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주의
* 약간의 트리거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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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포레스트
“짐은 다 챙겼고?”
“네 배정 받은 날짜보다 일찍 내려와서 적응 좀 하려고요”
“그래 그게 나을 것 같다. 거기는 어때?”
“생각보다 괜찮아요. 주변에 논 밖에 없어요 그냥 조용해요”
“거기서 머리 좀 식히고 올라 와. 내가 적절한 타이밍에 맞춰서 병원장님한테 이야기 해볼게”
“....”
“그럼 잘 지내”
“감사합니다. 과장님”
대충 쌓아 놓은 이삿짐 박스를 옆으로 치우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듯이 누웠다.
손을 들어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지는 그 감촉에 긴 한숨을 내쉬었다.
“테이블 데스,,,”
- 선생님! 환자 혈압이 떨어집니다!
- 피 더 짜주세요!!
- DC기 준비
- 200줄 갑니다! 다들 비켜요!! 하나 둘 셋!
-선생님 이제 그만...
- 제발.. 제발!!!
삐 --------
“12시 56분... 환자... 사망하셨습니다”
어느 곳보다 차갑고 삭막한 수술대 위에서 환자는 허무하게 내 손에서 떠났다.
환자의 보호자들은 의료 소송으로 신고 할 거라며 나의 어깨를 쥐고 흔들었다.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말은 “최선을 다했지만” 뿐이었다. 사실이다. 나는 최선을 다해 환자를 살리기 위해 노력 했다. 하지만 살리진 못 했다.
그 날 이후 난 이명에 시달렸고 손이 이유 없이 덜덜 떨리는 바람에 수술실은 들어가지도 못했다. 신경과 약을 먹어가며 다시 일상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의사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포기했던 잠과 좋아하는 이들과의 추억, 내 청춘. 아깝지 않았다. 그 만큼의 가치 있는 일이고 또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었기에 그 누군가가 내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죽음은 겪으면 겪을수록 익숙해지진 않았다. 그냥 무뎌질 뿐이었다. 내 사수 선배가 그랬다. 환자에게 너무 많은 정을 주지 말라고,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의 난 코웃음을 쳤다. 무정한 사람 같으니 라고 어떻게 내 담당 환자에게 정을 안 줘? 하지만 일 년, 삼 년 해가 넘어갈수록 그 선배의 말이 맞았다. 어줍잖은 정은 독약과 같았다. 나는 모르는 새에 독을 계속 마시고 있었고 그것이 켜켜이 쌓여 나를 잡아먹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나마 시골 병원 유배가 나았는지도 모르지
수술을 못 하는 외과 의사라...”
소리 없이 서서히 지는 해를 바라보며 꼭 나와 같다고 생각했다.
-
“안녕하세요 시라토리자와 병원에서 파견근무 온 GS 닝입니다”
“저희는 보시다싶이 보건소 같은 느낌이에요. 다양한 연령층이 온다기 보단 어르신 분들이 주로 오세요. 퇴근은 주로 6시쯤 하고 주말 근무는 토요일만 돌아가면서 합니다. 이번 주는 일찍 퇴근하시면서 적응하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첫 출근은 그럭저럭 무난했다. 전에 일했던 병원보다 보는 환자도 적고, 다들 친절했다.
하지만 조기 퇴근은 나에게 너무 낯설었다. 조용한 핸드폰, 자유 시간, 여유 항상 갈망했던 것들이지만 막상 주어지니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니 사용하는 방법을 몰랐다고 하는 것이 맞았다.
나는 전화기를 들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 후 귀에 대면서 집으로 걸어갔다.
“왜”
“시라부, 넌 언제쯤 내 전화를 예쁘게 받을래?”
“뭔데”
“너 병원이야?”
“아니 오늘 쉬는 날”
“아 뭐야 근데 왜 바쁜 척 해”
“본가 왔어”
“아.. 그냥 전화하고 싶은데 할 사람이 없어서 했어”
“....”
“너 지금 욕하려고 했지? 넌 항상 똑같냐 재수없어”
“...괜찮냐”
“....”
“안 괜찮은 것 같아 너”
“티 많이 나?”
“응”
“그래도 걱정해주는 사람 동기 밖에 없네, 그나마도 내가 먼저 연락한거지만”
“선뜻 못 했어”
“알아... 아.. 뭐야 주책 맞게 눈물이 나냐”
“어딘데”
“밖. 나 유배 왔잖아 손이 안 나으면 아예 치울 생각인가 봐. 그래도 6시 퇴근이래. 근데 웃긴 거는 할 수 있는 게 없어 이런 시간이 주어지지 않아서 뭘 해야 하는지 까먹었어. 그래서 너한테 전화건거야.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
“야 나 전화 들어온다. 끊어라!”
“어 건강 챙기면서 일해”
“너나 챙겨”
사실 전화는 오지 않았다. 갑자기 초라해 보이는 내 모습이 너무 허무해서 눈물이 났다. 전화를 급히 끊은 후 그 자리에 앉아 펑펑 울었다. 주변은 온통 논 이라 소리 내어 울어도 아무도 모를 것 같았다.
그 조용한 시골엔 나의 울음소리와 벼가 바람에 스치는 소리만 들렸다.
소리 내어 울어보니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과 함께 민망함도 같이 올라왔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펴보니 다행히 아무도 없는 것 같아 빨리 집으로 돌아가려고 쭈그렸던 다리를 폈다. 조금 찌릿한 다리를 두어번 통통 치고 나서 허리를 들었다.
“어?”
어떤 젊은 남자가 벼 사이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동그랗지만 선이 날카로운 처음 보는 내 또래 사람.
그게 내가 기억하는 그의 첫 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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