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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갑작스레 담임 선생님께서 교무실로 나와 내 짝을 부르더니 하는 소리가…
“쿠니미, 네가 닝 멘토 좀 해주라. 얘가 다 괜찮은데 수학 성적이 좀 안 나와서”
아니, 선생님. 제 의사는 왜 안 여쭤보시는거죠...
“아니 아니, 선생님! 갑자기 무슨 말씀이세요?”
선생님의 돌발 발언에 당황해 어떤 연유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물어봤다.
“기말고사 끝나면 곧 2학년이잖냐. 닝 대학 진학이 목표라며. 쿠니미는 수학 성적도 잘 나오는 편이고 짝이니까 좋은 멘토가 될 수 있을 거다.”
유쾌하게 웃으며 우리들의 어깨를 두드리는 선생님께 대놓고 싫다고 말할 수가 없어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싫다고 하기엔 대학 진학을 하고 싶은 것도 사실이고 다른 과목에 비해 내 수학 성적이 처참한 것도 사실이었다.
“기말고사 때까지 서로 공부 도와주면서 열심히 멘토링 해라~ 성적 잘 나오면 선생님이 맛있는 거 사줄 수도 있고. 아 곧 다음 수업 시작하겠네. 얼른 교실로 가”
그렇게 교무실에서 쫓겨난 우리 둘. 어색하게 웃으며 그를 쳐다보았다.
“아, 그... 쿠니미군, 굳이 안 해줘도 되니까... 바쁘면 내가 선생님께 대충 둘러댈게. 곤란한 부탁 맡게 돼서 미안”
이런 귀찮은 일을 떠맡은 걸 좋아할 녀석이 있을까. 특히나 그는 반에서 생활하는 것만 봐도 일을 나서서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선생님의 오지랖에 괜히 나만 곤란해졌다.
“괜찮아. 종 치겠다.”
“응?”
그는 말을 끝내고 교실로 갔다. 나는 곧장 그를 따라 걸어갔다. 뭐가 괜찮다는 거지. 미안하다는 내 대답에 괜찮다는 건가. 아님 나랑 멘토링 하는 게 괜찮다는 건가. 다시 물어볼 타이밍을 잡지 못해 그냥 조용히 교실로 돌아갔다. 내 옆자리인 쿠니미군과 함께 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다시 물어보려고 했을 땐 그 다음 수업인 문학 선생님이 들어온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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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쨩- 오늘 뭐해? 같이 시내 갈래?”
같은 반 친구가 하교하려고 짐을 싸던 나에게 다가와 물었다. 음... 오늘은 바로 집 가서 쉬려고 했는데. 부 활동을 하지 않은 귀가부인 나는 잠시 고민을 했다.
“음...”
거절을 하려고 한 순간,
“얘 나랑 약속있어.”
옆자리 쿠니미 군이 나를 보며 말을 건넸다. 나랑? 언제? 우리가 도대체 언제 약속을 잡았는지 골똘히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기억은 없었지만, 여기서 ‘아닌데?’라고 말하기엔, 반 친구와 놀러가는 것이 조금 … 귀찮았다. 그리고 머쓱할 그를 위해서도.
“아? 아 맞아. 내가 잊고 있었네. 미안, 다음에 놀자”
내 말을 듣던 알겠다며 친구는 자리를 떠났고, 그녀가 안 보일 때쯤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저기, 우리가 언제 약속을 잡았던가?”
“수학 멘토링. 그거 언제 어떻게 할지 안 정할 거야?”
아 난 또. 하루종일 그 일에 대한 언급이 없길래 거절한 줄 알았지. 하지만 본심은 속으로 삼키고 친절하게 웃으며 그에게 대답했다.
“아 난 귀가부라 언제든지 괜찮아. 근데 쿠니미군은 부 활동 하지 않아?”
“우린 일주일에 하루씩 오프날 있어. 그리고 올해 대회는 다 끝나서 여유도 있고.”
“아하 그렇구나”
그가 배구부 활동을 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시간적 여유가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나보다. 그렇게 그와 어떤 요일마다 만나고 어떤 식으로 공부를 할지 정하고 집으로 갈 수 있었다. 귀찮은 일은 싫어하는 거 같아서 거절할 줄 알았는데. 선생님이 시켜서 어쩔 수 없이 하는 건가? 의외인 그의 모습을 다시 떠올려봤다. 생각보다 착한 거 같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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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툭-
‘헉!’ 수학 시간에 나도 모르게 졸고 있었나보다. 내 책상을 툭툭 치는 소리에 놀라 화들짝 고개를 들어 확인했다. 다행히도 선생님이 아니라 옆자리인 그가 깨워준 거 같다.
‘고마워’
수업 중이었기에 입모양으로 그에게 조심스레 감사인사를 전했다. 그는 그런 나를 쳐다보더니 스윽 다시 칠판을 쳐다보았다. 나 또한 다시 정신 차리고 수업에 집중했다.
쉬는 시간이 되어, 지친 나의 몸을 위해 가볍게 기지개를 폈다. 옆을 보니 그도 졸렸는지 엎드려 자려고 하는 거 같아 조용히 자리에 일어나 반을 나섰다.
‘음, 뭐 좋아하려나?’
무료로 나를 위해 봉사해주는 그를 위해 작은 선물을 주려고 매점으로 왔다. 수업시간에 매번 챙겨주는 게 고맙기도 하고. 여러 과자들을 바라보다가 그에게 줄 솔티캬라멜과 내가 먹을 초콜릿을 사서 교실로 갔다. 앗 조금 오바인가? 근데 이미 샀는걸.
아직도 자네. 깨우기엔 그렇게 친하지도 않고 조금 무례한 행동이라고 생각이 들어 그의 책상 위에 캬라멜을 살며시 올려뒀다. 내 자리에 앉아 멍 때리며 초콜릿을 먹고 있었을까 옆에서 부스스 일어나는 소리가 들려서 쳐다보았다.
“네가 준 거야?”
“응. 고맙다고 했잖아. 보답.”
“아”
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는 캬라멜을 하나 까서 먹기 시작했다. 평소엔 무표정이라 딱딱해보였는데 기분 좋은 단맛이 입에 돌아 행복했는지 슬며시 웃는 그는 꽤 온화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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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수학선생님이 된 그는 의외로 친절했다. 수업시간에 졸면 깨워주기도 하고, 모르는 문제를 혼자 째려보고 있으면 옆에서 도와주기도 했다. 둘이서 방과 후에 교실에 남아 공부하는 날엔 간식을 나눠먹기도 하고 중간 중간 사담을 하기도 했다. 쉬는 시간엔 옆자리니까 이야기도 꽤 나누고.
“으… 이 문제 너무 어려운데”
“위에 문제랑 같은 원리로 풀면 돼. 천천히 해봐.”
오늘도 여느 때와 같이 방과 후에 교실에 남아 공부를 하고 있었다. 내가 수학문제를 풀고 있으면 쿠니미는 옆에서 나를 봐주거나 다른 과목을 공부했다.(조금 친해진 뒤론 쿠니미라 부르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기말고사가 얼마 안 남았네. 기말고사 끝나면 앞으로는 같이 공부 안 하는 건가? 그는 내 생각이 딴 길로 샌 걸 알았는지 내 책을 두어번 손가락으로 두들겼다.
“집중해”
“아, 응 미안”
그래, 일단 내 수학 성적부터 걱정하자…
“오늘은 여기까지.”
“으- 수고 많았어 쿠니미”
한참을 공부하던 우리는 쿠니미의 말로 끝낼 수 있었다. 나는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 일어나 책을 가방에 챙겼다. 늘 그렇듯 함께 교실을 정리하며 불을 끄고 나왔다.
우린 공부하는 날엔 늘 같이 하교했다. 쿠니미와 집방향이 같아서 다행이었다. 겨울이라 해가 빨리 지기도 하고 혼자 어두운 골목을 걷고 싶진 않았기에 같이 가자고 했다. 쿠니미는 나를 귀찮게 여길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그때 말이야,”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졌기에 우리는 꽤 빠른 속도로 친해질 수 있었다. 서로의 일상을 가볍게 공유할 수 있는 정도로. 같이 하교할 때는 주로 내가 재잘 재잘 떠들면 쿠니미는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거나 짧게 대답을 해주었다. 그가 말이 적은 편인 건 알고 있었지만 나만 너무 말한다고 느껴질 때면 그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했고, 그는 대답을 곧잘 해주었다.
끼익-
“조심해”
와 깜짝이야. 속으로 비속어를 삼키며 벌렁거리는 심장으로 방금 지나간 오토바이를 노려본다. 내 이야기에 심취하다보니 옆에 오토바이가 지나가는지도 몰랐다. 급하게 내 손목을 붙잡아준 쿠니미 덕에 다치지 않을 수 있었다. 어쩌다보니 그에게 굉장히 밀착되어 있는 상태가 되었지만, 일단 놀란 마음을 다스리는 게 먼저였다.
“아, 고마워”
마음을 조금 진정시킨 뒤 그에게 짧은 감사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다시 걸어가려고 했는데, 어째서인지 그는 붙잡은 내 손목을 놔주지 않았다. 그렇게 그가 손으로 내 한 쪽 팔을 붙잡은 채로 우린 다시 걸어갔다. 팔짱도 아니고 뭣도 아닌 이상한 상태로...
“그럼 안녕! 오늘도 고마웠어.”
그와 우리집 방향이 갈라지는 골목 전봇대 아래에서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자연스럽게 내 손을 놔준 그는 손을 흔들며 인사하던 나를 바라보더니
“잘 들어가”
인사를 하고 자신의 집 방향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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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쨩- 오늘 배구부 경기 보러 가지 않을래?”
“응 갑자기 웬 배구부?”
“연습 시합이 있대!”
“아 그래?”
“사실... 오이카와 선배 보러 가고 싶은데, 같이 가줄 사람이 너뿐이란 말이야”
그럼 그렇지. 배구에 관심없던 친구가 갑자기 경기를 보러 가자고 하는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오이카와 토오루. 같은 학교 3학년 선배로 이케맨에 운동부, 상냥한 성격으로 많은 여학생들이 그를 따른다. 아 따른다기보단 쫓아다닌다? 덕질을 한다? 무엇이 알맞은 표현인지 모르겠으나 무튼 제 친구가 그 짓에 동참하는 것은 알겠다.
“음...”
“제발!! 닝쨩 오늘 할 일 없는 것도 다 알거든!”
엑, 오늘은 쿠니미가 부 활동 있는 날이라 멘토링도 없고 집 가서 쉬려고 했는데, 내 계획이 다 실패로 돌아갔다. 그리고 저번에 시내 가자고 했을 때 이미 한 번 거절한 것이 떠올랐기에 양심에 찔려 차마 이번에도 거절할 수 없었다.
“알겠어. 방과 후 몇 시인데?”
같이 가주겠다는 나의 말에 친구는 신나서 몇 시에 어디 체욱관으로 오라고 알려주고 자리를 떠났다. 아, 그럼 쿠니미 배구하는 거 볼 수 있겠다.
그와 꽤 가까워졌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역시 그가 배구를 하는 모습은 잘 상상이 안 됐다. 뭐랄까, 내 안의 쿠니미 이미지는 도서부가 어울린달까. 조용한 편인 거 같고, 활기차게 움직이는 것도 그닥 안 좋아하는 거 같아 보였는데. 갑자기 그가 배구하는 모습이 궁금해져서 귀찮기만 했던 방과 후 약속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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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여긴가? 체육 수업을 들을 때 오는 체육관 빼고 운동부 사람들이 쓰는 체육관은 좀처럼 올 일이 잘 없기에 찾느라 좀 애먹었다. 아마 문 앞에 많은 여학생들이 몰려 있는 걸 보면 여기가 배구부 체육관이 맞다고 유추할 수 있었다. 인기 대단하네.
입구에서 나에게 같이 보자고 권유했던 친구를 찾아 같이 체육관 위 관람석에 앉아 구경했다. 아직 시합이 시작하기 전이라 다들 몸을 풀고 있는 중이었다. 갑자기 꺄악-하며 여학생들의 환호소리가 나서 보면 그 가운데엔 오이카와 선배가 손을 흔들며 등장하고 있었다. 그 옆에 있던 부주장으로 보이던 3학년 선배가 오이카와 선배의 등짝을 때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배구부의 분위기는 화목해보였다. 와- 쿠니미는 저런 사람들이랑 같이 배구를 하는 거구나. 몸을 푸는 배구부원들 사이로 쿠니미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의 옆에는 늘 같이 다니는 락교군.. 이 아니라 킨다이치군이 있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헤어스타일이 특이해서 속으로 계속 락교군이라고 부르다보니 습관이 되었다. 반에서 쿠니미를 봤을 때 키가 꽤 큰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배구부에 있으니 평균처럼 보였다. 배구부는 다들 키가 크구나. 아,
자기를 쳐다보는 시선을 느꼈는지 쿠니미가 내가 앉아있는 쪽을 바라봤다. 어색하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자 그는 내 인사에 대답을 하듯 눈으로 응시하다가 자신을 부르는 부원에 소리에 고개를 돌려 그쪽으로 갔다.
“닝은 쿠니미군이랑 꽤 친했지?”
“응, 뭐 나름?”
“의외네- 쿠니미군 뭔가 친해지기 어려운 타입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가? 쿠니미 착하고 친절하던데”
“오~, 혹시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
“응? ... 아니! 전혀!”
갑자기 친구는 혼자 히죽히죽 웃으며 그와 나를 번갈아보았다. 이런 오해를 받을 줄은 예상하지 못해서 너무 당황스러웠다. 쿠니미랑 친해지긴 했지만, 우리가 서로 이성적으로 바라보는 그런 관계는 아니었던 거 같은데...
“아 아니야~? 아님 말고!”
깐죽거리는 친구의 옆구리를 살짝 찌르고 다시 경기장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3학년은 곧 졸업 아니야? 부 활동을 하네?”
쿠니미에게 올해 경기 일정도 다 끝났다고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럼 3학년들은 부 활동을 안 할 시기이지 않나. 작은 의문이 생겨 옆에 앉아 있던 친구에게 물어봤다.
“아 보통은 안 하지. 근데 가끔 후배들 연습 도와주러 온대.”
“그렇구나.”
“그래서 오이카와 선배 오는 날엔 이렇게 구경꾼이 많은 거고.”
그제야 이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앗, 경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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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니미는 생각보다 움직였다. 아 이런 표현 실례인가? 아무튼, 뛰어나기도, 점프를 하기도, 공을 때리거나 받기도 하는 그의 모습은 꽤 신선했다. 땀을 흘리거나 드링크를 마시는 모습도. 경기 초반엔 설렁 설렁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그의 모습이 더욱 잘 보였다. 쟤도 역시 운동부이긴 했네. 반에선 늘 두꺼운 져지를 입고 있으니 운동부라는 게 체감이 잘 안 됐다. 얼굴만 보면 여리여리한 느낌이 강하니까.
삐익-
경기를 끝내는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은 하나 둘씩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경기가 끝나자 제 친구는 나를 버리고 오이카와 선배에게 뛰어가더라. 그곳은 마치 아비규환. 사람들이 한가득 모여 있는 모습이 오이카와 선배가 마치 슈퍼스타처럼 느껴졌다.
흐음- 내 목적은 어디까지나 친구랑 같이 경기를 보는 거였고 경기도 끝났으니 이제 집에 가볼까. 나 또한 자리에 일어나 체육관을 나서려고 했을까 누군가가 입구에서 나를 막아섰다. 누군지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들었을 때, 익숙한 얼굴이 있어 반가웠다.
“아 쿠니미!”
“경기 보러 왔으면 인사정돈 하고 가지 그래.”
“다들 바빠 보여서 그냥 가려고 했지! 경기 잘 봤어 진짜 의외더라.”
“의외?”
“아, 응. 쿠니미의 새로운 모습을 봤달까. 배구하는 모습 멋있었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그에게 칭찬을 하자 그는 부끄러운 듯 손으로 입을 가리고 다른 곳을 쳐다봤다가 다시 나를 보았다.
“그런가?”
“나는 늘 공부하는 모습밖에 못 봤으니까.”
“근데 여긴 어쩐 일로 왔어?”
“아, 친구가 배구부 연습경기 구경하자고 해서 붙잡혀 왔어”
“친구?”
그의 말에 손가락으로 저 아비규환 틈에 있는 친구를 가리키자 내 손가락을 따라 그곳을 보고 알만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나를 보았다.
“숙제는 다 했고?”
“윽, 집가서 하려고 했어...”
어제 공부해야 하는 양을 도무지 따라잡을 수 없어서 그는 남은 부분을 나에게 숙제로 해오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완전 까먹고 있었다. 집 가서 부랴부랴 해야 할 내 모습에 벌써부터 눈물이 난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배구부 경기 보러 오는 게 아니었는데.
“흠- 저녁 아직 안 먹었지?”
“어? 응 아직 안 먹었어.”
“그럼 잠시만 기다려. 곧 있으면 끝나니까 같이 밥 먹고 공부하자.”
“응?”
“괜찮지?”
“어, 응!”
갑자기 잡힌 그와의 약속에 당황해서 벙찌고 있었을까, 내 표정을 본 쿠니미는
“기말고사 얼마 안 남았잖아. 빨리 끝내야지.”
라고 말하며 자리를 떠났다. 음, 저 말이 맞지. 기말고사 수학 성적 올리는 게 목표였으니까. 괜히 혼자 설레발 친 거 같아서 머쓱했다. 친구는 어느 틈엔가 나에게 문자를 보내놓고 자기 혼자 쏠랑 가버렸다. 내가 쿠니미랑 대화하는 모습을 봤던 걸까. [닝쨩의 연애전선을 위해 나는 이만 퇴장할게!]라고 문자가 와있었다. 그런 게 아니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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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관 입구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을까. 다른 배구부원들이 잠깐씩 문 밖으로 나와 나를 쓱 보고 다시 안에 들어가 자기들끼리 쑥덕거리더라. 동물원 원숭이가 된 기분이랄까. 날이 꽤 추워서 쿠니미가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였을까. 누군가 옆으로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져 돌아보니 그가 오고 있었다. 경기가 끝나고 샤워를 한 것인지 그와 어울리는 허브향이 확 풍겨져왔다. 오, 향기 좋다.
“많이 기다렸어?”
“아니 그렇게 많이 안 기다렸어! 근데 자꾸 사람들이 쳐다봐서...”
기다린 시간은 얼마 안 되지만 배구부원들의 시선은 부담스러웠기에 그 사실을 살짝 목소리를 낮춰 그에게만 들리게 알려주었다. 그는 뒤돌아 쳐다보던 선배들과 동급생들을 살짝 째려보고선 나를 이끌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미안. 다른 곳에서 기다리라고 할 걸 그랬네.”
“괜찮아- 오늘 경기 본 값이라고 생각하지 뭐. 근데 배구부 사람들이랑 같이 안 가도 돼?”
“응 괜찮아”
그렇게 우린 평소와 같이 둘이 하교를 했지만, 오늘은 발걸음이 닿는 길이 달랐다. 주택가로 가는 길이 아니라 음식점과 카페가 있는 상가 쪽으로 갔다. 지루한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밖에서 공부를 해서 그런건지 아니면 아까 한 친구의 말 때문인지 괜히 그가 의식되기 시작했다. ‘이건 데이트인가?’라는 생각이 들며 왠지 모르게 기대를 하게 되었다. 마음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제멋대로 들떠버린다.
하지만, 나의 기대는 와장창 깨져버렸다. 들뜬 마음 때문인지 공부에 집중을 잘 못하고, 계속 같은 실수를 반복한 탓인지 쿠니미의 표정이 점점 안 좋아졌다. 생각해보면 쟤도 경기하고 온 거라 피곤할 텐데, 나 때문에 표정이 더욱 안 좋아지는 거 같았다.
“닝, 오늘은 날이 아닌 거 같네.”
“어.. 그러게 미안. 시간까지 써가면서 봐주는데”
내가 한껏 미안한 표정으로 말하니 그는 자신의 표정이 안 좋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어쩔 수 없다며 나를 다독여줬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는 걸로 하자.”
그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 같으면 저 말을 듣고 가방을 챙긴 뒤 집으로 가겠지만, 오늘은 밖으로 나왔는데 이대로 집에 가긴 아쉬워서(그리고 아직까지 마음이 들떠있었기에) 그를 쳐다보며 조금 놀다가 가자고 했다.
“우리 조금만 이야기하다가 가면 안 돼? 오랜만에 놀러 나온 거라 지금 집 가긴 아쉬워서”
그는 나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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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그와 한참이나 이야기하고 있었을까,
“어! 눈이다”
밖을 바라보니 눈이 내리기 시작하며 나뭇잎 위로 소복소복 쌓이기 시작했다. 이게 올해 첫눈인가?
“쿠니미는 눈 좋아해?”
“뭐 그럭저럭”
“그럭저럭이라니, 애매한 대답이네.”
“너는?”
“나? 난 좋아해. 예쁘잖아”
“그런가.”
“겨울의 아름다움을 모른다니. 쿠니미군 안타깝네.”
쿠니미는 내가 오버하며 대답하는 모습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피식 웃었다. 순간 웃는 모습이 꽤 잘생겨보여서, 괜히 밖으로 나와 공부하는 게 들떠서, 첫눈이 내린다는 사실이 설레서 여러 가지 일들로 내 마음은 순식간에 달아올랐고 그 뜨거움이 얼굴까지 전달되어 내 볼은 순식간에 붉어졌다.
“아하하- 가게 안이 좀 덥네. 히터를 너무 세게 튼 거 아닌가?”
어색하게 웃으며 얼굴을 식히려 손 부채질하는 내 모습을 쿠니미는 의문스럽게 바라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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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늘도 고마웠어! 잘 들어가”
오늘도 어김없이 갈림길에서 손을 흔들며 인사하며 그와 헤어졌다. 집으로 도착해서 씻고 침대에 누워 그동안의 일을 다시금 떠올렸다. 여태까지 핑크빛 기류랄 것도 딱히 없었지만, 친구의 말을 들으니 ‘남들 눈엔 다르게 보이나?‘싶어 혼자 계속해서 생각했다. 오늘 계속 뛰는 심장 때문에 고생을 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문득 달력을 보니, 그와 같이 공부한지도 거의 한 달이 되어갔다. 기말고사까지는 일주일이 남은 시점이었다. 가을이 끝나갈 무렵에 시작했는데 순식간에 겨울이 되고 오늘은 눈이 내렸다. ‘시간 참 빠르다...’라고 생각하며 그와 공부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떠올리며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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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기말고사를 대비하는 일주일간 아무 일도 없었다. 평소대로 남아서 공부를 하고, 쉬는 시간엔 모르는 걸 물어보고, 수업시간엔 서로를 깨워주고. 정신없이 기말고사를 준비하다보니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다. 음, 뭔가 허무하네.
그렇게 기말고사가 끝나고 그 다음 주 월요일에 등교하니, 담임 선생님께서 우리 둘을 교무실로 불렀다.
“이야, 이번에 닝 수학 성적이 엄청 올랐다던데?”
“네?”
“아, 수학 담당의 —선생님이 나한테 와서 알려줬어. 수업시간에 열심히 듣는다고 칭찬도 하셨다고.”
“아, 감사합니다.”
“아니 오히려 감사 인사는 나랑 닝이 쿠니미한테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아, 아닙니다.”
“자 이거, 성적 잘 나오면 맛있는 거 사준다고 했잖냐. 맛있는 건 아니지만 둘이 기특해서 주는 선물이다. 잘 보고 와라”
선생님께선 우리에게 영화 티켓 2장을 건네주셨다. 성적도 올리고 선물도 받고 굉장히 나이스한 상황이라 기분이 좋아져 웃음이 싱글벙글 나왔다.
“감사합니다!”
나는 손을 뻗어 티켓을 받고 선생님께 인사를 한 뒤 쿠니미와 같이 교무실에서 나왔다.
“자 여기.”
티켓 2장 중 1장을 쿠니미에게 건넸다. 같이 보러 가자고 제안하기엔 거절당했을 때의 민망함과 슬픔을 겪고 싶진 않았다. 쿠니미는 내가 주는 티켓을 받지 않고 빤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안 가져 갈 거야?”
“같이 가”
“응?”
“영화 같이 보러 가자고. 선생님도 어차피 둘이서 보라고 주신 거잖아”
“아, 응 그래! 그러자!”
예상치 못한 그의 제안으로 기분이 한껏 좋아졌다. 그와 함께 교실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매우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언제 보러 갈래?”
“이번 주 금요일에 시간 돼?”
“응 그때 보러 갈까?”
“그래”
이번 주 금요일이면... 크리스마스 이브잖아? 기말고사가 끝나고 바로 크리스마스 시즌인 건 알았지만, 그와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될 줄 몰랐다. 올해도 역시 케빈과 함께 보내야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함께 보낼 사람이 생겨(그것도 이성친구) 설렜다. 쿠니미가 의식하고 그 날짜를 고른건지, 단순히 그날밖에 시간이 안 나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기쁜 마음은 감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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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성적표 나왔다. 출석번호 순서대로 부를 테니까 나와서 받아가라.”
목요일 종례시간. 담임 선생님께선 성적표를 배부해주고 계셨다. 가채점은 했지만, 그래도 아직 내 성적표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었기에 떨렸다.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을까.
“왜 한숨 쉬어”
“아, 그냥 조금 긴장돼서”
“열심히 했잖아. 잘 나왔을 거야.”
덤덤하게 위로해주는 그의 말에 위안을 얻었다. 그래, 열심히 했으니까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만족하자. 마음을 진정시키고 내 차례가 와 성적표를 받았을까
헐 대박.
다른 과목 성적은 원래부터 잘 나오는 편이어서 신경 안 썼지만, 중학교시절부터 수학성적은 걷잡을 수 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의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이를 알아챈 담임선생님이 쿠니미를 붙여준 거기도 하고. 근데 이번 수학 성적은 역대급으로 잘 나왔다.
마음 같아선 당장 쿠니미를 껴안고 운동장 50바퀴라고 돌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꾹 참았다. 입꼬리가 주체할 수 없이 스물스물 올라갔다. 쿠니미는 나의 그러한 표정을 보더니 사뭇 안심하는 듯한 얼굴이 되었다.
“쿠니미 이거봐! 내 수학 성적! 엄청 올랐어!!”
그의 옆자리에 앉아 성적표를 보여주며 자랑하자, 그는 살며시 웃으며
“잘했네.”
라며 칭찬해주고 내 머리를 쓰다듬듯 두들겼다. 갑작스런 스킨십에 조금 당황해서 빨개진 얼굴로 그를 쳐다보자 그는 아차 싶은 얼굴로 손을 떼고 고개를 돌려 창문 밖을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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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꾸민 건 아니겠지? 쿠니미와 영화를 보기로 한 날이 다가왔다. 아침 일찍 일어나 옷장을 샅샅이 뒤지며 어떤 옷을 입을지 한참이나 고르고, 오랜만에 화장도 살짝 해봤다. 신경쓴 티가 나면 그건 그거대로 민망하기에 적당히, 예쁘게, 과하지 않게 하느라 아침부터 기가 빠졌다. 약속시간이 다가와 코트를 걸치고 집을 나섰다.
영화관에 도착하자 쿠니미가 입구에서 서서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쿠니미를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그에게 다가가려는 주변 여자들도 볼 수 있었다. 키도 크고 청순해서 그런지 그의 인기가 많음을 깨달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쿠니미!”
내가 웃으며 그에게 다가가자 그를 쳐다보던 여자들은 아쉽다는 표정을 하더니 더 이상 이쪽을 쳐다보지 않았다. 괜히 그를 독점했다는 기분이 들어 뿌듯해진 기분으로 주변을 돌아봤다.
“일찍 왔네.”
“그러는 너는, 나보다 더 일찍 왔네.”
“뭐 어쩌다보니.”
“팝콘이나 음료수 먹을래?”
내 물음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함께 매점 쪽으로 가 캬라멜 팝콘 1개와 음료 2개를 주문하여 받은 뒤 영화관으로 바로 입장하였다. 크리스마스라 그런지 연인이 굉장히 많았다. 우리가 볼 영화는 연말 기념으로 재개봉한 로맨스 영화였다.
“쿠니미 너는 이런 영화 좋아해?”
“딱히 가리진 않아”
“그렇구나.”
“조심-”
그에게 말을 걸며 걷다가 영화관 내부의 계단을 못 보고 넘어질 뻔했다. 그가 팔을 뻗어 내 몸을 받혀주었고 나는 그의 품에 안긴 꼴이 되었다.
“아 미안 미안. 앞에 못 보고 걷다가 그만”
“은근 부주의하네”
“아하하 그런가?”
그 자세가 민망하여 금방 벌떡 일어나 똑바로 걷기 시작했고, 우리의 자리를 찾아 앉았다. 우리가 앉고 광고 몇 개 나오더니 곧바로 영화가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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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look for it, i’ve got a sneaky feeling you’ll find the “love actually is all around.]
‘조금만 주위를 둘러보면, 사랑은 실제로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영화 ‘Love actually’ 도입부 나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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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었다 그치?”
“응 그러게”
“나는 특히 그 부분이 좋았던 거 같아, 그 스케치북으로-”
탁-
“조심 좀 해.”
그를 바라보고 이야기하며 걷다가 옆에 지나가던 사람과 부딪힐 뻔했다. 쿠니미가 급하게 어깨를 잡아주어 부딪히지 않고 지나칠 수 있었다.
“아 미안. 오늘따라 왜 이러지. 고마워”
웃으며 그에게 감사인사를 건네자 그는 나를 바라보다가 나의 손을 덥석 잡았다.
“ㅇ,어?”
“위험하니까 잡고 다닐게. 괜찮지 닝아?”
“으응, 아, 괜찮아”
처음으로 내 이름 부른 거 같은데. 아닌가. 그렇게 그와 나는 손을 마주 잡았다. 추운 겨울 속 맞잡은 손을 통해 따듯한 그의 체온을 느낄 수 있었다. 살며시 올라간 그의 입꼬리를 나는 부끄러워 땅만 보고 있었기에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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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와서 저녁을 먹을 때 빼곤 계속 손을 잡고 걸었다. 아 내 손에 땀 많이 나진 않겠지? 이런 걱정이 한편으로 들기도 했다. 혹시 맞잡은 손을 통해 내 빨리 뛰는 맥박이 느껴질까 불안하기도 했다. 그래도 손을 잡았다는 사실이 너무 설레고 좋아서 떼어낼 수 없었다.
거리의 분위기는 추운 겨울임에도 너무나 따스했다. 거리 곳곳에 나오는 캐롤, 밝게 빛나는 형형색색의 조명들, 같이 길을 나란히 걸으며 행복해 보이는 연인들 그리고 사람들의 웃음소리 그 속에 우리도 있었다.
“쿠니미, 우리 저거 보러 가면 안 돼?”
한쪽 손으로 거리 중앙에 있는 트리를 가리켰다.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기 위해 거리 한 가운데 큰 트리가 있었고 굉장히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그 모습을 가까이 보고 싶어서 그에게 제안했다.
“그래 가자.”
그는 나와 잡은 손을 꽉 쥐며 앞으로 나아갔다. 인파가 많아 자칫하면 떨어질 수도 있었겠지만, 손을 잡고 있었기에 미아가 되는 일은 없었다. 가까이서 본 트리는 더욱 예뻤다. 크기도 생각보다 컸고.
나는 그의 손을 놓고 양 손으로 내 가방 속을 뒤지기 시작했다. 내가 손을 놓자 그는 당황한 듯 아쉬운 듯 나를 쳐다봤으나 내가 가방을 뒤지고 있으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뭐 찾아?”
“으음 잠시만”
‘아 찾았다.’ 사실은 수학 성적이 오른 것도 고마웠고 크리스마스이니 작은 선물 정돈 괜찮지 않을까 싶어 선물을 준비했다. 예쁘게 포장된 상자 속에 무릎 보호대를 넣어뒀다. 그에게 필요한 물건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가 배구 경기를 보러 갔을 때 대부분 무릎 보호대를 착용하고 있던 것이 떠올랐기에. 그리고 솔티 캬라멜를 좋아하는 그의 모습이 떠올라 그것 또한 넣어뒀다.
“선물!”
웃으며 그에게 선물을 건네자 그는 놀란 듯 눈이 살짝 커져있는 상태로 내 손에 들려있는 상자를 바라보았다.
“아, 그동안 너무 고마워서 선물 준비했어. 그리고 크리스마스잖아!”
“고마워, 나는 아무것도 준비 못 했는데.”
“괜찮아 내가 주고 싶어서 주는 거야.”
그는 선물 상자를 건네받고 한참이나 그것을 쳐다보다가 다시금 나의 손을 잡았다. 손을 잡고 다른 곳으로 떠나려는 그를 붙잡고,
“아, 잠깐! 우리 사진 한 장 찍고 가는 거 어때?”
“그래. 찍어”
아쉬운 나는 사진을 찍자고 제안했다. 자연스레 나의 사진을 일방적으로 찍어주려는 그를 제지하고 ‘아니 같이 찍자고’라고 말하며 그의 옆에 서 카메라를 켰다.
“이런 트리는 일 년에 한번밖에 못 보잖아. 기념해서 찍어야지.”
그렇게 우리는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서 웃으며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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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 쿠니미!”
어느덧 평소와 같이 서로의 길이 갈라지는 갈림길 앞에서 인사를 나누었다. 아쉽지만 이제 헤어져야 하기에 손을 놓으려고 했을까. 그가 힘을 주어 내 손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였다.
“닝아,”
여태까지 갈림길에서 한 번도 나를 붙잡은 적이 없는 그였기에 나는 당황스러워 그를 쳐다보았다. 시끌벅적한 거리에서 나와 둘만 있는 조용한 골목. 형형색색에 빛이 나던 거리와는 달리 전봇대 하나만 비추고 있는 골목. 방금까진 많은 인파속에 파묻혀서 잘 인식되지 못했지만, 그와 하루 종일 손을 잡고 거리를 걸었던 것이 이제야 실감이 났다.
“응? 쿠니미?”
손을 쳐다보던 내 시선은 어느새 쿠니미에게 가있었고 그와 눈이 마주치가 그는 나의 눈을 응시하며 말을 걸었다.
“좋아해.”
그 말을 끝으로 그는 나를 안았다. 순간 벙쪄서 그의 품속에서 멍 때렸다. 그러니까, 지금, 쿠니미가, 나한테, 고백한 게, 맞지? 한 5초동안 뇌가 정지되는 느낌이었다. 볼에 차가운 것이 닿는 느낌이 들자, 그제서야 정신이 들었다. ‘어- 눈이다.’
“그, 지금 고백한 거 맞지...?”
너무 눈치 없었나. 지금 이 상황이 안 믿겨서 그에게 되물었다.
“응.”
그에 담담한 대답에 나는 오히려 당황했다.
“에? 진짜? 나 안 믿겨!”
‘나도 좋아해!’라며 나는 호들갑 떨며 대답을 하고 그의 품에서 팔을 뻗어 그를 더욱 끌어안았다. 그는 그런 내 모습을 보더니 내 머리를 감싸 안고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는 그런 내 모습을 지켜보다가 눈이 내리는 것을 보고,
“눈 오네”
“그러게. 화이트 크리스마스네”
심장이 터질 거처럼 뛰는 게 느껴졌다. 이렇게 안고 있으면 내 심장박동이 느껴질까 걱정이 되어 살짝 품에 벗어나려 몸을 떼고 그를 쳐다보니 그와 눈이 마주쳤다.
쿠니미는 그대로 몸을 숙여 나에게 다가왔고, 나는 눈을 질끔 감아버렸다. 3초 정도 지나서 입술에 말캉한 것이 붙었다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내 첫 뽀뽀는 그렇게 고등학교 1학년 화이트 크리스마스 집 앞 골목 전봇대에서 이루어졌다.
“얼른 들어가. 밖에 오래 있으면 감기 걸려”
그는 그렇게 나를 집으로 돌려보내고, 평소와는 달리 그가 손을 흔들며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번 겨울은 따듯하게 보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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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지치도 않고 또 뇌절하러 왔습니다. 겨울! 하면 쿠니미가 제일 먼저 떠오르더라구요. 쿠니미가 두뇌5라는 점이나 n년후 직업을 봤을 때 수학을 잘 할 거라는 이미지가 생겨서 이렇게 적어보았습니다. 사실 겨울이 이렇게 갑자기 찾아올 줄 몰랐어서 천천히 쓰려고 했는데, 가을이 순삭됐더라...ㅋㅋㅋㅋ 겨울로 쿠니미 외 2명 더 생각 중입니다. 쿠니미의 겨울 中,下 빠른 시일내로 찾아오겠습니다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