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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운아이뻐♥ll조회 3634l 21
이 글은 13년 전 (2011/3/13) 게시물이에요

 

 

아시아경제 박건욱 기자]TV 속 인기 연예인들은 어떻게 해서 스타가 됐을까. 이들은 어떤 계기로 연예인을 꿈꿨으며 어떻게 연예계에 첫 발을 들여놓았을까. 톱스타들의 성공 스토리도 궁금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이제 막 발돋움하는 미래 '별'들의 첫걸음과 성장 과정도 대중들에겐 큰 관심이다. 아시아경제신문은 '스타 핫 데뷔일기' 코너를 마련, 예비 스타들의 따끈따끈한 데뷔일기를 연재한다. 지난 1일 첫 미니앨범을 발매한 4인조 걸 그룹 시크릿(Secret)이 포커즈에 이어 그 두 번째 주인공이다.<편집자 주>
시크릿멤버 전효성양의 일대기 | 인스티즈
#새벽신문 돌리던 소녀, 가수가 되다 

"이거 어떻게 해야 되죠? 뭐부터 시작하면 될까요?"

봄기운이 완연한 어느 일요일 오후, 기자와 만난 전효성은 생글생글 웃는 모습으로 '스타 핫 데뷔일기'에 큰 관심을 가졌다. 

'편하게 자기 소개부터 부탁드린다'는 말에 쑥스럽다는 듯이 웃으며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3녀 중에 제가 둘째예요. 언니하고 동생은 집에서 태어났는데 저만 유일하게 병원에서 태어났어요. 제가 태어나던 날, 아버지와 외할아버지가 하늘을 보고 있었는데 별똥별이 떨어졌대요. 그래서 별 성(星)자를 따서 이름이 효성이 됐죠.(웃음)" 
시크릿멤버 전효성양의 일대기 | 인스티즈
충북 청주에서 건축업을 하시던 아버지 밑에서 어머니, 언니, 효성, 동생 이렇게 다섯 식구가 화목하게 살았지만 집안 사정은 그렇게 풍족하지 않았다. 때문에 효성은 어린 나이임에도 무엇이라도 해서 부모님께 도움을 드리고 싶었단다. 

"전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신문배달을 시작했어요. 그때는 가족 모두 신문배달을 해서 그 일이 그렇게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죠. 새벽공기를 맞으면서 신문배달을 하니 너무 좋더라고요. 3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하니 키도 커지는 느낌도 들고 좋았어요.(웃음)"

하지만 초등학생의 몸으로 꼭두새벽부터 신문배달을 하기란 쉽지만은 않은 일. 

"겨울에는 너무 추워서 울면서도 신문배달을 멈추진 않았어요. 한번은 어떤 아주머니가 신문 배달하는 저를 보고 용돈을 주시더라고요. 한사코 거절했는데 주머니에 넣어주셨죠. 그러시더니 몇 살이냐고 물으시고 자기와 함께 살지 않겠냐는 거예요. 그때는 너무 겁이 나 어머니한테 말씀드렸는데 '그 동네에는 다신 가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이렇게 어렵게 모은 돈은 모두 미련 없이 부모님께 드렸다. 정작 자신은 한 달에 1만원이 조금 넘는 용돈으로 생활했다고. 하지만 효성은 그것을 당연하게 느꼈다. 

"당시 한 달에 1만 2000원 정도 용돈을 받았어요. 그 용돈을 모아 부모님께 선물 사드리고 준비물을 샀죠. 부족하진 않았냐고요? 에이, 초등학생이 한 달에 그 정도 용돈이면 충분했죠." 

"그때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싶은 생각이 컸어요. 특히 어릴 때부터 옆에서 부모님이 고생하시는 것을 보고 그런 마음을 먹었던 것 같아요.(웃음)"

'효성이가 나이는 어려도 굉장히 어른스러워요'라는 소속사 관계자의 말이 귓가에 계속 맴돌았다. 


어릴 때부터 춤추고 노래하기를 좋아했다던 효성은 초등학교 6학년 때 본격적으로 가수를 꿈꾸기 시작했다. 마냥 어린 시절 꿨던 불가능한 꿈이 아닌, 현실적인 꿈을 꾸게 된 것이다. 

"어릴 때부터 남들에게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보여주기를 좋아했어요. 초등학생 시절부터 친구들 생일 파티를 주도했죠.(웃음) 당시 큰 인기를 끌던 SES나 핑클, 디바 선배님들의 노래와 춤 연습했어요. 그렇게 지내다가 초등학교 6학년 때 가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졌죠. 그때부터 친구들과 함께 가수가 되기 위한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중학교에 진학한 효성은 그의 꿈을 위해 차근차근 경험을 쌓아나갔다. 

"중학교 때 댄스 동아리의 리더를 맡아 축제 때마다 공연을 열기도 했어요. 청주시에서 주관하는 공연도 많이 참가했고요. 당시에는 무작정 춤이 좋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어린 효성은 자신의 꿈을 당당하게 부모님께 말하지 못했다. 넉넉치 못한 형편에 가수라는 직업에 대해 부모님들의 반대가 심했기 때문. 

"중학교 때까지 부모님께 말 못하다가 오디션을 봐야 가수의 꿈을 이룰 수 있지 않을 까 싶어 결국 말씀을 드렸죠. 고등학교 1학년 때 서울로 오디션을 보러 갈 차비를 구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어요. 당시 중화요리집에서 서빙과 잡일을 했었죠. 부모님도 반대하시다가 이 모습을 보시고는 결국 허락하시더라고요.(웃음)"
시크릿멤버 전효성양의 일대기 | 인스티즈
효성이 홀로 서울에 상경한 것은 2005년 초 겨울이었다. 이곳저곳에 오디션을 보러 다니던 효성에게 드디어 처음으로 기회가 찾아온다. 당시 그룹 신화의 매니지먼트를 맡고 있던 회사의 1차 오디션에 합격한 것. 

하지만 이 행복감은 그리 오래 가진 못했다. 뒤이어 진행된 2차 오디션에서 곧바로 탈락의 쓴 맛을 보게 된 것. 

"서울 롯데월드에서 2차 오디션이 진행됐는데 관객들 호응이 없더라고요. 그때 요령을 많이 깨달았어요. 탈락하고 나서야 왜 떨어졌는지, 뭐가 부족했는지 연구를 하기 시작했죠.(웃음)"

기회는 다시 찾아오기 마련. 그해 5월 똑같은 매니지먼트 회사에서 전국투어 오디션을 개최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당시 효성은 '이번 기회는 놓칠 수 없다'는 굳은 각오로 오디션에 임했단다. 

"대전에서 전국투어 오디션을 진행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회다 싶어 청주에서 대전까지 한걸음에 달려갔죠. 우여곡절 끝에 오디션을 봤는데 많은 분들이 보아 선배님의 춤을 추더라고요. 전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를 두려고 아무도 추지 않던 보아 선배의 또 다른 곡 '발렌티' 댄스를 췄는데 결국 합격했어요."

다음날 진행된 2차 오디션 역시 효성을 위한 무대였다. 그는 댄스 오디션부분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하며 관계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날이 어버이날이었는데 상품으로 백화점 상품권을 주더라고요. 기분 좋게 부모님께 선물해 드렸죠.(웃음)"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겨울 오디션에 참가한 효성을 알아본 한 관계자가 "'배틀 신화' 프로젝트에 참가해봐라"고 제의한 것.

이제 막 서울에 상경한 청주 소녀에게 그렇게 기회는 천천히 그리고 우연히 찾아왔다. 

'배틀신화' 프로젝트에 참가해보라는 갑작스런 관계자의 제의에 효성은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마냥 기쁘기만 할 줄 알았지만 의외로 고민이 많이 된 것이 사실. 

"공개오디션에 참가하는 것은 좋았지만 TV출연을 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어요. 학교도 다녀야 하는 상황이었고요. 하지만 많은 생각 끝에 결국 참여하기로 결심했어요."

총 5기로 구성된 '배틀신화'에서 효성은 2기 멤버였다. 당시 강원래, 김완선 등 선배가수들이 심사위원으로 나선 가운데 효성은 200여명의 참가자들과 치열한 경쟁을 펼친 끝에 드디어 멤버로 발탁된 것이다. 

치열한 서바이벌 형식이었지만 효성은 끝까지 살아남았다. 200명에서 30명, 그리고 12명. 탈락자가 점점 늘어가는 가운데 전효성이라는 이름은 최종 12명 명단에 당당히 올려져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12명 중 여성 참가자는 단 3명이었다는 것. 

"'배틀신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성격이 많이 변했어요. 그때는 스스로도 여유를 찾아볼 수 없었죠. 왜냐고요? 살아남아야 했기 때문이죠. 남들처럼 한가하게 여유를 부릴 새가 없었어요. 주위 친구들에게 독하다는 소리까지 들었는걸요.(웃음)"

효성에게 피말리는 경쟁말고도 또 하나의 숙제가 남아있었다. 바로 학업이다. 

"학교를 다니면서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하니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정말 힘들었어요. 6개월간은 조퇴도 정말 많이 했죠. 그때 선생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선생님과 친구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어떤 것도 포기할 순 없었어요. 나름 학업성적도 좋았답니다.(웃음)"

'배틀신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효성은 스스로 많은 것을 깨달았단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 그 속에서 사람을 대하는 법을 배웠다. 어린 효성에게는 가장 큰 인생공부가 된 셈. 

뿐만 아니라 춤과 노래는 물론 음악에 대한 지식 또한 나날이 쌓여갔다.

"드디어 최종 6명 안에 제가 들어가 회사와 전속계약을 맺는다는 소식을 듣는 날, 정말 꿈만 같았어요. TV를 통해 제가 우는 장면도 방송된 걸요. 학교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항상 미안했었는데 그것을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고 생각하니 너무 좋았어요."

2006년 전 소속사와 전속계약을 맺게 되면서 효성은 숙소생활을 시작한다. 서울로 전학을 온 것도 이즈음이다. 본격적인 연습생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좋은 기회로 연습생 생활을 시작하게 된 효성이었지만 그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원더걸스 유빈, 애프터스쿨의 유이와 함께 숙소생활을 한 것도 이즈음이다. 

"처음 연습생 시절, 유빈 언니와 함께 3인조 그룹을 준비했었어요. 하지만 준비만 하고 데뷔를 못했죠.(웃음) 이후 5인조 걸그룹 멤버로 발탁돼 1년 동안 춤, 노래 연습에 매달렸어요. 그 그룹이 바로 오소녀예요. 멤버끼리 호흡도 정말 잘 맞았지만 회사 사정으로 인해 결국 케이블 채널 MTV '다이어리 오브 오소녀'가 방송된 후 해체됐어요."

역시 가수가 되는 길은 험난했다. 노력과 열정만 가지고는 될 수 없는 고된 길이었던 것. 팀 해체라는 쓴 맛을 본 효성은 이제 스스로 살아남는 법을 배워야 했다. 

"숙소생활 할 때 한달 용돈이 3만원 정도였죠. 학교는 걸을 수 있는 거리에 있었고 레슨 받으러 갈 때 필요한 차비만 있으면 됐어요. 밥은 회사에서 제공해 주니 걱정이 없었고요.(웃음)"

하지만 기약없는 날들이 계속되자 그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니 문득 걱정이 되기 시작한거예요. 이렇게 시간을 낭비할 순 없다는 생각에 우선 대학교를 진학하기로 결정했죠. 연극영화과에 진학하려고 했는데 그 과에 들어가려면 준비를 해야되잖아요. 그래서 또 알바를 시작하기 시작했죠." 

이 시기 효성은 정말 심한 마음고생을 겪었단다. 막상 가수가 되기위해 과감히 연습생의 길로 뛰어들었지만 이뤄놓은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지방에서 고생하고 계실 부모님 생각에 가슴은 더욱 미어지는 듯 했다. 

"'다이어리 오브 오소녀' 프로그램이 방송되니 고등학교에서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넌 데뷔 안하냐'는 질문을 많이 하더라고요. 하지만 당시 제 상황을 어떻게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어요. 유빈 언니가 원더걸스로 데뷔하는 모습을 지켜보는데 기쁘기도 하면서 '난 지금 뭐하고 있나'라는 생각에 너무 마음이 아팠죠."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포기할 수 없었다. 그동안 흘린 땀방울을 배신 할 수 없었기 때문. 결국 효성은 연습생의 신분으로 대학교에 진학하기로 결정한다. 

주위의 아무런 도움없이 홀로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학비와 레슨비를 벌던 효성에게 인하대학교 연극영화과 08학번이라는 타이틀은 참 고맙고도 또 고마운 것이었다. 

그러나 대학교에 합격한 기쁨도 잠시. 그는 학교를 휴학하기로 결심한다. 

"당시 소속사에서도 앞으로 잘해보자 해서 기다리는 상황이었어요. 다른 분들은 다들 떠나시고 유이 언니와 저만 남았었죠. 둘 밖에 안남으니 정말 열심히 해야되겠다는 생각에 결국 학교를 휴학하고 다시 레슨에 올인하기로 했죠." 

이렇게 고된 연습생 시절을 보내고 있던 효성에게 그의 일생에서 가장 큰 시련이 닥친다. 
시크릿멤버 전효성양의 일대기 | 인스티즈 [사진=고등학교 졸업 당시]




힘든 나날 속에서도 효성이 이렇듯 악착같이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부모님과 식구들 때문이었다. 자신의 뒷바라지를 위해 청주에서 고생하고 계시는 부모님을 때문에 효성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런 그에게 아버지의 갑작스런 암소식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었다고. 

"고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암이라는 소식을 들었어요. 아버지는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 다니시며 치료를 하셨고 '배틀신화'가 끝날 때쯤 완치되셨다는 소식을 들었죠."

그렇게 아버지는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다시 생업전선에 나가셨다. 타지에서 고생하는 딸에게 조금이라도 용돈을 보내주고 싶은 마음 때문에 결정하신 일이었다. 

"어느 겨울 날, 아픈 아버지가 저에게 전화를 하셔서 '요새 너무 춥다, 담요랑 난로는 있냐'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당신 몸이 않좋으신데 저부터 걱정해주시는 모습에 딸로서 마음이 너무 아팠죠. 지난 2006년 연습생 시절을 시작하고 나서 근 2년 동안 아버지의 얼굴을 한 번도 뵌 적이 없었요." 

하지만 하늘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완치된 줄로만 알았던 아버지의 암이 다시 재발하고 만 것. 

"아버지는 암투병 중에도 정말 많은 일을 하셨어요. 당시에도 건축일을 하고 계셨는데 돈이 부족하니 신문배달에 자격증 공부까지 정말 열심히 사셨죠." 

연습과 학교시험으로 바쁘게 살던 그가 아버지와 소통할 수 있는 길은 간간이 전화통화를 하는 것뿐이었다.

"학교 중간고사에서 좋은 성적을 내 기분 좋게 아버지께 전화했는데 울먹거리시더라고요. 항상 강한 모습만 보여주시던 아버지였는데…. 제가 알던 아빠의 모습이 아니시더라고요."

인터뷰 내내 밝은 모습으로 응하던 효성은 당시 감정이 복받치는 듯 끝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병원에서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겠다고 말하더라고요. 온 가족이 모이자마자 상황이 갑자기 안좋아지시더라고요. 어머니는 '산 사람을 살아야지'라며 저를 서울로 올려보냈죠. 결국 전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파요. 그냥 연습 쉬고 아빠 뵐 걸 하는 후회가 크죠."

울먹이면서 말을 이어가던 효성은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또다시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인터뷰는 중단됐고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다시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다. 

"동생 생일이 5월 6일 인데 7일 12시 5분에 산소마스크 뗐어요. 아빠가 40일 동안 아무것도 못 드셔 앙상하게 마른 모습이 아직도 생생해요. 그렇게 아프신데..아픈 내색을 전혀 안하시고 새벽 신문배달하시고 건축일 계속하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죠." 

"몇 년간은 아버지의 죽음이 실감이 안났어요. 아직 청주 계실 것 같고, 가면 환하게 웃으시면서 저를 반겨주실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시크릿으로 앨범 내는 모습을 보셨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요."

먼 길 떠나시는 아버지 옆을 끝까지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 때문이었을까. 그의 눈물은 뜨겁고 끝이 없었다. 
시크릿멤버 전효성양의 일대기 | 인스티즈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떠나 보낸 후 효성은 당분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연습도, 레슨도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고. 당시 효성은 우울증에 걸려 고생을 하기도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우울증과 조울증을 겪었어요. 친언니가 서울에 있었는데 언니한테 위로 받으며 그나마 버텼었던 것 같아요. 이후 이렇게는 안되겠다 싶어 지난해 초, 결국 소속사에서 나왔어요. 다른 회사 찾아 볼까 생각도 했었죠. 주위에서는 '만약 가수 데뷔를 못하면 다른 길을 찾아보는게 어떠냐'고 말씀들을 많이 하셨어요. 저도 그 해까지 자리를 잡지 못하면 꿈을 접을 생각이었죠."
그렇게 뜨거웠던 열정이 점차 사그라질 때쯤,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오소녀 멤버 중 한 명이 언터쳐블의 멤버 액션을 알고 있었어요. 그게 인연이 되서 지난해 4월 현재 소속사 관계자분을 만났죠. 지금 생각해보면 인연이라는 게 정말 신기한 것 같아요. 소속사와 계약하면서 선화와 둘이 생활했어요. 그러다 한 달 뒤에 하나(징거)가 들어오고 또 한 달 뒤에 지은이 들어왔죠.(웃음)"
효성이 지금처럼 멤버들과 친해지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오소녀 시절 막내로 지내다 갑자기 팀의 리더를 맡은 것에 대한 부담감과 또다시 멤버들과 언제 헤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제가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는 스타일이예요. 나이치고는 지나치게 걱정이 많은 것일 수도 있죠. 하지만 마음을 열었다가 제가 상처를 받을까 걱정스러운 마음이 컸어요. 때문에 처음에는 멤버들과도 쉽게 친해지지 못했죠."
결국 효성은 데뷔 후에야 멤버들과 속을 터놓을 수 있는 '절친'이 됐다고. 
"데뷔 후에 '대화의 시간'을 가진 후에야 친해졌어요.(웃음) 지금이야 멤버들과 친하지만 당시에는 '또 일이 잘못돼 멤버들과 헤어지면 어쩌나'라는 생각이 커서 마음을 열지 못했던 것 같아요. 감정적으로 무뎌지려고 하는데 쉽게 안되네요.(웃음)" 
효성에게 노래할 수 있는 기회가 처음 찾아온 것은 지난해 중순이었다. 당시 언터쳐블의 미니앨범 수록곡 '마이 부(My Boo)'의 피처링 작업에 참여한 것. 
"그때는 데뷔도 하기 전이었어요. 제가 참여한 언터쳐블 선배들의 첫 앨범이 나왔을 때 감회는 말로 설명할 수 없었죠. 어머니는 직접 그 노래를 휴대전화 컬러링으로 설정해놓으시고 울먹이시더라고요."
어머니의 이야기가 나오자 다시금 효성의 눈가가 촉촉하게 젖었지만 목소리에는 힘이 가득 담겨져 있었다. 
"제가 꿈을 향해 점점 다가가는 모습이 대견하셨나봐요. 제 생일 때 음원이 공개됐는데 가족은 물론 친구들한테 연락오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저는 현재 상황에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데뷔 전까지 저는 웃음을 잃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예요. 지금 생각해보면 스스로에게 매우 부정적이었던 것 같아요. 이제야 조금씩 웃을 수 있게 해준 시크릿 멤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웃음)"
효성과의 '핫! 데뷔일기'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그의 눈물과 웃음, 노력을 엿보며 시크릿이라는 신인그룹이 치열한 국내 가요계 경쟁 속에서 왜 살아남을 수밖에 없었는지를 깨닫게 됐다. 
아직은 효성이라는 가수를 모르고, 시크릿이라는 그룹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막 날갯짓을 시작한 이들에게 무조건적인 비판과 악플보다는 힘찬 응원의 메시지가 필요할 때임에는 틀림없다.

 

 

 

시크릿멤버 전효성양의 일대기 | 인스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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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숙  중학생인생
ㅠㅠㅠㅠㅠㅠ전효성 감도유ㅜㅜㅜㅠㅠ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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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효성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3년 전
수지o  인티공식할아버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3년 전
응어 ㅠㅠㅠㅠㅠㅠㅠ눈물난다
13년 전
AS막내남  AFTER SCHOOL
시크릿 좋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시크릿은 정말 노력하는 그룹인듯..ㅠ 전효성 힘내라...
13년 전
흐엉.......ㅠ
13년 전
흐엉.......ㅠ
13년 전
아............. 진짜 마음도 이쁘네
13년 전
ssuss  큐브가대세^^;
ㅠㅠㅠㅠㅠㅠㅠㅠㅠ슬프당ㅠㅠㅠㅠ
13년 전
이거 브금 뭐에요?? 아련하다ㅠㅠㅠㅠ
13년 전
ㅠㅠㅠ그래도 지금은 잘되니깐 다행이네요 ..
13년 전
ㅠㅠㅠ
13년 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흫으흐읗ㅇ ㅠㅠㅠ
13년 전
전효성 좋음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13년 전
으아 ㅠㅠ
13년 전
헐 몰랐어..........전효성의 이런 이야기를 ㅜㅜㅜㅜ 대박
13년 전
효성이 지금이라도 잘되서 너무 좋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3년 전
잘되서 다행임...
13년 전
효성아 ㅜㅜ 역시 넌 최고야 ㅜㅜ..
1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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