦아두는 손길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눈물은 빠르게 길을 내었다. "울지마라." 그는 성실하게도 제 턱 끝까지 흘러내리는 물을 다시 받아내었다. 우시지마의 부탁대로 이미 구멍이 나버린 보자기를 아무리 꿰매려 애써보아도 제 앞의 다정한 눈빛에 또 다시 울컥하고 감정이 쏟아져 내렸다. "졸업할 때는 나 말리면 안돼." "알겠다." 벌써 3년 째 들어온 레파토리가 지겨울 법도 한데, 우시지마는 덤덤히 대꾸하곤 작은 맹수를 품에 끌어안았다. 등을 토닥이던 그는 마침내 호랑이가 발톱을 숨긴 순간에서야 몸을 떨어트렸다. "진정해라." 나지막한 한 마디와 함께 머리칼에 입을 맞춘 뒤, 눈도 한 번 맞추어주곤, 다시 코트로 돌아가는 뒷모습을 응시하는 그녀의 눈빛이 다시 유순해졌다. 여전히 붉은 기가 가라앉지 않은 얼굴로 부실에서 나오는 츠토무를 보기 전까지는. "텐도 상, 닝 상이 저만 보면 화를 내십니다. 왜- 왜죠? 아까까지만 해도 엄청 친절하셨는데!" "그걸 왜 텐도 상한테 묻는거냐?" 툭 내뱉는 카와니시의 말은 가볍게 무시한 츠토무는 텐도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았다. "흐음- 역시, 츠토무가 실수를 많이 해서 그런 게 아닐까?" "예?!" 어깨가 축 늘어지는 츠토무를 한 번 쳐다본 카와니시가 텐도를 꼭 지금에조차도 그래야하냐는 눈으로 바라봤다. 텐도는 그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 "저 오늘은 실수 안 했습니다!" "어?" 닝은 수건을 접다 말고 그에게 의아한 눈빛을 던졌다. 기대감이 잔뜩 서린 얼굴과 금방이라도 튀어오를 듯 동동거리는 두 발, 그리고 꼼지락거리는 두 손까지. 오늘 실수를 안 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고 있음에도 굳이 제게 보고를 하는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그녀는 선배들 앞에서는 한 없이 작은 병아리가 되어버리는 그에게 매몰차게 굴 수 없었다. 그것도 저 높은 곳으로 솟아오르길 제가 간절하게 비는 우리 병아리에게. "축하해!" 그 한 마디에 세상을 밝힐 수 있을 정도로 밝은 빛을 머금는 츠토무를 보며 다정하게도 웃어보이는 닝에게 그 누구도 텐도의 장난이 원인이라는 말을 전할 수 없었다. 목적 달성- 하고 중얼거리며 휘파람을 부는 텐도를 카와니시가 힐끔 쳐다보았다. 때로는 의도가 과정을 정당화시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
Keyword 5 충동 |
철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캔커피가 자판기 입구로 떨어졌다. 또다시 픽픽 새어나오려는 하품을 참은 닝이 몸을 숙여 캔커피를 주웠다. 제 욕심에 간밤중에 책 하나를 완독해버리는 바람에 고작 두세 시간 정도 자고 일어났다. 그렇다고 늦게 일어나지도, 지각을 하지도 않았지만, 몸은 피곤함을 이겨내기 위해 기를 쓰고 있었다. 인터하이 현 대표 결정전인데 어디 구석에서 잠들 수도 없고, 커피라도 마셔서 버티는 수밖에. 치익- 살짝 흘러나온 커피를 입에 머금었다. 피곤해 죽겠다. 커피를 자주 마시는 편은 아니었지만, 드물게 몸에 넣는 만큼 효과도 나름 좋았다. 뭐, 이럴 바에는 에너지 드링크를 마실 걸 하는 후회가 조금 들기도 했지만. 몇 번 입에 갖다대니 그새 캔이 비어버렸다. 하나 더 마셨다가는 코트 위에서 뛰는 아이들보다도 심장이 더 빨리 뛰어댈지도 모르니 굳이 하나 더 사진 않기로 했다. 지잉 울리는 핸드폰을 주머니에서 꺼내니 무릎 보호대를 어디에 넣어둔 것이냐 묻는 코치의 문자가 보였다. 닝의 입꼬리가 불편하게 비틀렸다. 이런 식이면 도대체 내년에는 어쩌려는지도 모르겠다. 제가 처음 들어올 당시에는 이미 본인들끼리 나름대로 잘 해온 터였지만, 지금은 모두가 제 도움에 익숙해져 있었다. 예민한만큼 세심한 시라부가 있으니 어련히 잘 하겠다 싶지만서도 순전히 인력 문제 탓에 내년에 새로운 매니저가 들어오지 않는 이상 영 무리일테다. 한숨을 짧게 내쉰 그녀가 지금 가겠다는 문자를 찍어 보내곤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빈 커피캔을 버리기 위해 한 손으로 찌그러트리는 순간, 절대 잊을 수 없는 잘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어? 시라토리자와 매니저-" 제 이름도 모르면서. 생글 웃어보이는 오이카와에게 조소를 한 번 지어준 닝이 옆의 쓰레기통으로 캔을 던져 넣었다. "아직도 우시지마랑 사귀려나요?" "알 바는 아닌 것 같은데요." 한 쪽 눈썹을 치켜 올리며 되묻자 그 옆에 서 있던 분홍 머리가 웃음을 터트렸다. 키득거리는 본인의 친구를 한 번 쏘아 본 오이카와가 다시 닝에게로 시선을 내렸다. "그럼 그렇지, 역시 헤어진거지?" "그런 그 쪽은 인기가 참 많은가보더라고." 그 와중에 우쭐해보이는 얼굴이 칭찬 한 마디에 눈을 반짝이는 츠토무를 아주 조금 닮아 있어서, 그녀의 날카로웠던 눈빛이 조금 누그러졌다. "소문이 어찌나 잘 나는지, 여자친구랑 헤어졌다면서? 와카는 그 쪽이랑 많이 달라서 말이야. 잘 사귀고 있고, 앞으로도 잘 사귈 예정이야." 어린 아이 마냥 일그러지는 얼굴을 올려다본 닝이 손을 들어 그의 팔을 토닥였다. "정 꼬투리가 잡고 싶으면, 이긴 다음에 '연애질이나 하느라 실력이 줄었나봐-?' 라고 말 해. 지금 시비 걸어도 별 타격 없으니까." 좋은 경기 기대할게- 손을 흔들어 준 닝은 귀찮게 울려대는 핸드폰에 미간을 구기곤 체육관으로 다급하게 뛰어갔다. 1년도 안 남았다고 잘도 부려먹네, 라고 궁시렁거리면서. 그새 사라져버린 여학생의 뒷모습을 벙찐 채 바라보던 오이카와가 숨 넘어가라 웃어대는 마츠카와와 하나마키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만 웃어!" "아, 웃겨 죽겠네. 그러게 괜히 시비 걸지 말랬지." "어떻게 비꽈야 신경에 거슬리는지 훈수까지 들으셨네?" "조용히 해." 눈을 가늘게 뜨는 오이카와를 보며 또 웃음보가 터진 두 친구에 이와이즈미는 눈을 데굴 굴렸다. "이겨서 한 마디 하면 되는 거 아니냐." 목석같이 굳어있던 오이카와가 그제서야 코를 하늘 높이 올리며 걸음을 옮겼다. "두고 보라지." |
Keyword 6 독점 |
우시지마는 여전히 제가 카와니시에게 너무 친근하게 구는 듯 싶으면 꽤나 정적인 방법으로 불편함을 표현했다. 훈련 도중에 본인도 모르게 배구공을 터트릴 기세로 내리치는 일은 어쩔 수 없었으나 그는 도련님답게도 아무리 친구들 앞이라 한들 내색하지 않았다. 그저, 딱 둘만 남았을 때가 되어서야 일전의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며 숨을 쉬는 것조차 힘겨워질 정도로 입술을 맞대올 뿐. 그는 가지지 못 한 것이 없으니 사람이든 물건이든 꿈이든 제 손아귀 밖으로 벗어나는 꼴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워낙 표현을 안 하기도 하고 조용한 편이기도 하고 사람은 사람이구나- 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로 낮게 깔린 욕심이기에 눈치 채는 것조차 어려웠을 뿐, 언제나 존재는 해왔던 감정이었다. 작년, 오이카와와의 일 이후 '패배감'을 느꼈다고 숨김 없이 이야기를 하는 그를 올려다보며 닝은 고개를 갸웃거렸었다. 그 말이 그와 영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 마냥 낯설었던 탓이었으나, 뒤늦게 그는 본인의 영역 안에 들어왔다고 판단하는 것들에 한해서는 남들에게 덤덤하게 내어주지 못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게 설사 사람과의 관계라 하더라도 우시지마는 발톱을 세워 더 꽉 그러쥘지언정, 가만히 뺏기고 볼 인간이 아니었기에 당시 상황에 있어 '패배감'이라는 단어 만큼 잘 어울리는 명명또한 없었을테다. 저야 뭐, 나름대로 그가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후배들을 예뻐하니 괜찮았지만, 배구는 전혀 다른 경우였다. 고작 사물에 불과한 배구공이 갑자기 자아를 가져 그의 마음대로 알아서 움직여줄 리도, 원하는 대로 경기가 이루어질리도 없었다. 우시지마는 실력이 좋았다. 그건 명백한 사실이었다. 이젠 유스로 공식 선발까지 되었으니 이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 그래서 제 눈에는 그가 더더욱 신기해 보였다. 국가대표 유스가 될 정도로 개인의 능력치가 뛰어나면, 자연스레 욕심 또한 크기 마련이었다. 타인이 그에게 기대하는 것보다도 자신 스스로에게 거는 기대감이 더 클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었다. 그러면 시라토리자와의 한계가 잘 해야 4강, 평균적으로는 8강이라는 사실에 화를 낼 법도 하고 최소한 실망이라도 할 법 한데, 그가 경기에서 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너지는 모습을 본 전례가 없었다. 그 뿐이랴, 경기 중 그를 향한 견제는 어마무시했다. 더 높은 곳으로 날아올수록 바람은 더욱 거세졌다. 마치 상대 코트에 올라 있는 인물 모두가 단 한 사람만을 바라보고 경기를 하기라도 하듯이. 신경전이고 눈치고 하는 것들을 떠나서 아무리 우시지마가 눈치 없다 이야기해도, 배구 선수로서 그런 흐름 하나 못 읽어낼 리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기복이라는 것 따위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 양 다시 날아올랐고 결국 상대를 무너트렸다. 어쩌면 경기에서 패배를 했음에도 되려 상대에게 패배감을 선사해주는 그 능력 덕분에 무덤덤한 것일까 싶다가도 문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어째서 욕심이 안 나는걸까? 또다시 전국전 4강에서 떨어지고 학교로 돌아오는 길, 닝은 배구부 전체의 손에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들려주었다. 아쉽다고 중얼거리는 시라부와 다음에는 더 잘 할 거라며 방방 뛰는 강아지 츠토무에게 시선을 주던 그녀는 다시 제 옆의 연인을 올려다보았다. 2년 전 만난 제게도 욕심을 품으면서, 수년 간 모든 것을 쏟아부은 배구에 정말 욕심이 없는 걸까? 단순히 표현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느끼지 못한다 치부할 수 없었다. 온통 표현에 미숙한 무뚝뚝한 녀석들로만 가득찬 환경에 있다 보니 더욱이 피부로 느끼게 된 인간에 대한 고찰에 가까운 진실이었다. 그러니, 우시지마가 아무리 결과를 덤덤하게도 받아들인다 해서 욕심이 없는 것도 아닐텐데. 배구는 고등학교에서 끝낼 것이라 선언한 세미와 텐도조차도 현재에는 욕심이 있는데,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그가 기록에 연연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와카는 안 아쉬워?" 그새 아이스크림 하나를 해치운 우시지마에게 닝은 새 것 하나를 아이스 박스에서 꺼내어 건네주었다. "무엇이 말인가?" 그녀는 차가운 우유 덩어리를 입에서 굴리며 적당한 단어를 골라내었다. "더 높은 곳으로 향할 수도 있었다는 사실이." 정적이 찾아들었다. 뭐, 사람인데 당연히 아쉬울 수밖에 없겠지. 나름 고심해서 말 한 것이었지만, 3년 동안 일본어 회화를 줄기차게 해왔음에도 아직도 적당한 말을 골라내는 일은 어려웠다. 대충 손을 가로저은 닝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해야 되는 말은 곧잘 하지만, 멘탈이 강하진 않거든. 그래서 내가 바라는 게 있으면, 그게 무엇이든지 간에 닿지 못한 순간에 ..." 그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순간들을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절망감이 느껴진단 말이지. 그런데 와카는 그런 게 없는 것 같아. 금방 털어내는 느낌?" 우시지마가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그렇다." 무엇이 묻고 싶은거냐는 얼굴로 의아한 눈빛을 해보이는 그를 보며 웃음을 흘린 닝이 물었다. "뭐가 그렇게 너를, 음, 견고하게 만들어주는거야? 그냥 궁금해서." 견고 라는 단어를 곱씹어보듯 그가 나지막이 발음해보았다. 너무 어려운 질문이었을까? 번역기라도 꺼내서 말을 풀어보려 애써야 하나 싶던 찰나였다. "모르겠다." "에?" "더 높은 곳으로 향하지 못 했다는 사실에 절망하지 않는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타고난걸까. 닝이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천성이라는 단어가 괜히 있는 것도 아닐테다. 타고나기를 상처를 담아두지 않고 앞만 바라보고 달리는 사람이라면, 모를 법도 하다. 철학자도 아니고 딱히 그 근원에 대해 파헤칠 성정이 아니라는 사실도 아주 잘 알고 있고. 참 좋은데, 이런 얘기는 깊게 못 하는 것 같네. 그런 생각을 하며 아이스크림을 베어 물었다. "그냥-" "응?" 다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그녀는 우시지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다음이 있다는 생각을 한다." 닝이 눈을 깜빡였다. "지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경기를 함께 하지만, 끝이 나면 결국 마지막은 아니라고 생각을 한다." 그녀는 헛웃음을 흘렸다. 웃음의 이유가 이해 되지 않은 그가 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단하네, 싶어서." 그런 사고라면 당연히 금방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누가 모를까. 다만, 이가 단어의 위치를 바꾸듯 간단히 이루어지는 일이었다면, 모두 그와 같은 생각을 하며 살아갔을테다. 참, 닮고 싶은 인간이야. 아무리 노력해도 난 저런 생각을 할 수는 없겠지만. 신기한 애야. * 제 연인은 인기가 많았다. 배구부 내에만 해도 열광팬 두 분이 계시니, 인기가 없었더라면 더 경악스러웠을지도 모른다. 어쨌건간에, 경기를 나가면 그의 이름이 불리는 순간 꺄르륵 거리며 환호하는 여자애들도 많았고, 발렌타인 데이 때에는 초콜릿을 다발로 든 채 저를 멀뚱멀뚱 쳐다보기도 했으나, 조금도 신경이 쓰지 않았다. 질투 안 하냐며 키득거리는 텐도에게 콧방귀를 뀌어보이는 일은 있어도 질투하는 일은 없었다. 사람마다 감정의 정의가 다르고 성격도 다르니 질투라는 감정 자체를 옹졸하게 여길 생각은 없었다. 당장 제 연인도 불편함을 내비친 일이 한두 번이 아닌데 무어라 말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제 사전의 질투란 가지지 못 한 것을 가지고 싶어하는 감정을 의미했다. 그리고 난 우시지마를 가졌다. 내 연인이고, 내 사람이니 그의 팬이 많든 적든 신경이 쓰일 이유가 없었다. 아무리 그의 이름을 불러도 결국 그의 시선은 제게만 꽂혀 있었고, 수많은 초콜릿을 받는 일이 있어도 결국 그는 제게만 고맙다며 입꼬리를 올려보였다. 그래서 일전에 와카토시군- 하고 부르며 손까지 슬쩍 건드리던 우리 반의 이름 모를 여자애에게 별다른 생각이 들지도 않았었다. 저런 사람도 있구나 얼핏 생각하고 말 뿐, 신경 쓰지도 않았고, 딱히 경계 따위도 하지 않았었다. 더군다나 같은 반으로 지낸 지 벌써 몇 달이 되어 가는데 이미 많이들 알고 있는 저들의 연애 사실을 그 여학생도 더는 모를 리도 없었고 신경에 거슬리는 행동을 그 이후로는 하지도 않았기에 그저 그런 일도 있었지- 하고 가볍게 넘겼었다. 오늘까지는. 닝이 눈을 가늘게 뜬 채로 발로 바닥을 두드렸다. 교무실 좀 잠깐 다녀온다고 한 사이, 저 꼴이 보일 줄은 몰랐다. 저도 모르게 냉소가 머금어졌다. 그러고보니 지금껏 우시지마도 저도 서로와 껌딱지 마냥 붙어다닌 편이었으니 저 학생에게는 틈이 없었겠지. 어떻게 행동하는 게 좋을까 고민하는데, 꺄르륵 웃으며 제 연인의 팔을 건드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음, 아무래도 불도저처럼 밀어붙이고 보는 성격인가본데 상대를 잘못 고른 듯 보였다. 이미 지금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 표정으로 여학생을 쳐다보고만 있던 그의 얼굴이 더욱 의문으로 물들었다. 닝은 꽤나 객관적인 인간이었고, 우시지마도 마찬가지였다. 연인 사이를 떠나서 양쪽 모두 한 가지 사실을 아주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우시지마의 말 중 꺄르륵하며 웃어버릴 멘트는 그 어느 상황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저 꼴을 텐도가 봤다면, 어디 한 번 그 재밌는 농담 제게도 해달라며 사골국 우려먹듯 오래간 놀려먹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우스운 동시에 귀여워서 사토리에게 이 이야기를 전해줘야겠다고 스쳐가듯 생각했다. "와카." 마침내 다음 행동을 결정한 닝이 예쁘게 웃어보였다. 고개를 돌린 우시지마가 그녀의 말간 얼굴을 말없이 쳐다보았다. "뭐 하고 있었어?" "모르겠다." 책상에 올려져 있는 흰 종이와 그 위에 쓰여진 우시지마 특유의 깔끔한 글씨체를 한 쪽 눈으로 흘긴 닝이 입 안쪽을 물며 웃음을 꾹 참았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 한 답이었다. 여학생도 적잖게 놀랐는 지 눈이 휘둥그레 해진 채였다. 이 말이 또 진심이라는 걸 생각하니 박장대소를 해버릴 것 같아 닝은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들어 그의 어깨에 올렸다. 우시지마의 셔츠라도 손에 쥐어야 웃음을 참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구나- 그럼 이 사람은 누구야?" "우리 반이랬다." 저도 딱 그 정도 밖에는 모르니 딱히 고쳐주고 말고 할 일도 없었지만, 그 말을 또 고분고분 전하는 얼굴이 귀여웠다. 어이 없다는 듯 이름 모를 여학생은 실소를 흘렸다. 오이카와를 하찮은 자존심이라 불렀던 우시지마의 악의 없는 진심이 또 한 사람에게 상처를 내었다. 하지만, 그 답을 끌어내는 제게는 악의가 있었다. 현재 상황을 이해하지 못 한 제 연인과는 달리, 저는 이 여학생의 의도를 뻔히 알고 있었다 - 지금 이 상황을 방관하고 있는 모두가 알고 있을 거라는 사실은 배제해두도록 하자. "그럼 모르는 사람이네." "그렇다." 결국 닝이 웃음을 흘렸다. 더 이상 참아낼 수가 없었다. 그녀는 그의 어깨에 올려져 있던 손을 들어 그의 볼을 감쌌다. "와카, 나 뽀뽀해주라." 그의 시선이 제 어깨 너머의 여학생에게로 잠시 옮겨졌다. 닝이 눈웃음을 지었다. "한 번만." 우시지마는 그녀의 부탁에 결코 아니오를 답으로 내놓을 수 없었다. 입술이 짧게 맞닿고 떨어지는 순간, 쿵쿵- 둔탁한 소리를 내며 멀어지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내 사람인데, 굳이 질투를 할 필요가 있을까? "종이를 안 가져갔다." 우시지마가 책상에 고이 모셔져 있는 주인 잃은 종이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끝까지 모든 의도를 헤아리지 못 하는, 그렇다 해서 헤아리려 애쓰지도 않는 성정은 여러모로 이점이 되었다. "이제는 필요가 없어진거지. 내가 갖다 버릴게." 질투는 하지 않지만, 저는 그렇다고 너그러운 사람도 아니었다. 내 사람아, 내 사랑아. "내 공책에 네 이름 써주라." 의도를 모르겠다는 눈으로 그는 저를 쳐다보았으나, 곧 제 필통에 들어있던 펜을 꺼내들었다. 빳빳한 표지에는 그의 성격만큼이나 올곧은 글씨체의 우시지마 와카토시 가 적혔다. |
Keyword 7 흑백 |
“밤 산책 갈까?" 저녁을 먹고 체육관 뒷뜰에 앉아 빵을 간식 삼아 나누어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하던 중이었다. 적당한 가을 날씨가 춥지만은 않아 딱 좋았다. 곧 있으면 마지막 춘고 경기 때문에 바빠지는 것은 물론이고, 그의 유스와 전국, 게다가 지금 애써 외면해보고는 있지만 눈 앞에서 사지를 버둥거리며 제 존재감을 알리는 입시까지. 날이 추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떠나서 정말 단 둘이서 시간을 보내는 일은 이제 어려워질 터였다. 우시지마는 생각 않고 있겠지만, 졸업 후에는 지금만큼이나 얼굴을 자주 볼 수 있을 리도 없었고. 고등학생으로서의 마지막 가을의 산책은 오늘이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런 마음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에게 묻자 우시지마는 하늘로 시선을 올렸다. "안 추운가?" 그는 운동복 차림이었으나 그녀는 오늘 세탁물이 뒤섞인 바람에 교복 치마에 얇은 스타킹만을 입고 있었다. 건물이 없는 한적한 곳을 거닐다 보면 쌀쌀할 것도 같았지만 귀찮음이 우려심보다 더 컸다. 닝이 어깨를 으쓱였다. "별로." 제 다리를 가만 내려다 보던 우시지마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 앞에 뻗어진 커다란 손을 잡으면 그가 저를 가볍게 잡아 올렸다. 반동으로 인해 그의 품에 안긴 꼴이 되어 닝은 그의 허리를 팔로 감아 가볍게 두드렸다. "가자." 밤 하늘이 예뻤다. 아침부터 어여쁘게도 그려져 있던 몽글몽글한 구름과 적당히 따사로운 햇살을 올려다 보며 날이 참 좋다고 생각했었는데, 달이 떠도 그 아름다움은 여전했다. 수채화처럼 흐트러져 있던 하얀 물감은 이제 유화의 것처럼 점점이 검은 바탕에 찍혀 있었다. 별자리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 하지만, 어지럽게 자리한 반짝이는 별들이 예쁘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낮에는 산책을 여러 번 했음에도 체육관에 남아 있던 경우가 많아서인지, 여태껏 밤에는 학교를 벗어난 적이 없었다. 통금을 지키네 마네 하는 일이 많은 탓이 크긴 했지만. 어쨌거나 밤의 산책은 색달랐다. 원체 이 근방이 한적한 편이긴 했지만 자동차는 더더욱 보이지 않았고,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날아오는 밤 특유의 향기가 우시지마와 잘 어우러졌다. 뭐랄까, 시원하면서도 상쾌한, 새벽 이슬이 아닌 싸늘한 나뭇잎 내음을 고루 섞은 향이랄까. 무어라 특정할 수는 없었으나 괜히 기분이 좋아지는 향이라는 사실 하나는 분명히 말 할 수 있었다. 어두운 공간을 채우는 서늘한 공기와는 달리 저들을 감싸는 따스한 분위기가 좋았다. 낮에는 해사한 날만큼이나 분위기를 띄워야 한다는 생각에 재잘재잘 떠들게 되었지만, 밤인 지금은 그러고픈 생각이 없었다. 제 걸음에 맞추어 보폭을 좁히는 그의 발소리, 점점 차가워지는 제 두 다리와는 달리 뜨거움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 그의 온기, 제 손과 얽혀 있는 기다란 손가락들의 미세한 움직임 같은 것들에 집중하고 싶었다. 이야기는 언제라도 할 수 있겠지만, 지금 이 분위기는 오늘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와는 다른 생각을 한 건지, 오늘따라 입을 열지 않는 닝을 가만 내려다 보던 우시지마가 마침내 물었다. "왜 말을 안 하는 건가?" "응? 그냥, 말 안 해도 될 것 같아서." 이후로 별 다른 대꾸를 내놓지 않았지만, 여전히 속 시원한 해답은 얻지 못 했다는 얼굴인 우시지마에게 그녀는 다정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단단히 붙잡혀 있던 제 오른손을 빼내려 하자 더 깊이 감아오는 그의 손가락에 웃음을 흘린 닝이 겨우겨우 손을 빼내었다. 그녀는 본인의 어깨에 그의 팔을 둘렀다. 그제야 이해가 됐는지, 본인의 옆으로 더 가까이 끌어 당기는 손길을 고분고분 따라주며 닝은 그의 몸에 편히 기대었다. *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거야?"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저를 안은 두 팔에만 힘이 더 들어가는 것이 느껴져 닝은 눈을 데굴 굴리면서도 그 이상 말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이럴 것을 예상하고 일부러 조금 이르게 기숙사로 돌아오자 말을 했던 터였다. 우시지마가 허리를 굽힘과 동시에 닝을 살짝 들어올리곤 체향을 들이키기라도 하는 지, 그녀의 머리칼에 묻고 있던 얼굴이 느리게 목덜미로 내려가더니 곧이어 코가 살갗에 스치는 것이 느껴졌다. 그 상태 그대로 서있는 그의 품에 안겨 그녀는 얌전히 기다려 주었다. 저들처럼 밤에 산책을 하는 사람이 없길 망정이었다. 이 모습을 누가 보기라도 했다면- 음, 텐도나 츠토무가 목격하는 일보다 더 최악은 없을테니 굳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닝은 손을 들어 그의 뒷머리를 쓸어 내렸다. "맨날 평생 못 볼 것처럼 굴어. 매일 아침 제일 먼저 보는 얼굴이 너인 건 알지?" 그리 말해도 제 귀에 들려오는 것은 규칙적인 숨소리 뿐이었다. 이러다 정말 통금을 넘기는 건 아닐까 싶어 핸드폰을 꺼내기 위해 손을 움직여보려던 찰나, 부드러운 것이 목가에 뭉그러졌다. 닝이 몸을 움찔 떨었다. 쪽- 쪽- 이어지는 입맞춤에 눈을 빠르게 꿈뻑거리던 그녀가 마침내 살갗을 긁는 치열이 느껴지고 나서야 그의 가슴팍을 손으로 밀어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놓아주지 않을 기세로 힘을 주고 있던 그가 고분고분 밀려났다. 어둠 속에서 미세하게 확장되어 있는 우시지마의 동공을 마주한 닝이 교소를 지으며 그의 져지를 잡아 당겼다. 뽀뽀는 하고 가라고 말하려던 순간 제 턱을 그러쥔 채 고개를 숙여오는 그의 움직임에 그녀는 끌려 가줄 수밖에 없었다. 두어 번 입술을 맞대오던 우시지마가 닝의 두 볼을 손가락으로 눌러 틈을 벌렸다. 더 이상은 투박하지 않은, 능숙한 움직임이었으나 거침은 여전했다. 애초에 우시지마의 성정이 부드럽지만은 않으니 어쩌겠어. 물론 그런 면이 좋은 거지만. 길게 이어지는 입맞춤에 그녀의 미간이 미세하게 찌푸려졌다. 으응- 하고 앓는 소리가 난 뒤에야 그는 떨어져 주었다. 두 사람을 잇는 얇은 은색 실이 끊어지고 제 턱에 흘러내리는 침을 민망히 여기기도 전에 그의 손가락이 말끔히 닦아내었다. 그를 조금 멍하게 올려다보던 닝이 마침내 입꼬리를 당겨 올렸다. "내일 봐." 손을 흔들어주는 우시지마가 먼저 돌아서는 일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닝이 먼저 몸을 돌렸다. * 살면서 아파 본 적이 별로 없었다. 워낙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 탓이 크겠지만, 고등학교로 올라온 뒤에도 가벼운 감기 외에는 크게 아픈 일이 없었다. 그래서 안일하게 굴었다. 전날 밤, 산책을 가기 전에 기숙사로 올라와 옷을 갈아입었어야 했는데, 하의로는 치마와 스타킹 하나만 덜렁 입은 채로 밖을 나돌아 다녔으니 안 아프다면 그야말로 기적이 따로 없었겠지. 아침부터 목이 칼칼했었지만, 싸늘한 밤 공기를 무시한 밤 산책이 원인인 가벼운 목감기라 여겼다. 보건실에서 받아 온 감기약만에 의존해 하루를 보냈다. 그녀는 가볍게 뱉어지는 기침 몇 번에 우려스러운 얼굴들을 해 보이는 덩치 큰 아이들에게 가볍게 손을 가로저었다. 그중 끈질기게도 저를 본인의 시선에서 놓아주지 않는 우시지마에게 닝은 한 쪽 눈썹을 들어보였다. "목감기 걸린 거 처음 보는 거 아니잖아." 그제서야 그는 다시 코트로 걸음을 옮겼다. 안일함은 방심을 일으켰고, 방심하는 순간 찾아오는 고통은 몸집을 배로 불려냈다. 다음 날 아침,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에 세상이 빙글 돌았다. 곧이어 지끈거리는 머리가 영 신경쓰여 닝은 한숨을 푹 내쉬며 다시 침대에 드러누워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잠을 조금이라도 더 자면 괜찮아지겠지. 그리 중얼거리며 그녀는 우시지마에게 저 대신 빨랫감 정리를 해달라는 문자를 보낸 뒤 다시 눈을 감았다. 시끄럽게 울려대는 알람 소리에 닝은 얼굴을 잔뜩 구긴 채로 한쪽 눈을 겨우 떴다. 조금이라도 더 자면 나아질까 싶었는데, 여전히 머리가 지끈거렸다. 오히려 제 상태가 더 악화되기라도 한듯이 꿈쩍도 안 했음에도 두통마저 느껴졌다. 숨결도 뜨거운 것이 제대로 몸살 감기가 걸렸나보다. 근래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일도, 딱히 늦게 잔 적도 없었는데 갑자기 몸이 아파오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렇다 해서 할 수 있는 일도 몇 가지 없었다. 조금 힘겹게 숨을 내뱉은 그녀가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 아무래도 오늘 수업을 듣기는 그른 듯 했다. 우선은 단체 라인에 오늘은 아파서 부 활동에 못 갈 것 같다는 말을 남긴 뒤, 곧바로 코치님에게도 짤막한 문자를 남겼다. 우시지마에게는 따로 연락을 해놓을까 고민하던 닝은 일단 보건실에 갔다 와서 연락을 하기로 결정했다. 얼굴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으나, 손발이 찼다. 눈도 부어오른 것인지 눈꺼풀이 무거웠고, 따끔거리는 목, 레이저라도 나올 듯 따가운 눈, 게다가 욱신거리는 머리까지 아주 금상첨화였다. 긴 숨을 내뱉은 그녀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지금껏 몸살감기는 아주 어릴 적에나 걸려보아서 오래간 잊고 있던 묘한 고통이었다. 고작 상체를 일으켰을 뿐인데도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 탓에 다시 푹신한 침대 위로 누워버리고 싶었다. 그래도 보건실에는 가야겠지 ... 차게 식어버려서 바들바들 떨려오는 발에 무게를 실었다. 세상이 또 빙글 돌았다. 이 상태로 계단은 어떻게 내려가야 하는거지. 침대를 손으로 짚은 채 눈을 꿈뻑거리던 그녀가 겨우 한 발짝 내딛었다. 따뜻한 물로 씻으면 어지럼증이라도 가라앉길 바랐다. "가라앉기는 개뿔이 가라앉아." 이미 수업 종이 친 이후라 한적한 복도의 벽을 짚은 채 닝은 아슬아슬한 걸음을 옮겼다. 어찌나 세상이 흐릿하게 보이는지, 기숙사를 나설 쯤부터 울려댄 핸드폰도 여태껏 확인도 못 하고 있었다. 시라토리자와가 부자 학교라는 사실이 원망스러운 동시에 감사스러웠다. 보건실 앞에 멈춰 선 닝이 밭은 숨을 내뱉었다. 다음에는 아무리 귀찮아도 옷은 제대로 갖춰 입어야겠다는 생각 따위나 하며 보건실 문을 열었다. [ 보건실에 있을 예정 ] [ 너무 걱정 하지는 마 ] 우시지마에게 간결한 문자를 보내고 메세지함을 훑던 그녀가 웃음을 흘렸다. 정작 제 연인인 우시지마는 괜찮냐는 문자 하나만을 덜렁 남겨놓았는데, 일전에 제 핸드폰이 미치도록 울리게 만든 주인공은 다름아닌 츠토무였다. 고작 화면의 글씨들 뿐인데도 어찌나 눈물로 범벅을 해놓았는지 핸드폰이 젖어버리는 건 아닐까 걱정해야 할 지경이었다. 귀엽지만, 굳이 보건실까지 찾아 오지는 않기를 바랐다. 보건 선생님이 아침 삼아 먹으라며 건네 준 빵을 먹고 약까지 먹었음에도 오히려 정신이 더 몽롱해진 지금, 시끄러움을 마냥 웃으며 맞아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눈을 좀 붙이라는 선생님의 말과 함께 커튼이 닫혔다. 가뜩이나 무거웠던 눈꺼풀은 지루한 하얀 천장을 바라보고만 있던 제 시야를 그대로 가리었다. 다시 일어날 때 쯤이면 그래도 움직일 수는 있길 바라며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검은 우주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무의식 중에서도 눈물콧물 질질 흘려대는 츠토무와 닝이 죽는 건 아니라며 그를 달래는 세미, 그리고 그런 고시키를 싸늘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는 시라부의 모습이 뻔히 그려졌다. 꿈 속에서도 오열을 하는 츠토무를 달래야 한 바람에 제대로 잠을 자기는 한 건지 잘 분간이 되지 않았지만, 귀신같이 눈이 떠졌다. 여전히 사지가 축축 늘어지는 것 같았으나 머리를 죄던 통증은 조금 나아진 채였다. 물론, 여전히 흐리멍덩한 정신 탓에 어디가 아픈 지조차 짚어내기 어려웠다. 그 때 옆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닝은 고개를 돌렸다. 곧바로 시야에 들어차는 익숙한 인영에 그녀는 눈을 두어 번 깜빡였다. "와카 왜 여기 있어?" 잡지에서 제게로 옮겨진 시선에는 의문이 가득했다. "네가 아프지 않나?" 그녀는 눈을 열심히 깜빡여 보며 제대로 구성 된 말을 건네기 위해 애썼다. 정신이 멍하니 단어도 잘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 그, 수업은?" "점심시간이다." 잔뜩 긴장되어 있던 몸의 힘이 노곤하게 풀렸다. 그렇구나. 목소리로는 형성되지 않은 말을 속으로만 중얼거린 그녀가 우시지마의 쪽으로 몸을 돌렸다. 잡지를 내려놓은 그는 닝을 가만 내려다봤다. "많이 아픈가?" "응. 근데 그냥 자고 싶어." 나른한 눈빛으로 저를 올려다보는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던 그가 손을 뻗어 어지럽게 내려온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자는데도 꿈에서 퍼피가 엄청 울고 그래서 정신이 없었어. 에이타가 달랜답시고 계속 말 하는데도 안 들어주고, 켄지로는 옆에서 한숨만 푹푹 내쉬고 ..." "꿈이 아니다." 시선을 올리는 것조차 어려워서 그의 검은 티셔츠만 멍하니 바라보며 우시지마의 손을 만지작거리던 닝이 힘겹게 그의 눈을 마주했다. "어?" "점심을 먹고 다 같이 왔었다. 시끄러우니 네 사람 정도만 남으라는 말씀에 세미, 시라부, 고시키는 잠시 자리를 지키다 나간 지 오래되지 않았다." 얼마나 잠이 얕았으면 눈을 안 떴는데도 그 장면이 고스란히 머릿속에서 그려진거지? 조용히 그의 말을 곱씹어보던 닝이 입꼬리를 살짝 올려보였다. "츠토무는 잘 달랬고?" "울면서 나갔다." 끝내 웃음을 흘린 그녀가 우시지마의 손을 잡아 제 볼에 올렸다. 큼지막한 손이 따뜻했다. "선생님 불러와줄래?" 고개를 끄덕인 우시지마가 닝의 볼을 한 번 쓸어주곤 몸을 일으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해열제를 먹은 그녀는 또다시 기절잠에 빠져 들었다. 텐도가 그에게 쥐여주고 떠난 점프 주간지를 제 부탁에 따라 읽어주는 나지막한 목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은 덕인지, 이번에는 그 무엇도 그려지지 않은 새까만 바탕에 낮은 콘트라베이스의 연주소리만이 들려왔다. 놀랍게도 가장 깊은 숙면에 들었던 날들 중 하루였다. |
Keyword 8 확률 |
패배는 그들의 사전에 존재하지 않았다. 최소한, 대표 결정전에서의 패배 따위는 전혀 알지 못 했다. 5년 전처럼 카라스노가 다시 한 번 날아오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도 얼핏 들었고, 그들의 세터가 대단하다는 이야기도 오며가며 들었지만, 그 뿐이었다. 아무리 대단해도 까마귀는 까마귀일 뿐, 독수리를 물어 내릴 수는 없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닝 만큼은 그렇게나 제 연인을, 친구들을, 후배들을 믿고 있었다. 우시지마의 스파이크가 처음 셧아웃을 당한 순간의 충격은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1학년에게 막혀 공이 네트조차 넘기지 못 하다니. 워낙 자기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넘치는 사람이기에 괜찮을까 싶은 동시에 그 위치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 또한 대단한 사람이었으니 단 한 번도 그에게 상처를 낸 적 없던 검에 깊게 베여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들었다. 변화는 없는 그의 얼굴에서 유일하게 더욱 깊어진 눈빛을 발견한 그녀는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돌렸다. 고작 1점. 그 정도는 배로 회수할 수 있었다. 경기가 진행될수록, 상대가 만만치 않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카라스노가 그 대단한 3학년들이 이끄는 아오바죠사이를 어찌 꺾어냈는지 또한 알 수 있었다. 천재적인 세터가 짜는 판에 기꺼이 거들어줄 수 있는 선수들의 조합은 상상 이상이었다. 강했다. 그 사실만큼은 분명했지만 보라색 유니폼을 입은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강하지만, 저들을 이길 수는 없다고. 그렇게 경기가 질질 끌려 5세트까지 도달한 순간에서야 조바심이 났다. 사기에 대한 걱정은 할 이유가 없었다. 애초부터 자존감이 높은 이들 중 최고봉인 우시지마가 이끄는 팀의 사기를 올리는 일은 간단했다. 애초부터 '진다'라는 전제는 존재하지 않았기에 더욱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벤치에 앉아 있는 닝은 손톱을 물었다. 결코 제 마음에 자리잡은 불안감을 못 미덥다며 밀어낼 수는 없었다. 물론, 질 리는 없지만. 정말 그럴 가능성은 없지만, 만약에, 아주 만약에 지기라도 한다면- 그리고 공이 하야토의 손에 닿지 못 하고 바닥을 나동그는 순간,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예선 탈락이 결정되는 순간, 까마귀 떼에 독수리가 바닥에 내려앉는 순간, 머릿속이 백짓장처럼 하얘졌다. 꼭 누군가 제 머리를 망치로 쿵 내려치기라도 한 것처럼 멍했다. 그러니까, 방금 그 경기가 코 앞에서 내 두 눈으로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우리 팀의 경기였다는건가? 에이타와 사토리의 마지막 배구경기, 제가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있었던 제 연인의 마지막 경기, 내가 일부가 되었던 이 팀의 마지막 경기. 피날레가 가장 아름다운 법이라고 그 누가 그랬던가. 내 탓인걸까. 내가 더 조사를 했어야 하는걸까. 그랬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내가 카라스노에 대해 더 알아와서 정보를 조금이라도 더 전해주었다면, 그들의 승리에 대한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염두에 두었다면, 조금이라도 덜 자만했더라면, 도쿄에서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었을까. 그 어떠한 후회도 남지 않을 수 있었을까. 어지럽게 흐트러지는 생각의 파편들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던 그녀를 현재로 불러들인 것은 끅끅거리는 츠토무의 울음소리였다. 선배라는 인간이, 부원들의 멘탈을 케어 해주는 매니저라는 인간이 고작 뒤늦은 후회들로 인해 무너져내릴 수는 없었다. 이들이 다 함께 뛰는 경기가 이렇게 끝나버렸다니. 닝은 아직도 눈물을 흘리며 환호를 하고 있는 상대편의 코트로 시선을 던졌다. 그들이나 우리나 크게 다를 바는 없었겠지만, 나는 이기적이었다. 아쉬웠고, 후회스러웠고, 화가 났다. 조금은 울컥하고 튀어나오려던 감정은 모두 조금은 얼굴이 일그러진 채인 3학년들 중에서도 유일하게 미동조차 않는 우시지마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다시 차분히 가라앉았다.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 조금은 울상인 채로 애써 입꼬리를 당겨 올렸다. 서럽게 우는 후배들을 훑은 닝은 3년 간 매일같이 얼굴을 봐온 친구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가장 아쉬워해도 모자랄 인물들이 가장 덤덤해보였다. 무슨 말을 해야할까. 그녀는 우시지마와 눈을 맞추었다. 나의 아쉬움이 드러나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입을 열었지만, 흘러나오는 것은 축축히 젖은 서러운 말이었다. "이젠 끝이네." 진정으로 아쉬울 사람은 내가 아니었기에 침을 꿀꺽 삼켰다. "다들 수고했어." 이 중 가장 아쉽지 않아야 할 사람은 나였으니까. "나도 같이 걸을래, 오늘은." 눈물콧물 다 흘리는 와중에도 닝 상은 버스 타고 가라고 웅얼거리는 츠토무에게 그녀는 따스히 웃어주었다. 휴식은 없었다. 그 날 밤, 체육관으로 돌아오자마자 감독의 오더대로 연습이 시작되었다. 피곤할텐데 들어가보라는 사이토 코치의 말에 닝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꾸했다. "코치님이랑 감독님부터 먼저 들어가보세요. 저는 정리도 돕고 들어갈게요." 입꼬리는 올라가지 않았고, 두 어른은 반박없이 수고했다는 말을 끝으로 체육관을 나섰다. 그녀는 벤치에 앉아 다리를 앞 뒤로 흔들며 연습을 구경했다. 공식 경기들은 끝이 났고, 내일은 인수인계가 이루어질 것이었다. 즉, 3학년들의 은퇴였다. 끝 이라는 단어를 그녀가 입 안에서 굴려보았다. 익숙한 단어였지만,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과는 절대로 엮고 싶지 않은 한 음절이었다. 그런데 기어코 이렇게 마지막이 다가오는구나. 도대체 텐도가 무슨 말을 한 건지는 몰라도 또 훌쩍이는 츠토무를 보며 겨우 미소를 머금은 닝이 제 연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날카롭고, 위압감을 선사하는, 무서운 사람. 연습이든 경기든, 코트 위에서는 그런 존재로만 자리매김을 한 우시지마였지만, 지금은 유독 힘이 들어가 있었다. 살벌하게도 하늘로 튀어 오르는 몸을 가만 지켜보았다. 센다이시 체육관에서부터 걸어오는 내내 유일하게 말이 없었다. 가볍게 조깅을 하며 걸음을 옮기는 와중에 시라부와도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우시지마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지금보니 단순히 무뚝뚝한 성정 탓으로 치부하기에는 그가 너무 경직되어 있었다. 그제서야 새삼스러운 사실을 깨달았다. 이번만큼은 다음 이라고 이야기 할 수 없었다. "와카." 마침내 연습이 끝나고 탈의실로 향하려던 우시지마가 고개를 돌렸다. "기숙사로 돌아가기 전에, 우리 얘기 좀 하자." 대꾸조차 않은 채 그녀를 내려다보기만 하는 그의 시선을 마주하며 닝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른 이들이 모두 탈의실로 들어간 이후에도 우시지마는 답을 내놓지 않다가 그녀가 미간을 찌푸린 뒤에야 고개를 끄덕였다. 우시지마를 벤치에 앉히고 다른 아이들에게 내일 보자 손을 흔들어 준 닝이 굳게 닫힌 체육관 문을 가만 쳐다보다 몸을 돌렸다. 저를 내내 쳐다보고만 있던건지, 진득한 눈빛에 그녀가 몸을 움찔 떨었다. 원체 표정이 없어서 속을 읽어내기 어려운 사람이었으나, 지금은 더욱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헤아리기 어려웠다. 진한데 얕았고, 무거운데 가벼웠으며, 강건한데 위태로웠다. 정확히 짚어낼 수 없는 두 상극의 경계에 서 있는 그를 마주하니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는 지 알 수 없었다. 다같이 이야기를 나누며 어느 정도 속의 응어리를 풀던 순간에 혼자만 입을 꾹 다물고 있었으니 우시지마 또한 뱉어내야 하는 감정이 있으리라 판단한 것이었는데, 도대체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하는 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적당한 말을 골라내기 위해 시선을 바닥으로 내린 순간이었다. "싫다." 뜬금없는 부정의 표현에 닝이 눈을 동그랗게 키워낸 채로 그를 쳐다보았다. 구겨진 미간 또한 분명히 무언가 마음에 안 든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하도 그와 붙어다닌 탓에 그에게 제 센스를 나누어주는 동안 정작 제 눈치를 잃어버리기라도 한 걸까. 도통 맥락을 짚어내기가 어려웠다. "뭐가 싫어?" "끝을 내고 싶지 않다." 그녀가 눈을 꿈뻑거리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제가 이해하는 바를 의미한 것인지 명확하지 않았다. 우시지마에게 두 발짝 다가간 닝이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무슨 끝?" "너와 나." 눈을 동그랗게 키워낸 채로 그의 시선을 마주했다. 불안감이라니, 전혀 생각치도 못 한 것이었다. 그녀가 두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감쌌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끝이라고 하지 않았나?" 더 이상 공 튀기는 소리가 나지 않는 체육관 안에서는 그 어떠한 소리도 감돌지 않았다. 창문도, 문도 모두 닫힌 공간에는 바람조차 들어오지 않았다. 어쩌면, 저도 우시지마를 그런 존재로만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단단한 그의 겉을 보고, 그 속에는 어떠한 잡음도 나지 않을 거라고 제멋대로 치부해버린 것도 같다. 2년 가까이 그를 만나오는 기간 동안 있었던 검은 감정의 표현들은 생소함과 본능의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지, 불안감에 가지를 뻗힌 것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제 사소한 한 마디를 모든 것의 끝이라 받아들이는 과정에는 크기는 가늠할 수 없더라도 분명 불안감을 기반으로 한 것이었다. 그가 손을 움직여 제 손목을 감싸쥐었다. "이제 시라토리자와 배구부의 공식 경기는 끝이라는 뜻이었어." 닝이 눈꼬리를 애써 늘어트려 보였다. "지금의 팀이 다 함께 뛰는 경기의 끝, 에이타와 사토리의 배구의 끝, 내가 관객석보다도 더 가까운 곳에서 너의 경기를 눈에 담을 기회의 끝." 그녀는 엄지 손가락으로 우시지마의 볼을 살살 쓸어주었다. "애초에 내가 헤어지자고 할 리가 없잖아." "그럼 왜 이야기를 하자 한거지?" 조금은 아프게 제 손목을 감은 그의 힘에 대해 닝은 불만을 표하지 않은 채, 부드럽게 웃어보였다. "걱정돼서 그랬어. 고등학교 마지막 경기인데, 과정은 안 아쉬워도 결과는 아쉬웠잖아. 너는 처음으로 여기서 멈춰버린 거니까, 걱정됐어. 그래서 얘기하고 싶었어. 그뿐이야." 우시지마는 눈을 깜빡이지도 않은 채 제 시선을 마주하고만 있었다. "지금 어때? 정말 괜찮아? 다른 애들은 다 털어놓을 때, 너만 얘기 안 하고 있었잖아." "괜찮다." "정말? 나한테는 얘기해도 되는데." 덤덤한 얼굴은 곧게 펴져 있었다. 구김 없이 곧은 얼굴의 가장 깊은 눈이 축축이 젖어갔다. "지금은 괜찮다." 툭, 하고 떨어지는 눈물에 닝은 그저 웃어주었다. 불안감이 네게도 없으리라 확신하는 것은 안일함이자 외면이었다. 아직은 어린, 아직은 미성숙한 네가 남에게 어떻게 비춰지든, 어떻게 평가되든, 처음 맛보는 진정한 패배조차도 무던하게 받아들이리라 여길 수는 없었다. "아까는 왜 안 괜찮았어?" "끝이 너무 일렀다. 그리고 싫었다." "그렇구나. 하지만, 이제는 새로운 시작이기도 하니까. 그렇지?" "응." 여전히 덤덤한 목소리와는 달리 계속해서 그의 얼굴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그녀가 손으로 부드럽게 닦아내었다. 어여삐 웃어준 닝이 허리를 숙여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수고했어. 와카, 고생 많이 했다." 창문 틈새로 은은한 달빛이 쏟아져 내렸다. |
Keyword #인수인계 |
너희의 수고와 노력을, 너희가 흘린 땀방울과 눈물을, 너희가 감내해야만 했던 고통과 시련을 나만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 고작 나 하나뿐이지만, 결과가 어떻게 되었든 결국 나에겐 너희가 가장 대단한 사람들이니까. 그러니까, 기 안 죽었으면 좋겠고, 지금껏 해온 것처럼 열심히 달렸으면 좋겠어. 앞으로는 많이 돕지 못 하겠지만, 그리고 정말 너희들만이 서로를 안아줄 수 있겠지만, 그래도 언제나 응원하고 있다는 거 알아줘. 잘 부탁할게. |
Keyword 9 공백 |
계획대로라면 전국 준비를 할 시기였으나, 더 이상 그 목표가 존재하지 않는 지금 시즌 때처럼 바쁘게 움직이는 없었다. 물론, 다들 정식 훈련이 아닐 때조차 체육관으로 출근 도장을 찍었지만 세미와 텐도는 입시로 시선을 돌렸고, 닝 또한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늦은 밤이 될 때까지 배구부원들과 함께 있어주지는 못 했다. 뭐, 청소년 국가대표로 선발되었으니 여전히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우시지마를 보기 위해 틈이 날 때마다 찾아가기야 했다. 배구부의 미래에 대한 걱정은 없었고, 그러할 이유도 딱히 없었다. 아무리 우시지마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배구였다 한덜, 그가 유일한 무기인 것은 아니었으니까. 다만, 닝은 제 역할이 사라질 다음 해가 걱정되었다. 항상 바쁘게 움직여야만 했을 정도로 할 일이 많은 직책이었기에 보호의 목적은 둘째치고 이미 제 존재에 익숙해진 1, 2학년들이 고작 한 살 더 먹는다고 모두 도맡아 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들었다. 그런 조바심에 코치에게 새로운 매니저에 대한 이야기를 넌지시 물어보아도 돌아오는 답은 실망스러웠다 - 딱히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예상대로 올해 1학년들 중에는 마땅한 인물을 찾지 못 했고, 희망이라고 해봤자 내년에 들어올 신입생들이었다. 괜히 어깨가 으쓱해지는 제 속을 차치하니 걱정이 다시 몸을 불렸다. 아마도 배구부 매니저에 대한 희망은 품지 않는 편이 좋을테다. 그런 결론을 내리자마자 닝은 공책을 하나 사, 훈련이 진행되는 동안 할 일들, 레시피, 그리고 팁 등을 적어내려갔다. 사소하게는 환기를 까먹으면 궁디팡팡을 할 것이라는 협박부터 중요하게는 훈련 중 주의사항들까지. 생각이 날 때마다 틈틈이 쓰는 공책의 여백이 점차 줄어들 때마다 그래도 시라부와 카와니시는 믿음직하지 않냐며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일에는 미숙한 고등학생들일 뿐이라는 사실도 망각하지는 말아야 한다고 중얼거리긴 했지만. 공식적으로는 은퇴지만, 여전히 배구부 매니저인 닝이 가이드 노트를 입시 스트레스 해소 수단 정도로 여기며 더 이상은 가까운 곳에서 보지 못 할 우시지마의 훈련을 구경할 쯤, 사이토 코치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호기심 어린 눈빛과 함께 코치를 올려다보면, 강화합숙이라는 단어가 들려왔다. 이해가 되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리며 설명을 들은 뒤에도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갑자기 웬 1학년 강화 합숙? 눈을 꿈뻑이고만 있던 중 코치가 미안함이 가득한 얼굴을 해보였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도와줄 수 있을까?" 당연히 도와줄 1학년 둘에게도 미리 이야기를 해놓았다는 코치의 덧붙임에 그녀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래서 나 1학년 강화합숙 도와주게 됐어." 점심시간을 기회 삼아 오랜만에 시끌벅적한 배구부 애들과 동갑내기 친구들 대신 체육관 뒷편에서 우시지마와 단 둘이 밥을 먹으며 닝이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또한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라는 듯이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는 모습을 마주한 그녀가 기분 좋은 웃음을 흘렸다. 그게- 로 시작해서는 솔직히 무슨 생각으로 갑자기 이런 걸 하는 지는 잘 모르겠어- 로 이야기를 끝맺을 때까지도 우시지마는 별 다른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숨 돌릴 기회 같기도 해서 응했는데, 음- 그, 내가 초대하는 학교 리스트를 몰래 봤었거든?” 그가 고개를 다시 한 번 끄덕였다. "카라스노도 있더라." "카라스노?" "응. 이름은 못 봤는데, 아마 그 히나타라는 애가 아닐까 싶어. 실력 좋은 건 카게야마라는 세터이긴 한데, 걔는 유스 후보 될 것 같고. 뭐, 세터 없으면 아쉬워지긴 하지만 그래도 그 다음으로는 히나타 같으니까. 물론! 우리 츠토무가 제일 잘 하겠지." 온통 곡선으로 가득해질 정도로 헤실헤실 웃는 얼굴을 지그시 내려다보던 우시지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시키는 조급해하지만 않으면 된다." "그렇지." 닝은 그리 대답을 내어주면서도 퍼피의 조금은 과해 보이기도 하는 열정의 근원이 와카 너- 라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인수인계 뒤로 더욱 눈을 반짝이며 우시지마를 쳐다보는 츠토무의 의도에 관해 그가 아직까지도 모를 리는 없기야 하겠지만. 더 이상의 말 없이 가만 쳐다보기만 하는 닝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우시지마는 또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차가운 인상이 멋있어서 반한 것이 감정의 시작이었는데, 연애하기 시작한 뒤로는 때때로 물음표를 띄우는 얼굴이 왜 그렇게나 귀여워 보이는지 모르겠다. 속으로 키득키득 웃은 그녀가 손으로 땅을 짚은 채 상체를 조금 들어 그에게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우시지마가 표정으로도, 말로도 이유를 묻기도 전에 닝은 상긋 웃었다. "좋아서." 그리 말 하면, 조금은 가라앉은 눈빛으로 고개를 숙여오는 그를 받아주며 그녀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역시나, 센스를 조금은 길러냈다고. * 카라스노 고교 - 츠키시마 케이 미야기 현 1학년 리스트를 받아 든 닝이 눈을 비볐다. 히나타가 불리지 않다니.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던 그녀는 곧 감독의 기준에는 그의 키가 영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뭐, 그렇다고 히나타 대신 적힌 이름에 반발할 생각은 없었다. 왕자니 최강이니 하는 별의별 잘난 호칭들로 불리는 제 연인을 처음으로 셧아웃 시킨 주인공이니 이 곳에 불릴 자격은 충분했다. 그 생각을 하니 괜히 유치하게 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녀는 엄연한 연장자로서 그런 짓은 하지 않기로 단념했다. 별 생각 없이 코치 대신 출석 체크를 위해 불려 온 1학년들을 일렬로 세워놓는 순간, 시야의 끝에 걸리는 주황색 뾰족 머리의 꼬맹이를 모른 체 할 수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시선을 내려 손에 쥐인 클립보드를 내려다 봤지만, 카라스노 라는 교명 옆에는 단 하나의 이름만이 곧게 쓰여져 있었다. 반짝거리는 눈으로 저를 쳐다보는 히나타의 따가운 시선을 애써 무시한 그녀는 우선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했다. 시라토리자와 아이들을 부를 때는 조금 더 나긋하게, 그리고 츠토무를 부를 때는 예쁘게 웃어주면서. 그리고 이름이 없기에 끝까지 불리지 않은 저 아이. 화장실을 다녀온 코치가 벤치 앞에서 그대로 굳어 있는 모습이 보였다. 사이토 코치의 곤란한 얼굴을 힐끔 쳐다 본 닝이 다시 제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배구부 내에서는 세상 다정한 사람이 없었으나 외부인에게는 한 없이 싸늘한 사람이었다. 후배들이 그 사실을 아무리 부정하려 애쓴다 한들, 졸업을 앞두고 있는 지금조차도 닝에게 배구부 외의 인연이 없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자기 스스로를 못됐다고 일컫는 그녀는 제 사람들 외에게 베풀어 줄 자비가 없었다. "카라스노 고교 소속 10번, 히나타." "네!" 뭐가 그렇게나 자랑스럽다고 저렇게 해맑게도 대답하는건지. 조금은 퍼피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냉철함의 대명사인 시라부와 분위기 메이커인 텐도의 심기조차도 제대로 거슬리게 만들었던 츠키시마가 히나타를 흘겨보는 모습을 눈에 담은 닝이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네 이름은 리스트에 없고, 이미 잘 알고 있겠지만 시라토리자와는 외부인 출입 금지야. 그러니까, 네가 무단침입을 했다는거지." 턱을 치켜든 닝이 고양이의 것과 유사한 눈을 번뜩였다. 맹수의 것만큼이나 매서웠다. 배구부원들에게는 다정하기만한 매니저 선배를 봐왔던 시라토리자와의 1학년들이 몸을 움찔 떨었다. "나가." "저, 배우고 싶습니다..!" 그녀가 실소를 흘렸다. "용기와 무모함은 한끗 차이란다. 지금까지 얼마나 운이 좋았는지는 몰라도, 예외를 만들어 줄 수는 없어." 그 말을 끝으로 닝은 코치에게로 몸을 돌렸다. "카라스노에 전화해야겠네요-" 그리고 놀랍게도 와시죠 감독이 직접 히나타 쇼요가 볼보이라는 명목 하에 남는 결정을 내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단순히 경기를 보는 것만으로 배구를 배워 3년 동안 매니저로서의 본분을 모두 해낸 닝이 눈살을 찌푸렸다. "말이 돼? 이런 식으로 예외를 만들면, 무단침입을 하지 않은 애들이 노력도 안 한 걸로 만들어버리는 것 밖에 더 돼?" "그러게 말이야- 역시 닝쨩이 졸업식 때 멱살을 잡아야겠는걸?" 점심을 먹는 동안 이어지는 닝의 궁시렁거림을 들으며 맞장구를 찰지게도 쳐주는 텐도와는 달리 레온과 하야토는 조용히 눈을 피했다. "도대체 그 인간은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어. 보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많이 배우는데." "언제는 알았고?" 정곡을 찌르는 세미의 말에 닝은 한숨을 픽 내쉬었다. 졸업식 날 좋은 구경 시켜주겠다고 나지막이 중얼거리는 그녀를 가만 쳐다보던 텐도가 헛기침을 하더니 쾌활하게도 물었다. "그러고보니까, 우리 오늘 훈련은 도와주러 갈 것 같아." 짜증스러움은 온데간데 없이 고개를 퍼뜩 들어올린 닝이 우시지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너도?" "응." "너네도?" 그녀가 텐도와 세미를 가리키며 묻자 두 사람은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행복감이 가득한 함소가 순식간에 그녀의 얼굴을 장식했다. 세상에. 내내 들떠 있는 기분으로 싱글거리며 닝은 콧노래까지 흥얼거렸다. 그녀는 밝은 얼굴로 3학년들이 훈련을 돕는 모습을 구경했다. 시라토리자와 배구부 외의 인물들을 상대로 배구를 다 같이 하는 모습은 더 이상 못 보리라 치부했었는데, 감독의 올해 들어 유별난 변덕이 그렇게나 반가울 수 없었다. "쟤네 뭐하는 거야?" 연습하는 모습을 구경하며 칠칠맞은 1학년들의 뒷정리를 이리저리 바쁘게 해주다 돌아올 쯤, 우시지마에게 질문을 와르르 쏟아내고 있는 츠토무와 히나타가 보였다. 묘하게 닮은 아우라에 헛웃음을 내뱉은 닝이 세미에게 다가가 물으니 태연한 답이 돌아왔다. "배울 수 있는 거 다 배우고 갈거래." 히나타는 운도 따라주는 녀석이구나. 속으로 중얼거린 닝이 가만 그 장면을 구경했다.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그 옆에 서서 구경하는 텐도와 우직하게도 서서 두 강아지들의 따라갈 수조차 없는 속도로 퍼부어지는 질문들을 가만 들어주는 우시지마. 당연하게도 답은 조금씩 내어주는 듯 했지만, 어째 본연의 목적은 잃은 채 두 1학년들의 열정 대결로 변질된 듯 보여 닝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와카!"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어린 들개들처럼 방방 뛰는 순수한 두 1학년들과는 달리 우시지마는 훈련이 잘 된 강아지 마냥 익숙한 목소리에 침착하게도 고개를 돌렸다. 눈을 마주한 닝이 상긋 웃으며 손짓을 했다. "잠깐 이리 와 봐." 눈을 두어 번 깜빡인 그가 다시 1학년들에게로 고개를 돌려 무어라 말을 건넨 그가 성큼성큼 닝에게로 다가갔다. 충격을 받았는지 멍하게 서 있는 츠토무와 히나타 옆에서 배를 부여잡은 채 웃어대는 텐도를 눈에 담은 그녀가 갸웃거렸다. "와카, 무슨 말을 하고 온거야?" "네가 더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왔다." 그럼 그렇지. 무언가 많이 생략된 그의 멘트를 들은 닝이 미소를 지어보였다. 예뻐 죽겠다. 무슨 일이냐는 우시지마의 물음에 결국 그녀는 해사하게도 웃어버리고 말았다. "와카랑 얘기하고 싶어서. 그리고, 음, 구출의 목적도 있지." "구출?" "그런게 있어." 그의 허리에 두 팔을 감아 안으면, 우시지마는 굳이 캐묻지 않은 채 제 머리를 쓸어주었다.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이니 저들의 모습에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굳어버린 히나타 때문에 바닥에 쓰러지고야 만 텐도가 보였다. 등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 알지도,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 우시지마의 품에 얼굴을 부비적거리며 닝은 웃음을 삼켰다. 사이토 코치가 굴을 잘못 먹어 식중독에 걸린 바람에 시라토리자와의 2, 3학년 팀이 1학년들을 상대로 연습 경기를 할 것이라는 소식에 닝은 두 팔을 하늘로 뻗은 채 방방 뛸 정도로 기뻐했다. 왜 그렇게 좋아하는 거냐 묻는 레온에게 그녀는 해맑게 답했다. "이렇게 다 같이 뛰는 경기,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볼 수 있잖아."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말간 얼굴로 주먹까지 불끈 쥐며 1학년 훈련이라고 봐주지 마! 하고 외치는 닝 때문에 그들은 더욱 열의에 불타올랐다. 그 날, 닝은 텐도와 비교해도 지지 않을 정도로 밝았다. 되려 텐도가 움찔 할 정도로 꺄르륵 웃으며 가만 있지 못 하는 모습에 모두 경악을 금치 못 했다. 세미가 서브 할 때는 텐도와 함께 "세미세미! 나이스 서브!" 하고 그의 골을 아프게 하는 것으로 시작된 그녀의 잔망은 곧 우시지마가 스파이크를 칠 때마다 사랑 고백을 하는 지경까지 되어버린 바람에 결국 입막음을 당하고야 말았다. "켄지로 예쁘다! 천재다!" 라고 외치는 순간에 시라부가 실소를 흘리는 모습을 포착한 닝은 여한이 없다며 순순히 따라주었다. 마지막 날, 짐을 챙기는 1학년들을 가만 지켜보던 닝이 카라스노의 두 아이들을 불러 세웠다. 주제넘은 짓이라는 사실도, 저 답지 않게 오지랖을 부리는 일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하고 싶은 말은 하는 것이 본인 다운 것이었기에 그녀는 제 연인을 쏙 빼닮은 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너희들에게 졌다고 해서 우리 팀이 약했던 건 절대 아니야. 순전히 실력의 차이로 인한 결과는 아니니까." 어쩌라는 걸까- 하는 얼굴로 미간을 미세하게 찌푸리는 츠키시마와 달리 맑은 얼굴로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하는 히나타를 번갈아 본 닝은 곧 제 사람들에게만 보여주던 말갛고 해사한 웃음을 지어주었다. "그러니까, 우리를 이겼으면, 우승은 못 해도 결승까지는 달려줘. 지면 카라스노나 우리나 체면 구기잖아?" 당황한 얼굴로 답을 내놓지 못 하는 츠키시마와 새빨갛게 물든 얼굴로 네! 하고 힘차게 대답하는 히나타를 마주한 그녀가 마침내 소리내어 웃었다. "우리는 카라스노 응원할게. 할 수 있다고 믿으니까." 5일 간 단 한 번도 말을 섞은 적이 없던 츠키시마가 끝내 "네." 하고 답했다. 켄지로를 닮은 것 같기도 하다고, 그녀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입꼬리를 올린 채 손을 살랑살랑 흔들어주었다. |
Keyword 10 끝 |
"이상하다." 턱을 괸 닝이 아직 식사를 끝내지 않은 우시지마를 지그시 바라보며 말을 건넸다. 시선을 올린 그는 목소리 대신 눈빛으로 의문을 대신했다. "내일이면 졸업식인 게 너무 이상해." 그렇게나 마음을 졸엽던 입시가 끝나고, 도쿄대로부터 합격 통보까지 받으니 제 10대가 끝나가고 있었다. 아직 졸업을 하지 않았음에도 변화를 몸소 체험하게 된 순간은 기숙사를 정리하고 나가라는 통지가 학교로부터 내려왔을 때. 어차피 대학 생활을 위해서 도쿄에 자취방을 구할 예정이었지만, 지금 당장 갈 곳이 없어 닝은 곧바로 우시지마에게 물었었다. "나, 또 신세 져도 괜찮을까?" 그 물음에 그는 되려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우리의 계획이지 않았나?" 얼굴이 새빨개진 그녀는 굳이 그 의미를 깊이 해석하려 들지는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기숙사에서 나온 뒤로는 그의 집에서 일주일 간 통학을 하게 되었다. 그 일상에 조금 익숙해지나 싶을 때 끝나버리다니. 다음 달이면 매일 같이 보던 얼굴들을 각자 생활에 치여 간간이 보게 되리라는 상상조차 이상했다. 초, 중, 고 모두 다른 나라에서 재학했던 제가 대학을 다른 곳으로 진학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신기했고, 프로팀에 들어가면 훈련 때문에 바빠질 저 무표정한 얼굴을 자주 보지 못 하리라는 사실도 이상하게만 느껴졌다. 그 마음은 졸업식 당일까지도 이어졌다. 딱히 후련하지도, 미래가 기대되지도 않은 채 싱숭생숭하기만 했다. 지루한 졸업식 내내 하야토와 시덥잖은 이야기나 하고 우시지마와 손장난을 하며 식 자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그녀는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려대고 있는 츠토무가 덤덤한 얼굴을 한 카와니시의 토닥임을 받으며 다가오고 나서야 제 기분을 정의할 수 있었다. 역시나 떠나기 싫었다. "선배- 선배들 가면, 저 어떡하죠 ..." "괜찮아- 괜찮아- 츠토무는 잘 하잖아?" 텐도의 말에 더 서럽게 울어버리는 츠토무에게 이쯤되면 딴지를 걸 법도 한데 조용하기만 한 시라부에게로 닝이 시선을 돌렸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모습이 꼭 작년의 어느 날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켄지로, 괜찮아?" "졸업, 축하드려요 ..." 땅을 파고들어가는 목소리에 그녀는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이런 애들을 두고 어떻게 혼자 도쿄까지 가버릴 수 있을까? 가뜩이나 동갑내기들끼리도 뿔뿔히 흩어지는 마당에 이 예쁜 후배들까지 두고 가려니 영 마음이 안 좋았다. "켄지로, 그럼 마지막으로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닝은 굳이 시라부의 표정을 살피려 애쓰지 않았다. "연락 편하게 해줄거지?" "네! 네 ... 할게요 ..." 답지 않게 또 다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가 축축히 젖어 있다는 사실은 쉬이 알아챌 수 있었다. 언제나 단정한 시라부의 머리를 흐트러트린 닝이 미소를 머금은 채로 고개를 돌렸다. "에이타, 네가 가장 아끼는 후배가 운다!"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그래-? 하고 다가오는 세미의 목소리에 고개를 번쩍 든 시라부가 눈물이 그렁그렁 달린 얼굴을 구기며 뒷걸음질을 쳤으나, 카와니시와 이야기를 하고 있던 우시지마에게 부딪히자마자 그는 눈을 동그랗게 키워냈다. 시간이 아득히 멀어질지언정, 결국 제 곁에 남아있을 인연들을 보며 그녀는 또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 . . "진짜 끝났네." 다시는 입을 일이 없을 교복을 닝이 내려다봤다. 제 얼굴에 내리꽂히는 시선에 그녀는 어깨를 으쓱였다. "우리는 끝 아니고." "응." 말갛게도 웃은 그녀가 깍지 낀 손을 꼼지락거렸다. 꽃샘추위로 으슬으슬 몸이 떨려오는 날씨였지만, 제 옆의 온기 덕에 그닥 춥지는 않았다. 오히려 상쾌하기만 한 공기를 그녀는 깊이 들이쉬었다. 지금은 춥지만, 곧 따스한 봄이 찾아오겠지. 언제나 그래왔듯이. "너무 신나게 놀다 와서 피곤하다. 집 가면 바로 자야지." "바로 잘건가?" 닝이 눈을 깜빡이다 우시지마를 올려다봤다.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는 얼굴을 마주하던 그녀는 마침내 입꼬리를 당겨 올렸다. "와카 하고 싶은 거 있으면 조금 있다가 자야지." 만족스러운 답이었는지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리는 그의 옆으로 붙어섰다. 행복했다. |
장치들에 대하여 |
#1 해몽 키워드는 해몽 → 독수리에게 몸을 물리는 꿈 / 껴안는 꿈 : 미혼자는 훌륭한 배우자감을 만나게 된다. → 독수리가 하늘을 나는 꿈 : 만약 독수리가 까마득하게 높게 날고 있었다면, 자신의 애인이나 배우자에게 관심을 갖는 다른 이성으로 인해 고민하게 될 수도 있다. [ 검붉은 색의 피가 새어 나오는 꼴을 보고 있자니 오히려 기분 좋은 웃음만이 흘러나왔다. ] ☐ 빨간 피가 아닌 검은색에 가까운 색의 피는 보통 안 좋은 피라고 하죠. 독수리가 물어서 독이 빠져나간 것. 즉, 우시지마를 만나서 불행을 없앴네요. [ 제 자신은 변화 없이 항상 있던대로 살아가는 것만 같은데, 우시지마는 물론이고 제 친구들은 모두 키도 크고 얼굴선도 굵어져 가는 모습이 눈에 띄게 티났다. 꼭 나만 그 자리에 멈춰 있는 것처럼. 턱을 괸 채로 말을 고르던 닝이 마침내 ‘어른이 되어가서 그런 건 아닐까?’ 하는 어림짐작에 가까운 답을 내놓으려던 순간이었다. ] ☐ 닝은 이미 어른이 되어버렸기에. 2편에서 고등학생일뿐이니까. 미성년자일뿐이니까. 하는 멘트들부터가 너무 객관적이죠. 시라부를 보며 달래기 위한 말이긴 했지만, 자기 자신에게 조금 더 애 답게 굴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결국 혼자 살아왔으니까. [ 이름이라도 써- 하고 넌지시 말을 건네자, 책상에 올려져 있던 제 필통에서 펜을 꺼내간 그가 정갈한 글씨체로 우시지마, 라고 적었다. ] ☐ 풀네임도, 와카토시도 아닌 우시지마. 애초에 남이 저를 뭐라 부르던 신경을 쓰지 않는 성격이라 모르는 사람이 와카토시군- 하고 불러와도 별 생각이 없었어요. 근데, 여자애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닝의 시선이 워낙 날이 서 있었던지라, 우시지마는 굳이 눈치를 안 봐도 닝이 싫어한다는 사실이 뻔히 눈에 보였을거예요. 여학생도 이를 당연히 알고 있었고. 어쨌든, 닝이 싫어하니까 그냥 반듯하게 제 성을 쓴 우시지마. 다른 경우에 싸인을 해달라는 부탁을 들으면, 텐도가 시켜서 배구부 전체가 - 닝도 얼떨결에 - 만든 싸인을 해줍니다. ———————— #2 순수 츠토무 굉장히 착할 것 같지 않나요ㅎㅎㅎ 매점 싹쓸이할 기세로 한 아름 안고 있는 닝을 보고 일단 도와줘야지! 하는 생각부터 할 정도로 착할 것 같아 ... 그리고 그는 닝을 보러 1학년 3반에 갔다가, 그런 사람 없는데..? 하는 이야기를 듣고 순간 귀신인가! 하는 엉뚱한 생각도 했겠죠. 그래도 모르는 동갑내기 앞에서는 쿨하게 아, 그래? 내가 반을 착각했네, 미안. 하고 나왔겠지 ... [ "괜찮아, 퍼피!" 닝은 첫날부터 퍼피를 츠토무의 별명으로 채택했다. ] ☐ 영어가 편한 닝이 고른 애칭. 카와니시랑 시라부도 요비스테에서 그치는데, 츠토무에게는 애칭을 선사. 그만큼이나 츠토무는 그냥 말랑말랑한 귀염둥이로 보였던. ———————— #3 안심 아무리 둘 다 마이웨이라 해도 우시지마도, 닝도 친구들이 영화관에 가서 보자 했으면 아마 하자는 대로 따라주지 않았을까 ... 일단 우시지마는 싫다고 한 번 말 한 뒤에는 의외로 순하게 잘 따라줄 테고 닝은 기겁을 하며 절대 안 간다고 하다가도 와카가 간다니 억지로 움직여주겠지. [ "잠이 안 오면 전화하라고 하지 않았나?" ] ☐ 닝은 나 잠 안 오면 전화해도 돼? 라고 물었다가 고개를 끄덕이는 우시지마를 보고 그럼 너도 잠 안 오면 전화해!라고 했습니다. (기억 못 하지만) 그래서 전화했지 ... 는 아니고. 잠이 안 오는 것도 있었으나, 닝이 사시나무마냥 파들파들 떨면서 기숙사로 향하는 모습을 봤기 때문에. 특히나 영화를 보던 중에는 정말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을 걸어온 탓에 걱정을 했어요. 나도 잠 안 오고, 닝도 잠 안 잘 것 같고, 걱정도 되고, 해서 전화 한겁니다. 단순히 잠이 안 왔다면, 닝은 자겠지, 싶어서 안 했을거예요. [ "나 잠들고 나서도 계속 양 셌어?" "그냥 듣고 있었다." "뭘? 나 자는 거?" "응." ] ☐ 기분좋게 실실 흐르던 웃음소리가 끊기고 들려오던 규칙적으로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왔죠. 그래도 계속 세다가 양이 100마리 쯤 됐을때 멈췄어요. 그리고 조용히 듣고만 있었죠. 방학 동안 같이 지낸 덕에 자면서 간간히 말을 할 때가 있는 닝을 아는 우시지마는 잠꼬대를 듣기 위해 기다렸어요. 와카 보고싶어. 너무 좋아. 나랑 있자 ... 오물오물거리는 소리에 이어 히힣하고 혼자 배시시 웃는 소리를 조용히 듣고만 있다가 잠이 올 쯤에 전화를 껐어요. 그 날 밤, 그의 꿈에는 닝이 나와서 해맑게 웃어주었답니다. ———————— #4 기대 츠토무는 유망주니, 기대를 많이 받는다느니 하면서 감독이 유독 엄하게 군다는 얘기를 봤었어요. 하지만 기대감과 실망감은 언제나 비례하는 것인지라 ... 기죽지 말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해줄 인물은 없는 것 같아서 조금만 버티자는 한 마디를 해주는 닝. [ 타이치 때와는 달리 닝이 츠토무를 어찌 대하던 질투심 따위 우시지마의 속에 들끓지 않을 정도로, 그는 정말 귀여운 똥강아지 같은 존재였다. ] ☐ 츠토무는 진짜 동생같은 후배의 정석 같아서, 아마 우시지마에게 라이벌 ...로 딱히 인식되지도 않아서 별 생각 안 했을 것 같아요. 다들 연습 빡세게 시작했는데 발까지 구르며 으르렁거리는 닝을 보고 텐도가 우시지마를 밀었어요. "저러다 큰일나겠다-" 아무리 눈치 없는 우시지마라도 닝을 말리는 사이토 코치가 한 대 맞겠다는 예감이 들었겠죠. 저 기세라면 신발 집어 들어서 와시죠 감독에게 던질 것 같지만, 말로는 말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는 우시지마는 물리적으로 닝을 움직입니다. [ 때로는 의도가 과정을 정당화시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 ☐ 텐도의 작은 장난은 물론, 닝의 하극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때로는 의도가 과정을 정당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해요. 때로는. ———————— #5 충동 충동 → 충동적으로 밤을 새워 책을 읽었던 닝처럼 충동적으로 닝에게 말을 건 오이카와. 대충 오이카와와 우시지마가 어떤 관계인지 파악한 뒤이기 때문에 닝은 그다지 화가 나지도 않아요. 좋은 경기 기대한다는 말 한 마디 전할 정도로 그저 승리가 간절한, 같은 스포츠인일뿐. [ "이겨서 한 마디 하면 되는 거 아니냐." 목석같이 굳어있던 오이카와가 그제서야 코를 하늘 높이 올리며 걸음을 옮겼다. "두고 보라지." ] ☐ 그냥 오이카와는 매번 두고 보라는 마음가짐으로 경기를 뛰었을 것 같아서. 너의 코를 눌러주겠다는 마음으로. 세이죠 ... 한 번이라도 전국 갔으면 좋았을텐데. ———————— #6 독점 독점 → 무던한 성격이라는 이유로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욕심이 없는 것은 아니라 믿기에. 우시지마는 가지지 못 한 것을 욕심 내기 보다는 가진 것을 지키려는 의지가 강하지 않을까. 그래서 키워드를 독점으로. [ "다음이 있다는 생각을 한다." 닝이 눈을 깜빡였다. "지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경기를 함께 하지만, 끝이 나면 결국 마지막은 아니라고 생각을 한다." ] ☐ 정답이긴 하지만,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래서 더 단단해보이는 멘탈인 건 아닐까. 결국 마지막은 아니라는 발상은 꽤나 긍정적인 사고방식이지만, 그렇게 외는 것 또한 결국 한계는 있겠죠. 우시지마가 흘려보내는 방식이 어쩌면 이런 생각과 유사하지 않을까 싶어서 쓰고 싶었던. [ "와카, 나 뽀뽀해주라." 그의 시선이 제 어깨 너머의 여학생에게로 잠시 옮겨졌다. 닝이 눈웃음을 지었다. ] ☐ 여기 나왔던 여학생은 절대 못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쓴게 아니에요. 그냥, 불도저 같은 성격. 골기퍼 있다고 골 안 들어가냐! 하는 생각. 우시지마가 여학생에게 시선을 던졌던 이유는 왠지 도련님으로 자란만큼, 사람들 앞에서 스킨십하는 거 되게 어색해할 것 같아서. 사람들은 보통 눈에 익지 않은 무언가를 생소해하잖아요. 그러니까 웬만해선 남들 앞에서는 애정표현 안 하지 않을까 싶어서. [ 질투는 하지 않지만, 저는 그렇다고 너그러운 사람도 아니었다. 내 사람아, 내 사랑아, "내 공책에 네 이름 써주라." ] ☐ 질투는 안 해도 마음에 안 드는 건 마음에 안 드는 것. 네가 내 사람인 것처럼, 나도 네 사람이라고 써줘, 라는 의미에서 이름을 써달라는 것이었어요. ———————— #7 흑백 키워드 흑백 → 낮과 밤. 낮 = 풋풋한 연애 / 밤 = 어른의 연애 ☐ 고로 재잘거리는 대화도 줄고, 공백을 채우려 애쓰는 일도 줄어들고 익숙함과 편안함이 찾아드는. 겉으로 보여지는 것들보다는 사소한 것들에 집중하는. [ 아침부터 어여쁘게도 그려져 있던 몽글몽글한 구름과 적당히 따사로운 햇살을 올려다 보며 날이 참 좋다고 생각했었는데, 달이 떠도 그 아름다움은 여전했다. ] ☐ 고등학생 / 어른의 차이. 나이를 먹는다 해서, 시간이 지난다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을 거예요. 특히나 둘의 관계는. 시간이 지나도, 여전하니까. [ "맨날 평생 못 볼 것처럼 굴어. 매일 아침 제일 먼저 보는 얼굴이 너인 건 알지?" ] ☐ 항상 기숙사에 닝을 올려보낼 때마다 고이 안 보내주는 우시지마. 탄탄한 멘탈의 이유가 '다음'이 있기 때문인 그가 닝과는 '다음'이 없다는 듯이 구는 것. 그게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달라지는 그의 태도 아닐까. [ "내일 봐." 손을 흔들어주는 그가 먼저 돌아서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그녀가 먼저 몸을 돌렸다. ] ☐ 그는 관계에 있어서도 먼저 등을 돌리는 일은 없겠죠. 그만큼이나 소나무같은 사람일 것 같아요. [ 텐도가 그에게 쥐여주고 떠난 점프 주간지를 제 부탁에 따라 읽어주는 나지막한 목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은 덕인지, 이번에는 그 무엇도 그려지지 않은 새까만 바탕에 낮은 콘트라베이스의 연주소리만이 들려왔다. ] ☐ 해달라는 건 다 해주죠. 종이 치고 나서도 평온하게 자는 얼굴 구경하면서 앉아 있다가 갔을 것 같아요. ———————— #8 확률 [ 그녀는 우시지마와 눈을 맞추었다. 나의 아쉬움이 드러나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입을 열었지만, 흘러나오는 것은 축축히 젖은 서러운 말이었다. "이젠 끝이네." ] ☐ 닝 시점이니 닝은 몰랐지만, 꽤나 서글픈 얼굴이라서. 헤어지기 싫다는 이야기는 닝이 자주 했으니 알고 있겠지만, 그런 얼굴을 하고 눈을 마주치며 끝을 언급하니, 의연히 넘기지 못 했던 우시지마. 불안했고, 두려웠던. 첫 예선 탈락이 타격이 없진 않았을 것 같아요. 그래서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만 것. [ 가볍게 조깅을 하며 걸음을 옮기는 와중에 시라부와도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우시지마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 ☐ 속 얘기를 잘 안 하는 시라부도 말을 했는데, 우시지마는 괜히 생각이 많아져서 말을 안 했던. '다음'을 기약하며 패배를 의연히 받아들였던 그가 고등학교 배구부의 마지막 경기가 끝나버리는 것을 덤덤하게만 받아들이지는 않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 툭, 하고 떨어지는 눈물에 닝은 그저 웃어주었다. 불안감이 네게도 없으리라 확신하는 것은 안일함이자 외면이었다. 아직은 어린, 아직은 미성숙한 네가 남에게 어떻게 비춰지든, 어떻게 평가되든, 처음 맛보는 진정한 패배조차도 무던하게 받아들이리라 여길 수는 없었다. ] ☐ 감정을 잔잔하게 극소화 시키는 성격 같아요. 그래서 우시지마는 폭발하는 감정에 서럽게 울기보다는 모든 것이 가라앉고 진정한 뒤에 안도감에 정말 눈물만 뚝뚝. 덤덤한 얼굴에 눈물길만 그려지는, 딱 그 정도. [ "수고했어. 와카, 고생 많이 했다." 창문 틈새로 은은한 달빛이 쏟아져 내렸다. ] ☐ 일전에 꽉 닫힌 체육관에 우시지마의 속을 비유했었죠. 그러니 창문 틈새로 쏟아져 내리는 닝의 말 한 마디. 항상 잘 했으니까, 그랬으니까 칭찬은 많이 받아도 고생 했다는 말은 잘 못 들었을 것 같아요. 천재는 항상 천재니까, 하는 생각에서 기반된 안일함. ☐ 닝은 위로 받는 성격으로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되레 이리저리 위로가 되는 말을 잘 건네주는 인물이 되었네요. ———————— #인수인계 → 인수인계 할 당시 매니저로서 모든 순간에 함께했던 닝이 후배들에게 건넸을 말. 장면을 쓰기가 어려워서 이렇게만 썼는데, 츠토무 또 엉엉 우는 거 생각나 ... 동갑내기들, 후배들에게는 멋있는 에이스로 비춰지는 츠토무가 선배들 앞에서는 한 없이 여린 말랑말랑 강아지가 될 것 같아요. ———————— #9 공백 ["말이 돼? 이런 식으로 예외를 만들면, 무단침입을 하지 않은 애들이 노력도 안 한 걸로 만들어버리는 것 밖에 더 돼?"] ☐ 히나타가 미워서 나가라고 한 게 아니라, 순전히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생각해서. 하지만, 햇살 수인 히나타 안 예뻐할 수 없었을 것 ... ☐ 츠토무랑 히나타, 시라부랑 츠키시마, 묘하게 공통점이 보이는 것 같은 인물들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편이에요. ———————— #10 끝 ☐ 3넨세들 졸업할 때 츠토무는 오열, 시라부는 조용히 눈물 뚝뚝 흘릴 것 같은데 의외로 카와니시는 덤덤하게 졸업 축하한다고 말 잘 건네줄 것 같아요. 그냥, 괜히. ☐ 참고로 닝 졸업식 때 탄지군 멱살 잡았을 것 ... 3넨세들은 모른 척 고개 돌렸을 것 ... 우시지마도 약속 지키고 그냥 한 풀이 하는 모습 지켜봤을 것 ... 스트레스 다 풀렸을 것 ... 탄지군도 닝을 하극상 뒤에도 안 내보낸 이유가 있을 것 (일 잘하고 야무짐) ... 그래서 멱살 순순히 잡혀줬을 것 ... [ 행복했다. ] ☐ 1편에서 본문 끝에 고향에서의 생활은 참, 별났다. 라는 멘트와는 대조되는 순수한 행복감. 달갑지 않던 타지 생활에서 진정한 의미의 가족의 연을 만나고, 연인도 만나고 행복하게. 그렇게 끝내고 싶었어요. |
외전 1 : 합숙훈련을 한다면? |
합숙 : 미야기 현 × 도쿄 : 시라토리자와 / 카라스노 / 아오바죠사이 / 후쿠로다니 / 네코마 로. 1 전국 이후에 5개 학교가 합숙한다고 가정해보자. 개연성 괜히 만들어보자면, 네코마 & 후쿠로다니 쪽에서 전국이 끝난 뒤에 먼저 연락이 온 거로. 3학년들은 졸업 앞둔 상태고 어차피 현재 팀으로 더 이상 뛸 일도 없으니, 3학년들 중 프로 뛸 애들은 훈련 겸 1, 2학년들 경험 쌓기 삼아서 제안한 기획. 입시도 다 끝난 뒤인거로. 그래서 닝은 그동안 애들 연습하는 거 구경하면서 잘 놀던 중이라서 5일 합숙 제안에 당연히 갈 수 있다면서 웃겠지. 이유는 내 새끼들 경기하는 걸 또 볼 수 있어서, 시라부가 그렇게나 존경하는 우시지마에게 또 토스를 올려줄 수 있어서, 텐도와 세미가 마지막으로 배구를 또 할 수 있어서, 와카가 스파이크 치는 모습을 몇 발자국 옆에서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기회라서. 이 때문에 닝의 텐션은 1학년 강화 합숙 때보다 더 높아질테다. 평소 단순히 별 생각 없이 멍 때리고만 있으면 무표정한 얼굴에서 싸늘한 기운 내뿜는데, 버스 타는 순간부터 상기된 닝은 텐도, 세미, 츠토무랑 방방 뛰어댈거야.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하야토의 말도 안되는 개그에도 꺄르륵거리면서 쓰러져버려서 시라부랑 레온 속 터지지. 버스 타서도 한참 동안 헤실헤실 웃으면서 텐도랑도 티키타카 하면서 놀다가 나중에는 우시지마한테 기대 잠들거야. 제 손의 두 배는 되어 보이는 큰 손을 두 손으로 소중하게 감싸 쥔 채로 새근새근 자는 모습에 우시지마도 이동 내내 입꼬리가 올라가있겠지. 주인공은 마지막에 등장하는 법- 하는 포스로 ... 실은 그냥 차 막혀서 제일 마지막에 도착하는 시라토리자와. 아오바죠사이는 네코마랑 얘기하고 있고, 후쿠로다니랑 카라스노는 방방 뛰면서 떠들고 있는데, 백조택도 후쿠로다니 못지 않은 부자 학교인만큼 크고 비싸 보이는 버스가 들어오는거다. -어디 남았댔지? -시라토리자와요. 그 말에 얼굴 썩어들어가는 오이카와. 탄지군 하나만으로도 이미 쎄한 기운 느껴져서 조금 경직됐다가 뒤에 조금은 더 유순해보이는 인상의 사이토 코치가 내려서 다들 긴장 풀던 중, 곧 이어 모습을 보이는 아직까지는 백조택 주장, 우시지마에 다들 굳어버려. 뭐가 들었는지는 몰라도 큰 박스를 가뿐히 든 채로 내리는 그의 뒤를 따르는 닝. 어깨를 가로지르는 스포츠 백을 맨 채로 뒤에 있는 세미랑 웃으면서 얘기하며 깡총 뛰어내렸다가 다른 학교들 다 서 있는 거 보고 순식간에 얼굴 굳어버려. 이유는 순전히 긴장되고 놀라서. 자긍심과 자부심으로 가득찬 얼굴이 어째 싸늘해서 다들 닝의 웃는 얼굴에 조금 긴장 풀었다가 움찔한다. 그래도 1학년 강화합숙으로 안면도 트고 말도 좀 섞어 본 킨다이치, 쿠니미, 츠키시마, 히나타에게는 목례 정도로 인사 해주는 3넨세들. 텐도는 "무단침입한 꼬맹이도 있네-" 하고 히나타 흠칫하게 만들테다. 닝은 배정받은 합숙실로 향하면서 "오랜만이야-" 하고 웃어주지. 너무 해사하게 웃어줘서 방금 그 냉기 뿜어내던 그 분 맞으신가 싶은 다른 학생들. 한편, 1학년 4인방은 닝의 테세 전환 이미 목격한 전적 있기 때문에 츠키시마와 쿠니미는 예의 차려서 안녕하세요- 하고, 히나타랑 킨다이치는 수줍게 인사하겠지. 닝은 남이랑 같이 자보기는 커녕 방을 나누어 본 경험 따위 고작 우시지마 뿐이라서 다른 학교 매니저들과 같이 방을 써야 한다는 이야기 듣고 경악할거야. 텐도랑 세미는 이거 때문에 놀리다가 한 소리 들었지. "모르는 사람들이랑 잘 바에야, 너희 방에서 잘거야." 그렇게 선언해버리는 닝을 극구 말리는 레온과 세미. 왜! 왜! 하고 반항하는 닝에게 하야토가 "매니저는 5명 뿐이니까 그 방이 더 편하지 않을까...?" 하고 말문을 열지만, 닝의 싸늘한 시선에 곧 입을 다물어버렸어. 말도 안 되는 핑계라는 거 다 알거든. 닝 걱정보다는 순전히 본인들이 우시지마랑 닝이 꽁냥대는 모습 보기 싫어서 손사래 치는 거 다 간파당했거든 ... 결국 한참 저들끼리 실랑이 벌이다가 "오고 싶으면 와라." 라고 대뜸 말 해버리는 우시지마 때문에 다들 굳어버리고 닝 혼자 방실방실 웃으면서 그래, 그래! 하고 고개 끄덕여. 그래도 양심에 찔려서 짐은 매니저 방에 두는 닝이지만, 다들 이미 그 날 밤 머릿속에 다 그려내고 있다. 닝은 결국 백조택 방으로 올거고 남들 잠도 못 자게 텐도, 세미, 츠토무랑 보드 게임 하는 장면을, 그리고 결국 네 사람 텐션에 휘말려 버려서 다들 잠도 못 자고 보드 게임이나 하고 있는 장면을 모두들 그려내고 있을거야. +오이카와는 닝이 말했던대로 "연애질 하느라 졌나봐?" 하고 본인이 이기진 않았지만, 카라스노가 이긴 걸로 거들먹거렸어. "이제와서 시비 걸어봤자, 아픈 상처 들쑤시는 일 밖에 더 해? 그만하세요-" 또 팔을 토닥토닥해주고는 멀어지는 닝과 여전히 타격이 없는 우시지마 - 그 연애질로 멘탈 회복하신 분. 혀를 차는 이와이즈미와는 달리 하나마키랑 마츠카와는 또 끅끅대며 웃을거야. 졌네, 졌어- 하면서. ———————— 2 체육관에 다섯 팀 다 구역 나눠서 바닥에 앉은 채로 한 명씩 자기소개 하는 게 보고싶다. 카라스노 & 후쿠로다니 & 네코마는 친하지만, 아오바죠사이랑 시라토리자와는 개인적으로는 거의 다 초면이나 다름 없어서. 다른 애들 이름 외우겠답시고 인상 쓰고 얼굴 스캔하면서 이름 중얼거리고 있는 닝 때문에, 그 시선을 마주한 몇 사람 흠칫할거야. 보쿠토는 내가 뭐 잘못한거냐고 아카아시랑 다른 애들한테 물어보고. 아사히는 바들바들 떨겠지, 시라토리자와 매니저가 제게 살의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면서. 레온이 닝 어깨 툭 치면서 인상 쓰지 말라고 말 하면, 그제서야 닝은 세미 옆에 붙어서 쟤는 누구고 쟤가 누구고 하면서 인상을 풀거야. 자기소개가 간결하게 이어지고 이어진다. 그리고 대망의 시라토리자와 차례. 다들 자긍심 높아서 다른 학교보다 되게 간결할 것 같아. 자랑하려는 것도 아니고, 그냥 다들 나 알잖아? 하는 식으로. 텐도조차도 미묘한 분위기와 함께 MB 3학년 텐도 사토리라고 해- 하고 말 듯. 츠토무는 그래도 제일 의욕 넘치는 아이라서 차기 에이스! 1학년 차기 에이스! 고시키 츠토무입니다! 하고 기합 잔뜩 들어간 채로 말 하면 옆에서 잘한다 잘한다 박수 쳐주고 있는 닝. 누가 보면 본인 아들이야. 그리고 닝 차례가 됐을 때는 다들 전혀 어떤 캐릭터를 예상해야 하는 지 가늠도 못 할 것 같아. 츠키시마조차도 닝 캐릭터 분석 못 하고 어째서인지 다들 조마조마하는 얼굴로 기다린다. 근데, 닝이 자리에서 서자마자 예쁘게 웃으면서 "안녕하세요- 시라토리자와 학원, 3학년 매니저 닝이라고 합니다-." 해버리는 거야. 다들 백조택 매니저가 우시와카와 연애 중이라는 이야기는 들었고, 다 알고들 있었지만, 뭔가 상상한 이미지와 어긋나서 더욱 혼란에 빠질거야. 성격이 어떤 지 가늠조차 못 했어. ———————— 3 매니저는 5명. 합숙 학교도 5개. 하지만, 매니저가 없는 네코마와 세이죠. 닝은 가장 합리적인 해결 방법이 무엇인지 알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다들 본인 학교들을 더 챙겨주고 싶어하리라는 사실도 안다. 다른 걸 차치하고도 5명 중 4명이 3학년이니까 그 욕심이 더 크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어. 무엇보다도 저보다도 작은, 제게서 어떻게든 멀어지려 애쓰며 다른 매니저들 뒤에 숨어있는 저 1학년 매니저(야치!)가 아오바죠사이의 기 쎈 녀석들을 챙기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는 사실도 잘 알아. 후쿠로다니 매니저인 유키에와 카오리가 분담해서 네코마로 나누어 간다고 해도, 저 말고는 카라스노의 두 매니저 중에 세이죠에서 버틸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 오이카와의 경계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저가 할 말은 아니긴 하지만. 하지만 중요한 포인트 : 닝은 자기가 하기 싫은 일 사서 하는 일 없다. 배구부에서도 힘든 일 사서 한 이유는 순전히 자기가 좋아서 선택한 일이기 때문일 정도로 그 외에는 굳이 제 무덤 파는 짓 안 해. 그래서 닝이 먼저 선수 친다. "저희 학교는 매니저가 저 뿐이니까, 저는 하던대로 하면 되겠네요!" 그 와중에 텐도가 귀신같이 타이밍 알고 와서 닝쨩- 테이프를 어디에 놨었지-? 하고 묻는 덕에 닝은 웃는 낯으로 "그럼 저는 이만-" 하고 떠나버린다. 남겨진 매니저 네 명은 사실 닝이 틀린 말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알지만, 괜히 얄미워지는 건 어쩔 수 없을 거야. 첫 날에는 연습 경기 3 세트씩 했으면 좋겠다. 아오바죠사이 VS 후쿠로다니 / 카라스노 VS 네코마 / 카라스노 VS 시라토리자와 / 후쿠로다니 VS 시라토리자와 / 네코마 VS 아오바죠사이 경기로. 시라토리자와 전에서 백조택이 다 이겨버리고, 닝은 또 우쭐해져서 내 새끼들 잘한다 잘한다 해주기. 시미즈 선배가 아오바죠사이를 돕게 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닝이 조금 미워졌지만, 행복한 기운 내뿜으면서 한 순간에 햇살 수인이 되어버리는 닝이 또 너무 예뻐 보여서 야치는 넋 놓고 쳐다볼 것 같아. 웃는 사람이 가장 아름다운 법이니까. 덩치 큰 백조택 애들을 소형 동물들 보듯 마냥 예쁘다 예쁘다 해주는 모습 다들 신기하게 쳐다보기도 할거야. 이성만으로 이루어진 듯했던 시라부와 무뚝뚝해 보이는 우시지마가 환하게도 웃는 닝을 보고 미소 지어버리는 모습에 충격 안 받는 사람 없겠지. ———————— 4 아침 & 점심은 업체 불러서 해결하고, 저녁은 매니저들이 하기로 했어. 보통 요리를 할 때에는 다들 소소한 잡담 정도는 나누는데, 닝은 딱히 다른 학교 매니저들이랑 친해지고픈 마음도 없고, 그럴 필요성도 못 느껴서 입 꾹 다문 채 할 일만 빠릿빠릿하게 해내겠지. 한편, 다른 매니저들은 시라토리자와 매니저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고, 그녀의 연애사도 조금 들어보고 싶을거야. 그 중에 야치의 경우에는 닝에게 반해버린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동경심 생겨버려서 너무너무 말 걸고 싶은데, 다가가기 어려워서 끝끝내 말 한 번 못 걸고 요리가 끝나버렸어. 닝은 무표정하게 배식을 돕다가 시라토리자와 애들만 오면 환하게 웃어주곤 마지막에는 본인 밥 들고 수고하셨습니다- 한 마디 한 뒤 쌩하고 떠나버려. 닝은 의외 ... 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철저한 개인주의 + 공사 구분 철저한 사람인 탓에 이미 본인은 내 자식들만 관리할 거라고 도장 쾅쾅 찍어놓은 시점에서 딱히 상의할 것도 없다고 생각하는거지. 무엇보다도 졸업하면 이런 기회 다시는 없을거고, 이 조합으로 둘러 앉아서 이야기 할 일도, 고등학생 신분으로 떠들며 놀 일도 없으리라는 사실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매 순간순간이 아까워. 닝에겐 다른 학교에 투자할 시간 따위는 없는거지. 그래서 조금 많이 부담스럽게 반짝거리는 눈으로 본인을 쳐다보는 금발 여자애를 애써 무시하고 백조택 애들이랑만 놀거야. 밤에는 다 씻고, 따로 가져온 작은 가방에 자기 물건 몇 개 챙겨서 시라토리자와 방으로 쌩하니 가버리는 닝. 매니저들은 나중에 돌아오겠거니 했다가 아침에 일어났을 때조차 이부자리가 건든 흔적도 없어서 띠용 하겠지. 한편, 닝은 백조택 방에 가서 카드 게임 하고 떠들고 놀다가 늦은 밤에 우시지마 옆에 자리 펴고 잠. 수학여행이라도 온 기분으로 행복하게 잠들었다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아침 운동 다녀온 제 애인 얼굴 있어서 배시시 웃어버려. 우시지마 뽀뽀까지 받고는 녹아내리고 말거야. ———————— 5 안 그런 듯 보여도 예민미 넘치는 시라부 & 카와니시 / 아기 새 고시키 / 닝 짱친 세미 & 텐도 & 하야토 / 어미 새 레온 / 연인 우시지마 조합인 탓에 백조택 애들은 닝을 감싸고 돌았어. 그래서 그 친화력 넘치는 히나타와 보쿠토도 닝에게는 셋째 날까지 말 한 마디 못 걸거야. 그 와중에 닝은 그냥 내 새끼들 경기 하는 거 보고 싶어서 온 거기 때문에, 타 학교랑 친해지고픈 마음 따위 일체 없기 때문에 다들 묘하게 저 대신 철벽을 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러려니 해주고. 물론, 다른 애들 시점에서는 닝이 독수리 둥지의 가장 반짝거리고 귀중한 보석 정도로 보일 정도로 과하게 감싸고 돌고 있지만. 그래서 셋째 날에 오늘은 학교를 섞어서 경기를 해볼 거라고 선언을 해 버리는 네코마타 코치님의 말에 시라토리자와가 제일 충격 받겠지. 후쿠로다니도 기복 심한 제 주장을 어쩌나 걱정은 해도 당사자인 보쿠토는 신나 있는데, 백조택은 단체로 패닉 상태가 되어버린다. 츠토무도 처음에는 우시지마 상을 진지하게 상대하는거다! 하고 신나 있다가 백조택 내에서 유일하게 대놓고 예뻐 해주고 하늘 높이 띄워주는 닝의 품을 떠난다는 사실에 급격히 슬퍼져. 그리고 그들 중 제일 충격 받은 닝. 멍하게 인자한 감독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마침내 그의 말이 이해과정을 거친 뒤에 주저 앉아버리는거야. 모두의 시선이 본인에게 꽂히든 말든 내가 이러려고 여길 왔냐면서 바닥 쾅쾅 내리치기. 세미가 나서서 진정 시켜 보려고 애쓰지만, "난 우리 애들 다 같이 마지막으로 뛰는 거 보고 싶었단 말이에요ㅠㅠㅠㅠㅠ" 하고 울기 직전인 닝 때문에 안절부절 못 해. 텐도의 떠미는 손길에 우시지마가 그 옆에 몸을 굽히곤 앉아서 "그럼 가장 시라토리자와 소속이 많은 팀의 매니저를 하면 되지 않나." 라고 말 하지만, 그 말에 닝은 오히려 바들바들 떤다. 그 말이 아니잖아 ... 결국, 위로 따위에 제일 관심 없을 것 같던 감독이 오늘 하루만 하는 것이라고 말 한 뒤에야 진정하는 닝. -오늘 하루만이죠? -하루만. 다시금 확신시켜주며 웃어주는 코치에 겨우 진정하곤 이야기를 듣겠지. 뭐 어찌 됐건 우시와카 애인인 닝은 우시지마가 주장 하는 팀 매니저로 있기로 했어. 팀은 랜덤으로 섞어서, 1 우시지마WS - 니시노야Li - 킨다이치MB - 카게야마S - 카와니시WS - 와시오MB - 후쿠나가WS 2 다이치WS - 하나마키WS - 레온WS - 쿄타니WS - 이누오카MB - 시라부S - 와타리Li 3 오이카와S - 이와이즈미WS - 텐도MB - 야쿠Li - 츠토무WS - 코노하WS - 오나가MB 4 보쿠토WS - 아카아시S - 리에프MB - 히나타MB - 야마모토WS - 타나카WS - 세미 S 5 쿠로오WS - 츠키시마MB - 켄마S - 쿠니미WS - 아사히WS - 마츠카와MB - 하야토Li 대충 이런 느낌. 닝은 사실 팀이고 뭐고, 백조택이 제일 소중하고 중요하기 때문에 대결 구도로 맞붙느냐에 관계 없이 잘 하면 잘 한다고 띄워주지만, 다른 학교 애들이어도 본인 팀이라면 잘 하는 건 잘 한다고 박수 쳐주지. 처음에는 뚱 했던 닝이지만, 카게야마의 말도 안되는 신들린 토스로 우시지마가 기록에 남겨야 할 수준의 스파이크 때리는 거 눈 앞에서 보고 바로 기분 풀려버린다. 그 이후로는 백조택 + 임시 팀으로 둥지가 커져. 그래서 뭐만 하면 디테일 하나하나 짚어서 환하게 웃어주며 잘한다 잘한다 하는 닝 덕에 다들 텐션 두 단계씩 업그레이드 되지. 카게야마랑 킨다이치랑 어색해 보여서 그냥 대충 사이가 안 좋나 보네- 넘겨짚고는 중재도 잘 해줄거야. 카게야마에게는 셋업이 이러저러해서 잘 한다고 해주고, 킨다이치에게도 너무너무 잘 한다면서 기 살려주고. 니시노야한테도 닝은 너무너무 잘 한다면서 박수 엄청 쳐주는데, 띄워주는 것도 기분 좋고, 웃는 얼굴도 참 사람 들뜨게 해줘서 노야 상 롤링그 썬더! 많이 할거야. 경기 때만큼이나. 그리고 닝은 멋있어하기 보다는 귀엽다고 입 틀어막지. 우시지마 팀이 다 후배들 뿐인지라 닝이 어마어마하게 우쭈쭈해줄거야. 타이치 괜히 심술 나서 "누나 후배는 우리 뿐 아니었나요?" 하고 툭 던져보지만, 그럴 때면 또 우리 애들이 최고지, 하고 타이치 잘 한다 잘 한다 해줘서 금방 풀려버리고. 오이카와 & 이와이즈미 조합 밑으로 가버린 츠토무가 꽤나 걱정스러웠지만, 텐도가 같이 있어서 닝은 조금 안심한다. 그리고 정말 오이카와가 조금 비아냥 거리나 싶을 때 잘 받아치는 텐도. 그래서 오이카와 팀도 강한 조합이긴데, 지들끼리 많이 싸울 듯. 팀 분리되는 바람에 예민미 200% 상태가 된 시라부가 츠토무 다음으로 닝의 걱정을 받았을거야. 그래도 레온이 어미 새 마냥 잘 챙겨주리라 믿곤 안심해. 그래도 시라부가 셋업 할 때마다 닝은 벤치 주먹으로 쿵쿵. 내 새끼 역시 너무 잘해 ㅠㅠ 네코마 부원들은 혼자 떨어져버린 후쿠나가가 꽤나 걱정스러웠겠지. 하지만, 어느새 햇살 수인 되어버린 닝이 계속 챙겨주고 카게야마한테 토스 받아서 스파이크 칠 때마다 잘 한다 잘 한다 칭찬해주는 환경에서 후쿠나가도 조금은 경계를 풀 것. 수고했다면서, 정말 실력 대단하다고 끝까지 띄워주는 닝에게 고맙다는 한 마디 속삭이는 후쿠나가 보고 쿠로오가 제일 충격 받고 말아. 저들은 반 년 걸렸는데!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 ———————— 6 후쿠로다니 학교에서 진행하는 합숙. 자율연습 시간인 밤에는 연습을 하거나 애들끼리 모여서 놀거야. 그중 시라토리자와 애들은 보통 연습이나 밤산책을 즐겼어. 우시지마는 당연하게도 연습을 택하지만, 닝이 산책 가자는 말에는 미련 없이 따라나갈거야. 닝의 어깨에 팔을 두른 채로, 닝은 제 상체를 감싼 우시지마의 손을 꽉 쥔채로, 늦은 밤에 산책을 해. 닝이 재잘재잘 늘어놓는 이야기들을 우시지마는 조용히 들어주지. 카라스노 열정조는 그 모습 보고 신기하다면서 눈 반짝거릴 것 같아. 어느 늦은 오후에는 사람들이 안 다니는 구석에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둘. 그러다 자연스레 분위기 타서 입 맞춘다. 가볍게 쪽-쪽- 입을 맞추던 중 눈이 휘어지도록 예쁘게도 웃는 닝에게 길게 키스하는 우시지마. 갑자기 노빠꾸로 허리를 감아 안은 채 얼굴을 감싸오는 손길에 닝은 연애한 지 2년이 다 되어가는 관계인데도 설레서 심장이 제어 못 할 정도로 뛰어댈거야. 사람 없는 구석이었으니 둘 다 안심하고 그러고 있던건데, 하필이면 세이죠 3넨세들 추억팔이 하면서 산책하다가 그 먼 곳까지 가라. 닝은 체구가 작으니 커다란 인영 하나만 보여서 누군가- 하는 마음에 몇 발짝 다가갔다가 닝을 본인 무릎 위에 앉히곤 애정 표현 진득히 하고 있는 우시지마라는 사실 알고 경악하겠지. 오이카와 ㄹㅇ 충격과 공포에 휩쌓여서 소리 지를 뻔했는데 이와이즈미가 입 틀어막고 질질 끌고 갈거야. 괜히 방해하지 말라면서. 다음 날, 아오바죠사이 VS 시라토리자와 경기를 하는데, 닝이 애들 드링크 챙겨주고 우시지마 땀 닦아주고 있으니까 그 모습 보고 얼굴 시뻘개지는 이와이즈미와 하나마키. 후배들이 왜 그러냐는 눈으로 쳐다보지만, 마츠카와는 아무 일 없다며 애써 손을 가로저어. 오이카와는 그들이 누굴 쳐다보고 있는지 눈치 챈 시라부의 경멸스러운 시선 받고 입 꾹 다물고 있을거다. ———————— 7 4일 째 쯤에는 닝도 마침내 다른 학교 매니저들이랑 말 트겠지. 야치 빼고는 다 동갑내기라서 친해지는데 그렇게 어렵진 않을거야. 애초에, 닝이 먼저 선 긋는 게 티나서 유키에나 카오리도 막 다가가지는 못 했던거고, 야치는 닝이 너무 어려운 느낌이라서 말도 못 걸고 시미즈 뒤에 숨었던 것뿐이니까. 4일 째 밤에는 닝이 처음으로 시라토리자와 방에 안 가고 매니저 방에 남아 있을거야. 일 관련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는 중에 갑자기 방문이 열리지. 누군가하고 고개를 돌려보면, 세미랑 텐도야. "오늘은 여기서 자게?" 애초부터 매니저 방이 닝이 있어야 할 곳이지만, 4일째가 되니까그런 인식 따위는 사라져 버린 백조택. 닝이 "응, 오늘은 여기서 자려구." 라고 답하면, 텐도가 "헤에- 츠토무가 무지 서운해하겠네- 아무튼 잘 자-" 하고 가버릴 거야. 다른 매니저들은 닝이 제일 무뚝뚝해 보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사랑 듬뿍 받는구나 생각하겠지. "우시지마 상이랑은 어떻게 사귀게 된거야-? 역시 닝쨩이 먼저 고백한건가-?" 애인 자랑하고 싶은 마음보다는 소중한 건 혼자 간직하고 가십거리로 안 만들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닝은 그저 웃으면서 간단하게 답할거야. "와카가 먼저 고백했어." 그러니까, 자기가 질질 짜면서 울어버린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 어쨌거나 제일 말 없고 무뚝뚝해 보이는 사람이 연애 중이라는 것도 놀라운데, 먼저 고백했다는 사실에 더 놀랄거야. 시미즈조차 놀란 얼굴을 할 정도로. 야치가 눈 반짝이며 언제부터 사귄거냐 물으면 2학년 봄부터- 라고 다정히 답해줬어. "헤에- 오래 됐군요!" 하며 본인이 더 설레하는 야치를 그 순간부터 닝은 병아리라고 제멋대로 칭해버리지. 여기까지 밖에 구상한 게 없어서 ... • 간단한 대화 : 매니저들 - 우리는 하도 부수는 게 많아서 ... 예산이 조금 ... - 헤에-? 하지만, 후쿠로다니는 부자 학교 잖아요! - 그리고 우리에겐 보쿠토가 있지. - 카라스노는 ... 딱히 부족하지도 넉넉하지도 않은 편인 것 같네요. - 그럼, 시라토리자와는요? 거기는 어때요? - 음? 딱히 돈 들 일은 없어요. 추가 비용이 들 일도 굳이 없는데다가 제가 적정선으로 유지하려고 애쓰는 편이라 ... 아, 의외로 돈 좀 쓰게 만드는 거 하나 있다. - 뭔데요...? - 디퓨저. - 예? - 디퓨저요. |
외전 2 : 고교 졸업 후 (약 ㅅㅍ) |
1 닝은 도쿄대에서 대학 생활을 하고, 우시지마는 국대 루트 밟겠지. 졸업하고도 세미랑은 짱친으로 잘 지낼 것 같아. 물론, 세미 사복 센스에 되려 본인이 더 돌아버릴 지경이라 옷 사러 갈 때마다 쫓아가서 훈수 두고 이렇게 입어라 저건 입지마라 잔소리 하는데, 어째 변하는 게 없어서 네가 진정한 빌런이구나 하고 종국엔 포기. 그래, 너가 행복하다는데 어쩌겠니 ... 그러다가도 때때로 잘난 얼굴 아깝게 쓰는 게 마음에 안들어서 훈수 두긴 둘 듯. 텐도 & 세미 & 닝 = 술친 해도 좋을 것 같다. 서로서로 연락도 자주 하고 자주 만날 것 같아. 텐도 & 닝은 쿵짝 잘 맞아서 둘이 잘 놀 것 같네. 레온 & 하야토와는 스케줄이 잘 안 맞아서 자주 못 만나더라도 연락은 꼬박꼬박 하겠지. 타이치랑은 친남매끼리도 그렇게는 자주 연락 안 할텐데 싶을 정도로 자주 할 거고, 시라부의 경우에는 졸업 때 닝의 말에도 조금 망설이다가 조언 핑계로 연락하겠지. 입시, 공부 질문, 배구부 관리 등등 이런저런 조언은 무조건 닝에게 물어보는 켄지로. 그러다보니 닝과는 꽤나 편한 관계가 됐지만, 우시지마는 여전히 꼬박꼬박 우시지마 상 이라고 부를거야. 츠토무는 암만 닝이 예뻐해줬다지만, 졸업해서 바쁠 것만 같은 선배한테 연락 언제 해야되는지 몰라서 망설이다가 먼저 문자하는 일은 없을 듯. 그래도 닝이 먼저 연락하면 바로바로 답하는 고시키 츠토무. [ 아- 역시 절대 먼저 연락 안 하는 거 보니까 선배가 귀찮은가보네. 앞으로는 연락 안 할게- ] 하면서 놀리면 항상 걸려들어서 안절부절 못 하는 츠토무 너무 귀엽고 웃겨서 맨날 놀리지. ———————— 2 닝은 자취방을 구해서 혼자 살면서 대학 생활을 할거야. 닝은 무얼 하든 자기 자신을 위한 시간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이라서 친구들도 자주 만나고 혼자 휴식을 취할 줄도 알아. 하지만, 우시지마가 많이 바빠졌어. 고등학교 때는 매일같이 보던 얼굴, 몇 주에 한 번씩 보려 하니까 닝은 너무 힘들어서 술친들과 (세미 or/& 텐도) 술을 마신 뒤, 집에 들어가서는 울면서 우시지마한테 전화 해. 보고싶어, 보고싶어, 보고싶어. 그렇게 되뇌이면서. 정신 못 차릴 정도로 취한 와중에도 만나자고 칭얼대봤자 못 만난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언제 볼 수 있냐고는 절대 안 물어봐. 그냥 제 바람을 연신 욀 뿐. 하지만, 닝은 술 안 마시고 제정신일 때도 우시지마에게 보고싶다- 보고싶다- 잘만 말 해. 재잘재잘 말 하다가도 와카, 보고싶어. 그렇게 나긋하게 말할거야. 그러다 서로 얼굴 못 보는 기간이 길어진 어느 순간에, 닝은 혼자 불안해지고 속이 상해버리는 날이 오고 말아. 이때가 연애 기간이 4년이 다 되어 가는, 대학교 2학년의 어느 날. 우시지마는 왜 먼저 보고싶다고 말하는 법이 없지? 어느 날 그런 의문이 생기고 말았어. 그 말만큼은 대답으로 하는 것조차 손에 꼽을 수준이라서, 그 조차도 엎드려 절 받기라서 혼자 속을 썩였지. 좋은 이야기, 싫은 이야기 모두 숨기지 않고 곧잘 이야기하는 닝이지만, 분위기 파악은 할 줄 아는 사람이라서 괜히 그에게 이에 대해 불평하지는 않았어. 이미 훈련 때문에 몸이 힘들텐데, 괜히 제가 그의 정신까지 헤집어놓고 싶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사람이다 보니 배려만 할 수는 없었지. 그래서 닝은 조금 많이 서러웠던 하루를 보내고, 유독 그가 보고싶은 동시에 유독 그가 미워졌던 어느 날에 핸드폰을 들어 전화를 해. 하지만, 아뿔싸, 하필 우시지마가 연습 중인 시간이었기 때문에 그는 전화를 받지 못 했어. 더더 서러워지고, 더더 기분 나빠져서 닝은 오기로 계속해서 전화를 걸거야. 그리고 몇십번째 전화일지 모를 순간에 연결이 돼. "닝. 무슨 일 있나?" 조금 더 기분이 좋았더라면, 원망보다는 애정이 더 큰 순간이었다면, 저가 우발적으로 전화를 너무 많이 건 탓에 그가 걱정 어린 마음에 물어오는 것 뿐이라는 사실을 아주 잘 알았을텐데. 원망보다는 사과가 먼저 나왔을텐데. 우시지마가 전화를 받았을 때는 닝은 이미 무릎을 끌어안고 서럽게 울고 있던 중이었지. "아무 일 없어도 전화 걸 수 있는 사이잖아." 도통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 눈 앞에 그려져서, 닝은 굳이 그의 의문에 대해 들으려 하지 않은 채 젖은 목소리로 바로 말을 이었어. "나만 너가 보고싶은거야? 나만 애달파? 나만 사랑해? 왜 맨날 나만 표현하고 안달내야 하는거야? 왜 너가 먼저 보고싶다고 말을 해주는 법이 없어? 왜? 왜 내가 수백번 말 할 동안 너는 한 번을 먼저 말 안 해줘?" 말을 하면 할수록 서러워져서. 꼭, 정말로, 나만 좋아하고 사랑하는 연애를 하고 있는 것만 같아서. 내가 훨씬 더 사랑하는 것 같아서, 울컥해버렸어. 이미 축축히 젖어 있던 목을 파도가 덮쳐왔지.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모두 재정렬 되지 않은 채였어. 그 탓에 제대로 된 말을 잇는 대신 닝의 입 밖으로는 서러운 울음소리만이 터져나왔지. 그렇게 소리내어 엉엉 울고 있으면, 반대편에서 굵다 못해 묵직하고 덤덤한 목소리가 들려와. "내가 너를 만나러 가지 못 하는데, 내가 보고싶다 말하면 무책임하지 않은가?" "그래도 그 말이 듣고 싶었다면, 미안하다. 다들 말해주었듯이 내가 눈치가 없어 네가 이 때문에 힘들어하는 줄 몰랐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나도 네가 보고싶다. 지금 네게 가고 싶은데, 가지 못 해서 미안하다." "그러니, 울지 말아." 그 말에 또 미안해져서, 지금 당장 보고싶어져서, 그리고 더 사랑에 빠져버려서 더 크게 울어버리는 닝. "나도 사랑해. 미안해, 와카. 내가 너무 이기적이다, 미안해. 그래도 사랑해. 내일- 내일 전화할게. 연습 잘 해." 그렇게 제멋대로 전화를 한 것처럼 또 제멋대로 전화를 끊어버리곤 닝은 침대에 엎어져 펑펑 울어버려. 아무것도 모르는 그에게 괜히 화풀이를 한 것 같고, 언제나 그 자리에서 똑같이 서 있는 그와는 달리 불안감에 결국 무너져 내리는 제 자신을 자책해. 나는 왜 얘처럼 못 해주는걸까? 더 힘든 사람은, 더 큰 부담감을 짊어지고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닌데. 닝은 미안함과 죄책감에 결국 울다 지쳐 잠들었어. 그리고 다음 날, 늦은 밤에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어. 올 사람이 없는데 누군가 싶어 조심스럽게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인영에 닝은 눈을 동그랗게 키워내고, 입은 손으로 틀어막은 채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할거야. "보고싶었다." 그리 말 하며 두 팔을 벌리는 연인의 품에 닝은 손을 바들바들 떨며 안겼어. 그리곤 또 울보같이 눈물보를 터트려. 몇 년 전에 깨달았던 사실 한 가지를 제가 익숙함에 젖어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닝은 그제야 알아챘어. 남들처럼 익숙함에 잊고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면서 잊어버리고 말았었지. 그의 마음은 제가 감히 그 깊이를 눈대중으로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깊었다는 사실을, 제가 한 발짝 다가가면 두 발짝 다가올지언정 멀어지지는 않는 관계였다는 사실을, 정말 많이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 잊고 있었어. 그런 죄책감에 또 서러운 눈물을 흘려대고 있으니, "같이 사는 건 어떤가." 나지막이 귓가에 속삭여오는 목소리에 닝은 우시지마의 허리를 더 꽉 끌어안으면서 더 크게 울어버렸어. 미안하다는 말보다는 사랑한다는 말을 건네면서. ———————— 3 둘은 또 그렇게 살면서 2년을 알차게 보낼거야. 닝은 무슨 일을 하든간에 아마 프리랜서로 살아가지 않을까. 자신의 능력을 잘 살릴 수 있는 일일 뿐더러, 그나마도 누군가의 명령에 매일같이 휘둘리며 살아야 하는 일이 아니었으니까. 무엇보다도 자기 시간을 가지기 가장 유동적인 편이라는 사실도 있겠지. 돈이 아쉬운 인물은 아니니까. 그 날은 바쁘게 산 일주일의 끝을 마무리하는 일요일이었어. 우시지마도 집에 있었고, 닝도 자기 스스로에게 쉬는 날이라고 지명한 날이었지. 휴일인데도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하게도 움직이는 우시지마와는 달리 닝은 느지막한 시간에 일어나서 점심을 함께 먹은 뒤, 거실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었어. 커다란 티비 화면에서는 어느 팀들의 배구 경기가 나오고 있었고, 닝은 그의 무릎에 작은 쿠션 하나를 올려서 벤 뒤 (안 그러면 딱딱해서 불편) 책을 읽고 있었어.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화로운, 누군가에게는 단조로워 보일지도 모르는, 그런 휴일이었지. 따뜻한 온기 하며, 티비에서 흘러나오는 규칙적인 소리들 하며, 무의식적으로 제 머리칼에 엮이는 손 하며, 잠에 빠져 들기에는 제격이라서 늦잠을 잤는데도 또 감겨오는 눈꺼풀을 닝은 애써 뜨려고 노력했어. 점점 잠과의 싸움에서 질것만 같을 쯤에는 차라리 배구 경기를 구경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으로 책을 커피 테이블 위에 내려놓곤 몸을 티비 쪽으로 돌렸지. 몇 년 째 반복하다 보니 습관으로 자리잡은 건지, 계속해서 제 머리칼을 만지작거리는 우시지마의 손을 잡아 당겨서 마사지라도 해주듯 닝이 꾹꾹 눌러주었어. 배구 하는 손이 펜만 잡는 제 것보다 예쁘다는 생각이나 하면서 만지작거리고 있을 때, 그가 한 마디 할거야. "결혼은 어떤가?" 뜬금없는 한 마디에도 닝은 그저 입꼬리만 올렸어. 보나마나 혼자 생각하다가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지금 그 충동이 가장 선연히 드러난 탓에 말 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좋지." 그래서 그 한 마디를 할거야. 답은 없었지만, 제 손가락을 잡듯 말려 들어가는 두껍고, 긴 손가락을 가만히 쳐다보던 닝이 괜히 장난기가 또 돌아서 다시 입을 열어. "결혼 좋지. 근데 나는 반지랑 같이 청혼하는 사람이랑 결혼할거야." 그때서야 그가 조금 굳는 게 느껴지지만, 그녀는 아랫입술 꾹꾹 깨물면서 웃음을 참아내려 애썼어. 둘의 관계에 있어서 결혼이란 너무 당연한 과정이야. 첫사랑 - 연애 - 동거 중이니 남은 건 결혼밖에 없지. 우시지마는 그 순간이 편하고 좋아서, 손을 만져주는 닝이 좋아서, 어차피 닝도 졸업도 했겠다, 직업도 얻었겠다, 당연할 뿐인 과정을 딛기 위한 물음을 전한 것인데, 마치 다른 사람이 있기라도 한 듯한 말 한 마디에 조금 경각심을 느껴. 반지? 하고 뒤늦게 그 필요성을 깨달으면서. 다른 이들에게도 프로포즈 얘기를 꺼내고, 텐도는 또 장난기 생겨서 거창하게 해줘! 하고 말했어. 텐도의 장난에는 항상 말려들긴 하지만, 이것만큼은 말려들지 않을거야. 이유는, 그런 장난에 속기에는 닝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어서. 거창한 보여주기 식의 쇼를 단 한 번도 좋아했던 적이 없던 걸 아는데, 속아주고 싶어도 속기 어렵지. 그래서 바로 그 다음주에 반지 들고 와서 "나와 결혼하자." 하고 질문도 아닌 말을 건네는 우시지마. 그 무엇보다도 그의 진한 눈빛에 홀린 거면서, 괜히 반지가 예쁘니까 받아줘야겠네- 같은 말을 하는 닝. 그 상황이 조금, 아주 조금, 부끄러워져서. 그러면 또 우시지마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다행이군." 하고 답 하는 바람에 괜히 미안해져서 조금 뒤늦게 장난이라고 말해줬어. "당연히 와카랑 결혼해야지,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데.” ☑ 물론 반지는 텐도의 컨펌을 받아서 샀을 것. 세미가 닝의 취향을 가장 잘 알 수 밖에 없는 관계이지만, 결코 그의 센스를 믿을 수 없었음. ———————— 4 결혼 한 뒤에는 연년생으로 아들 하나 딸 하나 낳고 살았으면 좋겠다. 외모는 아들이 우시지마 닮고 딸이 닝 닮았지만, 성격은 그 반대여야 정석. 둘 다 타고나길 얌전한 편이라서 딱히 골치 아플 일도 없겠지. 그나마 문제 삼아보자 하면, 둘이 삼촌들을 너무 좋아한다는 사실? 그리고 삼촌들 말을 너무 잘 따라줘서 사고친다는 거? 삼촌들이 무슨 말만 하면 곧이곧대로 따르는 바람에 사고도 몇 번 쳤겠지만, 그만큼 애교 부리는 법도 배우는 덕에 닝은 굳이 우시지마가의 어린 남매를 보겠다며 문 두드리는 친구 & 동생들을 내쫓지도 않겠지. 3넨세들은 정말 삼촌들처럼 허허 웃으며 놀아줄거 같고, 시라부랑 카와니시는 친한 형/오빠 느낌으로 다정하게 대해줄테고, 츠토무는 땅 바닥 뒹굴면서 격하게 놀아줄거야. 성격은 딸이 우시지마 닮았으니까, 운동 엄청 좋아해서 몸으로 격하게 놀아주는 츠토무랑 조금 더 죽이 잘 맞는 반면에, 아들은 재잘재잘 떠드는 거 좋아하니까, 맞장구 잘 쳐주는 세미와 구연동화 최고 잘 하는 텐도를 좋아하겠지. 우시지마는 두 남매에게 배구공을 건네주면서 놀아주려 하지만, 아들은 조금 놀다가 엄마한테 동화책 읽어달라고 할거라면서 사라져버리고, 딸만 신나서 배구공 튕길거야. 둘 중 한 사람만 흥미를 보인다는 사실을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지, 불행으로 여겨야 하는지 판단 못 내린 채 딸랑구만 놀아주겠지. 그래서 순전히 취향의 문제로 아들은 닝이랑 더 친하고, 딸은 우시지마랑 더 친해질거야. 하지만, 그보다도 남매끼리 더 친하다는 게 함정. 다른 환경에서 자라니 아무리 제 부모님을 빼닮아도 성격이 미묘하게 차이가 나겠지. 그래서 둘이 천방지축 유치원생이 됐을 때는, 닝한테 정말 소소한 장난도 많이 칠 거야. 괜히 엉뚱한 말을 한다거나, 엄마보다 아빠가 더 좋다고 말하거나, 옷 앞 뒤 바꿔서 입는다거나 하는 일들. 근데, 닝은 또 그때그때 태연하게 잘 받아줬어. 소는 삐약삐약! 이라고 아들이 말 하면, 아 정말? 강아지가 삐약삐약 하는 줄 알았는데? 라고 답 하고 엄마보다 아빠가 더 좋아! 라고 딸이 말 하면, 엄마도 아빠가 제일 좋아! 하고 답 해주는. 그런 사소한 거에 또 꺄르륵 웃어버리는 두 아이들 때문에 닝은 입을 틀어막아. 진짜 내가 낳은 애들인데 너무 귀여워. 닝이 프리랜서니까 아무래도 집에 더 자주 있겠지. 그래서 매번 닝한테 그런 리액션을 받았던 남매는 기대감이 가득한 상태로 우시지마에게 장난을 걸거야. 다정하지만, 장난을 받아줄 줄은 모르는 우시지마는 언젠가 닝이 '애들이 이런 장난을 치는 거 있지? 와카도 나중에 잘 받아줘야 돼-' 했던 말 한 마디만을 기억할거야. 그래서- 강아지는 삐약삐약! 이라고 딸이 말하면, 몰랐다. 라고 답 하고 아빠보다 엄마가 더 좋아! 라고 아들이 말 하면, 그래. 라고 답 하지. 아들은 충격 받아서 아빠도 엄마가 제일 좋다고 말 해줘야지! 하고 볼 부풀릴테고 딸은 실망해서 터덜터덜 닝에게 걸어감. 결국, 닝에게 자문을 구한 그는 뒤늦게 닝의 가이드에 따른 대답을 내어주지만 재미 없다고 곧바로 말 하는 아들과 '그건 엄마가 했던 말인데? 왜 또 해?' 하고 물어보는 딸 때문에 조금 상처 받는 우시지마. (닝이 안아줘서 풀렸지.) 나름대로 사실관계를 정정하지 않음으로서 장난을 받아줬다고 생각했지만, 아이들의 기준은 훨씬 높았어 ... 재잘재잘 떠들기 좋아하는 아들과 잘 들어주는 딸. 둘은 죽이 꽤나 잘 맞는 만큼, 싸우는 일도 없진 않을거야. 연년생 남매인데 어떻게 안 싸우겠어. 둘이 냉전 상태에 들어가면, 매일 그 꼴을 보고 있어야 하는 닝만 속 타들어간다. 정말 별 쓸데 없는 걸로 시작된 싸움인지라 누구의 편을 들어주고 말고 할 일도 없겠지. 우시지마가 원정 간 내내 기싸움 하는 둘 때문에 기 빨리는 닝. 기 쎈 건 왜 둘 다 고스란히 유전받은 건지. 그렇게 지내다가 둘이 - 초 1, 2학년 - 학교 간 사이에 돌아온 우시지마에게 닝은 처음으로 칭얼대면서 안길거야. 애들이 ... 내가 너무 힘들어서 ... 그렇게 꿍얼거리는 닝을 안아주면서 조용히 이야기를 들어주는 우시지마. 그리고 두 남매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아빠를 반기기도 잠시, 일단 승자의 판가름을 내달라며 또 이야기를 시작. -솔직히 시라부 삼촌이 낫지! -무슨 소리야? 저번에 카와니시 삼촌이 사다 준 책 좋다고 읽은 사람은 너 말고 다른 사람이야? -내가 오빠거든. 그러는 너한테 세터의 기술 알려준 삼촌은 누군데? -그, 그건 그렇지만..! 정작 제일 좋아하는 사람들은 따로 있는 둘의 싸움의 주제는 물론이고, 내용마저도 어처구니가 없는 닝은 팔짱 낀 채로 한숨 내쉬면서 둘의 끝없는 언쟁을 지켜봐. 차라리 치고박고 싸우기라도 하면 둘 다 혼낼텐데, 이건 뭐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 한편, 우시지마는 조용히 닝을 한 번 쳐다봤다가 입을 열거야. 무시할 수 없는 낮은 목소리에 둘은 곧바로 입을 꾹 다물어. "시라부, 카와니시, 닝 중 누구를 제일 좋아하지?" "엄마!" 본인이랑 똑같은 순간에 말 하는 게 기분 나쁘다며 또 서로를 째려보는 두 아이를 귀엽게 여겨야 하는지 더 이상 분간이 가지 않는 닝과는 달리 우시지마는 마저 말을 이을거야. "그러면, 그런 싸움으로 닝을 힘들지 않게 하는 것이 우선 아닌가?" 아들은 슬쩍 닝의 눈치를 보고, 딸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봐. "엄마 힘들어?!" "너희 둘이 싸우는 것 때문에 힘들어." 그 말에 미안해 엄마! 하고 쪼르르 달려가는 아들과 앞으로는 안 구럴게 ... 웅얼거리는 딸. "그리고 누가 나은가를 떠나서 두 사람 다 좋아하지 않나?" 언쟁이고 뭐고 일단 엄마 안아주기 바쁜 아들과 그건 그렇지, 하면서 닝이 손을 뻗는대로 이끌려가는 딸. 애기들이 이쁘지만, 그래도 우시지마는 닝이 조금 더 우선일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어 애들이랑 닝이랑 싸우면 거의 무조건적으로 닝 편 들어주는 우시지마. 게다가 닝이 99% 옳은 편이라서 애들도 뭐라 못 하지. 하지만, 닝은 그렇게 무조건적으로 와카토시 편 안 들어줘서 조금 서운해진다. 그래도 여전히 스킨십 한 번에 속의 부정적인 감정 모조리 다 사그라들곤 해. ———————— 결혼식에 관하여 우시지마는 가족관계에 아버지만 남아있는 걸 보니, 외가 쪽이랑은 사이가 그냥저냥같기도 하고, 아버지는 외국에 나가 있으니 ... 그래서 둘 다 결혼식에 와줄 혈연 가족은 없었겠지. 고로, 딱 친구 & 지인만 부르는 나름의 스몰 웨딩을 했을 것. 1편에 잠깐 나오고 말았던 초딩때 만난 닝의 친구도 와줬어. 친정아버지로서 손을 넘겨주는 사람이 없으니, 누가 대신 해줄까? 하는 마음에 백조택 배구부 애들 속닥속닥거리고 츠토무는 자기가 하고 싶다고 손 들지만, 닝이 됐다며 손을 내저을거다. 난 원래 혼자였으니까, 나 혼자 걸어가면 되는 거라고. 그래서 눈물 없이 가벼운 걸음으로 우시지마가 서있는 곳까지 걸어간 닝은 내내 웃는 얼굴이었겠지. 정작 결혼하는 당사자들인 우시지마랑 닝은 아무렇지도 않아 하는데, 오히려 세미랑 츠토무가 울었을거야. 그 둘만 울었을지도 모르지. |
짧은 후기 |
수정을 한 뒤에 올렸지만, 자잘한 오타나 몇몇 문장을 제외하곤 딱히 내용에 변화를 주지 않았어요. 그래서 아마 이전에 올렸던 것으로부터 내용의 변화는 없을겁니다. 처음엔 내용을 추가할까 싶었는데, 설계를 해나가며 쓴 글인지라 오히려 캐붕에 더불어 이야기가 무너질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 추가하지 않았습니다. 이 글은 즉석에서 떠오르는 대로 써내려갔던 썰 “우시지마는 눈치가 없는 게 아니라 ... “ 에서 기반하여 각잡고 써본 줄글이에요. 서사에 집착하는 편인지라 숨겨진 메세지도 넣고, 단순한 일상 이상의 의미도 넣다보니 20만 자에 가까운 글이 나왔네요 ㅋㅋㅋ 하이큐 첫 연성이기도 하고, 순전히 최애인 우시지마에 대한 애정만을 기반으로 써본 글인지라 마냥 보고싶은 장면은 다 우겨넣었던 것 같아요. 창의성과 필력이 조금만 더 뒷받침해줬다면 좋았을텐데 ... 싶어지기도 해서 아쉬운 부분도 이곳저곳 있는 것 같아요. 머릿속에서만 스쳐지나가고 글로는 쓰여지지 않는 장면들도 있는지라. 자급자족으로 시작했지만, 이후에는 이것도 보고싶어요! 해준 닝들의 소재와 함께 써내려간 글이기도 해요. 그렇기에 더더욱 소중한 첫 연성이구요. 여러분도 읽는 동안이나마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