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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SF/판타지 공지사항 단편/수필 실제연애 애니/2D BL GL 개그/유머 실화
광광 전체글ll조회 1015l 7
닝이 죽었다.

빈소에는 울음소리가 가득했다. 닝의 부모님, 친척들. 같은 반의 친구들.
모두 모여 닝의 죽음을 슬퍼했다.

"... ..."

스나는 영정사진 속 환하게 웃고 있는 닝의 얼굴을 미동도 없이 바라봤다.
그의 옆으로 나란히 선 아츠무와 오사무, 3학년 선배들 모두 눈시울을 붉혔다.
일말의 표정 변화도 없던 것은 오직 스나 린타로 한 사람 뿐이었다.

.
.
.

닝의 마지막 가는 길까지 배웅한 스나는 불도 켜지 않은 어두운 방 안에 털썩 주저 앉았다.
다친 팔꿈치와 종아리가 욱씬거렸다. 뺨에 붙인 패치가 후끈후끈 열이 오르는 것 같았다.
스나는 벽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아직도 닝의 목소리가 귓가에 선명히 들리는 것 같다는 착각이 일었다.

'인간적으로 부활동하는 시간엔 참아주시죠, 스나린씨? 여기 보는 눈이 몇 개야?'
'그러니까 누가 앞에서 얼쩡거리래?'
'얼쩡? 어얼쩡? 이 분 말을 참 자유롭게 하시네?'
'ㅋㅋㅋㅋㅋ 농담.'

의미없는 농담 따먹기를 하면서도 우린 참 즐거웠다.
슬쩍 널 끌어안아도 싫지 않은 얼굴로 얼굴을 붉히던 넌 참 사랑스러웠다. 
친구 이상, 연인 미만이라는 그 아슬아슬한 경계선.
그 선을 빨리 넘어버릴걸. 그래서 한번이라도 널 사랑한다고 내 목소리로 직접 말해줄 걸.

'닝, 안돼... 이러지 마.'
'...다, 다행... 이, 야...'

차가운 땅바닥에 누워 겨우겨우 입을 연 넌 제일 먼저 다행이라고 말했다.
뭐가 다행인데. 넌 이렇게 피투성이가 되었는데. 뭐가 다행인건데.

'스나... 행, 복...'
'말 하지마, 닝. 피가... 피가 너무 많이나와... 닝, 괜찮은거지? 그치?'
'행, 복... 해야, 돼...'
'... ...'
'린...'

더듬더듬, 피칠갑이 되어버린 손으로 내 뺨을 감싼 넌 그대로 눈을 감아버렸다.
그게 너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난 우는 것 밖에 할 수 있는게 없었고 넌 차디찬 땅바닥에서 다시 깨어나질 못할 단잠에 빠졌다.

스나는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부재중 전화와 문자 메세지. 모두 친구들에게서 온 것이었다.
아, 아니다. 중간중간 선배들에게서도 걱정어린 연락이 와 있었다.
몸을 잘 추스르라는 둥 푹 쉬라는 둥 모두 저를 걱정하는 내용 뿐이었다.

스나는 그 중 어느 하나에도 답을 하지 않은 채 사진첩에 들어갔다.
여러가지 다양한 표정을 한 닝이 한가득 들어 있었다.
자고있는 닝, 환하게 웃는 닝, 뾰루퉁한 닝. 
온통 닝 뿐이었다.
추억을 더듬 듯 사진 하나 하나를 천천히 넘겨보던 스나는 이내 무릎에 고개를 묻었다.

없다.
이제 닝은 없었다.
다시 만날 수도 목소리를 들을 수도 없었다.

눈가가 뜨거워졌다.
이렇게 되지 않을 수 있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싱그럽게 웃던 닝을 추억으로 남기지 않을 수 있었다.

내가 조심했더라면.

스나는 고통스러운 얼굴로 제 머리를 감쌌다. 왜. 왜, 같이 가겠다고 따라 나섰을까. 
조잘조잘 떠드는 네게 정신이 팔려, 돌진하는 차를 보지 못했을 만큼 나는 왜 이렇게 바보같았을까.

...왜 네가 내 대신 죽었어야 했을까.

"으윽... 흑..."

네 영정사진 앞에서도 나오지 않았던 눈물이 이제서야 터지듯 흘러나왔다.
네 앞에서 난 울 자격도 없었다. 마지막 죽는 순간에도 내 걱정만 하던 네 앞에서 난 울 수 없었다.
꾹꾹 눌러참듯이 흘러나온 울음소리가 점점 커졌다. 가슴을 쿵쿵 쳐가며 서럽게.
스나는 그렇게 슬픔에 잠겼다.

"...가지마, 닝..."

"돌아와 줘."

"네가 너무 보고싶어."

눈가가 짓무르도록 울던 스나는 지친 듯 방바닥에 누워 중얼거렸다.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네가 너무 보고싶다.
한 번이라도 좋으니까, 너를 다시 만나고 싶다.

스나는 기절하듯 까무룩 잠에 빠졌다.

.
.
.

"-나, 야, 스나!"

스르륵 몸을 일으킨 스나는 잔뜩 인상을 찡그렸다. 뭐야?... 눈 앞에 심드렁한 얼굴을 한 아츠무와 오사무, 긴지마가 보였다. 스나는 아직도 눈을 채 다 뜨지도 못하고 세 사람을 번갈아 쳐다봤다. 

"뭐야, 잠 덜깼냐?"
"지금, 뭐..."

어리둥절한 스나에게 아츠무는 조금 황당하다는 듯 피식 웃으며 그의 어깨를 툭 쳤다. 일어나봐. 밥 먹으러 가게.

"무슨 잠을 점심시간까지 자냐, 지겹게."
"아니, 난 집에서 분명..."

울다 잠들었는데. 세 사람은 저마다 어깨를 으쓱이며 교실을 벗어났다. 아무래도 쟤 잠이 덜 깬 것 같다. 그렇네. 저들끼리 수군대는 친구들을 따라 스나도 이내 몸을 일으켰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건데...

"야, 사무. 너네 담임 누구랬지?"
"문학."
"맞나~ 우린 영어. 아츠무랑 나는 이제 끝났다."

친구들과 함께 가는 내내 스나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자고 일어났는데 학교? 그것도 점심시간?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게다가 묘한 이질감. 평소와 다름없는 친구들의 태도. 스나는 제 친구들에게서 기시감을 느꼈다. 학년 바뀐지가 언젠데 담임 얘기를 해?

혹시 이거 꿈인가?

그리고 그 순간,

"어, 저기. 닝 아니냐?"
"맞네. 닝이네."
"...닝?"

반사적으로 고개를 홱 들었다. 닝? 닝이라고? 스나는 제 친구들이 고갯짓하는 쪽을 황급히 돌아봤다. 
닝이 있었다. 같은 반 친구와 꺄르르 웃으며 이야기하던 닝이 눈에 들어왔다.

대체...

대체 어떻게...


스나는 닝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닝, 너는...
넌 죽었잖아.
비가 오던 날, 교차로 앞에서, 넌...

"닝! 이리 와봐!"

바보같은 얼굴을 한 스나의 옆으로 아츠무가 우렁찬 목소리로 닝을 불렀다. 그 목소리가 닝에게 닿았는지 친구와 이야기하던 닝이 금세 이쪽으로 쪼르르 다가왔다.

"야, 내가 네 부하야? 왜 오라가라해?"
"ㅋㅋㅋㅋ와놓고 뭐래?"
"일단 불러서 오긴 왔는데...!"

아츠무와 평소처럼 대화를 나누던 닝은 그 뒤에 서 있는 스나에게 눈길을 돌렸다. 움찔. 스나는 저도 모르게 어깨를 떨었다. 정말 너다. 정말 내가 알던 그 닝이다.
살아 있는 닝이다.

"네가 스나 린타로구나?"
"... ..."
"나 7반 닝이야. 음... 어제부터 배구부 매니저!"

닝은 활기차게 자기 소개를 하며 스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제게 내밀어진 손을 한참동안 쳐다보던 스나가 조심스레 그 손을 감싸잡았다.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다.

"스나 너 처음봤지? 어제부터 우리 매니저로 입부했다."
"일도 엄청 잘해."
"아이, 또 무슨 그런 칭찬을..."

능청스럽게 부끄러운 척을 하는 닝 덕분에 모두들 큭큭대며 웃었다. 스나 린타로 한 사람 빼고.
스나는 제가 붙잡고 있는 닝의 손을 한참이고 신기하다는 듯 쳐다봤다.
다시 잡을 수 없을거라고 생각했던 그 손이, 지금 제 손 안에 들어와 있었다.


짧게 인사를 마친 닝은 곧장 제 친구들에게로 돌아갔다. 닝은 다시 돌아가는 순간에도 뒤를 돌아 스나와 모두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근데... 어제라니, 무슨 소리야? 내가 닝을 처음 봤다는건 또 뭐고."
"어제가 어제지. 너 어제 부활 빠져서 닝이랑 인사도 못했잖아."
"...뭐라는거야. 우리 어제는... 부활동 하지도 않았는데."
"얘 아직도 잠이 덜 깼네."

무언가 엇나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제는 분명 닝의 장례식을 다녀오느라 부활동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닝은 보란듯이 살아있었고 친구들은 제가 닝과 처음 만난다고 했다.
무언가... 무언가 이상했다.

"...오늘 몇월 며칠이야?"

아츠무도 오사무도 긴지마도 모두 스나를 이상한 사람 보듯 쳐다봤다. 스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친구들은 저들끼리 눈을 맞추더니 이내 대답했다. 몰라서 묻냐?

"오늘 4월 10일이지. 날짜 감각도 없어졌냐?"

스나는 수업에 전혀 집중할 수 없었다.
4월? 4월이라고?

닝이 죽은 건 늦여름이었다. 뜨거웠던 바람이 이제 막 선선해지기 시작하던 늦여름과 초가을 그 사이 언제 쯤.
그랬는데.
분명 그랬는데.

스나는 빈 노트에 아직 정리되지 않은 것들을 하나씩 적어내려갔다.
닝. 사고. 여름. 4월. 과거? 꿈?

"... ..."

머릿 속이 점점 더 복잡해졌다.

"스나, 몸은 어때."
"아... 괜찮아요."

키타가 다행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종일 복잡한 것들로만 가득했던 하루였다.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죽은 닝을 그리워하며 울기만 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닝은 보란듯이 살아있었다.
게다가 시간은 닝이 죽기 반년 쯤 전으로 돌아와있었다.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키타 선배, 여기 드링크요."
"고마워."

언제인지 모르게 옆으로 다가온 닝은 키타에게 드링크를 건네주고 있었다. 목에 두른 수건으로 땀을 닦던 스나가 흠칫 옆을 돌아봤다.
닝은 아직 제 손에 들려있는 남은 드링크 하나를 스나에게 내밀었다.

"스나도, 여기."
"... ..."

스나는 닝이 내민 것을 가만히 쳐다봤다. 다시 봐도 살아있는 닝이 분명했다.
작지도 크지도 않은 키에 단정히 묶은 머리카락, 그리고 조금 가는 손가락까지. 

"스나? 안 받아?"

필요없어? 내밀어진 드링크를 거두지 않고 닝은 재차 물었다. 수건에 입가를 묻고있던 스나가 조심히 손을 뻗었다.

"...고마워."
"내가 해야할 일인데~"

닝은 활기찬 목소리로 받아치며 다른 부원들에게로 떠나갔다. 제 품보다 조금 더 큰 져지를 입고 바쁘게 돌아다니는 닝에게 스나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아직도 알 수 없는 것 투성이었다. 바보같지만, 지금 이 순간도 꿈인지 현실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스나는 생각했다.

"... ..."

너를 보고싶다는 간절함에, 이렇게 널 보낼 수 없다는 내 미련에.
정말 기적처럼 시간을 건너온 것이라면.

이번에는 어떻게든 널 내 손으로 구해낼 것이라고.

그리고 네게 표현하지 못했던 내 마음을, 아낌없이 다 보여줄 것이라고.

"안녕, 닝."
"스나?"

닝의 교실, 문 앞에 서 있던 스나는 닝을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친구들과 자리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던 닝이 곧 스나의 앞으로 다가왔다. 어쩐 일이야? 의아하다는 듯 묻는 닝에게 스나는 그저 생긋 웃을 뿐이었다.

"그냥."
"응?"
"보고싶어서."

얼굴 봤으니까 갈게. 슬쩍 닝의 머리를 쓰다듬은 스나는 미련없이 돌아섰다. 어쩐지 등 뒤의 닝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알 것도 같았다. 눈은 동그랗게 뜨고서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귀여운 표정을 짓고 있겠지.
스나는 저도 모르게 키득거렸다. 아, 돌아보고 싶다. 가서 꼭 끌어안아주고싶다.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을 땐, 제 손이 닿았던 머리칼에 손바닥을 올려둔 채 얼굴을 붉힌 닝이 보였다.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전엔 우리가 어떻게 친해졌더라.
연습 중 근육경련으로 힘들어하는 날 네가 도와준 것을 계기로, 그렇게 자연스레 스며든 것 같다.
그저 배구부의 부원과 매니저이자 같은 학년 친구에서 따로 연락을 주고받게 되고, 자기 전엔 통화를 하기도 하고. 그렇게 어느 순간 서로에게 스며들게 되었다.

"닝, 데려다줄게."
"나 괜찮은데..."
"어두워. 옷만 갈아입고 올테니까."

이제는 더욱 거리낄 것도 없었다. 부끄러워서 하지 못했던 말들, 낯간지러워서 남들의 눈을 의식했던 행동들 모두 여과없이 네게 들려주고 보여주리라 다짐했다.

"야, 스나. 너 닝이랑 반대방향 아니야?"
"맞아."
"근데 굳이 데려다준다고? 1학년 중에 같은 방향 있다는데."

미심쩍다는 듯 저를 채근하는 쌍둥이들에게 스나는 와이셔츠의 단추를 채우며 대꾸했다. 툭, 툭. 마지막 단추까지 다 채웠을 때. 고개를 든 스나는 여즉 저를 쳐다보고 있는 아츠무와 오사무를 번갈아 쳐다보며 씨익 웃었다.

"그냥, 내가 하고싶어서."

제 감정을 조금도 숨기지 않는 친구의 행동에 두 사람은 혀를 내둘렀다. 쟤, 원래 저렇게... 거침없는 애였냐?

"괜찮다니까. 봐, 별로 어둡지도 않고."
"그래, 그렇네."

스나는 한사코 괜찮다는 닝의 옆으로 기어코 따라 붙으며 걸음을 재촉했다. 
닝이 사는 곳은 스나의 집과 정 반대방향이었다. 닝도 그걸 알고 있기에 데려다주겠다는 스나에게 거절을 표했지만 스나는 제 고집을 꺾을 생각이 없어보였다.

"스나는 참 친절하네. 인기 많겠어?"
"글쎄..."

나란히 걷던 두 사람은 제법 편하게 대화했다. 시간을 되돌리기 전의 기억을 통해 닝의 취향을 전부 기억하고 있던 덕이었다. 
능청스럽게 닝이 좋아한다던 영화의 이야기를 꺼내며 그 영화를 참 좋아한다던 스나에게 닝은 활짝 웃으며 대꾸했었다.

'스나 나랑 취향이 비슷하네? 신기하다.'

사실 그 영화는, 닝에게 줄거리만 들은게 다인데.
스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닝에게 다가가기위해 애썼다. 복도에서 마주치기라도 하면 닝을 붙잡아세우며 한 마디라도 더 붙이고 부활동을 하는 동안에는 혼자 애쓸 닝을 위해 쉬는 시간에도 닝을 쫓아다니며 잡일을 돕곤 했다.
누가봐도 제 마음을 눈치채지 않을 수 없을만큼 스나는 닝에게 부단히도 애를 썼다.


닝의 집까지 가는 시간은 너무 짧게만 느껴졌다. 멀리서 닝의 집이 보이기 시작하자 스나는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나름 느리게 걸었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거의 다 온건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닝은 탁탁탁 제 집 앞으로 달려갔다. 먼저 도착해서는 제게 손을 붕붕 흔드는 닝의 모습에 스나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 귀여워.

"데려다줘서 고마워. 너도 피곤할텐데, 얼른 가서 쉬어."
"응, 내일 봐."
"음... 저, 그리고, 스나."

막 돌아서서 가려는 스나는 저를 붙잡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 자리에 우뚝 서서 손장난을 하고 있던 닝이 힐끔 스나를 쳐다봤다.

"우린... 친구지?"
"... ..."
"난 우리가 친구였으면 좋겠어."

말을 하는 내내 땅만 보고있던 닝이 다시 힐끗 스나를 올려다봤다. 닝은 어색하게 웃으며 확인사살을 하듯이 하마디를 더 덧붙였다.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 ..."
"나 정말 가볼게. 조심해서 가."

닝은 스나의 대답은 듣지도 않으려는 듯 곧바로 집 안에 쏙 들어가버렸다. 
스나는 닝이 사라져버린 길목에 그대로 우뚝 서있었다. 조심스러운 얼굴로 우리는 친구라고 못박는 닝의 얼굴이 머릿속에 선명히 남았다.

아, 이건 예상 못했는데.


스나는 비가 오는 날이면 예민해졌다.
비가 오던 날 닝을 떠나보냈기 때문일까. 비가 오는 날이면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닝을 찾아다녔다.

"... ..."

멀리서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있는 닝을 확인한 스나는 화사하게 웃는 닝을 한참동안 바라봤다.

집 앞까지 닝을 데려다 준 날, 제 마음을 간접적을 비춘 닝에게 스나는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았다.
우리가 친구였으면 좋겠다고 선을 긋는 닝에게 긍정도 부정도 하지 못했다.
죽음으로부터 닝을 지키는 것도 중요했지만 시간을 되돌리기 전 내보이지 못했던 제 마음을 양껏 표현하지 못한 것 또한 미련으로 남아있었다.

생각에 잠겨있던 스나는 여전히 방긋방긋 웃으며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닝을 두 눈에 담았다. 봐도봐도 저렇게 맑게 웃는 얼굴은 질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

아무래도 좋아.

스나는 뭐가 어찌되든 저 예쁜 아이를 10년 뒤에도, 20년 뒤에도 볼 수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사무 다쳤어?"
"손가락이 좀 불편하네."

오른손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던 오사무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약상자를 가지고 있는 닝을 찾는 모양이었다.
스나 또한 고개를 돌려 닝을 찾았다. 체육관의 창문 밖으로는 아직도 빗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닝 어디갔어? 테이핑 필요한데."
"아까 비품실에서 비품 체크하고 있더라."

아란이 공을 바닥에 튀기며 대신 답했다. 그 옆으로 아카기가 다가서며 덧붙였다.
비품 몇 개가 부족하다고 하던데?

"사러 나갔나?"

아카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스나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비가 쏟아지던 오후, 부활동 도중 심부름을 나갔던 날, 사고. 스나의 머릿속에 그 세 가지가 맴돌았다.

아니야. 지금은 아직, 여름이 아니잖아.

생각과는 달리 져지를 집어드는 손이 덜덜 떨렸다. 무슨 정신인지도 모르게 막 체육관 밖으로 뛰쳐나가려고 할 때 쯤, 굳게 닫혀있던 철문이 끼익, 열렸다.

"닝, 어디갔다 왔어. 테이핑 찾고 있었는데."
"어? 다쳤어 오사무?"

문이 열리자마자 모습을 드러낸건 닝이었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문 앞에 서 있던 스나는 움찔, 몸을 떨었다. 
곧장 오사무에게 가려는 닝을 스나가 붙잡았다. 손목이 붙잡힌 닝이 고개를 들었다.

"스나? 얼굴이 왜 그래?"
"...어디..."

어디 갔다와?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진정시키며 스나는 물었다. 닝을 붙잡고 있던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잠깐 보건실에... 앗, 아파."
"...미안."


"비품 사러간 거 아니었어?"
"비가 너무 많이와서요. 내일 후다닥 다녀올게요!"

스나는 멀찍이 서서 닝을 쳐다봤다. 닝은 부족한 비품을 급히 보건실에서 빌려오는 길이라고 선배들에게 설명했다.
아까부터 잔뜩 힘이 들어갔던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심장이 여즉 쿵쿵 크게 뛰고 있었다. 스나는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지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강박증에 걸린 사람처럼 스나는 닝을 찾았다. 닝이 자신의 시야에 보이지 않을 때면 심장이 쿵쿵 뛰고 불안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스나는 알고 있었다. 자신은 비가 오는 날마다 이렇게 닝에게 집착하듯 질척일 것이란 걸.
하지만 상관 없었다.

그 사고로부터 널 지킬 수만 있다면 이 바보같은 짓을 몇 번이고 반복할 수 있을 것이었다.

"오늘도 덥네."
"그러게. 비라도 시원하게 왔으면 좋겠는데."

시간은 물 흐르듯 빠르게 흘러갔다. 어느 덧 여름방학의 끝자락이었다.
올 여름은 유독 비가 오지 않았다. 흔히들 말하는 장마철도 옛날 이야기인 것 같았다.
스나는 오히려 좋았다. 열기가 잔뜩 오른 체육관에서 땀을 줄줄 흘린다 해도 비 때문에 닝에게 하루종일 집착하는 것 보다는 차라리 더 낫다고 생각했다.
차게 적신 수건을 이마에 올려두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신발을 손에 든 닝이 눈에 들어왔다.

"닝, 어디가?"
"잠깐 밖에. 드링크 분말이 조금밖에 없어."
"같이 갈까?"
"괜찮아. 무거운 것도 아닌데."

주섬주섬 지갑을 챙긴 닝이 잠시 다녀오겠다며 벽에 기대어 앉은 동갑내기 친구들에게 손을 흔들며 체육관을 벗어났다. 스나는 말없이 눈으로 닝의 뒷모습을 좇았다.

"... ..."

땅은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아 메말라있었다. 하늘 또한 약간의 구름이 덮여있을 뿐 비가 올 것 같지는 않았다. 같이 가자는 말도 보란듯이 거절해버린 탓에 닝을 쫓아갈 명분도 없었다.

하지만.

"스나 넌 또 어디가냐?"
"...닝 따라갔다 올게."
"쉬는시간 곧 끝인, 야 스나!"

저를 붙잡는 친구들의 목소리에도 스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체육관을 빠져나갔다. 어쩐지, 어쩐지 닝을 쫓아가야 할 것 같았다.


학교 밖으로 뛰쳐나온 스나는 텅 빈 거리를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 어디로 간거지? 걸음이 빠르지도 않은 닝인데, 그 잠깐 새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것 같았다.
금세 땀이 비오듯 흘렀다. 뜨겁게 가열된 아스팔트의 열기가 숨을 턱턱 막아세웠지만 스나는 걸음을 더 재촉했다.

어디야.

어디있어 닝.

스나는 초조한 얼굴로 교차로 방향으로 뛰어갔다. 다행이도 닝은 그 곳에 없었다.
아직도 이 곳을 지나다닐때면 피투성이가 되었던 닝이 떠오르곤 했다. 차에 치일뻔한 자신을 밀어내고 처참히 땅바닥을 나뒹군 닝, 꺼져가는 생명을 겨우 붙들고 저를 달래던 닝의 얼굴이 아직도 선명했다.
교차로 앞에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스나는 이내 반대편의 길목에서 닝을 발견할 수 있었다. 더운 날씨에 손 부채질을 하며 터벅터벅 걷던 닝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스나는 저도 모르게 큰 소리로 닝을 부르며 발을 뗐다.

"...닝!!"

제 목소리가 닿았는지 손부채질을 하던 닝이 뒤를 돌아봤다. 스나는 환히 웃으며 닝이 있는 곳으로 곧장 발걸음을 뗐다.
우리는 친구라고 선을 긋던 닝에게 스나는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았다. 그저 멀리서 제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애정을 닝에게 내비출 뿐이었다. 때때로 닝은 그것을 부담스러워하곤 했지만 스나는 모른척할 뿐이었다.
이 정도는 참아줘. 스나는 마음 속으로 되뇌였다. 

너에게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하고 그렇게 떠나보낸게 아쉬워서. 너무 미안해서 그래.
내가 충분하다고 생각할 때 까지만. 조금만 더 모른척 해줘.

닝은 제가 있는 쪽으로 뛰어오는 스나를 멍하니 쳐다봤다. 아마 왜 네가 여기있어? 따위의 말을 제일 먼저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렴 상관 없었다.

닝이 살아있다는 것만 직접 확인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스나, 오지마!"

횡단보도를 다 건너올 때 쯤, 닝은 다급하게 스나를 불렀다. 왜 그러지?
곧 찢어지는 클락션 소리가 귓 속을 파고들었다. 

고개를 돌렸을 땐, 검은 색의 승용차가 스나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빠앙-

끼이익!

굉음과 함께 교차로의 차들이 뒤엉켰다. 운전자들이 하나 둘 차 밖으로 나오며 욕지거리를 뱉었다.
두 눈을 질끈 감고있던 스나는 온몸이 욱씬거리는 통증에 인상을 찡그리며 스르륵 눈을 떴다.

"...닝?"

바닥에 보기좋게 뻗어있던 스나는 제 몸을 꼭 끌어안은 닝을 힐긋 쳐다봤다. 팔로 제 머리를 꼭 감싼 닝이 색색 숨을 내쉬는게 느껴졌다. 스나는 닝의 허리를 감싸며 조심히 몸을 일으켰다. 어깨와 허리가 얻어맞은 듯이 아팠다.
차에 치일 뻔 했다. 닝이 아니라 자신이.
미처 피할 생각도 못하고 그대로 굳어있던 스나를 누구보다 빠르게 달려온 닝이 감싸며 피하지 않았다면, 정말로 차에 치였을 것이었다. 

스르륵 몸을 일으키는 스나의 움직임에 따라 닝은 그의 머리를 보호하듯이 안고있던 팔에 스르륵 힘을 풀었다. 스나의 시야에 닝이 들어찼다.

"닝, 다친 곳은, 괜찮아? 안 다쳤,"
"야, 이 바보야!!"

스나가 미처 닝의 몸상태를 살피기도 전이었다. 닝은 억누르고 있던 것을 토해내듯이 버럭, 스나에게 소리를 쳤다.

"너 미쳤어? 제대로 보지도 않고 뛰어오면 어쩌자는거야!"
"...닝, 잠깐만. 일단 진정,"
"내가 오지 말라고 했잖아! 괜찮다고 그랬잖아!"

저를 달래는 스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닝은 펑펑 눈물을 흘리며 스나를 나무랐다. 스나는 닝을 달래다가도 눈으로는 재빨리 닝을 살폈다. 뒹굴면서 쓸린 팔과 다리에 타박상 몇군데가 눈에 띄었다. 
스나는 내심 안심했다. 방금은 제가 죽을 뻔 하고 온 몸이 욱씬거렸지만 닝이 이 정도의 상처만으로 끝났다는 것이 못내 다행이었다.
스나는 여즉 펑펑 울고 있는 닝의 등을 토닥였다. 난 괜찮다고, 아무렇지도 않다고 닝을 안심시키려고 하는 순간,

"내가 널 어떻게 살렸는데!"

스나의 손이 멈췄다.


[시간을 되돌리기 전, 닝이 죽던 날]

비가 쏟아지던 날이었어. 비품 구매를 핑계로 체육관을 빠져나온 나는 너와 작은 우산에 꼭 붙어서 그 짧은 틈새에 데이트를 즐겼지.

"근데 연습 빠져도 돼?"
"네가 같이 가자고 했잖아."
"아니이... 짐이 무거울 수도 있으니까..."
"핑계는."

내 볼을 콕 찌르며 푸스스 웃던 네게 얼마나 설레던지 넌 모를거야. 나한테만 보여주던 그 다정한 얼굴은 내가 널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였어.

근데, 그거 알아 린? 지금 이렇게 서로에게 두근거리는 우리는, 이미 시간이 한 번 되돌아가면서 만들어졌다는 거?

.
.
.

"왠 비야?"
"그러게.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렸나?"

과거의 우리는 그냥 같은 학년의 친구에 지나지 않았지. 주섬주섬 우산을 챙기던 너는 오늘 같은 날 심부름을 나가야되냐며 투덜거리면서도 순순히 나를 따라나섰어. 의외로 여자애들한테 서툰 넌 내 말을 거절할리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 아, 그렇다고 일부러 그런건 아니야. 마침 오사무도, 아츠무도, 긴지마도 어딜 갔는지 보이지 않았으니까. 

"실화야? 야, 앞이 안보여."
"조심해서 걸어라ㅋㅋㅋ 넘어지지 말고."

티격태격 시시한 말싸움을 하며 함께 걷던 우리는 좀처럼 거세지는 빗줄기에 입을 떡 벌렸지. 스나의 말대로 정말 오늘 같은 날 심부름은 무리였을까 생각했었어. 지금이라도  돌아가자는 네 말에도 나는 이왕 나왔으니 그냥 다녀오자며 고집을 부렸었지.

네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빵- 빠앙-!

"아..!"
"닝!"

횡단보도 앞,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다가서는 덤프트럭이 눈에 보이면서도 몸을 움직이지 못했어. 이대로 죽는구나 하는 마음에 눈을 꾹 감았을 땐 먼저 앞서가던 네가 나를 끌어안았지.

이어서 굉음과 함께 몸이 붕 떠올랐어. 너도, 나도.

바닥에 처참히 처박히고 나서야 시야가 돌아왔어. 축축히 젖은 바닥에 드러누워 숨을 색색 내쉬고 있던 나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미동도 없이 쓰러져 있는 네게 손을 뻗었어. 내 손은 네게 닿지도 않았지만.

"...스나..."

겨우 쥐어짠 목소리를 내봤자 너는 대답하지 않았지 피가 흐르는건지 눈 앞에 흐릿했고 너 또한 입고 있는 옷이, 손과 발이 피투성이었어.
이렇게 크게 다쳤는데도 아프지 않구나. 아프지 않다기보단, 온 몸에 감각이 없었어. 지금 내가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는지, 다리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지. 꼼짝없이 누워 내게서 등을 보이고 있는 네게 손을 뻗으려 했지만 몸은 이미 내 통제를 벗어났나봐.
점점 숨이 턱턱 막혀와.
무서워

"...스나..."

뭐라고 말 좀 해봐.

"야아..."

나 너무 무서워.

점점 눈이 감겨와. 이런게 죽는거구나. 나 이제 곧 죽는구나. 그저 무섭기만 했어. 줄줄 흐르는게 눈물인지 빗물인지. 눈을 꼭 감고 채 내뱉지도 못한 말들을 중얼거려. 싫어. 무서워.

살고싶어.

정신을 차렸을 땐, 난 우리집 침대에 누워있었어. 어쩐지 푹 잘 자고 일어난 느낌. 몸을 일으키자마자 팔과 다리를 확인했어.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한 팔다리를 확인하고 나서야 정신없이 너에게 전화를 걸었지.

-여보세요.
"스나? 너야? 괜찮아? 살아있어?
-뭐야ㅋㅋㅋ 잠 덜 깼어?

걱정이 가득한 나와는 달리 넌 아무렇지도 않게 웃기만 했지. 바보같이 어버버하며 정말 괜찮냐고 되묻는 나에게 넌 이따 학교에서 보자며 통화를 마무리했어.
놀랍게도 나는 죽었던 그 날로부터 과거에 다시 돌아왔다는 걸 알게 되었지. 나도 처음엔 믿기지 않았어. 이론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잖아. 시간여행, 말이 돼? 
그저 나는 죽음의 문턱에서 간절히 바랬던 탓에, 신이 내게 한 번 더 기회를 준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했어

그리고 나는 어쩐지 네게 자꾸 시선이 갔어. 네가 내 눈 앞에서 그렇게 죽어버린 탓이었을까. 자꾸 쳐다보게되고, 챙겨줘야할 것 같았지.

정신을 차렸을 때 너와 나는 이미 서로에게 스며든 뒤였어. 과거에 친구였던 우리는 이미 그 선을 넘어가 버렸던거야. 친구였던 스나 린타로와 남자 스나 린타로는 정말 다르더라. 난 네가 그렇게 표정이 다양한지 몰랐었잖아.

서로에게 푹 빠져서 행복에 취해 있을때, 난 잠깐 망각했었어.
내가 왜 과거로 돌아왔는지. 무엇을 계기로 돌아올 수 있었는지.

"더 가까이 와. 젖잖아."
"그러니까 우산 들고 빌려오라니까..."

작은 우산 하나에 억지로 붙어서 움직이는게 여간 불편한게 아니었지. 투덜대는 나를 되려 꼭 끌어안은 넌 멀리 떨어져서 걷기 싫다며 여우같이 내 귀에 속삭였지

.
.

"닝, 안돼... 이러지 마."

사고는 순식간이었어. 넌 바닥에 쓰러져 누운 내 옆으로 기듯이 다가와 내 손을 붙잡았지. 큰 자동차가 우릴 향해 다가오고 똑같은 미래가 반복되려고 할 때 쯤, 나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 너를 있는 힘껏 인도로 밀쳐버리고 나는 혼자 차에 받쳐버렸어.
그냥, 우리 둘 다 죽을 바에는 너는 살았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했나봐.
친구가 아닌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너만은 내 몫까지 살아주길 바랬었나봐.

"...다, 다행... 이, 야..."

다시 돌아오기 전과는 달리 이번엔 조금 아프더라. 온 몸이 욱씬욱씬거리는 와중에 넌 내 앞에 꿇어 앉아서 내 손을 꼭 붙잡고 있었어. 예쁜 네 얼굴에서 눈물이 떨어지는 걸 닦아줄 수 없다는게 미안했지.

"스나... 행, 복..."
"말 하지마, 닝. 피가... 피가 너무 많이나와... 닝, 괜찮은거지? 그치?"
"행, 복... 해야, 돼..."

린...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입이 떨어지지가 않았어.
겨우 뱉은 말이라고는 너의 행복을 바라는 것 뿐이었지.

정말 좋아했어, 린타로. 좋아한다는 말도 하고 싶었는데.
내 마지막 모습을 평생 네가 안고가게 만들어서 미안해.
내 생각 자주 하지마. 날 생각하는 넌 어쩐지 아픈 얼굴을 할 것 같아. 그건 내가 싫으니까.
그냥, 가끔. 아주 가끔 날 떠올리면서 웃어줘. 난 그럼 행복할 것 같아.
고마워.
사랑해.

"닝! 매점 갈까?"
"...어, 응."

하지만 어째서인지, 나는 다시 과거로 돌아와버렸지. 왜지? 어떻게?
영문도 모르는 채로 아무튼 태연하게 일상을 지내고 있을 때, 나는 다시 너를 만날 수 있었어.

너의 표정을 보자마자 나는 알 수 있었지.
이번엔 네가 빌었구나.
다시 시간을 되돌린 건 너였구나.

최대한 티내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네게 인사를 건넸어. 바보같은 얼굴로 내가 내민 손을 잡은 넌 볼만했지. 웃음이 나오려는 걸 꾹 참으면서 밝게 웃는 나를 따라 넌 어색하게 입꼬리만 올릴 뿐이었어.

과거로 돌아왔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가 다시 서로에게 좋아 죽기 한참 전이라는 걸 알면서도 넌 보란듯이 날 찾아오고 내게 마음을 표현했지. 나 사실 좀 놀랐어. 너 이렇게 감정표현이 솔직한 스타일은 아니었잖아. 하루하루 너의 행동에 설레면서도 난 조금 걱정스러웠어.
마지막에 널 살렸던 나처럼, 내가 죽는 과거를 본 너는 날 살리려고 할테니까. 너만은 살기를 바랬던 나처럼 넌 주저없이 널 날 대신 희생하려 할테니까.

그래서 널 밀어냈어.
너와 거리를 유지하면, 내가 널 계속 밀어내면, 그렇게나마 널 내 죽음에 끌어들이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거든.

"난 우리가 친구였으면 좋겠어."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미안해..."

네게 그런 말을 하면서 얼마나 미안했는지, 마음이 아팠는지 넌 모르지? 혹시나 네가 내 말에 상처라도 받았을까봐 걱정이었지. 그럼에도 나는 혼자 방에서 내게 닿지도 못할 사과를 하는 것 밖에 할 수 있는게 없었어.

넌 비가 오는 날에 더 예민해졌어. 그럴만도 하지. 비오는 날이면 유독 우리 쪽의 복도를 어슬렁거리는 너를 위해 난 일부러라도 더 매점에 간다는 핑계로, 화장실에 간다는 핑계로 밖으로 나와 네가 멀쩡한 날 잘 볼 수 있도록 움직였지. 네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는게 느껴지면 기분이 좋았어. 니가 날 신경쓰는게 좋았어.
이상하지, 니가 나를 좋아하지 않아야 하는데. 그래야 나도 널 온전히 지킬 수 있는데.
나도 참 나쁘다.

.
.
.

"야, 이 바보야!! 너 미쳤어? 제대로 보지도 않고 뛰어오면 어쩌자는거야!"
"...닝, 잠깐만. 일단 진정,"
"내가 오지 말라고 했잖아! 괜찮다고 그랬잖아!"

간발의 차이로 차에 치일 뻔한 널 내 손으로 구했을 땐, 정말이지 심장이 발 끝까지 떨어져버린 기분이었어. 

"내가 널 어떻게 살렸는데!"

네가 화가 나더라. 네가 나 때문에 희생하는건 내가 바라는게 아니야.
왜 나한테 자꾸 얽매여. 내가 뭐라고 네 목숨 다 바쳐 날 구원하려 해.
난 충분한데.
내 죽음이 다시 반복되더라도, 잠깐이나마 널 다시 만난 것만으로도 난 충분한데.

"야! 스나!! 닝!"

응급실 벤치에 앉아있던 스나가 비틀비틀 몸을 일으켰다. 입고있던 트레이닝 복은 바닥을 뒹굴며 흙투성이가 되어있었다.

"닝은? 아, 아니. 넌 괜찮아?"
"진정해라, 아츠무.

다친 저만큼이나 놀란 얼굴로 다다다 내뱉던 아츠무를 진정시키던 키타는 스나의 어깨를 짚으며 물었다. 넌 치료 받았어? 스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교차로까지 온 구급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에 간단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다리에 통증을 호소하던 닝은 골절이 의심된다고 했다. 더듬더듬 구급대원이 제게 했던 말을 키타에게 전한 스나는 아직도 얼이 빠진듯한 얼굴이었다.

닝의 입으로 들은 진실은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두 번이나 시간이 되돌아 갔다고. 이미 죽었던 날 닝이 살렸고, 오늘 또한 죽을 뻔 한 날 다시 살려내고.

"... ..."

제게 다른 아픈 곳은 없냐고 묻는 부원들의 말도 스나의 귀에 들어가지 않았다. 누구에게 말해도 믿지 않을 일들을 전해 들었으니 그럴만도 했다.

죽게될거란 걸 알면서 나를 살린 닝.
다시 살게 된 현재 또한, 나를 살리려고 선을 그었던 닝.

스나는 헛웃음이 나올 뿐이었다.

널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어.

"천만 다행이지. 닝아, 많이 아파?"
"조금. 지금은 괜찮아."

멀찍이 떨어져 서 있던 스나는 부원들과 재잘재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닝을 지그시 쳐다봤다.
다리에 두껍게 감겨진 깁스를 보고 있자니 어쩐지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저만한게 다행인게 맞는데.
왜 이렇게 내가 다 아픈지.

한차례 폭풍이 몰아치고 부원들은 모두 돌아갔다.
스나도 오늘은 곧장 집에 돌아가도 좋다는 감독님의 말에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부원들과 감독님 모두가 빠져나간 병실에서 스나는 그제서야 닝이 기대어 앉아있는 침대의 앞으로 스물스물 다가갔다.

"...괜찮아?"
"응. 괜찮아."
"아파?"
"안 아파. 지금은 멀쩡해."

어쩐지 조심스러웠다.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침대 주변을 안절부절 못하고 맴도는 스나의 팔을 닝이 잡아다가 침대 맡에 앉혔다.

"좀 앉아. 너도 다쳤잖아."
"너에 비하면 이 정도는..."
"운동하는 애가. 작은 부상도 조심해야하는거 몰라?"


"내가 한 말, 믿어?"
"...어떻게 안 믿어."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이니까."

닝은 괜히 손장난을 치며 말끝을 흐렸다. 시간여행이라니, 닝도 스나도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걸 알지만 그 말도 안되는 것을 두 번이나 겪었다는 것이 아이러니였다.

"...오늘이 아니야."
"응?"
"네가 죽었던 건... 오늘이 아니었어."

오늘은 비도 오지 않았잖아.
닝은 조금 굳어있는 스나의 얼굴을 살폈다. 스나는 아직도 제 죽음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널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내가 괜찮다고 해도 넌 받아들이지 않을테지.

...나라도 그럴테니까.

"...스나, 우리 이렇게 하자."
"뭘..."

닝은 제 옆에 앉은 스나의 손을 두 손으로 꼭 붙잡았다.
기적은 이미 일어났다. 둘 중에 한 사람은 죽어야 했던 운명을 겨우 살짝 피했을 뿐이었다.

"난 네가, 비가 올때마다 나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는게 싫어."
"상관없어."
"내가 상관이 있어."

닝은 단호하게 답했다. 그러면서도 내심 놀랐다.
이렇게 고집을 부리는 건 보지 못했는데.
닝은 불만이 섞인 얼굴로 제 눈도 마주치지 않는 스나의 뺨을 잡아다 억지로 눈을 마주쳤다. 입을 삐죽 내민 스나의 얼굴이 어쩐지 귀여워서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그런 말 알아? 죽는데는 순서 없다고."
"...장난할 기분 아니야."
"나도 장난 아닌데?"


"세번째로 되돌린 시간이잖아. 너나 나나 누가 죽을지 몰라."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우리가 서로의 죽음에만 신경만 곤두세우는건 바보같다고 생각해."
"난 네가 죽는걸 직접 봤어."
"나도거든? 네가 기억을 못하는거지."

제 손에 잡힌 스나의 볼을 조물조물 만지던 닝이 스나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닝을 흘겨보던 스나의 눈이 조금 커졌다. 닝은 장난스레 씨익 웃으며 다시 입을 맞췄다.

"시간 아깝잖아."
"... ..."
"막말로, 너나 나나 누가 언제 죽을지 모른다?"

연애 할 시간도 없지 않나 그럼? 뺨을 붉히면서 베시시 웃는 닝은 사랑스럽기 그지 없었다.

스나는 닝의 말을 납득할 수 없었다.
지금도 닝에게 죽음이 드리워진다면 주저없이 제가 희생할 수 있었다.

근데.
네가 이렇게 예쁘게 웃는데 어떻게 싫다고 해, 내가.

"그러니까 우리 연애부터 합시다, 스나 린타로씨."
"... ..."
"야, 내 첫 뽀뽀 니가 가져갔단 말이야."

책임져! 어린아이가 떼를 쓰듯 입을 삐죽거리는 닝을 보고 있자니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와버렸다.

졌다.
내가 졌어.

"아니면, 뭐. 나 말고 다른, 읍-"

조잘조잘 떠드는 닝의 팔을 그대로 잡아 끌었다. 큰 손으로 닝의 뒷통수를 받친 스나는 그대로 입을 맞대었다.
살살 달래듯 닝의 입술을 베어문 스나는 벌어진 틈을 놓치지 않았다.
움찔거리는 닝을 조금 더 가까이 잡아끌었다. 혹시나 닝의 다리에 무리가 갈까 손길이 퍽 조심스러웠다.
아무도 없는 병실에서 서로의 숨소리만 가득찼다. 닝의 정신을 온통 빼놓은 스나는 천천히 입술을 뗐다.

"가, 갑자기..."
"...사랑해."

정말 너무너무 사랑해. 스나는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닝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어쩐지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
.
.


[외전]

1. 싸우는 이유는 사소해요.

"... ..."
"그렇게 봐도 소용 없어."

이번엔 나도 양보 안해. 닝이 단호하게 말했다. 쌍둥이와 긴지마는 숨을 죽였다.
뭐야, 이번엔 뭔데. 몰라 나도. 세 사람은 저들끼리 속닥거렸다. 세 쌍의 눈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매섭게 서로를 쳐다보는(노려보는) 스나와 닝에게로 향했다.

쟤들은 꼭 비오는 날마다 싸우더라.

지겹다는 듯 고개를 내저은 아츠무가 먼저 체육관을 벗어났다. 그 뒤를 오사무와 긴지마가 따랐다. 모르겠다. 알아서 하겠지.

스나와 닝이 연애를 한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눈 깜짝할 새였다. 골절로 입원을 하게 된 닝에게 스나는 매일마다 얼굴 도장을 찍었다. 힘든 부활동을 마치고도 즐겁다는 양 닝의 병원에 간다는 스나의 표정을 보고도 두 사람의 사이를 눈치채지 못할 사람은 없었다.
놀라울 일도 아니었다. 어디서 뭘하든 스나의 시선 끝에는 항상 닝이 있었다. 단지 스나의 일방적인 감정이라고만 생각했던 것이 알고보니 쌍방이라는 것이 의외일 뿐이었다.

닝은 매섭게 눈을 치켜뜨고 스나를 올려다봤다. 끙, 하고 앓는 소리를 뱉은 스나가 제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럼 이렇게 하자."
"싫어."
"... ..."
"안돼."

내가 데려다 줄거야. 닝은 확고한 목소리로 못박았다. 스나는 반박할 수 없었다.
여전히 비가 오는 날은 스나의 예민함이 절정을 달렸다. 닝은 제게 얽매이지 말라고 했지만 말처럼 쉬울리가 없었다.
하루 온 종일 제 옆에 꼭 붙어있는 스나에게 닝은 그저 머리를 쓰다듬어줄 뿐이었다. 나는 여기 있다고. 멀쩡히 살아있다고 위로하는 격이었다.
하지만 불안한 것은 스나 뿐이 아니었다. 두 번의 시간여행을 하기 전, 스나 또한 비가 오는 날 사고를 당했으니 닝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비가 오는 날마다 서로의 집에 데려다 주겠다고 티격태격이었다. 서로가 집까지 무사히 가는 걸 봐야 마음이 놓인다며 항상 같은 문제로 입씨름이었다.

"저번엔 네가 이겼잖아. 이번엔 좀 져줘."
"...닝, 진짜..."

닝은 지난번에 스나가 제 집까지 고집스레 하교를 함께한 것을 언급하며 이번엔 내 차례라고 강하게 어필했다. 스나는 그것이 퍽 못마땅했다.
난 괜찮아. 내가 안 괜찮아. 그러다 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내가 할말인데? 나야말로 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같은 패턴의 반복이었다.
닝은 불만어린 제 연인을 웃음 띈 얼굴로 쳐다봤다. 스나는 그 와중에 예쁘게도 웃는 닝이 조금 얄미웠다. 웃지마. 예뻐가지고. 투덜대듯이 내뱉은 말에는 애정이 가득했다.
닝은 그대로 스나의 앞으로 다가가 발꿈치를 들었다. 쪽, 하고 짧게 입술이 닿았다 떨어졌다.

"표정 좀 풀어주지? 나 예쁘다며?"
"...못 당하겠어, 진짜."
"어어, 웃었어 지금? 이번엔 내가 데려다주는거다?"
"이번만이야."


2. 불가항력
닝은 때때로 스나의 행동에 당황하기 일쑤였다. 조잘조잘 잘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예고도 없이 입을 맞추는가 하면, 어느 날은 아무 말도 없이 지그시, 저를 쳐다보기만 하기도 했다. 그 눈에서는 저를 얼마나 좋아하고 있는지 여실히 드러나기에, 닝은 가끔 부끄러운 듯 그의 눈을 피하곤 했다.
그런가 하면 가끔은 어리광을 부리듯 닝에게 애정을 요구하곤 했다. 닝은 제게 팔을 활짝 벌리고 있는 스나에게 다가가 안겼다. 그의 품은 여전히 넓고 포근했다.

"닝."
"왜에."
"닝-"

의미없이 제 이름을 부르는 스나에게 닝은 그의 품에서 바르작대며 고개를 슬쩍 들었다. 양 팔로 가득 닝을 감싸안고 있던 스나가 닝을 빤히 쳐다봤다. 닝은 그 행동의 의미를 모르지 않았지만 일부러 입을 삐죽이며 딴소리를 해댔다.

"...린타로는 부끄럽지도 않아?"
"별로."
"... ..."
"모르는 척 그만 하고."

얼른 해줘. 스나가 저를 빤히 쳐다보고 있을때면, 그것은 입을 맞추고 싶다는 것을 뜻했다. 닝은 그런 스나가 사랑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항상 애정을 가득 담아 그의 요구를 들어주곤 했다.
시도때도 가리지 않아서 그렇지.
닝은 원하는 것을 들어주기 전까지는 스나가 저를 놔주지 않을 것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 꼭 붙잡고 있는 그의 옷깃을 만지작거리던 닝은 이내 스나의 목을 와락 끌어안았다.
쪽, 짧게 입술을 맞대고 떨어진 닝은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스나는 닝의 그런 얼굴을 좋아했다. 착실히 제가 원하는 걸 들어주면서도 부끄러워 어쩔줄 모르는 듯한 그 사랑스러움을.

"음, 린. 잠깐,"

스나는 참지못하고 닝의 허리를 와락 끌어안고 다시 입을 맞췄다. 닝은 어깨를 움츠리며 그를 살짝 밀어냈지만 스나는 더욱 닝을 제 품안에 파묻듯 꼭 잡아당길 뿐이었다.
숨을 다 가져가 버릴 듯 진하게 입을 맞댄 스나는 그래도 성에 차지 않는지 쪽, 쪽 짧게 뽀뽀를 해댔다. 작게 숨을 헐떡이던 닝이 스나의 어깨를 약하게 때리며 구박하듯 말했다.

"못 살아!"
"ㅋㅋㅋ미안."

네가 너무 예뻐서 그래. 닝의 머리카락을 귀뒤로 넘겨주며 스나는 달콤하게 속삭였다. 차고 넘치는 사랑을 주는 남자친구덕에 닝은 나날이 행복했다.


3. 비 오는 날의 루틴

비오는 날이면 서로에게 예민해지던 두 사람은 일정한 규칙을 정했다. 학교에 다닐때야 어차피 하루종일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언제까지고 비 때문에 강박증에 걸린 사람마냥 행동 할 수 없다는 닝의 생각 때문이었다.

[사진]
[사진]
수업 끝나고 밥 먹는 중.
자기는?

착실히 교내 식당의 사진과 끼를 부리듯 잔뜩 요망한 얼굴을 하고 있는 닝의 셀카를 감상하던 스나는 흐뭇하게 웃었다. 창밖으로는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닝은 대학교로, 스나는 배구 프로팀으로 진로를 정했다. 서로 떨어지게 될 거란 건 이미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기에 닝은 언젠가 스나를 앉혀두고 제법 진지하게 말했다.

"나는 2학년 늦여름에 사고로 죽었었지?"
"...그랬지."
"근데 우리는 3학년에 곧 성인이 되고.'
"... ...'
"나는 아직도 잘 살아있고.'
"그래도 불안해.'

단호한 그의 대답에서 닝은 예상할 수 있었다. 이 놈은 서로 떨어지게 되더라도 비가 하루라도 오면 저를 걱정하느라 정상적으로 생활하기 힘들테지.
닝은 더 이상 자신의 죽음에 그리고 스나의 죽음에 얽매이지 않았다. 그러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서로의 죽음을 이미 목전에서 목격했고 그게 얼마나 충격적인 일이었는지는 알지만 마냥 걱정만 하기에는 앞으로 살아갈 날이 무수히 많다고. 그러니까 나는 걱정을 하는 대신 내일 당장 죽더라도 눈 앞에 이 고집스러운 남자를 후회없이 사랑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디에 있든, 뭘 하든 너한테 하나하나 다 보고할게. 전화도 꼭 받을게.'
"닝, 이건 이렇게 가볍게 이야기할 게,"
"네 세계가 나 때문에 망가지는게 싫어, 린타로."
"... ..."

스나는 입을 다물었다. 어차피 저는 닝의 의견을 꺾을 수 없다는 것 쯤이야 진작 깨우치고도 남았다.
늘 저에게 고집스럽다고 하지만 정작 본인이 더하면 더하다는 걸 모르는건지. 난 그런 네 억지에 기어이 져주는 걸 알기나 하는건지.

그리고 말은 바로 해야지.

내 세계는 이미 너로 가득 찼는데 망가질게 어딨다고.

[오전 훈련 마치고 잠깐 쉬고 있어.]

[어라~~~사진은 왜 안 보내 주시는지? 규칙 위반인거 알아요 자기?]

스나는 비식비식 웃으며 핸드폰을 두드렸다. 오늘 따라 닝의 끼부림이 하늘을 찌른다. 뭐, 나야 좋지만.

[나 벗고있는데.]
[보고싶어?]

답장은 빨랐다. 스나는 제 이마를 짚었다. 여우야 여우...

[사진말고]
[직접 보고 싶은데.]
[오늘 우리 집으로 와.]


4. 같이 살자, 그냥.

스나는 제 옆에 누운 연인의 머리칼을 만지작거렸다. 결 좋은 머리카락이 손가락 사이사이로 스쳐지나갔다.
나른한 얼굴로 눈을 깜빡이던 닝은 스나의 쪽으로 돌아 누웠다. 곧 그가 제 허리를 감싸며 꼭 끌어안았다. 맞닿은 살결에 온기가 가득찼다.

"...결혼."
"으응?..."
"할까..."

닝의 목선을 따라 짧게 입을 맞추던 스나가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눈가에도 쪽쪽 입을 맞추며 스나는 다시 한번 말했다.
결혼해줘. 이번엔 제대로 들었는지 닝의 눈이 커졌다. 생긋 웃은 스나가 닝의 허리를 잡아 제 위에 올려눕혔다. 스나의 위에 엎드려 누운 채 그의 가슴께를 손바닥으로 짚은 닝이 두 눈을 깜빡였다.

"린타로, 방금...?"
"응."

같이 살자, 우리. 스나의 손은 여전히 닝의 머리카락을 쓸어넘기고 있었다. 벌써 세번째, 담백하게 청혼을 한 스나는 제 연인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며 장난스레 말했다.

"불안해서 못 살겠어."
"뭐가..."
"옆에 두고 내가 지켜줘야지."

닝이 황당하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너 이제 그 일에 전처럼 안 예민한거 알거든요? 닝은 밉지않게 스나를 흘기면서도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함께한지 벌써 10년. 스나는 여전히 제 옆에서 싱그럽게 웃고있는 닝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원래대로였다면 내 곁을 떠나야했을 네가 아직도 내 옆을 채워주고 있다. 충분히 기적이었다. 나는 아마 평생 네가 언제 떠날지 모른다는 불안함을 안고 살아갈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왕 기적이 일어났으니 조금만 더 욕심을 내고 싶었다.
너와 함께 잠을자고, 밥을 먹고. 울고 웃으면서 그렇게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고 싶었다.
단지 그 뿐이었다.

"대답 좀 해줘."
"... ..."
"응?"

닝은 대답대신 스나에게 입을 맞췄다. 스나는 푸스스 웃으며 그녀의 입술을 베어물었다. 대답은 충분했다.
다시 몸을 뒤집은 스나가 닝의 양 옆으로 손을 짚었다. 그의 눈빛에서 의중을 읽은 닝이 옅게 웃으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우리, 오늘... 영화보러 가기로..."
"응. 괜찮아."
"...못 살아..."





<재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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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와.............. 하앙 센세..........ㅠㅠㅠㅠㅠㅠ 스나랑 닝 너무 안스러웠는데 다행히 마지막에는 둘다 살아남아서 너무 다행이에요............ 결국 결혼까지 무사히 하고.......
4년 전
독자2
센세 너무 좋아요.....진짜 몇 번을 살아난 게 서로를 위한 거라는 것도 좋고...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보고있었는데 결국 알콩달콩한 것도 좋아요...
4년 전
독자3
(내용 없이 첨부한 댓글)
4년 전
독자4
센세...하앙...둘이 결혼해서 천년만년 행복해라...
4년 전
독자5
༼;´༎ຶ۝༎ຶ༽
4년 전
독자6
아 눙물범벅되서 가요 센세..ㅠㅜㅜㅠㅜㅠ흐엉
4년 전
독자7
센세 너무 좋아요ㅠㅠㅠㅠㅠ
4년 전
독자8
허억허억 스나린.........❤❤
4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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