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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향기 전체글ll조회 688l 6

•  긴 글로 잘 풀어낼 자신은 없고, 보고싶은 장면 몇 개만.



월국의 황제인 보쿠토 코타로는 사냥을 즐기는 황제였어. 대신들의 기싸움이 심해지고, 혼인에 관한 말들로 인한 압박감이 심해질 때면, 그는 말에 올라타 저 높은 산을 넘어 소나무가 빽빽히 자리한 숲으로 향했지. 그 어떠한 인간의 말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오로지 말발굽 소리와 새가 지저귀는 소리만이 들려오는 숲으로 향해 그는 단 몇 시간 동안이나마 휴식을 즐겼어.


그의 반복되는 일상을 뒤바꾼 그 날은 해가 밝게 빛나는 어느 여름날이었어. 푸르른 잎이 생기를 띈 채 새벽이슬을 오래간 머금는 그런 날. 토끼들이 들에 나와 뛰놀고, 사슴들이 조심스레 범을 피해 옹달샘으로 향하는 그런 날. 사냥을 나가기에는 제격인, 그런 날.


또 다시 줄줄이 이어지는 혼인에 관한 이야기들에 고개를 가로저은 보쿠토는 항상 자신과 함께하는 흑마에 올라타, 눈을 감아도 길을 찾을 수 있는 익숙한 곳에 위치한 숲으로 향했어.


그는 언제나처럼 토끼 한두 마리나 사슴 한 마리 정도를 잡기 위해 떠났지. 보쿠토는 사냥감이 눈에 띄는 순간 곧바로 화살을 날릴 수 있도록 활 시위를 당긴 채 느리게 말을 몰던 중이었어. 사나운 포식동물의 소리를 듣게 된 것은.


근처에서 들려오는 으르렁거리는 소리에 그는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어. 이런. 초식동물들이 많이 보이는 옹달샘 쪽으로는 못 가려나 싶을 쯤,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어. 


고개를 든 보쿠토는 입을 틀어막은 채로 두꺼운 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한 여자를 발견했어. 겁에 질린 한 쌍의 눈과 호기심 어린 한 쌍의 눈이 허공에서 마주쳤어. 그 찰나의 순간에 한 제국을 다스리는 황제가 내릴 결정은 간단했지. 

 

곰을 홀로 물리칠 수는 없겠지만, 저 사람은 살릴 수 있기에, 보쿠토는 활시위를 당겼어.


"어디 한 번 잡아보거라!"


그렇게 주인보다는 제 안위를 위해 전속력으로 달리는 말과 부상을 입은 곰의 기나긴 추격전이 시작되었어. 한참동안이나 활로만 견제를 하며 뛰고, 뛰고, 또 뛴 끝에 황제는 날짐승을 겨우 따돌렸지. 


지나가던 사슴에게는 조금 미안하게 되었지만. 


숨을 고르며 이마를 타고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낸 보쿠토는 그 여자를 발견했던 나무가 있던 곳으로 말을 돌렸어.


"이런 험한 숲에서 홀로 무얼 하고 있던 것이냐?"


그가 약초를 캐기 위해 허리를 숙여 땅을 살피고 있던 여자에게 물었어. 몸을 흠칫 떤 여자는 동그랗게 키워낸 눈으로 범상치 않은 기운을 가진 사내를 올려다봤어. 꼭, 범을 발견한 어린 토끼 같은 얼굴을 하는 여자에게 보쿠토는 어린아이처럼 말간 웃음을 보여주었지.


*


처음 만난 그 날, 보쿠토와 닝은 기나긴 이야기를 나누었어. 해가 저무는 것조차 모른 채, 사라진 황제로 인해 황궁이 뒤집혔다는 사실도 모른 채, 보쿠토는 푸르른 들 위에 몸을 앉힌 뒤로는 다시 일어날 생각을 않았지.


한참동안이나 이어지던 둘의 대화는 점차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을 올려다 본 닝이 이제 그만 가봐야 한다고 말 한 뒤에야 끝이 났고, 보쿠토는 시간이 늦었으니 제가 데려다주겠다며 손을 내밀었어.


"저는 아주 작은 마을의 오두막에 홀로 살고 있어, 혼자 가도 괜찮사옵니다."


고개를 가로젓는 닝을 가만 쳐다보던 보쿠토는 곧 그녀를 번쩍 들어올려 말에 태웠어. 화들짝 놀란 얼굴을 하는 닝에게 약초가 한가득 들어있는 바구니를 안겨준 그가 다시 해맑게도 웃어보였어.


"이번에는 범을 마주할지도 모르는 일 아니냐?"


밝은 두 금안을 마주한 닝은 홀린듯이 고개를 끄덕였어. 이미 범을 마주한 것 같다는 생각은 꿀꺽 삼키며.


그 날은 두 사람의 관계가 시작된 기점이었어. 세상물정에 어두운 닝이 저 높은 하늘조차도 다스린다는 황제의 자리를 저 말간 얼굴을 한 청년이 가졌다는 사실을 알아챌 리는 만무했지. 그저 귀한 비단으로 만들어진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을 보며, 잘 다듬어진 활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보며, 귀한 집 자제 분이구나- 하고 넘겨 짚었을 뿐이었어.


그녀가 보쿠토의 정체에 대해 알았다면, 옹달샘에서 이틀 뒤에 만나자는 그의 부탁에 응했을 일도, 서늘한 그늘 아래에 앉아 그와 입을 맞췄을 일도, 연모한다 고백할 일도 없었겠지.


————————


보쿠토 코타로에게 모두의 눈에서 가리어진 숲에서 닝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현실로부터의 도피였어. 그는 그렇게 꿈에 빠졌고, 환상에 빠졌고, 사랑에 빠졌지.


하지만, 황제의 자리란 가벼운 것이 아니었어. 무거운 왕관의 무게를 버텨야만 했고, 제 욕심만을 따르며 살 수도 없는 노릇이었어. 고로, 그는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혼인도 결코 피할 수 없었어. 황좌에 앉은 보쿠토는 닝에게 이야기한 코타로 라는 이름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었지. 그는 결코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는 운명을 타고난 인물이 아니었으니까.


————————


기어이 혼인을 하게 된 보쿠토가 황후로 들이게 된 인물은 막강한 힘을 가진 가문의 장녀였어. 그녀는 날 때부터 황후가 되리라는 말만을 들어오며 자라온 존재였지. 황제가 아무리 도망치려 발버둥 쳐도, 처음부터 정해져 있던 운명의 상대. 황후의 운명을 타고난 존재는 모든 것에 뛰어난 기량을 보였고, 모든 걸음에 기품이 흘렀고, 모든 말이 조심스러웠어.


그리고 보쿠토는 그런 존재가 특히나 싫었어. 그는 그녀를 마주할 때마다 휘황찬란한 왕관을 계속해서 제 머리 위로 짓누르는 기분을 피할 수 없었거든. 왕관의 무게를 덜어주기는 커녕 되레 배로 무겁게 만드는 존재 따위를 그가 좋아할 리가 없었어. 입에 물고 태어난 황좌 따위, 그는 원했던 적이 없었으니까.


그의 욕심은 오로지 햇살만큼이나 밝게 웃는, 들꽃을 아름다움이라 명명하는, 조심스러움 없이 제 손에 이끌려 입을 맞춰 주는 닝에게만 향해있었어. 그는 꿈 속에나 나오는 낙원을 원했고, 지저분하기만 한 현실을 기피하고자 했지.


모든 것에 뛰어난 황후가 꿈에 빠져 사는 보쿠토의 비밀에 대해 못 알아챌 리는 없었어. 내내 사나운 얼굴을 하고만 있다가도 사냥을 하겠답시고 똑같은 숲으로만 발걸음을 옮기는 그가 사냥감 따위는 손에 쥐지도 않은 채 밝은 얼굴로 돌아오는 꼴이 자꾸만 그녀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으니까. 저와 혼인한 주제에 어디선가 묻혀 온 꽃향기를 풍기는 것을 정말 들에 핀 민들레 때문이라 여기리라 믿었다면, 그것은 크나큰 오산에 불과했지. 그렇게 사람을 보내 보쿠토의 뒤를 쫓은 황후는 조심스럽지 않은 황제의 밀애에 대해 꽤나 쉽게 알게 되었어.


————————


"저도 함께 하겠습니다."


사냥이라는 이름 하에 닝을 만나기 위한 채비를 하던 보쿠토는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어. 권유가 아닌 통보였음은 이미 화살통을 말의 안장에 달아놓은 황후를 발견한 순간 알아챌 수밖에 없었어. 저 드높은 하늘마저도 지배한다는 황제였지만, 황후의 행동에 고개를 가로저을 수조차 없었지. 어떠한 직감이 다시 저 황궁 안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이야기 하고 있었지만, 보쿠토는 흑마에 올라타고 말았어.


"소첩의 활 솜씨에 대한 걱정은 안 하셔도 되오니, 항상 가시던 곳을 가도 좋습니다."


황후는 자연스레 그의 꿈이 사는 오른편의 산이 아닌, 시시한 언덕이 위치한 왼편으로 향하려던 보쿠토를 멈춰세웠어. 부드러운 호선을 그려내는 얼굴에는 농이 아닌 살기만이 느껴졌고, 전쟁터에서 뛰논 보쿠토의 직감은 위험신호만을 반짝였지만, 그는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어. 


그대가 힘들까 싶어 그랬던 것이라는 같잖은 변명에 황후는 대꾸조차 않은 채 말을 몰았지. 마치, 분명한 목적지가 존재하기라도 한다는 듯이.


"저기, 사슴 한 마리가 보이네요."


옹달샘 근처에 도달한 순간, 황후가 활을 꺼내들었어. 불안한 마음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는 황후의 뒤를 따르던 보쿠토의 눈이 동그랗게 크기를 키워냈어. 무고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무력한 제 자신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는 찰나의 순간에 황후의 활 시위는 놓아졌고, 빠르게 날아간 화살은 누군가의 꿈을 산산조각 내어버렸어.


"닝!"


말에서 뛰어내린 그가 뒤늦게 달려갔지만, 단 세 사람밖에는 존재하지 않는 공간의 죽음을 방지할 방법 따위는 없었어. 심장이 위치한 곳에 화살을 맞은 닝은 붉게 물든 눈에서 눈물을 떨어트리고 있었고, 이미 붉은 피가 허름한 옷을 적셔나가고 있었지. 바닥으로 쓰러지는 몸을 받아낸 보쿠토가 피를 어떻게든 막아보기 위해 화살이 박힌 상처를 큰 손으로 감싸 보았지만, 그는 더 이상 그녀를 지켜낼 수 없었어. 곰은 따돌릴 지언정, 황후는 따돌릴 수가 없었거든.


"코타로...?"


작은 속삭임과 함께 닝은 울컥, 피를 쏟아내었어. 붉은 피가 유순한 얼굴을 물들일 때까지도 보쿠토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작, 제 다리 위에 몸을 뉘여주는 일 뿐이었어. 고개를 가로저으며, 나를 떠나지 마라. 안된다. 나를 홀로 두고 가지 말아라. 하고 욀 뿐이었지. 하지만, 그렇게 속삭이며 손을 떨어보아도 언제나 따스함만을 나누어주던 눈이 돌아가 흰자위만이 드러내는 꼴을 막아낼 수 없었어. 그의 꿈이 산산조각 나 부서져 버리고 말았지.


황제가 서럽게 울부짖는 소리에 나무에 앉아있던 새들이 저 멀리 날아가버렸고, 고요한 공간에는 말발굽 소리와 보쿠토의 괴성만이 남아있었어.


"고작 천민따위가 무엇이 불쌍하여 그리 우십니까?"

"... 지금, 한 사람을 이유없이 쏘아놓고 그런 말이 나오는가."

"이유없이라니요. 그 계집이 폐하와 밀애관계를 가졌잖습니까. 그 사실만으로도 죽임을 당하여 마땅한 존재지요."


보쿠토는 황후를 쏘아보며 울부짖었어.


"그대는 꼭 벌을 받을 것이야."

"벌은 이미 받았네요. 폐하같은 인간을 좋아하잖습니까."


여전히 무표정한 황후가 축축하게 젖은 얼굴을 한 보쿠토를 뒤로 한 채 말을 돌렸어.


"사람을 불러오도록 하죠."



[ ]


대신들의 반발을 싸그리 무시한 보쿠토는 처음으로 궁에서조차 제 욕심만을 따르는 선택을 내렸어. 그에게 희망을 안겨주던 존재가 제 눈앞에서 싸늘하게 식어버린 마당에 그가 제 황위의 안위 따위를 중히 여길리는 없었지. 제 유일한 보물을 지키지도 못 하고, 제 곁에 그녀를 단 한 번이라도 두어보는 일조차 못 하는 황제의 자리 따위는 그 누가 하늘을 다스린다 이야기하든 간에 보쿠토에게는 그 어떠한 의미도 지니지 못했어.


황후를 궁에서 쫓아내고, 정말 혼자가 되어버린 보쿠토는 이리저리 방황했어. 손에 잡히는 것이라곤 고작 활 뿐인 그가 일을 처리할 수 있을리도 없었고, 나라를 다스리는 일 따위 할 수 있을 리 없었지. 또한, 허물밖에 남지 않은 황제를 가만 보고 있을 신하 따위도 존재하지 않았어.


기어이 폐후의 아비를 필두로 세운 반란이 일어났어. 무관들의 명령을 따르는 병사들이 황실을 쳐들어오고 있다 고하는 시종을 보쿠토는 더 이상 반짝이지 않는 금안으로 쳐다보았지.


"내 위치를 알리고, 네 한 몸이라도 살려라."


진정 지키고자 했던 존재는 지켜내지 못 한 황제가 내놓은 한 마디. 눈물을 삼키며 몸을 물리는 어린 시종을 멍하게 바라보기만 하며 그는 황좌에 앉아, 죽음을 기다렸어. 


보쿠토는 눈을 감고 푸르른 들 위에서, 어두운 밤하늘 아래에서, 서늘한 그늘 아래에서, 이름 모를 노래를 흥얼거리던 제 사랑의 목소리를 떠올렸어.


달아, 달아.

어두운 밤을 밝히는 달아.

슬피 울지 말고, 너를 그리는 내 꿈에 웃어라.


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는 순간, 병사들이 물 흐르듯 쏟아져 들어왔어. 


사냥을 그렇게나 즐기던 보쿠토는, 곰 조차 쉬이 따돌린 보쿠토는, 제 아비가 물려준 활을 바닥에 내려둔 채 제 급소가 훤히 드러나도록 고개를 치켜들었어. 


그렇게, 제 심장을 꿰뚫는 화살을 기꺼이 받아들였지.


너도 이렇게나 아팠을까.


그는 입안에 고이는 쓰디쓴 피를 바닥에 내뱉었어. 온 몸이 마비되는 듯한 감각, 아득해지는 시야, 그리고 제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단 한 사람에 대한 기억들. 


그는 제 어여쁜 사랑을 머릿속에 그려내며 느리게 눈을 감았어.


죽음 뒤의 생이 존재한다면, 다시 만날 그 사람이 저를 미워하지만 않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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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작가님 ㅠㅠㅠㅠㅠㅠ 아아아 ㅠㅠㅠㅠㅠ 제 찌찌가 뜯어졌어요 ㅠㅠㅠㅠㅠㅠ
4년 전
독자2
하아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찌통 사랑해야
4년 전
독자3
세상에 찌통ㅠㅠㅠㅠㅜ
4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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