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다음카페에서 봐온건 애국기업 명단인데, 친일기업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자료를 참고하고 찾아본끝에 글을 올립니다.
1. 두산
계열사: 두산중공업, 두산인프라코어, 두산건설, 두산베어스,두산동아 등
두산의 창업주 박승직은 안중근 의사의 저격으로 이토히로부미가 사망했을때, 이토히로부미를 추도하는 '국민대추도회'
의 발기인 및 위원으로 참여하게 됩니다. 또한 이후에도 친일단체인 조선경제회 이사, 조선 지원병제도 및 위안부 모집
단체에 참여하여 친일행각을 보여줍니다. 또한 1941년 경성부 총력과를 직접 방문해 해군 국방헌금으로 1만원을 헌납했고 1943년에도 두차례에 걸쳐 방공감시대 위문금과 국방헌금을 헌납했습니다.
2. 삼양사
사업:화학 제품, 큐원(설탕, 밀가루, 식용유, 숙취해소제) (단 삼양라면을 파는 그 회사는 이 회사가 아닙니다.)
창업주인 김연수는 인촌 김성수의 친동생이며 1925년부터 경성방직 경영을 주도하기 시작하였다. 경성방직을 비롯하여
삼양사, 해동은행 등을 경영했고 일본의 만주 침략 후에는 만주로까지 사업을 확장하여
1939년 남만방적주식회사를 설립해 경영했다.
김연수는 경성부 주재 만주국 명예총영사,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직을 받았으며 특히나 중일전쟁 발발 이후에는 경성방직을 기반으로 군수 산업에 뛰어들었고, 1944년 전쟁 지원을 위한 조선항공공업주식회사를 설립했다. 또한 조선총독부 산하 각종 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일제의 식민통치에 협력했다. 김연수는 1942년 1월~1943년 1월까지 <매일신보> 이사를 지내기도 했으며 이러한 친일공로로 조선총독부로터 네 차례나 포장을 받았다.
3. 유한양행
유한양행을 세운 유일한 박사는 애국자로 알려져 있으나,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유한양행을 맡은 그의 동생 유명한은
친일행각을 벌였다는 사실은 많은분들이 모르시라 생각됩니다. 애국과 친일을 동시에 한 참 아이러니한 기업이네요.
유일한박사는 만 50세의 나이에도 강도가 높은 군사 및 첩보훈련을 받으면서 미국의 한국 본토 침공 작전인 ‘냅코’ 작전에 참가할 만큼 열혈 애국자였지만 이 시기 그를 대신해 유한양행을 이끈 동생 유명한은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의 경제부문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친일인명사전> 등에 따르면 유명한은 1941년 8월 경성부에 있는 종로경찰서를 방문해 국방헌금 1만 원을 일본 제국 육군의 무기 구입비로 헌납했다. 태평양 전쟁이 발발한 1941년 유명한과 유한양행은 전투기 제작비로 자신과 회사 명의로 5만 3000원을 종로경찰서를 통해 일본군에 헌납하였다. 각각 2만 7000원은 유한양행 명의로, 유명한 본인 명의 1만 원, 만주유한공사 명의로 1만 원, 유한무역주식회사 5000원, 직원 명의 1000원이었다.
그외에도 다양한 기업들이있지만, 여러분들이 모를만한 기업 3개로 추린점 이해해 주시길 바라며
오랫동안 기억해야 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